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생산 맥주의 정형화된 맛을 거부하고 직접 만든 맥주 판매하는 소규모 맥주 제조장
국내에 시판되는 맥주는 몇 가지나 될까? 30가지? 아니면 50가지?
맥주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리 이름을 머릿속에 떠올려봐도 10개 이상 기억해내기가 쉽지 않다. 기껏해야 하이트·라거·카스·카프리·엑스필 등 국산 맥주 6∼7가지다. 여기에 밀러·하이네켄·삿뽀로 등 외국 제품 3∼4가지를 더 떠올린다면 보통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실제는 어떨까? 국내에 나와 있는 맥주는 수입맥주를 포함할 경우 브랜드만 따져도 100가지를 훨씬 넘는다. 하나의 브랜드마다 10개 안팎의 품목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맥주 종류는 수백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진짜 독일 맥주의 맛
그러나 이러한 수백 가지의 맥주도 진정한 맥주의 맛을 모두 보여주지는 못한다. 이들은 대부분 대량생산을 위해 맛을 정형화시킨 열처리 맥주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발효가 진행되지 못하도록 열처리로 효모를 없앤 상태이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종류의 맥주를 마셔도 본래의 맥주 맛을 제대로 느끼기는 힘들다. 이러한 병맥주에 반기를 들고 나선 사람들이 있다. “맥주의 참맛을 보여주겠다”는 취지 아래 소규모 맥주 제조설비를 갖춰놓고 현장에서 직접 만든 맥주를 판매하는 소규모 맥주 제조장(마이크로 브루어리)이 잇따라 선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컨벤션센터 1층에 문을 연 조선호텔 직영 ‘오킴스 브로이하우스’는 그러한 소규모 맥주제조장 1호다. 기존의 패스트푸드점을 개조한 오킴스 브로이하우스는 홀 가운데 큼지막한 맥주 제조설비를 갖춰놓고 여기서 직접 맥주를 만들어 판매한다. 현재 판매하는 맥주는 과일 맛이 나는 짙은 호박색의 남부독일 맥주 해비와이젠과 호프향이 강한 독일의 정통 라거맥주 헬레스다. 앞으로 8월 말까지 흑맥주의 일종인 둥클레스와 뮌헨 맥주축제 때 사용되는 옥토버페스트 2가지를 추가할 예정이다. 현재 독일 전문가가 3개월 예정으로 입국해 한국인에게 기술을 전수 중이다. 오킴스 브로이하우스는 7월1일 문을 열었지만 월드컵의 열기 때문에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점을 감안해 12일 독일 대사와 유명 연예인들을 초청해 대규모로 개점행사를 열 계획이다. 오킴스 브로이하우스의 최동칠 지배인은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도 저녁 8시면 좌석이 꽉 들어찬다. 주로 30대 직장인들이 이곳에서 직접 생산한 맥주를 찾는다”고 말했다. 오킴스 브로이하우스가 개점행사를 열 7월12일에 서울 강남역 부근에서는 또 하나의 마이크로 브루어리인 옥토버훼스트(www.oktoberfest.co.kr)가 문을 연다. 전직 언론인인 백경학 사장과 독일 뮌헨공대에서 양조공학을 전공한 방호권씨가 손을 잡고 문을 여는 마이크로 브루어리다. 오킴스보다 규모는 작지만 주방에서 직접 만든 소시지를 안주로 내놓는 등 정통 독일 맥줏집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리려고 하고 있다. 일단 독일의 일반적인 맥주인 필스너와 막걸리처럼 뿌연 색깔이 나는 바이스, 흑맥주인 둥클레스 3가지를 생산할 예정이다. 그러나 1가지 맥주의 제조가 완료되면 다른 맥주를 제조하는 방식으로 모두 10가지 맥주를 돌아가면서 생산할 계획이다. 코엑스의 오킴스 브로이하우스가 하이트와 OB의 기존 생맥주를 같이 판매하는 데 반해 옥토버훼스트는 자가제조 맥주만을 판매한다. 요리도 독일식 맥주에 맞는 메뉴로 준비하는 등 정통 독일식 맥줏집 형태를 지향하고 있어 맥주 애호가나 마니아들에게 더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백경학 사장은 “맥주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손님들이 맥주 제조과정에 참여하는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이들뿐 아니다. 