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유선방송 지분소유제한 무력화에 업계 반발…시청자 권리 침해 소지도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보면 지상파 방송 사이에는 빠짐없이 유선방송 채널이 끼어 있다. 채널 8과 10이 그런 경우다. 이 채널은 시청자들의 눈에 가장 잘 띄는 자리기 때문에 대부분 자금력이 풍부한 홈쇼핑 방송이 차지한다. 당연히 홈쇼핑업체들끼리도 이 채널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채널 선정이 매출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홈쇼핑업계 관계자들은 “채널이 20번대나 30번대에 있다가 지상파 방송 사이로 들어가면 매출이 당장 2∼3배 뛰어오른다”고 말한다. 채널 선정권이 있는 종합유선방송업체들이 홈쇼핑업체의 목줄을 쥐고 있는 셈이다.
반발… 수정… 또 다른 반발
이 때문에 자금력이 풍부한 홈쇼핑업체들은 아예 종합유선방송을 인수하거나 대주주로 참여해 방송 편성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 LG홈쇼핑·CJ39쇼핑·현대홈쇼핑 등 주요 홈쇼핑업체들의 유선방송 지분 출자현황을 보면 잘 나타난다. LG와 CJ는 각각 15개와 14개, 현대는 9개의 종합유선방송에 출자하고 있다. 괜찮은 지역은 거의 손을 뻗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지분율은 대부분 10% 안팎이다. 방송법이 대기업의 지분소유를 33% 이하로 제한하기 때문이다.
홈쇼핑업체들은 유선방송 경영권이 없더라도 지분투자를 하면 대주주로서 좋은 채널을 확보하는 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경우는 유선방송 한개 업체를 둘러싸고 경쟁이 붙는 경우가 있다. 서초종합유선방송은 LG가 4.39%, CJ가 4.02%, 현대가 1.5%의 지분을 갖고 있다. 지분으로 확실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할 경우에는 경영이 어려운 유선방송에 자금을 빌려줌으로써 실질적인 지배권을 행사하기도 한다. 종합유선방송을 장악하기 위한 홈쇼핑업체들의 보이지 않는 쟁탈전이 치열하게 펼쳐진다. 이처럼 민감한 상황에서 정부가 종합유선방송 소유제한에 관한 방송법 시행령을 섣부르게 손대는 바람에 홈쇼핑업계와 종합유선방송업계가 큰 갈등에 휩싸였다. 방송위원회(방송위)가 마련한 시행령 개정안에 LG홈쇼핑이 반발하고 규제개혁위원회(규개위)가 제동을 거는 바람에 원안이 수정됐고, 이에 다른 업체들이 다시 반발하는 혼란스러운 양상이 펼쳐진 것이다. 사태의 발단은 지난 4월1일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서 시작됐다. 현행 방송법은 대기업의 종합유선방송 지분 소유를 33%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그리고 방송법 시행령은 대기업 기준을 공정거래법상의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서 대규모 기업집단이 30대기업에서 자산 5조원 이상의 출자총액제한 대상 기업집단과 자산 2조원 이상의 상호출자금지 대상 기업집단으로 나뉘어 방송법 시행령 개정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방송위는 이에 따라 종합유선방송 소유제한 대상 대기업을 자산 5조원 이상의 출자총액제한 기업집단으로 하는 내용의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해 입법 예고했다. 여기까지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LG홈쇼핑이 반발하면서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다. 홈쇼핑업체들 가운데 유일하게 LG만 자산 5조원 이상 기업으로 분류돼 지분소유 제한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LG그룹 자산은 71조원이며, CJ39쇼핑이 속한 제일제당은 4조8천억원, 현대홈쇼핑이 속한 현대백화점은 3조2천억원이다. LG홈쇼핑은 “경쟁업체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LG에게만 소유제한을 그대로 두는 것은 차별”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여기에 규개위가 가세하며 문제가 더 복잡해졌다. 방송위가 입법 예고한 시행령 개정안에 제동을 걸면서 LG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규개위 관계자는 “아무런 사유 없이 공정거래법의 기준이 바뀌었다는 사실만으로 LG가 불공정한 규제를 당하게 된 것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수정을 권고했다”고 말했다. 방송위도 규개위의 권고를 충실히 따랐다. 방송위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채 “현재의 홈쇼핑업체에 대해서는 지분소유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부칙을 슬그머니 집어넣는 방식으로 수정안을 만들어 법제처에 넘겨버렸다. 시행령 부칙으로 대기업의 소유를 제한하려는 방송법의 취지를 사실상 무력화시킨 것이다. LG홈쇼핑 위한 당국의 민원 처리?
