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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심란하다, 경제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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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1-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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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와 노동계의 반발에도 경제자유구역법 통과… 간접적 시장 개방·기업 특혜 등 논란 격화

사진/ 민주노총의 경제특구 반대시위. 노·사 두 경제주체가 다같이 반대해온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류우종 기자)
노동계도 반대하고 기업도 반대하는 법을 정부가 추진한다 국가가 특정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는 기구가 아니라면 공공이익을 위해 그런 법을 추진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 흔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노-사 두 경제 주체가 다같이 반대해온 법이 우여곡절 끝에 최근 국회를 통과했다. 경제특구인가, 식민특구인가라는 논란 속에 지난 11월14일 통과된 경제자유구역법(옛 경제특구법)이다.

외국인 교원과 의사가 몰려오면…

노동계와 교육계는 “외자유치를 명분으로 자기 나라 국민의 기본권을 박탈하고 생존권을 외국자본에 팔아넘겼다”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 역시 “외국기업만 혜택을 주는 것은 국내기업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재정경제부가 추진한 이 법안을 둘러싸고 정부 안에서조차 갈등이 증폭됐다. 교육부는 경제자유구역법이 담고 있는 외국인학교의 설립·입학 조건 완화에 반대했고, 노동부는 외국기업에 대한 월차·생리휴가 폐지에 반발했다.


국회로 넘어간 법안은 심의과정에서 다시 누더기로 변질되고 말았다.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경제특구 지정 기준을 애초의 ‘국제공항·국제항만 등을 갖춘 지역’에서 ‘교통시설을 갖춘 지역’으로 크게 완화한 것이다. 경제특구가 특별한 지역에 국한하지 않고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바꾼 것인데, 뒤에는 대구 등 특구 지정대상에서 빠진 해당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의 집요한 ‘특구 전국화’ 압력이 작용했다. 그러자 노동계는 총파업으로 맞서겠다며 격렬하게 저항했고, 결국 국회 본회의는 상임위안을 거부하고 애초 정부안 대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전국 아무데서나 특구가 들어설 수 있는 근거는 삭제된 것이다. 이에 따라 불씨는 일단 가라앉았다.

그런데 경제자유구역법은 특구라는 특정 지역을 넘어 한국 경제 전반에 영향력을 미친다. 그런 점에서 경제특구를 둘러싼 논란은 지속될 공산이 크다. 내년 7월까지 마련될 법안 시행령을 둘러싸고 사회경제적 갈등이 다시 불거질 수 있는 것이다. 경제자유구역법의 이면을 들여다보자.

그동안 크게 부각되지 못했지만, 경제특구는 교육과 의료분야의 시장개방이란 성격을 띠고 있다. 경제자유구역법은 외국 교육자본이 특구 안에 외국교육기관(초·중등 및 대학교)을 세울 수 있도록 허용하고, 내국인의 특구 내 외국인학교 입학을 허용하고 있다. 외국인학교에 대해서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부지, 학교 건축 및 학교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 외국인 교원 임용도 허용된다.

이 법은 또, 특구 안에 외국 의료자본이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종합병원·병원·치과병원·요양병원)과 약국을 설립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물론 특구에는 외국의 의사·약사가 들어온다. 외국자본이 경제특구를 이용해 우회적으로 국내 시장에 진출하는 격인데, 국내에 미칠 파장도 크다. 부유층의 외국인학교 진학으로 학교 서열화와 공교육 붕괴가 심화되고, 외국 의료기관이 문을 열면서 국내 병원의 상업성이 더욱 강화될 가능성도 높다. 특구 지정요건은 제한됐지만 실제로 사회 및 경제 각 부문이 특구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셈이다.

