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마트, 대규모 점포 신설에도 실적은 부진…매출지상주의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울산 삼산동 현대백화점 바로 앞에 지난해 8월 롯데백화점이 새로 문을 열었다. 백화점·호텔·극장으로 이뤄진 5만여평의 초대형 복합 쇼핑몰이었다. 거리는 불과 100여m.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백화점 업계의 두 거인이 맞붙은 것이다.
롯데는 개점하자마자 엄청난 물량공세를 퍼부었다. 특히 울산은 신격호 롯데 회장의 고향이어서 개점 초기부터 롯데가 갖는 관심은 각별했다. 사은품, 경품, 바겐세일로 이어지는 롯데의 물량공세가 시작되자 현대백화점도 맞불을 놓았다. 두 회사의 치열한 전쟁은 1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불패의 신화 흔들린다
일반 지방 백화점이라면 롯데의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을 것이다. 롯데백화점 개점 초기에도 그런 얘기가 돌았다. “아무리 현대의 본거지라고 해도 매장 규모나 자금 면에서 현대가 어렵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백화점은 지역 특성을 업고 중요 고객을 집중적으로 관리함으로써 롯데와의 싸움에서 자기 영역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롯데는 서울 본점을 포함해 전국에서 가장 큰 건평 5만평의 점포를 지어놓고도 울산지역의 상권을 장악하지 못했다. 매장 면적은 훨씬 큰데도 매출 규모가 현대백화점의 80%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어느 곳이든 점포를 열면 반드시 1위 자리를 차지해왔던 롯데로서는 쓰라린 실패를 맛보고 있다. 울산뿐 아니다. 최근 들어 유통업계에서 롯데의 아성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롯데가 손을 대면 모두 성공한다”는 수십년에 걸친 불패의 신화가 보이지 않게 조금씩 무너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유통업계에서 승승장구하던 롯데가 최초의 좌절을 맛본 곳은 분당점이었다. 지난 99년 4월 블루힐백화점을 인수해 개점한 분당점은 당시 지역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삼성플라자와 2000년 말까지 1년6개월에 걸친 대혈전을 벌였다. 롯데는 당시 거의 두달에 한번꼴로 바겐세일을 할 정도로 대규모 물량공세를 퍼부었지만 삼성플라자를 이겨내지 못했다. 철저한 지역밀착형 마케팅에 주력한 삼성플라자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이후 비슷한 사례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고 있다. 울산점이 대표적인 경우다.
더 중요한 것은 할인점이다. 롯데는 마그넷이란 할인점 명칭을 최근 롯데마트로 바꾸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점포 수는 늘고 있지만 실적이 예상보다 저조해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말 24개의 점포에서 1조65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1999년의 6천억원, 2000년 1조2천억원에 비해 훨씬 늘어난 수치다. 매출 규모만으로는 100%, 37.5%라는 큰 폭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정은 그렇게 좋지 않다. 매출 신장이 대부분 점포 수 확장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점포당 평균 매출액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롯데마트의 점포당 매출액은 99년 857억원에서 2000년 750억원, 2001년 687억원으로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다. 영업의 내용으로 보더라도 만족스럽지 않다. 1조6500억원의 매출을 올린 롯데마트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202억원에 불과하다.
