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협정 타결되면 한국 농가에 큰 타격…정부보조·기업 지원 등 해결책 찾아야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칠레. 그곳은 비가 거의 오지 않는 나라다. 1년 가야 비가 내리는 날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그런데도 칠레는 세계 과일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해 아시아 각국까지 칠레산 과일이 들어가지 않는 곳은 없다. 한국도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이 거의 타결 단계에 접어들어 이제 칠레산 과일이 우리 식품매장에 넘쳐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만만한 ‘스파링 파트너’ 아니다
칠레는 비가 내리지 않는 대신 날씨가 맑고 일조량이 많다. 그러나 풍부한 일조량만으로는 좋은 과일을 생산할 수 없다. 이를 해결해주는 것이 안데스 산맥의 만년설이다. 만년설이 천천히 녹으면서 1년 내내 안정적이고 풍부한 물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게다가 안데스 산맥은 적은 강수량을 효율적으로 사용토록 해주는 기막힌 ‘자연댐’ 역할을 한다. 여기에서 칠레 과일의 경쟁력이 나오는 것이다.
게다가 칠레는 위로는 적도에서 아래는 남극 부근까지 국토가 닿아 있다. 그 덕분에 열대와 온대는 물론 냉대와 한대를 아우르고 있다. 어느 나라든 수출하려는 대상 국가와 똑같은 기후 조건에서 맞춤 재배를 할 수 있어 대상국의 입맛을 파고들기도 수월하다. 칠레 외교부의 오스발도 로살레스 국제경제담당 차관보는 “우리 (농산물) 기업은 시장 요구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고 적응을 잘하는 장점이 있다”고 자랑한다. 한국 정부가 지난 99년에 자유무역협정의 첫 대상국으로 하필 지구 정 반대편의 칠레를 선정한 까닭은 애초 ‘스파링 파트너’ 논리였다. 일본·미국 등 선진국과의 본격적인 협정 체결에 앞서 교역량이 많지 않은 칠레와의 협정으로 자유무역협정의 득실을 사전에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지난해 칠레의 대한국 수출은 7억달러, 한국의 대칠레 수출은 5억7천만달러에 불과하다. 하지만 애초 예상과 달리 칠레는 농산물의 경쟁력에서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씩 확인되고 있다. 칠레산 과일은 값이 아주 싸다. 우리 농가의 농토가 평균 1.3ha인 반면 칠레는 평균 1500ha이다. 한국은 농업 하면 농가를 떠올리지만 칠레에서는 수천명의 농업노동자를 거느린 농업기업을 연상해야 한다. 이 때문에 태평양을 1달 동안 건너는 물류비를 감안해도 칠레산 과일의 가격은 국산에 비해 3분의 1 수준이다. 이런 여러 이유로 사과·배·포도 재배 농가들이 한-칠레 협정을 적극 반대해왔고, 정부 또한 협상 과정에서 이러한 정서를 반영해 사과·배를 무관세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포도 또한 한국과 생산시기가 겹칠 때는 계절관세를 매기기로 했다. 대체효과 때문에 사과·배도 피해갈 듯
하지만 적어도 4천여 비닐하우스 포도농가는 피해를 피해가기 어렵다. 칠레과일수출협회(ASOEX)의 로날드 바운 회장도 “미국에서 포도가 나지 않는 계절에는 미국시장의 95%를 칠레산 포도가 독점하며, 미국의 포도 생산철에도 미국시장의 40%를 점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포도 수입의 영향은 도미노처럼 확산될 수도 있다. 박홍수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장은 “제주도가 말 사료용 연맥을 생산하다 몇년 전 연맥이 수입되면서 감자로 품목을 바꾸자, 강원도 감자산지가 큰 피해를 봤다”며 비슷한 현상이 재연될까 염려했다. 특히 미국산 오렌지가 한창 싸던 지난 2000년 오렌지가 예년의 2배로 수입되면서 귤·방울토마토·사과 등 다른 과일마저 동반 폭락한 적이 있다. 소비자들이 애초 선호하던 과일에서 값싼 다른 과일로 바꾸는 대체효과 때문이다. 비록 이번에 사과·배의 수입에 제동을 걸기는 했지만 복숭아·감귤·단감 등 다른 과일이 대거 싸게 유입되면서 결국 사과·배도 피해를 볼 수 있다.