국내기업들 특구로 빠져나갈 가능성

사진/ 법안 통과에도 불구하고 경제특구를 둘러싼 논란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국회 본회의 표결처리 장면. (한겨레 김경호 기자)
경제특구에 들어오는 기업은 파격적 특혜를 누린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환경·교통·재해 등에 관한 영향평가법 등 무려 34개 인·허가 관련 법안이 특구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법인세와 소득세 등 일부 국세가 감면되고, 노동쪽에서는 일요일 유급휴가제가 없어지고 생리휴가도 무급이 되며 장애인·고령자 의무고용비율도 적용되지 않는다. 아무런 제약도 규제도 없는, 말 그대로 기업의 천국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전경련은 반대하는 것일까. 재계의 주장은 단순하다. 전국을 다 경제특구화하라는 것이다. 전경련쪽은 “이왕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한다면, 외자유치를 위해 특정 지역을 특구화할 게 아니라 전 국토를 규제자유지역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상품시장에서 외국자본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판인데, 외국자본에만 특혜를 주면 국내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논리다. 전경련은 외자유치가 아니라 국내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게 막는 것이 급선무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특구가 불러올 현상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끄는 대목은 국내기업들이 해외가 아닌 특구로 빠져나갈 가능성이다.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따라 국내기업은 10%의 외국인 지분만 확보해도 외국인 투자기업으로 분류되어 특구에 입주할 수 있다. 이름만 외국인 투자기업일 뿐 국내기업들이 특구에서 각종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재정경제부쪽은 “재계가 국내기업에 대한 역차별이라며 표면상 특구에 반대하고 있지만, 사실은 외국자본과의 합작 형태로 특구에 들어가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구로 지정받지 못한 지역에서 기업이 빠져나와 특구로 대거 이동할 경우 특구 이외 지역은 경제 침체가 불가피하다. 원래 입법 목적인 외국인 투자는 제대로 유치하지 못하면서 지역간 불균형 발전만 심화시키는 꼴이다.

흥미로운 점은 국내에 진출한 외국기업의 95%가 경제특구에 투자할 생각이 없다는 사실이다. 전경련이 지난 10월 주한 외국기업 12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경제특구에 입주할 의사가 없거나 미정이라고 응답한 기업이 95%(57개사)였다. 현재 사업장의 입지에 만족하고 있거나 비즈니스 인프라 집적효과 기대가 어렵다는 것이 이유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외자유치를 위한 경제특구는 꼭 필요한가 외국인 투자의 결핍이 우리 경제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지는 따져봐야 할 대목이지만, 정부는 자동차·철강 등 제조업과 우리 자본만으로는 먹고사는 데 한계가 있다고 강조한다. 특구는 기존 수출자유지역 같은 ‘공장’ 개념이 아니라, 물류·비즈니스 중심으로 이뤄진다. 재경부는 “경제특구인 상하이·홍콩·싱가포르 등과 우리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판인데, 지금은 누가 먼저 외국자본을 만족시키는 제도와 환경을 갖추느냐가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업종 제한·특구 대상지도 논란

그럼에도 경제특구를 둘러싼 논란은 이제 시행령 제정을 둘러싼 제2라운드로 옮겨가고 있다. 우선 특구 입주대상 업종을 제한할지 여부를 시행령에 넣어야 한다. 재경부는 물류 및 서비스, 금융 업종으로 한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국내기업들이 생산공장은 특구 바깥에 그대로 두면서 대신 사무소만 특구에 들어가는 방식으로 특구의 특혜를 적용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뚜렷한 규정이 없는 경제특구 규모와 관련해 소규모 지역을 포함시킬지 여부도 따로 정해야 한다. 하지만 지역별 이해가 첨예하게 걸린 만큼 정리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가장 큰 불씨는 특구의 수다. 특구는 경제자유구역심의위원회가 심의·의결을 거쳐 지정하는데, 현재 특구 대상지로 꼽히는 곳은 인천(송도·영종도), 부산, 광양이다. 하지만 특구 지정요건 중 국제공항을 갖춘 곳은 8군데고, 국제무역항으로 분류되는 지역도 28군데에 이른다. 특구가 이들 지역으로 확대될 경우 소외된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 차별”이라며 거세게 반발할 공산이 크다. 외국인투자 전용단지, 관세자유지역, 수출자유지역 등 그동안 이런저런 특구는 많이 생겼다. 하지만 이번 경제특구는 이래저래 첩첩산중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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