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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철밥통 이동전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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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9-0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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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이동성 도입으로 가입자 이동 크게 쉬워져…가격경쟁 속 시장판도 바뀔 수도

사진/ 019에서 011로 바꿔도, 011에서 016으로 바꿔도 소비자들은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이동전화를 기본료가 싼 019의 미니요금제 상품으로 바꾸고 싶은데 그동안 알려놓은 전화번호를 버려야 해 가입하지 못하고 있다. 더 나은 통화품질을 제공하는 사업자에게로 옮기고 싶은데, 역시 전화번호를 바꿔야 하는 문제 때문에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이동전화 이용자들에게 기쁜 소식이 생겼다. 이동전화 사업자들이 정보통신부의 권유를 받아 오는 11월1일부터 다른 사업자에게로 옮겨가 전화번호가 바뀐 경우에도 바뀐 번호를 안내해주기로 했다.

월 3천원으로 ‘바뀐전화 안내’ 서비스


이동전화 사업자들은 지금까지는 자사 가입자 자격을 유지하면서 전화번호가 바뀐 경우에만 안내를 해줬다. 다른 사업자에게로 옮겨가 바뀐 전화번호 안내는 시내전화 사업자끼리만 제공해왔다.

이동전화 사업자들은 전화를 건 사람(발신자)이 원하면, 114 전화번호 안내 서비스를 이용할 때처럼 바뀐 번호를 안내한 뒤 그 번호로 직접 연결해주는 서비스도 함께 제공하기로 한다. 이전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도, 중간에 음성 안내 몇 마디 듣는 것을 빼면 바뀐 전화번호로 직접 전화를 걸었을 때와 다르지 않다.

이전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면 “지금 거신 전화는 000-0000-0000번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연결해드리겠습니다”라는 음성 안내를 들려주고, 그 상태로 조금 기다리면 바뀐 번호로 전화가 자동 연결된다.

따라서 오는 11월부터는 이동전화를 요금이 싼 것으로 바꾸고 싶어도 전화번호를 바꿔야 하기 때문에 옮겨가지 못한 불편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번호 이동성이 도입됐을 때와 마찬가지로 요금이 싸거나 나은 통화 품질을 제공하는 사업자에게로 마음대로 옮겨갈 수 있다. 번호 이동성이란 다른 사업자에게로 옮겨서도 기존 전화번호를 계속 쓸 수 있게 해주는 제도다. 예컨대 011 가입자가 019로 옮기고도 011 번호를 계속 사용할 수 있다. 번호 이동성 서비스는 2003년 시작될 예정인 차세대이동통신(IMT-2000)부터 도입하기로 했다가 현재의 이동전화부터 도입하기로 일정이 바뀌었다. 내년 상반기쯤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정보통신부 서광현 통신이용제도 과장은 “번호 이동성을 도입하려면 6개월 이상의 준비기간이 필요해 그때까지는 번호 안내 서비스를 통해 이용자들의 불편을 덜어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동전화 이용자쪽에서 볼 때, 사업자 변경에 따라 바뀐 전화번호를 안내한 뒤 직접 연결해주는 서비스의 가장 큰 장점은, 사업자 사이의 가입자 이동 장벽이 크게 낮아지는 점을 먼저 꼽을 수 있다. 이동전화 이용자의 사업자 선택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동전화 가입자가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월 3천원 정도의 비용으로 전화번호 변경에 따른 불안을 말끔히 해소할 수 있다. 게다가 6개월로 제한된 시내전화와 달리, 이동전화는 월 3천원의 요금을 부담하는 한 언제까지나 바뀐 번호 안내와 직접 연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가입자 잡아두기 어려워진다

사진/ 번호 이동성 도입 이후 후발 사업자들이 요금을 크게 내릴 경우 이동전화의 시장점유율 구도에 변화가 예상된다. 서울 용산 전자상가의 이동전화 대리점들. (이용호 기자)
물론 번호 이동성이 도입되면 안내 서비스도 필요 없다. 지금까지는 사업자를 바꾸려면 그동안 사용하던 전화번호를 버리는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그동안 뿌린 명함 역시 모두 쓸모가 없게 됐다. 따라서 이용자쪽에서 볼 때 이 서비스 도입은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반면 서비스 사업자쪽에서 보면 가입자를 잡아두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전화번호 장벽이 낮아진 만큼 가격탄력도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가입자들이 요금이 싸거나 나은 통화 품질을 제공하는 사업자를 찾아 언제든지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업자들의 요금인하 경쟁을 촉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LG텔레콤은 이미 월 기본료를 6천원으로 줄인 요금제까지 내놨다. KTF도 번호이동성과 바뀐 번호 안내 서비스를 겨냥한 요금제 상품을 곧 내놓을 방침이다. SK텔레콤은 요금을 조정할 때 정통부 인가를 받아야 하는 처지를 감안해 고가 ‘경품’으로 대응하고 있다. 고급 가전제품과 자전거 등을 잇달아 경품으로 내걸었다.

SK텔레콤이 53%, KTF가 34%, LG텔레콤이 13%대를 갖고 있는 이동전화 시장점유율 구도를 바꿀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통화 품질이 비슷한 만큼, 후발 사업자들이 요금을 크게 내릴 경우 많은 가입자들이 옮겨갈 것으로 예상된다.

정통부가 번호 이동성 도입 시기를 앞당기고, 그때까지는 바뀐 번호 안내와 직접 연결 서비스를 하게 한 것도, 후발 사업자의 요금인하를 유도해 비대칭규제 정책의 효과를 살리기 위한 것이다. 비대칭규제란 시장지배적 사업자와 후발 사업자에 대한 규제 강도를 달리하는 것이다.

바뀐 번호 안내와 직접 연결 서비스는 일부 사업자들의 반대로 준비과정에서 불발로 끝나거나 반쪽짜리로 전락할 위기도 겪었다. 019 개인 휴대전화 사업자 LG텔레콤은, SK텔레콤의 011·017 가입자가 KTF의 016·018이나 019로 옮기는 경우에만 바뀐 번호를 안내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비대칭규제 정책 취지에 맞춰 SK텔레콤 가입자는 KTF나 LG텔레콤으로 쉽게 옮길 수 있게 하고, 반대로 LG텔레콤 가입자의 이동은 지금처럼 계속 어렵게 놔두는 쪽으로 바뀐 전화번호 안내 서비스 제도를 시행해 달라고 떼를 썼다. LG텔레콤은 번호 이동성 제도 도입에 대해서도 같은 주장을 폈다.

정통부 서슬에 업체들 ‘양보’

이 때문에 바뀐 전화번호 안내 서비스가 반쪽짜리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실제로 정통부 관계자는 8월 초 “이동전화 3사 모두 다른 사업자에게로 옮겨간 가입자의 바뀐 전화번호도 안내하게 할 예정이었는데, LG텔레콤이 ‘011·017 가입자가 016·018·019로 옮겼을 때만 안내를 하게 해달라’고 졸라 고민이다”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LG텔레콤의 건의는 번호 이동성과 바뀐 전화번호 안내는 소비자들의 편익을 위한 것이라는 논리에 밀려 채택되지 못했다. SK텔레콤은 서비스 도입에 반대했다. 바뀐 번호 안내와 직접 연결 서비스 도입 취지와 현재의 접속료 산정 기준을 감안할 때, 가입자를 빼앗기고 접속료 산정에서도 손해를 보는 상황이 예상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통부의 비대칭규제 정책으로 엄청난 초과 수익을 내는데다 소비자 편익 논리를 거부할 명분이 없어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김재섭 정보통신전문기자/ 한겨레 경제부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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