협정체결 당사자 간의 무역에서 관세를 원칙적으로 철폐하는 자유무역협정은 세계적인 대세다. 올 3월 기준으로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된 자유무역협정과 관세동맹 등 지역무역협정이 모두 250개며, 이 가운데 현재 발효 중인 지역무역협정이 168개나 된다. 외교통상부는 “올해 초 일본이 싱가포르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서 세계무역기구 144개 회원국 가운데 지역무역협정을 하나도 체결하지 않은 곳은 한국·몽골·중국·대만·홍콩 5개밖에 남지 않게 됐다”며 “지난해 말에야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한 중화권을 빼면, 결국 몽골과 한국만이 외톨이 신세다”라고 설명한다. 그뿐 아니다. 자유무역협정은 자동차·전자레인지·석유화학 등 공산품 수출 증가를 통해 전체적인 무역수지를 개선하게 된다.
“우리는 농업을 포기하고 있다”
그런데도 농민들이 한-칠레 협정을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한-칠레 협정이 이후 잇따를 또 다른 자유무역협정들과 쌀시장 개방의 도화선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정부가 올바른 농업관과 보상방식을 통해 농업시장 개방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하는데도 지금 정부의 행태에서는 그런 자세를 찾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장원석 교수(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는 “농업인구가 각각 전체의 1%와 3% 수준인 미국과 일본도 농업 관련 예산이 정부 예산의 10%인데 한국은 농업인구가 10%인데도 정부 예산의 겨우 8% 수준이다. 우리는 선진국과 달리 식량자급 목표치마저 설정하지 않을 정도로 농업을 포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어 “이스라엘의 경우 농산물을 자급자족한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우리가 농업마저 포기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고 우려했다.
박홍수 회장은 “농산물 개방이 농가보조와 모순되지 않는다”면서 “정부 예산이나 공산품 수출 확대에서 나온 이익금으로 농가소득을 직접 보전해주는 등 세계무역기구가 인정하는 농가보조를 대폭 확대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자유무역협정 발효 뒤 가장 많은 혜택을 입을 기업들이 이익의 일부를 농민에게 돌려주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정부는 시장개방 과정에서 기업과 농민이 윈윈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송창석 기자/ 한겨레 경제부
number3@hani.co.kr

사진/ 칠레산 과일이 진영돼 있는 백화점 식품매장. 칠레는 과일 재배에 이상적인 기후조건을 갖췄다.(김종수 기자)
게다가 칠레는 위로는 적도에서 아래는 남극 부근까지 국토가 닿아 있다. 그 덕분에 열대와 온대는 물론 냉대와 한대를 아우르고 있다. 어느 나라든 수출하려는 대상 국가와 똑같은 기후 조건에서 맞춤 재배를 할 수 있어 대상국의 입맛을 파고들기도 수월하다. 칠레 외교부의 오스발도 로살레스 국제경제담당 차관보는 “우리 (농산물) 기업은 시장 요구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고 적응을 잘하는 장점이 있다”고 자랑한다. 한국 정부가 지난 99년에 자유무역협정의 첫 대상국으로 하필 지구 정 반대편의 칠레를 선정한 까닭은 애초 ‘스파링 파트너’ 논리였다. 일본·미국 등 선진국과의 본격적인 협정 체결에 앞서 교역량이 많지 않은 칠레와의 협정으로 자유무역협정의 득실을 사전에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지난해 칠레의 대한국 수출은 7억달러, 한국의 대칠레 수출은 5억7천만달러에 불과하다. 하지만 애초 예상과 달리 칠레는 농산물의 경쟁력에서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조금씩 확인되고 있다. 칠레산 과일은 값이 아주 싸다. 우리 농가의 농토가 평균 1.3ha인 반면 칠레는 평균 1500ha이다. 한국은 농업 하면 농가를 떠올리지만 칠레에서는 수천명의 농업노동자를 거느린 농업기업을 연상해야 한다. 이 때문에 태평양을 1달 동안 건너는 물류비를 감안해도 칠레산 과일의 가격은 국산에 비해 3분의 1 수준이다. 이런 여러 이유로 사과·배·포도 재배 농가들이 한-칠레 협정을 적극 반대해왔고, 정부 또한 협상 과정에서 이러한 정서를 반영해 사과·배를 무관세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포도 또한 한국과 생산시기가 겹칠 때는 계절관세를 매기기로 했다. 대체효과 때문에 사과·배도 피해갈 듯


사진/ 창고에 가득 쌓인 수입 칠레 과일들. 예외규정을 두었지만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면 과일값이 폭락할 수 있다. (김종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