문제는 이 과정에 쏠리는 의혹의 눈길들이다. 규개위가 특정 기업을 위해 시행령 개정안 수정을 요구한 것이나, 이를 그대로 받아 법제처에 넘긴 방송위나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경쟁업체들은 “LG홈쇼핑 한 업체가 불만을 제기하자 정부기관들이 일사천리로 민원 처리에 나선 셈”이라고 꼬집었다.
법률 전문가들은 먼저 부칙의 예외조항이 대기업의 종합유선방송 소유를 제한하기 위해 만든 방송법 취지와 배치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방송법은 분명히 “대기업과 그 계열회사는 특수관계자가 소유하는 주식 또는 지분을 포함하여 종합유선방송사업자 주식 또는 지분 총수의 33%를 초과하여 소유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한나라당 심규철 의원의 대표발의로 대기업의 유선방송 소유 허용을 뼈대로 하는 방송법 개정안이 문화관광위 법안심사소위에 올라가 있다. 그러나 법안 통과 여부는 미지수다. 만일 법안이 부결될 경우 개정된 시행령은 기존의 방송법과 배치된다. 따라서 관계 전문가들은 일단 공정거래법 개정에 따른 최소한의 시행령 개정만 하고 나머지 과정은 국회의 법안 통과 여부를 지켜보는 것이 순서라고 지적한다.
이번에 마련된 수정안이 애초 입법 예고한 시행령 개정안과 완전히 다른 내용임에도 새로운 입법 예고를 거치지 않고 추진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사실상 국민에게 개정안의 내용을 전혀 알리지 않은 채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삽입한 부칙조항이 방송법의 위임 범위를 넘어선다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시행령에 예외조항을 두려면 상위법에 그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은 방송법에서 근거조항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수정안이 법리상의 문제를 안고 있다는 사실은 정부 관계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방송위 김창현 법제부장은 “당연히 방송법 개정을 먼저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당장 시행령 개정이 필요한 상황이고, 규개위 입장을 무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이어 “법리적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래서 법제처의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규개위 관계자 역시 “법리상 문제가 있지만 정부 정책이 대기업의 유선방송 소유 허용쪽으로 가고 있어 수정을 권고했다”고 말했다.
특정 채널 보라는 강요가 될 수도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CJ·현대 등 경쟁 홈쇼핑업체들은 “LG에 대한 특혜 아니냐”라고 일제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LG홈쇼핑을 봐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많은 법리상의 문제점을 안고 있는데도 정부가 무리하게 수정안을 관철시킬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경쟁업체들은 또 공정거래법 등의 사례를 보면 방송위가 애초 입법 예고한 시행령 개정안이 형평성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공정거래법의 대규모 기업집단 기준이 올해부터 자산규모로 바뀌면서 30대기업에 들어 있지 않던 대상·동원·KCC·대성·한국타이어·부영 등도 상호출자제한 기업으로 포함돼 규제를 받게 됐기 때문이다. CJ39쇼핑 관계자는 “우리도 자산이 4조8천억원이기 때문에 내년에는 5조원 이상의 소유제한 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상의 차이가 있을 뿐 특정 기업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번 사안은 홈쇼핑업체 간의 이해대립에 그치지 않고 시청자의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 대기업이 유선방송을 완전히 소유하면 자사 홈쇼핑방송을 주요 채널에 배치하고 경쟁사들을 불리한 채널로 몰아넣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특정 채널을 보도록 강요당하는 셈이다. 홈쇼핑 관계자들은 이런 이유 때문에 “종합유선방송 소유제한 문제는 몇몇 정부 관료들이 협의해 시행령 몇자를 고치는 방식이 아니라 방송법 개정 자체를 국회에서 충분히 논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남기 기자 jnamki@hani.co.kr

사진/ 큰 갈등에 휩싸인 홈쇼핑업계. 왼쪽부터 LG홈쇼핑, CJ39쇼핑, 현대홈쇼핑.
