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이동통신을 어쩌란 말이냐

420
등록 : 2002-07-31 00:00 수정 :

크게 작게

[LG 그룹]

시장점유율 추락으로 고민에 싸인 LG텔레콤…500만명 가입자 달성 위해 총력

한국경제가 회복세로 접어들면서 경쟁력이 강해진 기업들을 중심으로 재계 판도가 큰 변화를 맞고 있다. 구조조정의 성과를 바탕으로 공기업과 부실기업을 인수하고, 신규 사업에 진출하는 등 도처에서 총성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몇몇 기업은 활동 무대를 국내에서 세계로 옮겨가는 상황이다. 반대로 일시적인 실적 호전을 틈타 무리한 사업확장에 나서거나 부실 계열사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구조조정을 겪고난 뒤 전환기를 맞고 있는 재계의 움직임과 변화를 주요 기업별로 점검해본다.


“8월 말까지 임직원이 추천하는 모든 고객에게 이동전화 단말기 할부금액을 전액 지원합니다.”

지난 6월 LG 전 계열사의 사내 게시판에 오른 이 글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사원판촉이 또다시 시작됐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임직원이 추천한 사람에게는 일부 선납금과 가입비 등 3만원 가량만 받고 시중에서 30만∼45만원 하는 019 단말기를 주겠다는 내용이다. 조건은 24개월 동안은 계약을 유지한다는 것뿐이다. LG는 ‘신제품 홍보’란 명분을 내세웠지만, 이는 편법적인 보조금 지급이다. 하지만 LG는 이런 지적에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다. 설령 과징금을 무는 한이 있더라도 당장 한명이라도 가입자를 늘리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것이다.


적극적 마케팅에도 가입자수 줄어

사진/ 지난 4월과 5월 019 가입자가 무려 10만명가량이나 줄어든 사실은 LG텔레콤이 판촉에 펼친 노력을 무색하게 했다. LG텔레콤의 한 상품광고.
LG 계열사 임직원들이 019 가입자 확대에 동원된 것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아예 직급에 따라 유치자 수를 할당하는 등 반강제적인 수단을 동원하기도 했다. LG 관계사의 한 직원은 “지난해 5월 임원에게는 10명, 중간관리자는 6명, 사원은 4명씩 가입자를 확보하도록 할당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할당량이 없다는 점이 직원들에게는 그나마 위안거리다. 그러나 사원판촉이 결코 이번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정보통신부가 매달 집계하는 이동통신 서비스 가입자 현황을 보면 LG가 왜 가입자 유치에 목을 매는지 알 수 있다. 지난 6월 말 현재 019의 시장점유율은 13.88%로 이동통신 서비스 사업자 중 3위다. 점유율이 53.26%인 SK텔레콤은 제쳐두고라도 2위인 KTF의 33.2%와 비교해도 절반이 안 된다. LG의 시장점유율이 이렇게 낮은 것은 지난 2000년 SK텔레콤이 신세기통신(017)을 합병하고, KTF가 한솔프리텔(018)을 인수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LG만 외톨이가 된 것이다.

사진/ 초창기 LG텔레콤의 거리 판촉행사. 가입자 수를 늘리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겨레)
LG는 시장점유율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을 뿐 아니라, 가입자 수마저 정체상태에 빠져 있다. 지난해 6월 SK텔레콤이 신세기통신과의 합병을 승인받기 위해 시장점유율을 50% 이하로 낮춰야 했을 때, LG는 한때 시장점유율을 15.78%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 뒤 지난 6월까지 12개월 연속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물론 시장점유율로만 보면 KTF도 SK텔레콤에 밀려 지난해 6월 34.47%에서 지난 6월 말 32.76%로 낮아졌다. 그러나 KTF는 가입자 수가 969만여명에서 1013만여명으로 늘어 나름대로 위안을 삼을 수 있는 형편이다. LG텔레콤은 443만여명에서 429만여명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지난 4월과 5월 두달 동안 019 가입자가 무려 10만명가량이나 줄어들자 증권시장에서는 “LG가 통신사업에서 철수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았다. 가입자 수의 감소는 올 들어 LG텔레콤이 펼친 노력을 무색하게 했다. LG는 지난 1분기에만 마케팅에 631억원을 투입했다. 지난 4월부터는 이른바 ‘4814 통화품질 리콜 프로그램’을 실시해 통화품질 개선에도 박차를 가했다. 이 제도는 통화품질이 나쁜 일부 지방도시에서 신규 가입자들이 품질 불만을 신고하면 48시간 안에 이를 해결해주고, 14일 안에 불만이 해소되지 않으면 단말기 구입비와 가입비를 전액 환불해주는 획기적인 리콜 서비스다. 이를 위해 LG텔레콤은 KTF와 기지국 로밍 서비스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도 가입자 수가 오히려 줄어들었으니 LG텔레콤이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지난해의 흑자 지속될까

