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없이 부르는 값만 높은 아파트 시세… 내년부터 상승세 꺾일듯
새 집을 장만하러 요즘 서울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는 김아무개(56)씨는 올림픽이 막 끝난 지난 89년을 하루에도 몇번씩 떠올린다. 자고 나면 아파트값이 급등하던 시절이었다. 13년이 지났지만 그때와 너무나 비슷하다. 뙤약볕 속에 비지땀을 훔치며 찾아간 부동산 중개업소마다 걸린 매물을 보면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25평형 아파트값이 웬만한 곳은 다들 1억7천만원을 웃돈다.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다고 했는가. 빚을 내서라도 덜컥 샀다가 집값이 내리막길로 접어들면 어떡하나. 하지만 더 오르기 전에 사야 하는 건 아닐까. 고민 속에 거리를 헤매던 그는 차라리 전세를 알아보자는 쪽으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입주자들과 중개업소의 결탁
서울지역 아파트 평당 매맷값이 사상 처음으로 800만원을 돌파했다. 부동산정보제공업체인 부동산뱅크가 7월 중순 서울 2천여개 아파트 단지의 시세를 조사한 결과, 평당 매맷값은 803만4천원. 지난 1월 평당 700만원을 넘어선 뒤 6개월 새 100만원이나 올랐다. 지난 91년 4월(평당 700만원) 이후 가장 빠른 오름세로 가히 기록적인 상승폭이다. 특히 강남구는 아파트 매맷값이 평당 1442만5천원에 이른다. 올 상반기에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해 말에 견줘 15.76%, 수도권은 12.21%가 올랐다. 전국적으로도 평균 12.24%나 올랐다. 지난해 상반기에 견줘 상승률이 무려 3배나 된다.
부동산시장의 ‘거품’에 대한 경고는 지난해부터 끊임없이 흘러나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여러 차례 경고했음에도 아파트값은 좀체 꺾이지 않고 오름세를 타고 있다. 과연 이런 브레이크 없는 질주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거품 논란에도 아파트값 폭등세가 가라앉지 않는 데서 볼 수 있듯이 부동산시장을 정확히 예측하는 건 무척 어렵다. 그러나 요즘 부동산시장을 들여다보면 흐름을 내다볼 수 있는 한 가지 뚜렷한 현상이 발견된다. 부르는 값(호가)만 오를 뿐 실거래는 뜸하다는 점이다. 거래가 동반되지 않는 이른바 ‘호가 위주의 상승’이다. 부동산정보제공업체인 부동산114 김규정 과장은 “이론적으로 실거래가 없으면 가격이 떨어져야 하는 건데 가격이 계속 뛰는 괴리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그만큼 부동산 시장이 예측불허의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호가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양상은 강남지역 아파트 단지에서 시작해 서울시내와 수도권으로 확산되고 있다. 호가 상승은 입주자들과 중개업소의 결탁 속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진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주변 한 공인중개업소는 “아줌마들이 반상회를 통해 아파트값을 점검하면서 싼 값에 매물을 내놓지 못하게 하고, 시세 점검차 아파트 단지 주변 중개업소를 돌아다니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중개업소를 순찰(?)하다가 매맷값을 낮게 부르는 업소가 나오면 내놓은 매물을 담합해서 거둬가는 식으로 업소를 왕따시킨다. 청담동의 한 공인중개업소는 “아파트 단지에 사는 주부들이 손님을 가장하고 집값을 조사하러 다니는 사실을 우리 업소도 잘 알고 있다. 중개업소가 매맷값을 올리면서 장난치는 것도 있지만, 주부들이 합세해 가격을 올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특히 한 아파트 단지의 호가가 오르면 그 오른 값은 다음날 곧바로 주변 단지로 퍼져나간다. 또 거래가 자취를 감추다 보니 한 건이라도 높은 값에 거래가 성사되면 그것이 곧 그 지역의 시세로 둔갑한다. 반면에 낮은 값에 거래된 경우는 시세 지표로 잡히지 않는다. 