홈쇼핑업체들은 유선방송 경영권이 없더라도 지분투자를 하면 대주주로서 좋은 채널을 확보하는 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경우는 유선방송 한개 업체를 둘러싸고 경쟁이 붙는 경우가 있다. 서초종합유선방송은 LG가 4.39%, CJ가 4.02%, 현대가 1.5%의 지분을 갖고 있다. 지분으로 확실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할 경우에는 경영이 어려운 유선방송에 자금을 빌려줌으로써 실질적인 지배권을 행사하기도 한다. 종합유선방송을 장악하기 위한 홈쇼핑업체들의 보이지 않는 쟁탈전이 치열하게 펼쳐진다. 이처럼 민감한 상황에서 정부가 종합유선방송 소유제한에 관한 방송법 시행령을 섣부르게 손대는 바람에 홈쇼핑업계와 종합유선방송업계가 큰 갈등에 휩싸였다. 방송위원회(방송위)가 마련한 시행령 개정안에 LG홈쇼핑이 반발하고 규제개혁위원회(규개위)가 제동을 거는 바람에 원안이 수정됐고, 이에 다른 업체들이 다시 반발하는 혼란스러운 양상이 펼쳐진 것이다. 사태의 발단은 지난 4월1일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서 시작됐다. 현행 방송법은 대기업의 종합유선방송 지분 소유를 33%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그리고 방송법 시행령은 대기업 기준을 공정거래법상의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서 대규모 기업집단이 30대기업에서 자산 5조원 이상의 출자총액제한 대상 기업집단과 자산 2조원 이상의 상호출자금지 대상 기업집단으로 나뉘어 방송법 시행령 개정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방송위는 이에 따라 종합유선방송 소유제한 대상 대기업을 자산 5조원 이상의 출자총액제한 기업집단으로 하는 내용의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해 입법 예고했다. 여기까지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LG홈쇼핑이 반발하면서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다. 홈쇼핑업체들 가운데 유일하게 LG만 자산 5조원 이상 기업으로 분류돼 지분소유 제한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LG그룹 자산은 71조원이며, CJ39쇼핑이 속한 제일제당은 4조8천억원, 현대홈쇼핑이 속한 현대백화점은 3조2천억원이다. LG홈쇼핑은 “경쟁업체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LG에게만 소유제한을 그대로 두는 것은 차별”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여기에 규개위가 가세하며 문제가 더 복잡해졌다. 방송위가 입법 예고한 시행령 개정안에 제동을 걸면서 LG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규개위 관계자는 “아무런 사유 없이 공정거래법의 기준이 바뀌었다는 사실만으로 LG가 불공정한 규제를 당하게 된 것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수정을 권고했다”고 말했다. 방송위도 규개위의 권고를 충실히 따랐다. 방송위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채 “현재의 홈쇼핑업체에 대해서는 지분소유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부칙을 슬그머니 집어넣는 방식으로 수정안을 만들어 법제처에 넘겨버렸다. 시행령 부칙으로 대기업의 소유를 제한하려는 방송법의 취지를 사실상 무력화시킨 것이다. LG홈쇼핑 위한 당국의 민원 처리?

사진/ 서울의 한 종합유선방송업체 사무실. 홈쇼핑업체들은 유선방송 지분투자를 통해 좋은 채널을 확보하려고 한다. (김종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