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데이타 “전직 감사 유길영씨 자진 사퇴”주장에 “정치자금 반대해 밀려났다”반박
6년을 끌어온 ‘포스코 진실게임’의 결말은
한국 최대의 철강기업 포스코의 주력 계열사 가운데 하나인 포스데이타와 이 회사의 전직 감사인 유길영(53)씨가 진실게임의 주인공들이다. 회사와 전직 임원 간에 ‘복직’을 둘러싼 다툼이 관심을 끄는 것은 ‘진짜 사직 이유’를 둘러싼 공방 때문이다. 유씨는 “정치자금 조성에 반대한 것 때문에 눈밖에 나서 결국 강압에 밀려 사직했다”고 주장한다. 포스데이타의 말은 전혀 다르다. “유씨의 근무태도가 형편없었는데다, 여비서 성희롱건이 문제가 돼 자진해서 물러난 것이다.”
금액 적히지 않은 출금전표?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포스데이타 감사로 재직 중이던 96년 말이었다. 하루는 여비서가 결재판을 들고 왔다. 출금전표를 결제해달라는 것이었다.” 유씨는 전표에 사장과 담당임원의 사인이 이미 돼 있었는데, 금액란이 공란이었다고 주장한다. 의아하게 생각한 유씨가 묻자 회사쪽은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 강남을 지구당위원장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백지라니 이상하지 않은가 지역구라면 100만~200만원이면 충분할 텐데.” 유씨는 이리저리 사정을 알아보았다. “지역구 관리는 핑계였고, 또 다른 정치자금 조성이 진짜 목적이었다. 7~8개 계열사들이 동원됐다.” 유씨는 자신 때문에 정치자금 조성이 없는 일로 됐다고 말한다. “내가 반대한 것은 당시 포스코 부사장인 김진주씨의 재판증언에서도 확인됐다”는 주장이다. 김씨는 재판에서 “정치인을 위한 자금조성은 아니었고…. 강남을구의 여야 후원회 행사 보조에 원고가 반대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들었다”고 말했다. 유씨는 그로부터 5개월 뒤인 97년 5월 말부터 사퇴압력이 본격화됐다고 말한다. 당시 김만제 포스코 회장은 더 이상 정치권 압력이나 청탁에 휘둘리지 않겠다며 이른바 ‘MJ선언’을 했다. MJ선언에는 민주계 실세들의 청탁으로 낙하산을 타고 들어온 사람들을 정리한다는 게 포함됐다. 유씨는 그 대상의 하나가 자신이었다고 말한다. “94년 9월 여권의 지원으로 포스코에 들어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원래 포스코 공채 7기 출신이기 때문에, 낙하산으로 들어온 다른 사람들과는 경우가 다르다. 정치자금 조성에 반대한 게 진짜 이유였다.” “사직서도 위조했다”
유씨가 회사를 그만둔 것은 97년 7월29일. “당시 포스코 기조실장인 김진주 부사장이 집요하게 사표를 요구했다. 사직하면 포스코나 다른 계열사에 다시 자리를 만들어준다고 약속했다. 결국 복직 조건부로 사직서를 썼다.” 하지만 포스데이타의 설명은 다르다. 김광호 포스데이타 사장은 유씨가 자진해서 사직했다고 주장한다. 유씨의 근무태도가 아주 불량했고, 결정적으로 여비서 성추행건이 터졌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유씨는 회사가 꾸민 일이라고 펄쩍 뛴다.
유씨는 끈질기게 복직을 요구했으나 회사쪽 반응은 싸늘했다. 유씨는 지난해 5월, 법원에 면직 무효확인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지난 9월18일 1심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패소했다. 유씨는 97년 8월 초 회사가 법인등기부 변경을 위해 필요하다며 가져온 사직서에 날인해준 게 결정적 원인이 됐다고 주장한다. “회사에서 임원 명의변경 서류를 제출하기 위해 필요하다며 백지에 도장을 찍어달라고 해서 응해줬는데, 사직서를 ‘일신상의 이유로 회사를 그만둔다’는 내용으로 위조했다”는 주장이다. 유씨는 10월10일에 항소했다.
포스코는 그동안 ‘권력의 돈줄’로 불리며 권력교체기 때마다 심한 외풍에 시달려왔다. 하지만 유상부 회장 체제에서 2000년 말 민영화를 이루며 ‘탈정치’의 중요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그러나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를 완전히 벗는 데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곽정수 기자/ 한겨레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사진/ (한겨레 강창광 기자)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포스데이타 감사로 재직 중이던 96년 말이었다. 하루는 여비서가 결재판을 들고 왔다. 출금전표를 결제해달라는 것이었다.” 유씨는 전표에 사장과 담당임원의 사인이 이미 돼 있었는데, 금액란이 공란이었다고 주장한다. 의아하게 생각한 유씨가 묻자 회사쪽은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 강남을 지구당위원장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백지라니 이상하지 않은가 지역구라면 100만~200만원이면 충분할 텐데.” 유씨는 이리저리 사정을 알아보았다. “지역구 관리는 핑계였고, 또 다른 정치자금 조성이 진짜 목적이었다. 7~8개 계열사들이 동원됐다.” 유씨는 자신 때문에 정치자금 조성이 없는 일로 됐다고 말한다. “내가 반대한 것은 당시 포스코 부사장인 김진주씨의 재판증언에서도 확인됐다”는 주장이다. 김씨는 재판에서 “정치인을 위한 자금조성은 아니었고…. 강남을구의 여야 후원회 행사 보조에 원고가 반대했다는 사실을 나중에 들었다”고 말했다. 유씨는 그로부터 5개월 뒤인 97년 5월 말부터 사퇴압력이 본격화됐다고 말한다. 당시 김만제 포스코 회장은 더 이상 정치권 압력이나 청탁에 휘둘리지 않겠다며 이른바 ‘MJ선언’을 했다. MJ선언에는 민주계 실세들의 청탁으로 낙하산을 타고 들어온 사람들을 정리한다는 게 포함됐다. 유씨는 그 대상의 하나가 자신이었다고 말한다. “94년 9월 여권의 지원으로 포스코에 들어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원래 포스코 공채 7기 출신이기 때문에, 낙하산으로 들어온 다른 사람들과는 경우가 다르다. 정치자금 조성에 반대한 게 진짜 이유였다.” “사직서도 위조했다”

사진/ 포르코와 법정소송을 벌이고 있는 유길영씨. 그는 정치자금 조성을 거부했다가 해직됐다고 주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