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
철저한 평가와 측정으로 유명한 ‘관리’기업 이랜드…비정규직 고용 증가 등 노동계 우려도
서울 신촌에 자리잡은 이랜드 사옥에 들어서면 정문 앞 담벼락에 붙은 현수막이 눈길을 잡아끈다. ‘지식자본가, 우리의 희망이다!’ 큼지막하게 내건 격문처럼 전 직원을 ‘지식자본가’로 키운다는 게 이랜드의 슬로건이다. 이랜드의 독특한 지식경영이 재계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는 건 더 이상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그런데 지난 6월 이랜드가 법정관리 중인 국제상사를 뜻밖에(?) 전격 인수한 뒤로 이랜드식 지식경영의 원천과 비밀을 배우려는 학습 붐이 더 크게 일고 있다. 자산총액 7300억원에 불과한 이랜드가 덩치가 만만찮은 국제상사(2001년 매출액 2022억원)를 인수한 저력은 지식경영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97년 부도위기에서 화려한 재기
지난 7월24일, 이랜드 본사에서 열린 외부인 대상의 지식경영 강좌. 설명회장은 한여름의 후텁지근한 날씨 속에서 지식경영의 노하우를 배우려는 사람들로 꽉 찼다. 굴지의 대기업에서 온 직장인에서부터 학생, 연구자 등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다 모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손병두 부회장은 최근 “재계의 관심을 끌고 있는 이랜드의 지식경영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며 태스크포스팀 구성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전경련 본부장급 임원들이 이랜드의 지식경영 사례를 배워가기도 했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경제주간지 <파이스턴이코노믹리뷰>는 지난 5월 이랜드를 아시아 지역의 대표적인 지식경영 성공사례로 꼽았다. 이 잡지는 이랜드가 지난 99년 지식경영을 도입한 이래 1인당 부가가치(1천만원), 순이익 등에서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랜드의 지식경영은 지난해 캐주얼·아동복·할인점 등 32개 전 브랜드가 흑자를 달성하면서 다시 한번 업계를 놀라게 했다. 사상 최대 호황을 맞은 이랜드 직원들은 브랜드별로 450∼1100%까지 성과급을 챙겼다. 이런 돈벼락의 원천은 바로 지식경영에 있다고 이랜드는 설명한다. 지난 80년 신촌 이화여대 앞 ‘잉글런드’라는 두어평의 작은 옷가게에서 출발한 이랜드는 ‘이랜드 신화’로 불리는 초고속 성장을 거듭했다. 97년 한때 부도 직전까지 몰리면서 퇴출위기에 처했으나 외자유치로 기사회생한 이랜드는 99년부터 시작한 지식경영을 ‘제2의 이랜드 신화’로 부른다. 지식경영의 성과는 이랜드의 스포츠 브랜드인 ‘푸마’의 사례가 그대로 보여준다. 푸마는 지난해 매출액(340억원) 240%, 영업이익(70억원) 1300%라는 믿기 어려운 성장을 구가했다. 1인당 부가가치는 무려 5억3천만원에 이른다. 이랜드 문기환 상무는 “지식경영을 도입한 기업은 많지만 실제로 성과를 내는 곳은 별로 없다”며 “문제는 지식경영 시스템의 알맹이가 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랜드가 성장의 엔진으로 여기는 지식경영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기독교 신념에 뿌리를 둔 이랜드에서 성경 다음으로 진리처럼 암송하는 책은 피터 드러커의 <지식의 결과>다. 이 책은 “지식은 혁신과 생산성을 낳는다. 측정하지 않은 것은 관리할 수 없다. 지식경영은 사람을 관리하는 것이다”라는 말로 요약된다. 이랜드 지식경영의 본질이 지식 ‘창출’보다는 ‘관리’에 있다는 점은 여기서부터 선명하게 드러난다.
