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하락의 여파>
회계조작·경상수지 적자로 하락세 지속…최악의 경우 세계 금융시장 요동칠 수도
세계 경제인의 이목이 미국 ‘달러’에 쏠리고 있다. 하락세로 접어든 달러가치는 과연 어디까지 떨어질 것인가? 그 영향은 미국 경제, 그리고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모든 정보가 시장에 즉각, 그리고 충분하게 반영된다는 이른바 ‘효율적 시장 가설’에 따르면, 달러가치가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까지의 악재는 지금의 달러가치를 결정하는 데 모두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호재·악재가 나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의 심리는 흐름에 더 민감하다. 최근의 추세가 하락세였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추가하락’이라는 경고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외국인 주식투자 크게 줄어 올해 상반기 달러의 움직임은 최근 7년간의 흐름을 정반대로 뒤집어놓았다. 그동안 강세를 유지해온 달러가치는 올 들어 다른 주요 통화보다 10%가량 떨어졌다. 1달러는 연초 131.66엔에서 지난 6월29일 119.59엔으로 떨어졌다. 유로화에 비하면, 1유로에 88.95센트에서 99.14센트로 가치가 떨어졌다. 하지만 지금의 분위기로는 달러가치의 하락세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데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달러의 지속적인 하락을 경고하기도 한다. 국제금융시장의 큰손인 조지 소로스는 지난 6월28일 한 강연에서 “달러가치의 하락세는 앞으로 수년간 지속될 것이다. 몇년 안에 달러가치가 현재의 3분의 1 수준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소로스가 달러가치에 대해 ‘악담’에 가까운 발언을 한 것은 부시 정부가 기업들의 회계조작 사건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데 대한 경고의 뜻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그는 “기업들의 회계조작으로 해외 투자자들의 미국 시장 이탈이 가속화되었지만 부시 정부가 이에 무관심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소로스처럼 비관적이지는 않더라도 달러가 여전히 고평가돼 있다고 보는 사람들은 많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강문성 미주팀장은 “개인적으로는 펀더멘털로 볼 때 1달러에 0.95유로 정도가 적정수준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6월 말 현재 달러가치는 그동안 하락세가 이어졌음에도 여전히 1달러가 1유로보다 비싸다. 아직 고평가 상태라는 것이다.
올 들어 달러가치가 떨어진 것은 미국 경제가 나빠지기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의 개인소비 지출이나 산업생산 등 실물부분은 회복속도가 기대보다 더디기는 하지만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1분기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6.1%였으며, 2분기에도 2∼3%의 성장은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럼에도 달러가치가 계속 떨어지는 것은 ‘엔론’(Enron)의 파산사태 이후 불거진 미국 기업들의 회계처리에 대한 강한 불신 때문이다. 엔론에 이어 최근에는 ‘월드컴’ (WorldCom Inc.)이 대규모 부실을 숨긴 것으로 밝혀졌고, ‘제록스’(Xerox Corporation)의 부실회계도 추가로 발견됐다. 투명성 면에서는 완벽한 것처럼 보이던 미국 기업들에서 잇따라 부실회계가 드러난 것은 투자자들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투자자들은 언제 또 어느 기업에서 부실회계가 불거질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뉴욕타임스>(6월27일치)는 “오늘날 질타를 받는 것은 미국 자체와 기업경영의 복음이라고 자랑하던 미국식 모델이다. 기업회계에서의 투명성을 자랑해온 미국이 도덕적 암에 걸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미국 증시로 해외자금 유입이 올 들어 크게 줄어든 것을 보면 이런 비유는 그렇게 지나친 것은 아니다. 외국인들의 미국 주식투자는 지난해 4분기 337억달러에서 지난 1분기 176억달러로 줄었다. 하지만 부실회계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릴 것이기 때문에 사태가 금세 가라앉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선순환이 악순환으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확대도 달러가치를 떨어뜨리는 데 한몫하고 있다. 지난 1분기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1125억달러(확정 국내총생산 대비 4.1%)로 지난해 4분기부터 다시 증가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미국은 4500억달러에 이르는 경상수지 적자를 보게 된다. 달러가치를 현재 상태로 유지하려 해도 하루에 12억달러가 해외에서 유입돼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경상수지 적자 확대추세는 미국 경제에 대한 해외투자자들의 신뢰를 손상시켜 투자자금 유입을 오히려 가로막고 있다. 가장 안전하고 수익성이 괜찮은 것으로 평가받는 미국 재무성 채권에 대한 해외의 투자는 지난해 4분기 380억달러에 이르렀으나, 올 1분기에는 30억달러 환매로 돌아섰다.