가격을 높여야 매물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을 잘 아는 중개업소가 낮은 가격에 이뤄진 거래는 일부러 숨기기 때문이다. 아파트 매맷값이 들썩거리지만 실제 거래량은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지난 4∼5월 전국 아파트 월평균 거래량은 1분기에 견줘 1.6% 증가하는 데 그쳤다. 서울지역은 오히려 17% 감소했다. 서울의 아파트 거래량은 올 1분기에 월평균 2만1천건에 이르렀으나 2분기 들어 4월 1만9천건, 5월 1만7천으로 잇달아 줄어들었다. 주택 거래량 가운데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도 서울의 경우 지난 1월 68%에서 5월에 47%로 크게 떨어졌다. 정부 약발 안 먹혀
이런 호가 위주의 가격 상승과 거래량 위축을 들어 주택시장이 불황 초기국면에 들어섰다고 분석한 보고서도 나왔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호가 상승과 거래 위축은 주택시장의 불황 초기 국면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하반기에 아파트값이 크게 오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2000년부터 시작된 부동산값 폭등은 전·월세 시장에서 비롯한 측면이 크다. 전·월세가 요동치자 저금리에 힘입어 아예 대출받아 집을 사버리겠다는 매매수요로 돌아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매매수요가 어느 정도 진정되고 한계에 다다랐다. 게다가 아파트값이 큰 폭으로 뛴 탓에 시세 차익을 노리기도 힘들어졌다. 이렇듯 부동산 활황이 이제 끝물에 이른 게 아니냐는 분위기가 거래 위축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불황’을 얘기하는 건 섣부르다는 견해도 만만찮다. 거래 위축은, “너무 올랐다”는 이유로 매수자들이 망설이는 탓도 있지만 매물 자체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분간 집값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심리로 매물이 줄어드는 것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연구원은 “오를 만큼 올라 추가 상승에 대한 기대가 높지 않더라도 집을 팔아 그 돈을 은행에 넣어봤자 이자 수익이 나지 않기 때문에 매물이 잘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동산에서 뺀 돈을 마땅히 굴릴 데가 없다는 점이 매맷값 하락세를 저지한다는 얘기다.
부동산시장을 움직일 변수로는 수요· 공급, 금리, 정부 정책, 재건축 등이 꼽힌다. 이 가운데 부동산값이 오를 것인지 내릴 것인지의 방향을 결정짓는 건 역시 수요 공급이다. 아파트 공급 물량은 그동안 꾸준히 증가해왔고 내년부터는 수급이 안정을 찾게 된다. 이에 따라 오름세가 꺾이는 지점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부동산 전문가들은 대체로 아파트값 상승세가 내년에는 꺾일 것으로 내다본다.
정부 정책을 보면, 세무조사와 부동산 거래세 강화 등 부동산 안정책을 내놓았지만 약발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있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대책을 내놓더라도 부동산 거품을 갑자기 터트리면 경제 전반에 큰 충격이 오기 때문에 시늉만 내고 말 것”이라고 여기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오히려 세무 조사 강화와 기준시가 상향 조정 이후 늘어난 세금부담을 매수자한테 떠넘기고, 이것이 매물 호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형국이다.
가계대출 금리가 상승조짐을 보이긴 하지만, 금리 역시 부동산시장에 큰 충격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물론 금리가 꿈틀거리면 융자를 끼고 무리하게 집을 산 사람은 매물을 쏟아내야 한다. 하지만 부동산에 넣은 돈을 서둘러 빼내야 할 정도로 현재 금리가 급등세를 타는 건 아니다. 닥터아파트 곽창석 이사는 “세무 조사 소나기를 어느 정도 피해간데다 아직은 대출금리가 싸기 때문에 빚을 내 집을 산 사람들은 버틸 때까지 버텨보자는 식”이라고 말했다.