“세련된 구조조정 전략일뿐”
이랜드의 지식경영은 지식몰(KMS)과 성과측정(BSC)으로 크게 나뉜다. 전 사원은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운영되는 지식몰(KMS)에 각자 보유한 업무지식을 올린다. 이렇게 축적된 지식을 모든 직원이 공유하는데, 현재 1만여건의 지식이 등록돼 있다. 자신의 지식이력서와 ‘지식샵(Shop)’도 따로 개설돼 있다. 이곳을 통해 지식은 사고 파는 상품처럼 거래된다. 회사는 올려진 지식마다 매력도를 심사한 뒤 점수로 매겨 인사고과에 반영한다.
이랜드 지식경영의 핵심은 평가와 측정에 있다. 이랜드는 수치로 따지기 어려운 비재무적인 각종 성과들도 온갖 측정방법을 동원해 수치로 계량화한다. 측정방식은 ‘테일러 시스템’과 흡사하다. 볼트에 너트를 끼워넣는 간단한 작업동작도 세밀하게 쪼개 시간과 동작을 분석한 ‘과학적 관리기법’처럼 모든 것을 수치화하는 것이다. 이랜드 지식경영실 김교연 차장은 “무엇이든 측정이 가능하도록 계량화된 지표를 개발하는 게 핵심”이라며 “이랜드의 성과 관리는 집단이 아니라 철저한 개인 위주”라고 말했다. 개인 성과주의는 기독교 이념에 기초한 이랜드의 독특한 공동체 기업문화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기업문화를 앞세운 직원 통제로 저항을 차단하면서 뒤에서 ‘성과’를 채찍질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이랜드의 지식경영은 “성과를 못 내면 문 닫아라”는 식의 매장주한테 가해지는 압박은 물론, 심지어 노동조합한테 “노조가 이룬 성과는 뭐냐”고 따지는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랜드 지식경영은 어찌 보면 크게 새로울 것도 없다. 월 1억원 매출을 달성해 지식경영 성공사례로 꼽힌 여성 캐주얼 브랜드 ‘로엠’ 매장을 보자. 이 매장은 비결로 △손님이 많은 오후 1∼2시에 직원을 집중 배치한다 △손님이 다시 찾도록 신제품이 나오면 즉각 연락해준다 △미끼 상품을 진열대 맨 앞에 배치한다는 점을 꼽는다. 한마디로 구매자를 늘리고 또 오게 만드는 것뿐이다.
그래서 지식경영은 듣기 좋은 말일 뿐 ‘세련된 구조조정 전략’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식경영의 본질은 성과주의, 연봉제, 인력감축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랜드노동조합 이남신 위원장은 “회사쪽이 90%의 직원들은 성과를 전혀 내지 못한다고 말한 적도 있다”며 “지식을 보유한 사무관리직 소수만을 위한 것일 뿐 유통과 판매쪽의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열악한 저임금에 불만이 팽배해 있다”고 말했다.
이랜드는 지난 98년, 당시 3600명에 이르던 직원 중 2천여명을 정리해고 형태로 내보낸 뒤 비정규직을 끊임없이 확대하고 있다. 대대적인 인력감축 결과 1인당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껑충 뛰는 건 당연한 이치다. 지식경영의 화려한 성과가 하청생산공장과 프랜차이즈 매장의 저임금 노동자들을 딛고 선 것이란 지적은 여기서 나온다. 인력의 비정규직화를 바탕으로 이랜드는 사업부 해체 및 신설, 새로운 사업 진출을 발빠르게 해치우고 있다. 이는 지난 2000년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내건 노동조합의 265일 장기파업을 불렀다.
