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사에게 막대한 출연금 받아내… 요금 부담 늘어도 기금 운용은 멋대로
대기업 홍보실에 근무하는 오아무개(46) 부장은 요즘 늘어나는 통신비 때문에 적지 않게 신경이 쓰인다. 부인, 아들(고2), 딸(고1)을 포함해 가족 4명이 쓰는 통신비가 월 20만원을 훨씬 넘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본인 요금은 5만∼6만원. 부인은 2만∼3만원이다. 문제는 아이들 통신비다. 전화요금이 일정액을 넘어가지 못하도록 해놨지만 각종 부가서비스 때문에 1인당 요금이 3만∼4만원씩 든다. 이것만 해도 15만원이 넘는다. 여기에 초고속인터넷과 유선전화 요금까지 감안하면 월 20만∼25만원을 잡아야 한다. 그렇다고 아이들 휴대폰을 빼앗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른 친구들이 다 가지고 다니는데다 공부하다가 밤늦게 집에 오기 때문에 휴대폰이라도 들려줘야 안심이 된다.
휴대전화 용금이 비싼 까닭은…
“휴대전화가 보급된 초기에는 나 혼자만 들고 다녔으니까 그다지 요금부담이 크다고 생각하지 않았죠. 그러나 가족 4명이 모두 가지고 있다 보니 통신비가 한달 식비에 육박할 정도로 많이 들어가네요.” 오 부장은 그래도 자신은 통신비가 그렇게 많이 들어가는 경우가 아니라고 말한다. 주위 사람들 가운데 가족 통신비가 월 30만∼40만원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개인 사업을 하는 박재민(40)씨의 사정도 비슷하다. 사업을 하기 때문에 본인 요금은 월 15만원, 부인 휴대폰 요금은 월 2만∼3만원이다. 집에서 쓰는 인터넷과 유선전화 요금 5만원을 더하면 2명의 통신비가 모두 22만∼23만원에 이른다. 아이들은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이기 때문에 통신비가 안 들어가지만 이들이 중·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당연히 추가비용이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못 잡아도 30만원을 통신비로 지출해야 할 형편이다.
이것저것 다 따지면 휴대전화를 이용하면서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각종 비용은 가계지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가족당 1개이던 것이 1인 1개로 확대되고, 각종 부가서비스 요금이 붙으면서 통신비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어디 그뿐인가? 신규로 가입하는 사람들은 별도로 가입비를 부담해야 한다. 또 단말기 바꾸는 데 20만∼50만원이다. 그렇다면 이동통신회사들은 어떤가? 물론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이동통신 3사는 올해 1월 요금을 5.3∼8.3% 인하했음에도 상반기에 1조3천억원이 넘는 순이익을 거뒀다. SK텔레콤 9046억원(매출 4조447억원), KTF 3078억원(매출 2조5887억원), LG텔레콤 1001억원(매출 9962억원) 등이다. 올 연말이면 단순 계산해도 2조6천억원의 순이익이 나는 계산이 나온다. 이를 현재의 휴대전화 가입자 수 3088만명(7월 말 기준)으로 나눠보면 1인당 8만5천원이 나온다. 쉽게 말해 가입자 1명이 내는 휴대전화 요금 가운데 연간 8만5천원의 돈이 고스란히 이동통신회사의 순이익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가족 단위로 보면 사람 수만큼 늘어난다. 2인가족 기준으로 하면 17만원, 3인가족 기준으로 하면 25만5천원이 회사쪽 순이익이다. 그뿐 아니다. 휴대전화 가입자들은 정보통신부가 갖가지 명목으로 이동통신회사들로부터 거둬야 하는 준조세 성격의 출연금을 부담하고 있다. 이는 물론 부가가치세와 같은 일반적인 세금을 뺀 것으로, 정부 예산에 포함되지 않고 정보통신부와 소속기관 공무원들의 손에서 주물러진다. 2001년 이동통신회사들이 정통부에 납부한 각종 출연금은 모두 7360억원이다. 2001년 말 휴대전화 가입자가 2904만명이란 것을 감안하면 가입자 1인당 연간 2만6300원씩의 출연금을 부담한 셈이다. 여기에 가입자들이 연간 8천원씩 내는 전파사용료가 있다. 이 돈은 원래 전파관리에 소요되는 경비 충당과 전파 진흥을 위해서만 쓰도록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산하단체 운영비 등으로 전용돼 쓰인다. 두 가지를 합하면 가입자 요금 가운데 세금이 아닌 다른 명목으로 연간 3만4300원의 돈이 정보통신부 수중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당신도 연간 3만5천원 헌납한다”
이밖에 보편적 서비스 분담금이 있다. KT가 산간벽지 등 수익이 나지 않는 지역의 유선전화 사업을 하면서 입은 손실 가운데 50%를 기간통신사업자 회사들이 순매출액 비율에 따라 나눠 부담하는 것이다. 이동통신 3사들은 지난해 모두 465억원을 분담금으로 냈다. 올해는 그 비율이 늘어나 1544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물론 취지는 좋지만 정부 예산으로 충당해야 할 부분을 휴대전화 가입자들에게 떠넘기는 것이어서 이 또한 가입자들에게는 불필요한 부담이다.