하반기는 재건축 아파트가 좌우할 것
반면, 재건축 아파트는 부동산값 오름세를 주도할 정도로 큰 영향을 끼친다. 올 초 세무 조사 발표 이후 한동안 주춤한 아파트값이 다시 큰 폭으로 뛰는 한복판에 있는 게 재건축 대상 아파트다. 재건축 단지에서 값이 뛰면 근처 기존 아파트로 상승폭이 번지는 것이다. 부동산114 김규정 과장은 “시공사가 확정되면서 강남지역 저밀도 재건축 단지가 다시 뛰고 있다. 하반기 부동산시장은 재건축 아파트 동향이 좌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금의 부동산시장을 움직이는 힘은 각종 지표나 정책이 아니라 심리적 요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오를 대로 올랐지만 하락세로 돌아서더라도 많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닥터아파트 곽창석 이사는 “아파트를 대체하는 다가구·다세대주택이 많고, 주택보급률도 100%에 이르는데 부동산값이 급등하는 건 수급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지금의 부동산시장은 가격결정구조가 비정상적이고 심리적인 면이 아주 강하다”고 말했다. 올 초 정부가 부동산경기 진작책을 포기하고 규제로 돌아섰지만 집값이 계속 더 뜰 것이라는 심리가 워낙 팽배하다 보니 브레이크가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글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사진 이용호 기자 yhlee@hani.co.kr

사진/ 호가 상승은 입주자들과 중개업소의 결탁 속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진다. 한 부동산 중개소의 매물 가격표.
부동산시장의 ‘거품’에 대한 경고는 지난해부터 끊임없이 흘러나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여러 차례 경고했음에도 아파트값은 좀체 꺾이지 않고 오름세를 타고 있다. 과연 이런 브레이크 없는 질주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거품 논란에도 아파트값 폭등세가 가라앉지 않는 데서 볼 수 있듯이 부동산시장을 정확히 예측하는 건 무척 어렵다. 그러나 요즘 부동산시장을 들여다보면 흐름을 내다볼 수 있는 한 가지 뚜렷한 현상이 발견된다. 부르는 값(호가)만 오를 뿐 실거래는 뜸하다는 점이다. 거래가 동반되지 않는 이른바 ‘호가 위주의 상승’이다. 부동산정보제공업체인 부동산114 김규정 과장은 “이론적으로 실거래가 없으면 가격이 떨어져야 하는 건데 가격이 계속 뛰는 괴리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그만큼 부동산 시장이 예측불허의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호가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양상은 강남지역 아파트 단지에서 시작해 서울시내와 수도권으로 확산되고 있다. 호가 상승은 입주자들과 중개업소의 결탁 속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진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주변 한 공인중개업소는 “아줌마들이 반상회를 통해 아파트값을 점검하면서 싼 값에 매물을 내놓지 못하게 하고, 시세 점검차 아파트 단지 주변 중개업소를 돌아다니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중개업소를 순찰(?)하다가 매맷값을 낮게 부르는 업소가 나오면 내놓은 매물을 담합해서 거둬가는 식으로 업소를 왕따시킨다. 청담동의 한 공인중개업소는 “아파트 단지에 사는 주부들이 손님을 가장하고 집값을 조사하러 다니는 사실을 우리 업소도 잘 알고 있다. 중개업소가 매맷값을 올리면서 장난치는 것도 있지만, 주부들이 합세해 가격을 올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특히 한 아파트 단지의 호가가 오르면 그 오른 값은 다음날 곧바로 주변 단지로 퍼져나간다. 또 거래가 자취를 감추다 보니 한 건이라도 높은 값에 거래가 성사되면 그것이 곧 그 지역의 시세로 둔갑한다. 반면에 낮은 값에 거래된 경우는 시세 지표로 잡히지 않는다. 가격을 높여야 매물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을 잘 아는 중개업소가 낮은 가격에 이뤄진 거래는 일부러 숨기기 때문이다. 아파트 매맷값이 들썩거리지만 실제 거래량은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지난 4∼5월 전국 아파트 월평균 거래량은 1분기에 견줘 1.6% 증가하는 데 그쳤다. 서울지역은 오히려 17% 감소했다. 서울의 아파트 거래량은 올 1분기에 월평균 2만1천건에 이르렀으나 2분기 들어 4월 1만9천건, 5월 1만7천으로 잇달아 줄어들었다. 주택 거래량 가운데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도 서울의 경우 지난 1월 68%에서 5월에 47%로 크게 떨어졌다. 정부 약발 안 먹혀

사진/ 가계대출 금리가 상승조짐을 보이긴 하지만, 부동산시장에 큰 충격을 주지는 못했다. 부동산에 넣은 돈을 서둘러 빼내야 할 정도로 급등세를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사진 이용호 기자 yhlee@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