유통계 기업확장 모험
‘관리’회사로서의 이랜드는 하드웨어는 전무하다시피 하고 철저한 소프트웨어 중심이란 점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이랜드는 매출 1조원에 이르는 패션·유통그룹이지만 생산공장은 단 한곳도 없다. 국내 및 중국, 베트남, 스리랑카 등지에서 100% 아웃소싱으로 하청생산한다. 전국 2300여개 이랜드 브랜드 매장 중 ‘후아유’ 매장 몇곳을 빼고는 직영 매장도 거의 없다. 국내 의류업체 최초로 프랜차이즈 매장 방식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본사가 하는 일은 기획, 디자인, 머천다이징(시장조사를 통해 적합한 제품을 시기·장소·가격에 맞게 상품화하는 것)뿐이다. 한푼도 투자하지 않은 채 생산·판매를 유지하고, 본사는 일종의 수수료를 챙기는 구조다. 그래서 “이랜드 본사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나온다. 지식부터 생산, 마케팅까지 ‘관리’만 하는 만큼 브랜드가 실패하면 매장에 투자한 대리점 주인과 하청생산업체만 큰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자산총액을 기준으로 지정한 43개 대규모 기업집단(재벌) 가운데 매출액 1조원대인 그룹은 8개다. 이랜드의 올해 매출액 목표가 1조1천억원인 만큼, 이랜드가 재계의 한 축에 들어설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요즘 이랜드는 잇따라 사업확장을 꾀하는 등 공격경영에 나서고 있다. 채권단의 빚 탕감 등으로 장부가 깨끗해진 옛 부실기업이 타킷이다. 이랜드는 지난 5월 분당지역의 뉴코아 미금점과 킴스클럽 미금점을 410억원에 인수해 ‘2001아울렛’ 8호점으로 재개장했다. 이어 대표적인 스포츠 브랜드 프로스펙스를 보유한 국제상사의 주식 224만주와 전환사채를 500억원에 사들여 국제상사의 최대주주로 떠올랐다. 국제상사가 소유한 용산 국제센터 빌딩도 실질적인 소유권은 이랜드가 갖게 됐다. 설악 켄싱턴 스타호텔에 이어 새로운 대형 호텔을 인수하기 위해 물밑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법정관리 중인 뉴코아백화점이 분할 매각되면 일부 점포를 사들여 2001아울렛 매장으로 바꿀 예정이다. 이를 통해 현재 8개점인 패션전문 할인몰 2001아울렛을 내년에 13호점까지 늘리기로 했다. 부도위기에 몰렸다가 외자유치로 간신히 살아난 이랜드가 불과 몇년 사이에 다시 몸집 키우기에 나선 것이다.
이랜드의 지칠 줄 모르는 사업확장의 바탕에는 지식경영 성과에 따른 막대한 돈줄이 자리잡고 있다. 이랜드 조희상 상무는 “매출의 40%를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는데, 지식경영으로 매출이 폭발하면서 쌓여 있는 현금도 상당한 규모에 이른다”고 말했다. 이랜드의 성장주의 전략은 롯데·신세계·현대 등 ‘빅3’가 과점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유통업계에 도전하는 양상을 띤다. 물론 아직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불과하고, 이것이 덩치 불리기로 나타나고 있을 뿐이라는 게 더 정확하다. 그러나 지난 97년 이랜드가 봉착한 위기의 원인이 방만한 사업 다각화에 있었듯 최근의 사업확장은 모험이기도 하다. 지난 99년 2001아울렛에 330억원을 투자한 아리랑구조조정기금은 이랜드의 아울렛 점포 확대에 우려한 나머지 투자금액을 조기에 회수한 것으로 알려진다.
국제상사 인수 의혹의 눈길도
이랜드는 점차 가두매장이 쇠퇴하자 2001아울렛에 승부를 걸면서 패션에서 유통쪽으로 주력을 옮겨가고 있다. 그러나 아울렛은 패션 중심의 점포구성으로 간신히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을 뿐 대형 할인점의 공세 속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형편이다. 패션으로 큰 이랜드가 유통분야에서 도전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다시 위기가 찾아오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이랜드는 철저한 성과관리로 대표되는 지식경영이란 이름의 달리고 있는 자전거나 마찬가지다. ‘성과’라는 바퀴가 멈춰버리면 쓰러질 수밖에 없다. 이런 우려 때문일까. 국제상사쪽은 “투자 대신 자본을 ‘관리’만 하려 드는 이랜드의 경영방식에 비춰볼 때 추가적인 투자 없이 막대한 평가이익이 예상되는 국제상사의 부동산을 매각해 이익만 챙기려는 게 아니냐”며 의혹을 눈길을 보내고 있다. 생산공장을 갖춘 국제상사와 공장 하나 없이 관리 위주로 경영하는 이랜드의 방식이 서로 융화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랜드는 국제상사의 전환사채(주식 전환 때 1200만주)를 아직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은 채 법원의 결정만 바라보고 있다. 