이렇게 각종 출연금 등의 명목으로 가입자들의 주머니에서 빠져나온 돈은 이동통신회사를 통해 정통부와 산하기관들의 수중으로 들어간다. 문제는 정부 예산이 아닌 관계로 기획예산처와 국회의 심의를 제대로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눈먼 돈’으로 불리는 정보화촉진기금이다. 주로 이동통신회사를 비롯한 기간통신사업자들의 출연금으로 조성되는 정보화촉진기금은 93년 이후 모두 7조8천억원이 조성됐으며, 2001년 말 현재 3조880억원이 남아 있다. 중요한 것은 총 조성금액 가운데 3조7천억원의 돈이 통신사업자들이 내는 민간출연금으로 조성됐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정보화촉진기금의 사업 집행과정이다. 애초 정확한 사용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심사를 통해 돈을 지원하기 때문에 관리가 소홀할 수밖에 없다. 지원 통로도 주요 기술개발사업은 정보통신연구진흥원에서, 정보기술(IT) 전문인력 양성은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에서, 표준화사업은 한국정보통신산업협회에서 한다. 심사도 치밀한 평가 없이 한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벤처업계 관계자들은 심사과정이 대부분 서류심사와 면접만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사업계획만 그럴듯하게 포장하면 기금을 타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기금을 다시 돌려받지 않는 출연사업의 경우 한번 나가면 그만이기 때문에 기금을 받은 벤처기업들도 기술개발에 신경쓰지 않는다. 한 창업투자회사 관계자는 “기술력만 있으면 기금을 타내는 것은 쉽다. 문제는 기술력이 없어도 서류심사로 지원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신청서를 그럴듯하게 꾸미고 로비를 하면 대부분 성공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에서 컨설팅업체를 운영하는 김아무개(42)씨는 “모든 경우에 그런 것은 아니지만 기금 지원금액의 3∼5%를 로비자금으로 쓰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기술력이 떨어지는 업체일수록 로비를 통해 자금을 받아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기금 관리 소홀… 벤처 비리에 얽혀
정보화촉진기금 지원을 둘러싼 뒷거래 실상은 이미 부분적으로 드러났다. 2001년 정보화촉진기금을 관할한 손홍 전 정보통신부 정보통신정책국장이 컴퓨터 제조업체 유니와이드테크놀로지로부터 4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4월 구속된 것이다. 유니와이드테크놀로지는 손씨에게 4천만원을 건네면서 정보화촉진기금 7억원을 계속 받을 수 있도록 해주고, 회사에서 개발한 주전산기를 관공서에 납품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청탁을 했다. 유니와이드테크놀로지는 손씨 외에도 정통부 과장과 산하 연구기관 직원들에게 1억6천만원어치의 금품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정보화촉진기금이 얼마나 방만하게 운영되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정보화촉진기금이 곳곳에서 새나가는 사례는 감사원 감사결과에서도 충분히 드러난다. 사업비를 연구에 쓰지 않고 기존자료를 적당히 조합해 결과보고를 하는 것은 보통이고, 사업비로 쓰고 남은 돈 수십억원을 그냥 자기 수입으로 챙기는 사례도 있다. 몇몇 산하단체는 기금사업과 전혀 상관없는 직원들 해외출장 경비로 쓰기도 했다. 국민은 갈수록 늘어나는 휴대폰 요금으로 가계가 짓눌리는데도 정작 기금을 제대로 관리해야 할 정보통신부 관리들과 산하단체 관계자들은 국민으로부터 나온 기금을 마치 자기 돈처럼 주무른다.
기금평가를 담당하는 기획예산처도 지난 2000년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정보화촉진기금의 방만한 운영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해왔으나 달라진 것은 없다. 정보통신부는 오히려 사업을 끊임없이 늘리고 있다. 최근에는 이상철 정통부 장관이 이동통신회사들이 거두는 이익을 휴대폰 요금인하로 유도하기보다는 새로운 정보통신펀드에 투자하도록 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밝혀 이동통신회사들로부터 새로운 명목으로 자금을 끌어모으려는 의도를 내비쳤다. 자금조성액에 대해서는 “많을수록 좋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작 정통부가 벤처캐피털들과 함께 구성한 각종 정보통신펀드들은 아직도 투자처를 찾지 못해 돈이 남아도는 상황이다. 2001년 설립된 정보통신 관련 펀드 19개는 모두 5683억원의 자금을 조성했으나 현재까지 52%에 지나지 않는 2942억원의 돈을 투자하는 데 그쳤다.
