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SK증권 증자 위해 JP모건 끌어들여…이자붙여 되사준다는 이면계약으로 1천억원 손실 떠안아
지난 10월11일 SK그룹 계열사인 SK캐피탈과 워커힐은 시간외매매를 통해 SK증권 주식 2405만주를 시장가격인 주당 1535원에 JP모건으로부터 사들였다. 이날 거래는 SK증권이 지난 99년부터 시작한 JP모건과의 짧은 동거를 끝내기 위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다. 99년 당시 주당 4290원에 주식을 산 JP모건이 주식시장이 나쁜 상황에서 왜 지금 수백억원에 이르는 손실을 보고 주식을 처분하는 것일까
이면계약 이행 위해 계열사 동원
역시 문제가 있었다. SK 계열사와 JP모건 사이의 거래는 시장을 속이기 위한 연막작전이었음이 드러났다. 손실을 본 쪽은 JP모건이 아니라 오히려 SK그룹이었으며, SK쪽의 손실액은 무려 1천억원이 넘는 것으로 밝혀졌다. SK그룹과 JP모건 사이에는 도대체 어떤 뒷거래가 이뤄져왔던 것일까
사태의 발단은 지난 98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SK증권은 JP모건이 디자인한 인도네시아 채권을 매개로 한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가 5억달러가량의 손실을 입고, JP모건에도 막대한 손실금을 물어줘야 할 처지에 놓였다. SK증권은 “JP모건이 투자위험을 충분히 알리지 않고 상품을 팔았다”는 점을 들어 소송을 제기했지만 소송에 이길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당시 SK증권은 외환위기 상황에서 그룹 계열사의 지원으로 가까스로 연명하고 있었으나 소송 사건 때문에 회사의 생존은 더욱 불투명한 상태였다. 서둘러 소송을 마무리짓고 증자를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처지였다. SK는 99년 9월29일 JP모건과의 분쟁을 합의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동시에 JP모건에 문제의 주식을 유상증자 방식으로 넘겼다. 당시 SK증권의 발표는 SK증권이 매우 유리한 조건으로 분쟁을 마무리지었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SK는 당시 합의금의 규모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으나 “모든 분쟁을 종결짓고, JP모건이 신주 2212만주를 액면가(2500원)에다 20%를 할증한 값으로 인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JP모건과 함께 주택은행·대한투신 등이 증자에 참여함으로써 SK증권에는 신규자금 3200억원이 들어왔다. 그러나 JP모건의 증자는 그 뒤 3년 만에 한편의 잘 짜인 사기극으로 판명나고 있다. SK가 훗날 원금에 이자를 붙여 JP모건이 증자에 참여한 주식을 되사주기로 이면계약을 맺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SK와 JP모건 사이의 이면계약에는 계열사인 SK글로벌의 해외법인들이 참여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계약내용은 이렇다. “JP모건은 2년 뒤 주당 4.09달러에 보유 주식을 SK글로벌에 팔 권리를 갖는다. 반대로 SK글로벌은 같은 가격에 주식을 되살 권리를 갖는다.” SK글로벌은 이런 계약을 이행하기 위한 담보로 JP모건이 발행한 노트(채권) 8500만달러어치를 인수해 JP모건에 넘겨줬다. JP모건의 유상증자 참여는 사실상 이자놀이에 불과했던 셈이다. 노트의 만기는 바로 지난 10월18일이었고, SK글로벌은 만기에 앞서 이면계약 내용이 시장에 알려지지 않도록 문제를 처리해야 했다. SK는 이면계약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연막을 치기 위해 복잡한 이중거래를 했다. SK글로벌 해외법인이 JP모건의 주식을 비싼 값에 사들일 경우 이면계약 사실이 공개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숨기기 위한 것이었다. SK캐피탈과 워커힐이 끼어든 것은 이 때문이다. 뒤통수 맞은 SK글로벌 주주들
우선 SK는 두 계열사로 하여금 시장가격으로 JP모건의 보유주식을 사도록 했다. 대신 이면계약상의 인수가격과 시장가격 간의 차액만 SK글로벌의 미국 및 싱가포르 해외법인이 결제하는 방식을 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면계약상 SK쪽이 사들인 JP모건 보유주식은 주당 6080원이고, 시장가격은 1535원이었으므로 SK글로벌이 입은 총손실은 1093억원가량으로 추정된다. 증권가에서는 SK글로벌이 이면계약 이행에 앞서 10월8일 현지법인들에 채무보증을 한 것은 JP모건에 차액을 지불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형식적으로만 보면 SK그룹의 거래는 간단하다. 지난 99년 JP모건이 인수할 주식을 당시 SK글로벌이 JP모건에서 돈을 빌려 인수했다면 지금의 상황과 같은 결과가 된다. 만약 그랬다면 SK글로벌은 이자부담과 주가하락에 따른 손실을 질 뿐, 더 이상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SK는 왜 그런 간단한 방식을 취하지 않고 복잡한 거래를 성사시켰을까 한 증권사 관계자는 “당시 SK로서는 합의금으로 JP모건에 나가는 자금 이상의 현금 유입이 필요했고, 할증된 가격에 신주를 발행함으로써 생존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얻을 필요가 있었던 것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결국 시장을 속이기 위해 세계적인 금융회사인 JP모건을 끌어들였다는 해석이다.
