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핵심인력 정몽준 캠프 합류… 연결고리 끊어야 경영상 타격 최소화
현대중공업 정몽준 고문의 대통령 후보 출마에 따른 주식시장의 반응은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현대중공업 주가가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종합주가지수가 오랜 하락세를 이어가기는 하지만, 현대중공업의 주가하락폭은 종합주가지수와는 견줄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조선업체들이 포함된 운수장비업종지수와 견줘봐도 현대중공업의 주가하락세는 두드러진다.
월드컵이 끝나갈 무렵인 지난 6월27일 장 마감 때 종합주가지수는 710포인트였다. 당시 운수장비업종지수는 385포인트, 현대중공업 주가는 2만4450원이었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9월27일 종가를 보면 종합주가지수는 6.6%, 운수장비업종지수는 16.1% 떨어졌다. 이에 비해 현대중공업 주가는 1만6400원으로 무려 33%나 폭락했다. 20대 재벌 가운데서도 현대중공업그룹의 주가하락폭이 가장 크다. 주가지수가 올 들어 최고치를 보였던 지난 4월18일 이후 시가총액 변동을 살펴보면, 현대중공업그룹의 시가총액은 49%가 줄어 거의 반토막이 됐다.
주가 끝없는 추락… 시가총액 반 토막
정몽준 의원의 대선 출마로 현대중공업이 입은 경영상의 실질적인 타격은 아직까지는 전혀 없다. 그런데도 주가가 계속 떨어지는 것은 ‘우려’에 따른 반응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가장 큰 우려는 정 의원이 현대중공업의 자금과 인력을 선거전에 동원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한편으로 정 의원이 정치권력에 도전함으로써 다른 재벌의 견제를 받고, 대선에 실패하면 뒷날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 주식투자자들은 불확실성에 쌓인 주식은 일단 버리고 싶어한다. 그런 투자자들의 속성이 현대중공업의 주가하락으로 나타난 것이다. 불확실성은 최근 들어 더욱 커졌다.
지난 9월24일 현대중공업은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강신옥(66) 변호사와 박진원(56) 변호사가 사임했다고 공시했다. 두 사외이사의 애초 임기는 2004년과 2005년 주총 때까지다. 사임 이유에 대해 현대중공업은 “일신상의 이유”라고만 밝혔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도 “정확한 것은 모른다. 당사자들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말했다. 회사쪽으로서는 사임 이유를 설명해봐야 득될 게 없다는 생각에서 이런 대답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임은 정 의원을 돕기 위한 것임이 곧 분명해졌다. 두 사람은 9월27일부터 열린 정 의원 대선캠프의 일일전략회의에 참가하는 핵심 7인에 포함됐다. 또 강 변호사는 창당준비기획단장, 박 변호사는 대선기획단장을 맡았다. 핵심 가운데서도 핵심직책이다.
강 변호사는 1936년 경북 영주 출생으로 유신정권 시절 민청학련 사건을 변호하다 투옥되는 등 한때 인권변호사로 이름을 날린 인물이다. 강 변호사는 13대 총선에 통일민주당 공천으로 출마해 당선됐고, 14대 때는 민자당 전국구 의원을 지냈으나 3선에는 실패했다. 그는 인터넷매체인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정 의원과는 13대 의원 시절부터 자주 만나고 대화하면서 함께 러시아에도 초청받아 가는 등 친밀해졌다. 그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국민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해 대선 캠프에 합류했다”고 밝혔다.
박진원 변호사와 정 의원과의 관계는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박 변호사는 법무법인 세종 소속 변호사로 99년 1월부터 금융감독위원회 비상임위원을 맡았으며, 2000년 3월부터 현대중공업 사외이사로 일했다. 그러나 금감위 위원과 민간기업의 사외이사 겸임에 따른 논란이 제기되면서 2000년 9월 현대중공업 사외이사직을 사임했다가 올 초 금감위 위원에서 해촉된 뒤 다시 돌아왔다. 박 변호사는 <한겨레21>과 전화 인터뷰에서 “정 의원과는 컬럼비아대학에서 공부할 때 1년간 같이 지낸 적이 있다. 그때부터 친하게 지냈고, 이후에도 계속 연락을 취해왔다”고 말했다. 정 의원의 콜롬비아대학 4년 선배인 그는 “정 의원이 선거전을 도와달라고 요청해 고민 끝에 그를 돕기로 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설명대로라면 이들은 정 의원과 개인적 친분이 두텁다. 그런 두 사람이 정 의원의 대선 캠프에 합류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두 사람이 현대중공업의 사외이사를 겸직하면서 정 의원의 대선 업무를 돕는다면 그것이 더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정 의원이 재벌총수로서 대권까지 움켜쥐려 한다는 지적을 받는 상황에서 이런 자리이동은 항간의 우려를 더욱 키우는 것이다.