광주 용봉동의 ‘코리아브루하우스’와 경남 양산 통도사 인근의 ‘늘함께’, 대구 두산동의 아리아나호텔 등이 이미 면허승인을 받았으며, 7월 말까지 자가제조 맥주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 밖에 아직 허가를 받지 못한 4개 업체가 소규모 맥주 제조 면허를 신청해놓은 상태다. 이에 따라 늦어도 연말까지는 적어도 9개의 자가제조 맥줏집들이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마이크로 브루어리가 쏟아져나오는 것은 주세법 시행령 개정으로 지난 2월부터 소규모 맥주제조가 허용됐기 때문이다. 소규모 맥주제조를 허용해달라는 주한 유럽상공회의소 쪽의 요구와 함께 정부의 규제개혁 차원에서 시설기준을 크게 낮춤으로써 제조가 가능해진 것이다. 효모와 미생물이 살아 숨쉰다
마이크로 브루어리 맥주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 병맥주에서 찾을 수 없는 독특하고 다양한 맛이다. 일단 병맥주의 획일화된 맛을 강요받아온 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마이크로 브루어리의 역할은 맥주 맛의 다양성을 충족시키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다양성으로만 따지면 이미 수백 가지의 수입맥주가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 브루어리의 강점은 국산 및 수입 병맥주가 흉내낼 수 없는 생맥주만의 깊고 진한 맛이다. 효모와 미생물이 살아 있는 맥주이기 때문이다. 간이맥주 제조장비를 수입 판매하는 미스터비어의 김지훈씨는 “병맥주는 열처리를 통해 효모를 모두 없앤 것이며, 기존의 생맥주는 열처리를 하지는 않지만 여과작용을 통해 효모를 모두 걸러낸다. 효모가 살아 있는 마이크로 브루어리의 생맥주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효모가 살아 있는 만큼 마이크로 브루어리 맥주는 신선함을 필수적인 요건이다. 효모는 너무나 민감해 조금만 온도가 변하거나 불순물이 들어가도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운송과정에서 물리적 충격이 가해지기만 해도 맛이 변한다. 따라서 마이크로 브루어리는 숙성된 맥주를 -1도의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저장고에 넣어 보관한다. 마이크로 브루어리의 맥주는 종류에 따라 맛이 다르지만 대개 병맥주보다 부드럽고 진한 맛이 난다. 그리고 거품의 기포가 미세한 것이 특징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브루어리 마스터라고 하는 제조 책임자의 솜씨다. 소규모 제조장인 만큼 이들의 능력과 취향에 따라 맥주의 품질이 달라지게 된다.
수입맥주 대체하는 효과 기대
소규모 제조장의 허용으로 맥주시장에는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러나 맥주 소비자들의 취향은 이미 몇해 전부터 상당한 변화를 보여왔다. 99년부터 급증하기 시작한 수입맥주 소비가 이를 잘 말해준다. 98년 84만달러이던 수입액은 99년 194만달러, 2000년 502만달러, 2001년 1186만달러 등으로 연간 130∼160%씩 성장해왔다. 위스키가 연간 5∼55% 성장해온 데 비해 3배 이상의 높은 신장률을 보여온 것이다. 맥주 수입의 증가는 획일화된 국산 맥주의 맛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취향을 그대로 보여준다. 국세청이 소규모 맥주 제조를 허용한 것에는 근본적으로 최근 몇해 동안 수입맥주 소비가 급증하는 등 소비자들의 기호가 급격히 다양화되었다는 점이 주요 배경으로 작용했다. 이런 이유로 국세청은 소규모 제조 맥주가 하이트나 라거 등 기존 대규모 맥주보다는 수입맥주를 대체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수입맥주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은 미국의 밀러, 네덜란드의 하이네켄, 멕시코의 코로나, 일본의 삿뽀로 등의 순이다. 이 밖에 독일 바슈타이너가 올 들어 잘 나가고 있으며, 월드컵을 전후해 네덜란드산 그롤쉬와 암스텔을 찾는 사람도 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종류가 많아지는 추세다. 다만 우리가 흔히 접하는 버드와이저와 칼스버그 등은 수입맥주가 아니다. 국내 회사가 외국사와 제휴해 생산하는 맥주다. 카프리·제누스·레드락·저스트라이트·엑스필·스타우트도 국내 생산 맥주다.