관심의 초점은 달러약세가 그동안 ‘강한 달러’에 바탕을 둔 미국 경제의 번영을 어느 쪽으로 바꿔놓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미국은 저축률(2001년 1.6%)이 매우 낮기 때문에 외국자본의 유입이 기업들의 자금조달에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한다. 지난 95년 이른바 ‘역플라자합의’ 이후 가속화된 달러강세는 미국 경제의 선순환에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해왔다. 달러가치는 95년 7월부터 지난 2월까지 50% 이상 올랐다. 외국인들은 달러 강세 속에 미국의 투자수익률이 가장 높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미국 시장으로 자금을 대거 투입했다. 지난해에 미국으로 유입된 외국계 자금은 4550억달러(약 550조원)에 이른다. 미국 기업들은 이를 설비투자에 활용하면서 높은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강한 달러는 미국으로 수입되는 물품에 대한 가격을 낮춰 미국 경제는 인플레이션을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그런 가운데 미국 기업들은 수익성이 개선됐고, 주가는 올랐으며, 미국은 높은 경제성장률이 이어지는 유례없는 장기호황을 구가했다.
그러나 다시 약세로 돌아선 달러가 미국 경제의 이런 선순환을 악순환으로 바꿔놓을 것인지가 논란의 초점이 된다. 전문가들은 달러의 약세가 앞으로 완만하게 진행되는 것을 기대 가능한 최상의 시나리오로 꼽는다.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이미 2년 전 “달러가치 하락은 어쩔 수 없다. 시간을 두고 순차적으로 이뤄지기만 한다면 큰 탈은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미국의 제조업체들은 달러약세를 반긴다. 달러의 완만한 약세는 해외에서 가격경쟁력을 회복시켜주기 때문이다. 달러가 충분히 하락해 기업들이 수익성을 되찾으면 경기와 증시 모두 체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게 제조업체들의 주장이다. 강한 달러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너무 느긋한 미국정부 대응
하지만 강한 달러가 무너지는 데 대한 우려 또한 적지 않다. 달러가치 하락과 이에 필연적으로 동반하게 될 주가하락이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는 미국의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달러약세는 무엇보다 자산가치 하락과 함께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6월29일 발표한 ‘최근 미국 경제의 불안요인 점검 및 전망’이란 보고서에서 “미국으로의 자본유입이 줄어 자산가격이 떨어지면 ‘부의 효과’(자산가격이 오르면 이를 바탕으로 소비가 늘어 경기가 더 활성화되는 효과)가 감소해 소비지출이 둔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식시장의 불안이 계속될 경우 설령 기업의 수익이 늘더라도 기업들이 투자지출을 늦출 가능성도 많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런 악순환이 미국에서 급격한 자본이탈을 낳아 세계 금융시장을 요동치게 하는 경우다. 그렇게 되면 회복세에 들어선 세계 경제는 급격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런 상황이 현실화할 경우 미국 정부를 비롯한 각국 정부가 손놓고 구경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대응은 너무 느긋하게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6월26일치 기사에서 “(미국의) 정책담당자들이 현재의 달러가치 하락세를 득이 된다고 보는 것은 명백한 문제가 나타날 때까지 행동에 나서지 않고 기다릴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문제가 드러나는 시점에서는 너무 늦어 속수무책이 될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금은 예전보다 국제금융시장에 풀린 돈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 선진국 간 협조를 통한 달러가치 안정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전 일본 대장성 차관 사카키바라(게이오대 교수)는 지난 6월28일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의 경제상황은 지난 98년 러시아 경제 위기 직후의 혼란기와 비슷하다. 앞으로 2∼3개월이 고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카키바라의 말은 미국 경제만큼이나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일본 경제계의 질투에서 비롯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외국인 주식투자 크게 줄어 올해 상반기 달러의 움직임은 최근 7년간의 흐름을 정반대로 뒤집어놓았다. 그동안 강세를 유지해온 달러가치는 올 들어 다른 주요 통화보다 10%가량 떨어졌다. 1달러는 연초 131.66엔에서 지난 6월29일 119.59엔으로 떨어졌다. 유로화에 비하면, 1유로에 88.95센트에서 99.14센트로 가치가 떨어졌다. 하지만 지금의 분위기로는 달러가치의 하락세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데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달러의 지속적인 하락을 경고하기도 한다. 국제금융시장의 큰손인 조지 소로스는 지난 6월28일 한 강연에서 “달러가치의 하락세는 앞으로 수년간 지속될 것이다. 몇년 안에 달러가치가 현재의 3분의 1 수준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소로스가 달러가치에 대해 ‘악담’에 가까운 발언을 한 것은 부시 정부가 기업들의 회계조작 사건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데 대한 경고의 뜻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그는 “기업들의 회계조작으로 해외 투자자들의 미국 시장 이탈이 가속화되었지만 부시 정부가 이에 무관심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소로스처럼 비관적이지는 않더라도 달러가 여전히 고평가돼 있다고 보는 사람들은 많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강문성 미주팀장은 “개인적으로는 펀더멘털로 볼 때 1달러에 0.95유로 정도가 적정수준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6월 말 현재 달러가치는 그동안 하락세가 이어졌음에도 여전히 1달러가 1유로보다 비싸다. 아직 고평가 상태라는 것이다.

사진/ 엔론에 이어 회계조작을 통해 대규모 부실을 숨긴 월드컴. 달러가치 하락의 일등공신이다. (AP 연합)

사진/ 미국 증시로의 해외자금 유입은 올해 들어 크게 줄어들었다. 달러가치와 주가하락은 미국의 실물경제에 충격을 줄 수도 있다. (AP 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