점포별 매출실적 하향추세
경쟁사인 이마트의 실적과 비교해보면 이를 금방 알 수 있다. 이마트의 점포당 매출액은 97년 774억원, 99년 809억원, 2000년 1085억원, 2001년 985억원으로 꾸준한 증가세를 유지해왔다. 2001년 말에는 42개 점포에서 4조140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영업이익은 2215억원에 이른다. 매출은 2.5배의 차이지만 영업이익은 10배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할인점 부문에서의 부진은 롯데의 자존심에 상처를 줬다. 언제나 1등주의를 고수해온 롯데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과다. 최근 신격호 회장이 직접 경쟁사인 이마트 매장을 방문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롯데는 이 때문에 할인점 부문에 역점을 두고 더욱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해가고 있다. 연말까지 롯데마트를 35개로 늘리고, 2005년까지 이를 80여개로 늘린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유통업계에서는 롯데의 이러한 움직임을 우려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점포 수는 열심히 늘리고 있지만 매출과 이익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금줄이 튼튼한 롯데라 할지라도 이러한 쏟아붓기식 투자는 언젠가 한계에 봉착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백화점과 달리 할인점은 가격경쟁력 하나 가지고 승부하기 때문에 초반에 성패가 갈린다”며 “장차 롯데마트가 그룹 전체의 아킬레스건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롯데는 현재 어느 기업보다 잘 나가고 있다. 롯데쇼핑은 할인점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백화점 부문의 매출호조에 힘입어 2001년 말 5조6817억원의 매출과 2220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롯데쇼핑은 올해 상반기에도 4조5천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계열사들 실적 또한 좋다. 롯데칠성은 지난해 음료업계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넘어섰다. 호텔롯데 역시 지난해 매출 1조원을 넘어섰다. 대부분의 주력 기업들이 매출 1조원을 넘어서거나 거기에 육박하면서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내고 있다. 롯데는 특히 그룹 전체의 부채비율이 76%에 불과해 현금동원력 면에서는 삼성·LG·SK·현대자동차의 4대그룹에 맞먹는 것으로 평가받는 실정이다.
사업 확장에도 가속도가 붙고 있다. 롯데쇼핑은 지난 5월 미도파를 예상보다 1천억원 이상 많은 5420억원에 인수해 유통업계를 놀라게 했다. 또 국내 최대의 패밀리 레스토랑 체인인 TGI프라이데이를 인수함으로써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해가고 있다. 해외로의 사업 진출도 활발하다. 러시아 현지법인을 세워 모스크바에 호텔과 백화점 건립을 추진 중이며, 백화점과 할인점의 중국 진출도 검토하고 있다.
물량공세로 유지해온 업게1위의 자리
양적인 확대만이 아니다. 롯데는 사업영역을 유통에서 금융쪽으로 넓히려 하고 있다. 현재 협상을 진행 중인 동양카드 인수가 마무리되면 숙원사업인 신용카드 진출이 성사될 전망이다. 롯데는 현재 560만명의 롯데카드 회원을 보유하고 있어 신용카드 분야에서도 엄청난 성장 잠재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또 전국에 깔린 롯데쇼핑·세븐일레븐·롯데리아 등 2천여개에 이르는 유통망을 이용한 금융업도 모색하고 있다. 이들 매장에 현금인출기(ATM)를 통해 입출금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장기적으로 현금서비스까지 하겠다는 구상이다. 지난 4월 신격호 회장의 지시로 그룹의 싱크탱크 역할을 할 롯데경제연구실을 세운 것 또한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유통쪽에서 쌓아온 탄탄한 사업기반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과 변신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매출지상주의로 불리는 롯데의 사업방식이다. 롯데는 항상 1등을 추구해왔다. 어떤 경우에도 2위를 인정하지 않아왔다. 일단 사업을 시작하면 대규모 물량공세를 통해 최단시일 안에 매출을 최대로 끌어올려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한 뒤 시장장악력을 바탕으로 경쟁사들을 따돌리는 방식이다. 백화점의 경우 이렇다. 새로 출점을 하게 되면 기존 백화점 업체를 물리치기 위해 1년에 걸쳐 각종 사은품 공세와 바겐세일 등을 계속한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롯데가 한번 진출하면 지역 상권이 초토화된다”고 입을 모은다. 경쟁업체가 버티지 못하고 물러서면 그 사이를 비집고 시장점유율이 1위로 올라선다. 그 다음부터는 막강한 시장장악력을 바탕으로 납품업체에 대해 바잉파워(buying power)를 행사한다. 바잉파워란 대량 구매를 통해 납품단가를 낮추고 특점 상품을 독점 공급받음으로써 가격과 상품경쟁력을 높이는 수단을 말한다. 경영은 당연히 수익성보다는 매출을 중시하는 매출지상주의로 흐르게 된다.