수입맥주를 찾는 사람이 늘면서 전문점들도 늘고 있다. 땃따붓따, 와바, 밀러타임 등 수입맥주 전문 체인점들이 그것이다. 이들 외에도 서울 압구정동, 신촌 등을 중심으로 70∼80가지의 다양한 수입맥주를 판매하는 전문점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신촌 텍사스와 압구정동 비라머피스가 대표적인 경우다. 이들은 수십 가지의 수입맥주를 판매하기 때문에 얼음에 맥주를 채워놓고 손님들이 직접 골라먹을 수 있도록 하는 아이스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취향에 따라 골라먹는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한 배려다.
맥주 수입업체 팀코주판의 박기태씨는 수입맥주 소비 증가에 대해 “새로운 분위기를 즐기려는 소비자들의 다양한 욕구 때문이다. 색다른 맛뿐 아니라 독특한 병 모양과 색깔도 수입맥주 소비가 늘고 있는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기존 맥주의 획일화된 맛과 디자인을 거부하는 젊은층의 반란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들도 같은 견해를 내놓는다. 맥주를 제대로 마시려면 시각과 촉각, 후각을 동원해야 하며, 또 어떤 잔으로 마시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다는 것이 이들의 충고다. 예를 들면 향이 좋은 맥주를 마실 때는 향을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입구가 넓은 잔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생맥주를 판매하는 마이크로 브루어리들은 특히 이 점을 중시한다. 옥토버훼스트의 경우는 맥주 종류에 따라 다른 잔을 사용할 수 있도록 최대한 다양한 형태의 잔을 준비해놓았다. 따라서 마이크로 브루어리의 등장은 보통 맥주컵에 마시는 것을 즐기는 기성세대, 병째 들고 마시는 데 익숙해져 있는 젊은 수입맥주 소비층의 문화와는 또 다른 새로운 맥주문화를 만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운 브랜드 ‘00집 맥주’
최근 소비가 크게 증가하였음에도 아직 수입맥주 시장은 연간 3조원이 넘는 전체 맥주시장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소비도 특정 지역과 계층에 집중돼 있다. 소규모 맥주 제조장은 이제 첫걸음을 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당분간은 호기심에 찾는 사람들과 소수 맥주 애호가들이 손님의 주류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사업의 형태도 아직은 하나의 고급 맥줏집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갖고 있다. ㅇㅇ집 맥주라고 하는 새로운 브랜드를 창출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옥토버훼스트의 백경학 사장은 “앞으로 당분간 소규모 맥주 제조장은 계속 생겨날 전망이다. 이 가운데 몇몇 제품은 독자적인 명성을 갖는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 정남기 기자 jnamki@hani.co.kr
사진 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사진/ 오킴스 브로이하우스의 맥주잔. 맥주는 어떤 잔으로 마시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다.
