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베일에 싸인 요금인하 논란

428
등록 : 2002-10-02 00:00 수정 :

크게 작게

다른 나라에 비해 과도한 기본요금…정통부는 소극적 태도로 일관

휴대전화 요금인하를 둘러싼 가입자들과 이동통신회사, 그리고 정부의 힘겨루기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가입자들의 요금 인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정부와 이동통신 3사들은 내부적으로 열심히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어차피 연말에 한 차례의 요금인하가 불가피한 만큼 최대한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끌어내려는 탐색전이 벌어진 것이다.

정통부가 비정상적 요금체계 방치

사진/ 용산 전자상가의 휴대폰 판매업체들. 정통부는 요금인하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강창광 기자)
요금인하 문제의 핵심은 경영실적 이전에 과도한 기본요금을 바탕으로 한 비정상적인 요금체계다. 기본요금이 다른 나라보다 지나치게 높은데다 기본요금에 당연히 뒤따라야 할 기본 무료통화가 거의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현행 기본요금은 SK텔레콤과 KTF가 1만5천원, LG텔레콤이 1만4800원이다. 무료통화는 지난해까지 전혀 없다가 시민단체의 줄기찬 요구로 올해 초 요금을 인하하면서 7분(LG텔레콤은 5분)이 주어졌다.


그러나 이는 현재의 기본요금 수준을 감안할 때 매우 낮은 수준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기본요금은 9762원(이하 2000년 기준)이다. 평균 가입률이 16.8%로 한국의 57.7%보다 낮은 헝가리·터키·캐나다 등 5개국의 기본요금은 1만2337원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OECD 국가들의 평균 무료통화 시간은 22분이다. 기본요금은 OECD 국가 평균치보다 64%나 높은 반면 기본요금에 따라 주어지는 무료통화는 32%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한국의 휴대전화 요금은 해외 다른나라들보다 통화를 적게 하는 사람일수록 상대적으로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돼 있다.

기본요금이 높다는 것은 이동통신회사들의 수입구조를 봐도 잘 나타난다. 지난해 이동통신회사들의 매출액 가운데 기본요금 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34.4∼37.6%다. 가입비까지 합하면 36.2∼40.4%에 이른다. 가입자들이 한 통화도 쓰지 않았는데 가입비와 기본요금만으로 이동통신회사들이 4조9천억원을 벌어들였다는 계산이다.

휴대전화 요금체계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인 SK텔레콤에 대해 정부가 인가권을 행사함으로써 사실상 요금을 통제하고 있다. KTF와 LG텔레콤은 신고제를 적용받고 있어 자유롭게 요금을 매길 수 있지만 시장 지배력이 약해 SK텔레콤의 요금수준을 따라가는 형국이다. 결국 정통부가 현재의 비정상적인 요금체계를 방치해온 셈이다.

신규 투자는 소비자의 부담이냐

정통부는 무엇보다 요금 산정의 근거가 되는 이동전화의 원가분석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기업의 영업상 비밀에 속한다는 것이다. 휴대전화는 초기에 투자비가 많이 들지만 시간이 갈수록 투자비는 줄어들고 가입자는 늘어나면서 원가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참여연대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이동통신 3사의 매출액 대비 투자규모는 2000년 27.1%에서 2001년 21.5%, 2002년 18.1%로 낮아졌다. 그뿐 아니다. 5사체제에서 3사체제로 줄어들면서 마케팅 비용 감소, 단말기 보조금 지급 금지(2000년 6월), 전화세의 부가가치세 전환에 따른 추가수익 등으로 경영실적은 엄청나게 좋아졌다.

그러나 정통부는 “이동전화 회사들의 경영실적, 이동전화 시장의 경쟁상황, 향후 투자계획을 검토해 요금 추가인하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요금인하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경쟁상황과 투자계획에 대한 고려는 시장형성 초기 단계에서 정책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안이지 시장이 성숙단계로 들어가는 상황에서까지 정부가 개입해야 할 사안은 아니라는 게 관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원석 참여연대 시민권리국장은 “정통부와 이동통신 회사들은 자꾸 IMT-2000 투자비 문제를 얘기하는데 기업의 투자비를 소비자들한테서 거둬야 한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현재의 높은 휴대전화 요금은 소비자를 외면하는 공급자 위주 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다”라고 지적했다.

정남기 기자 jnamki@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