물론 LG는 통신사업 철수론을 강력하게 부인한다. 그룹 관계자는 “구본무 회장이 통신사업에 대한 전면 검토를 지시했다는 최근 일부 언론의 보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LG텔레콤 관계자도 “성장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사업 철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말했다. LG텔레콤 쪽은 가입자 수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지난해부터 경영이 흑자로 돌아섰다는 점을 내세운다. 또 앞으로도 이동전화 가입자 수가 늘어날 여지가 많고, 한국디지털위성방송과 독점계약을 맺은 양방향 위성방송 서비스와 IMT2000 서비스를 시작하면 3위 업체라고 해도 안정적 수익을 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 LG텔레콤은 지난해 1543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지난 96년 회사 설립 이후 첫 흑자일 뿐 아니라, 지난 2000년 4423억원의 적자에 비하면 엄청난 실적 호전이다. 하지만 흑자를 내게 된 배경을 따져보면 흑자 구조가 정착됐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광고비 지출을 전년보다 500억원 줄였고, 판매촉진비를 무려 1900억원이나 줄인 것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불경기를 맞아 공격적 마케팅을 자제한 것이 실적 호전의 주요 원인이었다. 또 감가상각비가 전년보다 1063억원 줄어든 것도 흑자를 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이동통신 사업자 간 치열한 경쟁은 LG가 지난해처럼 소극적인 마케팅에 안주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있다.

올 초 이동통신 서비스 요금이 인하되자 LG텔레콤의 실적에는 다시 먹구름이 끼고 있다. 지난 1분기에 LG텔레콤의 서비스 부문 매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6.1% 늘었으나 지난해 4분기와 비교하면 10.4%나 줄어들었다. 반면 비용인 감가상각비는 전년 동기보다 21.5% 늘었고, 마케팅비 지출은 36.9% 늘었다. 이 때문에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17.5%가 줄어들었다.

당장의 실적 악화만이 LG가 안고 있는 고민의 전부는 아니다. 가입자 수가 정체돼 있는 한 지금의 고객들도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더 큰 고민거리다. LG텔레콤 관계자는 “가입자 수가 늘지 않으면 다른 고객들도 서비스에 대해 막연한 불신을 갖게 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SK텔레콤 쪽으로 고객의 쏠림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가입자 수를 늘리기 위해 마케팅에 전력을 기울이면 자칫 다시 적자에 빠져들 수도 있다는 게 문제다. 그동안 LG텔레콤은 수차례 유상증자를 통해 자본금을 1조3863억원으로 늘렸으나, 지금까지 누적 적자가 5312억원에 이른다.

LG텔레콤은 마케팅 경쟁을 위한 자금력이나 유통망도 경쟁업체에 크게 뒤떨어진다. 가입자당 월평균 매출액을 보면 SK텔레콤은 4만8천원가량이고, LG텔레콤은 3만∼3만5천원 수준이다. KTF는 LG보다 약간 높은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파격적인 요금제도 도입 예정

선발주자로서 ‘우량고객’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 SK텔레콤은 이를 바탕으로 청소년 등 미래의 고객에게 무료 이용시간을 늘려주는 등 사실상 할인 경쟁을 주도하고 있다. KTF의 경우도 모기업인 KT가 사업 초기에 거액의 지급보증을 하고 거대한 조직망을 활용해 재판매에 나서는 등 적극 지원해 LG를 앞서갔다. 정부가 3사 경쟁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후발업체를 보호해온 것이 그나마 LG가 기댈 언덕이었다.

LG그룹 쪽으로서는 통신사업이 “선택과 집중을 통해 1등 사업만 한다”는 그룹의 방침에 부응하지 못하는 점이 골칫거리다. 그러나 통신사업에 공격적으로 투자를 늘릴 경우 과연 승산이 있는지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LG텔레콤 관계자는 “모기업인 LG전자가 장비도 생산하고, 텔레콤이 서비스 사업도 하고 있는데, 과연 두 가지를 다 하는 것이 좋으냐는 논란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업을 정리하려고 해도 이미 업체 간 짝짓기가 거의 마무리된 상황에서 제값을 쳐줄 인수자를 찾기도 불가능하다. 지금으로서는 일단 가입자 수를 늘리는 쪽으로 밀고나가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사진/ LG텔레콤은 통화품질 개선을 위해 KTF와 기지국 로밍 서비스 계약을 맺었지만 가입자 증가 효과를 보지 못했다. KTF 이용경사장(왼쪽에서 두 번째)과 악수하고 있는 LG텔레콤 남용 사장.
LG텔레콤의 올해 목표는 가입자 수를 500만명까지 늘리는 것이다. 시장점유율이 떨어지더라도 가입자 수가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 생존기반은 확보된다는 전략적 판단에서다. 이상민 홍보실장은 “투자효율성은 우리가 다른 업체보다 높다”며 “가입자가 500만명만 되면 SK텔레콤의 1600만명, KTF의 1천만명에서 얻는 것과 비슷한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가입자 수를 과연 어떻게 늘리느냐 하는 것이다. 올해 500만명 가입자 달성이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7월부터 연말까지 매월 12만명씩 가입자를 늘려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계열사 사원판촉을 시작한 지난 6월에도 3만7천명가량 가입자를 늘리는 데 그쳤다.

LG텔레콤은 획기적인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한다. 회사 관계자는 “올 들어 통화품질 개선 등 이미 기반은 충분히 닦았다”며 “8월부터는 서비스를 많이 이용하는 사람에게 이용료를 대폭 할인해주는 등 파격적인 요금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LG텔레콤은 이 요금체계가 신규고객 확보뿐 아니라, 다른 업체를 이용하는 고객들까지 일부 뺏어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아 그 효과를 짐작하기는 어렵지만, 사업 포기설에 휘말리기까지 한 LG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승부수를 던지려는 것만은 분명해보인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