벤처캐티털 업계 관계자들은 “기술력이 없는 회사들이 자금을 타내려는 것이 문제지 기술력이 있고 사업성만 있으면 얼마든지 자금을 끌어올 수 있다. 경기가 안 좋지만 벤처업계에 자금이 모자라는 상황은 아니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조성된 자금만 다른 곳으로 새지 않도록 제대로 관리해도 충분한데, 또다시 신규 투자자금을 모으겠다는 정통부의 구상을 이해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정통부 덩치 키우면 떡고물도 많아져
정보통신시장이 커지고 정통부의 업무영역이 넓어지면 물론 공무원들은 좋다. 거기에 까다로운 예산통제를 받지 않고 쓸 수 있는 각종 명목의 기금이 있으면 더할 나위 없다. 갈 수 있는 자리가 많아지고 사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떡고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비용을 모두 국민이 부담한다는 점이다. 휴대전화 요금 인하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참여연대는 “이동통신회사들로부터 신규 투자자금을 모을 여력이 있으면 이를 요금인하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이동통신업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공급자 위주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정통부는 수많은 산하단체를 설립하는 등 자기 덩치를 키우는 데 여념이 없다. 정보통신산업 발전이란 명목으로 조성되는 각종 자금은 결국 공무원들의 배만 불리고 있다”고 말했다.
정남기 기자 jnamki@hani.co.kr

일러스트레이션/ 방기황.
이것저것 다 따지면 휴대전화를 이용하면서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각종 비용은 가계지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가족당 1개이던 것이 1인 1개로 확대되고, 각종 부가서비스 요금이 붙으면서 통신비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어디 그뿐인가? 신규로 가입하는 사람들은 별도로 가입비를 부담해야 한다. 또 단말기 바꾸는 데 20만∼50만원이다. 그렇다면 이동통신회사들은 어떤가? 물론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이동통신 3사는 올해 1월 요금을 5.3∼8.3% 인하했음에도 상반기에 1조3천억원이 넘는 순이익을 거뒀다. SK텔레콤 9046억원(매출 4조447억원), KTF 3078억원(매출 2조5887억원), LG텔레콤 1001억원(매출 9962억원) 등이다. 올 연말이면 단순 계산해도 2조6천억원의 순이익이 나는 계산이 나온다. 이를 현재의 휴대전화 가입자 수 3088만명(7월 말 기준)으로 나눠보면 1인당 8만5천원이 나온다. 쉽게 말해 가입자 1명이 내는 휴대전화 요금 가운데 연간 8만5천원의 돈이 고스란히 이동통신회사의 순이익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가족 단위로 보면 사람 수만큼 늘어난다. 2인가족 기준으로 하면 17만원, 3인가족 기준으로 하면 25만5천원이 회사쪽 순이익이다. 그뿐 아니다. 휴대전화 가입자들은 정보통신부가 갖가지 명목으로 이동통신회사들로부터 거둬야 하는 준조세 성격의 출연금을 부담하고 있다. 이는 물론 부가가치세와 같은 일반적인 세금을 뺀 것으로, 정부 예산에 포함되지 않고 정보통신부와 소속기관 공무원들의 손에서 주물러진다. 2001년 이동통신회사들이 정통부에 납부한 각종 출연금은 모두 7360억원이다. 2001년 말 휴대전화 가입자가 2904만명이란 것을 감안하면 가입자 1인당 연간 2만6300원씩의 출연금을 부담한 셈이다. 여기에 가입자들이 연간 8천원씩 내는 전파사용료가 있다. 이 돈은 원래 전파관리에 소요되는 경비 충당과 전파 진흥을 위해서만 쓰도록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산하단체 운영비 등으로 전용돼 쓰인다. 두 가지를 합하면 가입자 요금 가운데 세금이 아닌 다른 명목으로 연간 3만4300원의 돈이 정보통신부 수중으로 들어가는 셈이다. “당신도 연간 3만5천원 헌납한다”

사진/ 최근 이상철 정통부 장관(왼쪽)은 이동통신회사의 수입을 정보 통신펀드에 투자하도록 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용호 기자)

사진/ 서민들의 휴대폰 요금 부담은 늘어만 간다. 정통부는 이동통신 회사들로부터 거둔 기금을 어디에 쓰고 있는가. (한겨레 임종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