금융감독원은 이런 의혹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이면계약이 존재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애초 SK그룹쪽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발뺌하다 금감원의 조사가 시작되자 “이해관계자들이 있어 자세한 내용은 공개하지 못하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룹 관계자는 “당시로서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 정상참작론을 펴기도 했다. 당시 SK증권의 붕괴는 SK라는 대그룹을 믿고 투자한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었으며, 대기업 계열 금융사가 망할 경우 국가신인도에도 타격을 주었을 것이라는 논리다. 다른 하나는 SK증권이 망할 경우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하는데, 그러면 국민들이 그 비용을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JP모건과의 뒷거래는 “사람 치는 것을 피하려다 가로수를 친 사고”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SK의 이런 해명은 “그렇다면 왜 SK글로벌의 주주들이 거액의 손실을 떠안아야 하느냐”는 반박에 직면하게 된다. SK의 설명대로 SK증권을 반드시 살려야 했다면 최태원 회장 등 경영에 책임 있는 사람이 손실을 떠안는 것이 온당한 일이었을 것이다. SK의 행위는 국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대재벌이 시장을 상대로 사기행위를 벌였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SK가 벌여놓은 일은 도덕적 비난을 넘어서 법적으로도 제재를 받을 소지를 많이 안고 있다. 우선 JP모건의 유상증자 참여 당시 이면계약 내용을 전혀 공시하지 않은 점이 문제된다. 현대전자도 비슷한 시기에 자사주를 해외 금융기관에 팔면서 이면계약을 체결한 일이 있다. 당시 현대전자는 이면계약을 파생상품 거래형태를 취해 시장에 공시했다. 그러나 SK증권이나, 이면계약의 체결 당사자인 SK글로벌은 이를 전혀 공시하지 않고 투자자들을 완전히 속였다. 특히 SK글로벌 싱가포르와 SK글로벌 아메리카의 지분 60%와 85%를 보유한 SK글로벌 본사는 감사보고서와 사업보고서, 연결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사항 어디에도 이런 이면계약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
최고경영진에게 책임 없는가
SK글로벌이 엄청난 손실을 떠안으면서 JP모건을 끌어들여 SK증권을 지원한 것도 부당지원행위로 공정거래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참여연대는 SK그룹 관계사들을 금감원과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했다. 금감원과 공정위의 반응은 위법 혐의가 짙다는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현행 공정거래법상 출자총액제한이나 채무보증금지는 기업집단의 국내 계열사에 한정되지만, 부당지원 문제는 해외 계열사라 해도 이를 배제하는 명문 조항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법적으로 문제가 있느냐로 끝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룹 계열사들이 여럿 동원된 복잡한 거래는 그룹 최고경영진의 결재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손길승 회장, 최태원 회장은 이번 사건에 얼마나 개입했는가 법적 책임은 벗어난다고 해도 이들이 최고책임자로서 도덕적 책임을 벗어날 길은 현재로선 없다. 세계적인 금융회사인 JP모건이 시장을 속인 SK의 사기극에 적극 개입해 이익을 취했다는 점도 두고두고 금융가의 입에 오르내릴 전망이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사진/ 지난 4월16일 열린 SK증권의 윤리강령 선포식. JP모건과의 뒷거래는 윤리강령에 위배되지 않을까.(한겨레)
사태의 발단은 지난 98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SK증권은 JP모건이 디자인한 인도네시아 채권을 매개로 한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가 5억달러가량의 손실을 입고, JP모건에도 막대한 손실금을 물어줘야 할 처지에 놓였다. SK증권은 “JP모건이 투자위험을 충분히 알리지 않고 상품을 팔았다”는 점을 들어 소송을 제기했지만 소송에 이길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당시 SK증권은 외환위기 상황에서 그룹 계열사의 지원으로 가까스로 연명하고 있었으나 소송 사건 때문에 회사의 생존은 더욱 불투명한 상태였다. 서둘러 소송을 마무리짓고 증자를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처지였다. SK는 99년 9월29일 JP모건과의 분쟁을 합의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동시에 JP모건에 문제의 주식을 유상증자 방식으로 넘겼다. 당시 SK증권의 발표는 SK증권이 매우 유리한 조건으로 분쟁을 마무리지었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SK는 당시 합의금의 규모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으나 “모든 분쟁을 종결짓고, JP모건이 신주 2212만주를 액면가(2500원)에다 20%를 할증한 값으로 인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JP모건과 함께 주택은행·대한투신 등이 증자에 참여함으로써 SK증권에는 신규자금 3200억원이 들어왔다. 그러나 JP모건의 증자는 그 뒤 3년 만에 한편의 잘 짜인 사기극으로 판명나고 있다. SK가 훗날 원금에 이자를 붙여 JP모건이 증자에 참여한 주식을 되사주기로 이면계약을 맺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SK와 JP모건 사이의 이면계약에는 계열사인 SK글로벌의 해외법인들이 참여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계약내용은 이렇다. “JP모건은 2년 뒤 주당 4.09달러에 보유 주식을 SK글로벌에 팔 권리를 갖는다. 반대로 SK글로벌은 같은 가격에 주식을 되살 권리를 갖는다.” SK글로벌은 이런 계약을 이행하기 위한 담보로 JP모건이 발행한 노트(채권) 8500만달러어치를 인수해 JP모건에 넘겨줬다. JP모건의 유상증자 참여는 사실상 이자놀이에 불과했던 셈이다. 노트의 만기는 바로 지난 10월18일이었고, SK글로벌은 만기에 앞서 이면계약 내용이 시장에 알려지지 않도록 문제를 처리해야 했다. SK는 이면계약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연막을 치기 위해 복잡한 이중거래를 했다. SK글로벌 해외법인이 JP모건의 주식을 비싼 값에 사들일 경우 이면계약 사실이 공개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숨기기 위한 것이었다. SK캐피탈과 워커힐이 끼어든 것은 이 때문이다. 뒤통수 맞은 SK글로벌 주주들


사진/ 최태원 SK(주) 회장의 강연 모습. 이번 사건에서 그룹 최고경영진은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한겨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