사외이사가 대선 캠프 핵심직책 맡아
엄밀히 따지면 현대중공업이 두 사람을 사외이사로 선임한 것부터가 사외이사제도의 취지에는 잘 맞지 않는 일이었다. 박 변호사는 “당시 사외이사 추천은 공식적인 절차가 있기는 했지만, 뒤에서 MJ(정몽준 의원의 이니셜)가 민 것”이라고 스스로 설명했다. 이번에 두 사람이 사외이사직을 사임하고 정 의원의 대선 캠프에 합류한 것도 정 의원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이는 정 의원이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자기 사람을 기업에 두기도 하고 정치권으로 끌어다 쓰기도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일이다. 두 사외이사의 전격 사임은 현대중공업 사람 가운데 정 의원의 선거전을 도울 사람이 그 두 사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현실화한 셈이다.
두 사외이사가 대선 캠프로 옮김에 따라 현대중공업 사외이사는 4명에서 2명으로 줄었다. 4명씩으로 구성된 사내이사와 사외이사의 균형도 깨졌다. 강신옥 사외이사는 감사위원직을 겸하고 있었으므로, 사외이사 3명으로 구성하는 감사위원회도 사외이사 2명으로 줄었다.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사외이사 제도와 감사위원회 제도가 내용은 고사하고 형식마저 뒤틀리게 된 셈이다. 현대중공업은 대선이 끝난 뒤 열릴 내년 주총까지는 빈자리를 메우지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재계와 증권시장 관계자들은 현대중공업이 정 의원의 대선 출마로 인한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길은 한 가지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대중공업과의 연결고리를 확실히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 의원의 태도는 여전히 유보적이다. 현대중공업의 보유지분 처리와 관련해 정 의원은 지난 9월17일 대선 출마 선언 기자회견에서 “지분을 공신력 있는 금융기관에 신탁해 대통령 재임 중 주주권을 포기하고 자본차익을 자선기관에 기부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9월25일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서 “특정 기업이나 산업을 도와주기 위해 대선에 출마할 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대통령 임기 동안 명목재산을 단 1원도 늘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경영권 미련 버려야 회사가 산다
그러나 정 의원의 이런 태도는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퇴임 뒤 현대중공업으로 되돌아가겠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또 대선 투표일까지 현대중공업에 대한 지배권을 조금도 약화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실린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대통령이 돼도 최대주주 자격이 그대로 유지되는 사람의 지시를 현대중공업 직원들이 어떻게 거부할 수 있을 것인가. 정 의원의 ‘금융기관 신탁’ 방침은 시장에 당선된 뒤 보유주식 전량을 매각해 대금 일부를 자선단체에 기부한 마이클 블룸버그 미국 뉴욕시장의 태도와 자주 비교된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당선될 경우 지분을 처분하겠다는 선언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텐데…. 사람들이 정 의원의 대선 출마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단순히 돈과 정치권력을 함께 갖겠다는 것이 아니라,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을 함께 쥐겠다는 데 있다는 사실을 정 의원은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김선웅 변호사는 현대중공업의 지분분포에도 정 의원의 그룹 경영권에 대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총 발행주식 7600만주 가운데 무려 30.3%에 이르는 2306만주를 자사주 펀드 형태로 보유하고 있다. 자사주는 지분율이 11%에 지나지 않는 정 의원이 필요로만 하면 언제든 자신의 경영권 안전장치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전체 지분의 41.1%를 갖고 있는 현대중공업 소액주주들은 자꾸만 떨어지는 주가를 걱정하며 정 의원의 입만 쳐다보고 있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사진/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 참석한 정몽준 의원, 원 안은 신당 창당준비기획단장을 맡은 강신옥 전 사외이사. (국회사진기자단)


사진/ 정 의원 대선 출마로 주가가 휘청대는 현대중공업. (한겨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