그러나 이러한 수백 가지의 맥주도 진정한 맥주의 맛을 모두 보여주지는 못한다. 이들은 대부분 대량생산을 위해 맛을 정형화시킨 열처리 맥주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발효가 진행되지 못하도록 열처리로 효모를 없앤 상태이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종류의 맥주를 마셔도 본래의 맥주 맛을 제대로 느끼기는 힘들다. 이러한 병맥주에 반기를 들고 나선 사람들이 있다. “맥주의 참맛을 보여주겠다”는 취지 아래 소규모 맥주 제조설비를 갖춰놓고 현장에서 직접 만든 맥주를 판매하는 소규모 맥주 제조장(마이크로 브루어리)이 잇따라 선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컨벤션센터 1층에 문을 연 조선호텔 직영 ‘오킴스 브로이하우스’는 그러한 소규모 맥주제조장 1호다. 기존의 패스트푸드점을 개조한 오킴스 브로이하우스는 홀 가운데 큼지막한 맥주 제조설비를 갖춰놓고 여기서 직접 맥주를 만들어 판매한다. 현재 판매하는 맥주는 과일 맛이 나는 짙은 호박색의 남부독일 맥주 해비와이젠과 호프향이 강한 독일의 정통 라거맥주 헬레스다. 앞으로 8월 말까지 흑맥주의 일종인 둥클레스와 뮌헨 맥주축제 때 사용되는 옥토버페스트 2가지를 추가할 예정이다. 현재 독일 전문가가 3개월 예정으로 입국해 한국인에게 기술을 전수 중이다. 오킴스 브로이하우스는 7월1일 문을 열었지만 월드컵의 열기 때문에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점을 감안해 12일 독일 대사와 유명 연예인들을 초청해 대규모로 개점행사를 열 계획이다. 오킴스 브로이하우스의 최동칠 지배인은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도 저녁 8시면 좌석이 꽉 들어찬다. 주로 30대 직장인들이 이곳에서 직접 생산한 맥주를 찾는다”고 말했다. 오킴스 브로이하우스가 개점행사를 열 7월12일에 서울 강남역 부근에서는 또 하나의 마이크로 브루어리인 옥토버훼스트(www.oktoberfest.co.kr)가 문을 연다. 전직 언론인인 백경학 사장과 독일 뮌헨공대에서 양조공학을 전공한 방호권씨가 손을 잡고 문을 여는 마이크로 브루어리다. 오킴스보다 규모는 작지만 주방에서 직접 만든 소시지를 안주로 내놓는 등 정통 독일 맥줏집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리려고 하고 있다. 일단 독일의 일반적인 맥주인 필스너와 막걸리처럼 뿌연 색깔이 나는 바이스, 흑맥주인 둥클레스 3가지를 생산할 예정이다. 그러나 1가지 맥주의 제조가 완료되면 다른 맥주를 제조하는 방식으로 모두 10가지 맥주를 돌아가면서 생산할 계획이다. 코엑스의 오킴스 브로이하우스가 하이트와 OB의 기존 생맥주를 같이 판매하는 데 반해 옥토버훼스트는 자가제조 맥주만을 판매한다. 요리도 독일식 맥주에 맞는 메뉴로 준비하는 등 정통 독일식 맥줏집 형태를 지향하고 있어 맥주 애호가나 마니아들에게 더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백경학 사장은 “맥주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손님들이 맥주 제조과정에 참여하는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이들뿐 아니다. 광주 용봉동의 ‘코리아브루하우스’와 경남 양산 통도사 인근의 ‘늘함께’, 대구 두산동의 아리아나호텔 등이 이미 면허승인을 받았으며, 7월 말까지 자가제조 맥주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 밖에 아직 허가를 받지 못한 4개 업체가 소규모 맥주 제조 면허를 신청해놓은 상태다. 이에 따라 늦어도 연말까지는 적어도 9개의 자가제조 맥줏집들이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마이크로 브루어리가 쏟아져나오는 것은 주세법 시행령 개정으로 지난 2월부터 소규모 맥주제조가 허용됐기 때문이다. 소규모 맥주제조를 허용해달라는 주한 유럽상공회의소 쪽의 요구와 함께 정부의 규제개혁 차원에서 시설기준을 크게 낮춤으로써 제조가 가능해진 것이다. 효모와 미생물이 살아 숨쉰다

사진/ 옥토버훼스트 매장 전경. 주방에서 직접 만든 소시지를 안주로 내놓는 등 정통 독일 맥줏집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리려고 하고 있다.

사진/ 옥토버훼스트의 맥주 탱크. 자기제조 맥주는 기온 변화나 충격에 민감하기 때문에 -1℃ 상태에서 저장고에 보관해야 한다.

사진 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