국제상사가 법정관리 상태인 만큼 법원이 법정관리에서 졸업시켜주지 않는 한 주권행사를 할 수 없는 처지기 때문이다. 유통업계는 법원이 이랜드의 경영능력을 따져본 뒤 국제상사의 기업가치를 높일 적합한 투자자라고 판단할 것인지에 주목하고 있다. 바깥에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사세를 확장하는 게 이랜드 스타일이지만 지식경영에서 국제상사 인수까지, 이랜드가 재계의 관심 한복판에 등장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지난 7월24일, 이랜드 본사에서 열린 외부인 대상의 지식경영 강좌. 설명회장은 한여름의 후텁지근한 날씨 속에서 지식경영의 노하우를 배우려는 사람들로 꽉 찼다. 굴지의 대기업에서 온 직장인에서부터 학생, 연구자 등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다 모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손병두 부회장은 최근 “재계의 관심을 끌고 있는 이랜드의 지식경영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며 태스크포스팀 구성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전경련 본부장급 임원들이 이랜드의 지식경영 사례를 배워가기도 했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경제주간지 <파이스턴이코노믹리뷰>는 지난 5월 이랜드를 아시아 지역의 대표적인 지식경영 성공사례로 꼽았다. 이 잡지는 이랜드가 지난 99년 지식경영을 도입한 이래 1인당 부가가치(1천만원), 순이익 등에서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랜드의 지식경영은 지난해 캐주얼·아동복·할인점 등 32개 전 브랜드가 흑자를 달성하면서 다시 한번 업계를 놀라게 했다. 사상 최대 호황을 맞은 이랜드 직원들은 브랜드별로 450∼1100%까지 성과급을 챙겼다. 이런 돈벼락의 원천은 바로 지식경영에 있다고 이랜드는 설명한다. 지난 80년 신촌 이화여대 앞 ‘잉글런드’라는 두어평의 작은 옷가게에서 출발한 이랜드는 ‘이랜드 신화’로 불리는 초고속 성장을 거듭했다. 97년 한때 부도 직전까지 몰리면서 퇴출위기에 처했으나 외자유치로 기사회생한 이랜드는 99년부터 시작한 지식경영을 ‘제2의 이랜드 신화’로 부른다. 지식경영의 성과는 이랜드의 스포츠 브랜드인 ‘푸마’의 사례가 그대로 보여준다. 푸마는 지난해 매출액(340억원) 240%, 영업이익(70억원) 1300%라는 믿기 어려운 성장을 구가했다. 1인당 부가가치는 무려 5억3천만원에 이른다. 이랜드 문기환 상무는 “지식경영을 도입한 기업은 많지만 실제로 성과를 내는 곳은 별로 없다”며 “문제는 지식경영 시스템의 알맹이가 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랜드가 성장의 엔진으로 여기는 지식경영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기독교 신념에 뿌리를 둔 이랜드에서 성경 다음으로 진리처럼 암송하는 책은 피터 드러커의 <지식의 결과>다. 이 책은 “지식은 혁신과 생산성을 낳는다. 측정하지 않은 것은 관리할 수 없다. 지식경영은 사람을 관리하는 것이다”라는 말로 요약된다. 이랜드 지식경영의 본질이 지식 ‘창출’보다는 ‘관리’에 있다는 점은 여기서부터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랜드 경영실적(신장률) (단위:억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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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8년 |
99년 |
2000년 |
2001년 |
2002년 상반기 |
| 매출액 |
5,490 |
6,004(9.3%) |
7,018(16.8%) |
8,625(22.8%) |
5,055(31.7%) |
| 영업이익 |
223 |
424(90.1%) |
769(81.3%) |
1,107(43.9%) |
851(53.8%) |
| 순이익 |
142 |
234(64.7%) |
476(103.4%) |
740(55.4%) |
698(56.1%) |
| 부채비율 |
169% |
126% |
117% |
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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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언제 그랬느냐 싶게 부도위기를 털고 사업확장을 꾀하고 있는 이랜드.

사진/ 법정관리 중인 국제상사는 뜻밖에 이랜드가 인수한 데 크게 당황하고 있다. 용산 국제센터빌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