그러나 할인점에는 이러한 영업방식이 잘 통하지 않는다. 할인점은 사은품이나 경품, 바겐세일이 아닌 가격경쟁력으로 승부하기 때문이다. 이마트는 외환위기 이후 주요 지역의 할인점 부지를 싼값에 대량 확보한 상태여서 경쟁사보다 적은 투자비로 매장을 늘려가고 있다. 또 매장에서 상품회전율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전략으로 가격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뚜렷한 강점이 없는 롯데마트의 점포 확장은 롯데에 불안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점포 수를 늘려 대량 구매의 강점을 살린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롯데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할인점 부문의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카드 고객 흡수할 수 있나
현재 할인점 업계는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까르푸 4개 업체가 경합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신규점포 개설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유통업계 전문가들은 이러한 출점 경쟁이 계속될 경우 2∼3년 뒤면 할인점이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때는 기존 점포들 간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수익성이 떨어지는 점포는 퇴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외형상의 매출액 성장보다 개별 점포당 매출액과 수익성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량한다.
롯데는 또 금융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려 하고 있다. 특히 역점을 두고 있는 카드사업은 BC·삼성·LG 등 선발업체의 시장지배력과 노하우가 두터운 진입장벽을 형성하고 있다. 나머지 업체들의 경쟁도 치열하다. 자동차 고객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는 현대카드가 쉽게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롯데 역시 마찬가지다. 롯데카드 회원이 든든한 자산이지만 백화점 카드와 신용카드는 엄연히 다르다. 롯데카드 회원들이 그대로 롯데 신용카드를 그대로 사용한다는 보장은 없다.
안정된 사업구조와 보수적인 경영을 특징으로 하는 롯데로서는 새로운 모험을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과연 롯데의 새로운 시도가 성공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롯데가 신규사업 진출과 경영환경의 변화에 걸맞게 스스로를 얼마나 변화시켜 가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 유통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글 정남기 기자 jnamki@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사진/ 롯데는 마그넷이란 할인점 명칭을 롯데마트로 바꾸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일반 지방 백화점이라면 롯데의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을 것이다. 롯데백화점 개점 초기에도 그런 얘기가 돌았다. “아무리 현대의 본거지라고 해도 매장 규모나 자금 면에서 현대가 어렵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백화점은 지역 특성을 업고 중요 고객을 집중적으로 관리함으로써 롯데와의 싸움에서 자기 영역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롯데는 서울 본점을 포함해 전국에서 가장 큰 건평 5만평의 점포를 지어놓고도 울산지역의 상권을 장악하지 못했다. 매장 면적은 훨씬 큰데도 매출 규모가 현대백화점의 80%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어느 곳이든 점포를 열면 반드시 1위 자리를 차지해왔던 롯데로서는 쓰라린 실패를 맛보고 있다. 울산뿐 아니다. 최근 들어 유통업계에서 롯데의 아성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롯데가 손을 대면 모두 성공한다”는 수십년에 걸친 불패의 신화가 보이지 않게 조금씩 무너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유통업계에서 승승장구하던 롯데가 최초의 좌절을 맛본 곳은 분당점이었다. 지난 99년 4월 블루힐백화점을 인수해 개점한 분당점은 당시 지역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삼성플라자와 2000년 말까지 1년6개월에 걸친 대혈전을 벌였다. 롯데는 당시 거의 두달에 한번꼴로 바겐세일을 할 정도로 대규모 물량공세를 퍼부었지만 삼성플라자를 이겨내지 못했다. 철저한 지역밀착형 마케팅에 주력한 삼성플라자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이후 비슷한 사례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고 있다. 울산점이 대표적인 경우다.

사진/ 롯데가 최근 인수한 미도파 상계점. 이로써 백화점 업계의 지배력을 한층 높였다.

사진/ 최근 문을 연 롯데마트 도봉점. 롯데마트는 점포당 평균 매출액이 줄어드는 추세다.

사진/ 세븐일레븐 매장에 설치돼 있는 ATM기. 롯데는 3천여개 매장에 이 기기를 설치해 금융사업을 할 계획이다.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