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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월드컵 센터링, 한국경제 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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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7-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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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4강 이후 치솟는 국가 브랜드 가치…기업들 공격적인 해외마케팅 추진

사진/ 현대자동차의 월드컵 마케팅 중 하나인 굿윌볼로드쇼. 국가별로 승리기원 대형 축구공을 선사했다. (김종수 기자)
“월드컵 4강을 세계경제 4강으로.” “이제는 경제 월드컵이다.” 들뜬 축제를 즐기기에는 여름밤이 너무 짧았던 월드컵, 그 뒤는 경제와 수출에 맞춰지고 있다. 이른바 ‘포스트 월드컵’이다. 월드컵과 한국 수출경제? 아무리 FIFA 월드컵이 스포츠와 비즈니스의 상업적 결합이라지만 “스포츠는 그저 스포츠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조용한 아침의 나라’였던 한국이 에너지가 폭발하는 역동적인 국가로 탈바꿈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다이내믹 코리아를 바탕으로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가 날개를 달았다. 월드컵의 가장 큰 실익이다. 독일의 <체데에프 호이테>는 “한국, 경제 월드컵의 물결을 타다”라는 제목을 달아 축구 바깥의 한국경제에 주목했다. 또 다른 독일의 <한델스블라트>도 “한국, 축구에서만 컴백을 축하할 일이 아니다”라는 제목 아래 외환위기 이후 한국이 “잿더미에서 다시 살아나는 불사조처럼 다시 일어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극복한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해외무역관을 타고 전해지는 소식들도 “한국과 한국 상품에 대한 이미지가 뚜렷이 뜨고 있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몸으로 생생하게 느낄 수도 있다. KOTRA 뮌헨무역관은 “한국에 대한 관심을 도처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병원에 가도 전철을 타도 ‘혹시 한국에서 왔느냐’는 물음을 먼저 듣는다. 전에 경험할 수 없었던 놀라운 현상이다”고 전해왔다. “무역관 근처 베트남 기업인들이 월드컵 4강 축하 꽃을 속속 보내오고 있다.”(호치민무역관) “한국은 분단국, 노사분규가 심한 국가로 생각했는데, 월드컵에서 보여준 정보기술(IT) 강국의 모습과 브라질 현지방송을 탄 한국 기업들의 월드컵 광고로 한국 기업에 대한 이미지가 크게 좋아지고 있다.”(마르코스·상파울로무역관 현지직원) 삼성전자 독일 프랑크푸르트지사의 유재순 차장은 “4강 진출 이후 바이어들로부터 축하인사를 많이 받고 있다”며 “비싼 TV 광고보다 더 나은 광고 효과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뮌헨무역관에 따르면, 뮌헨의 eQuent3000사 토마스 카이저 사장은 “한국에 대한 인상이 아주 좋아졌다”며 “한국과 거래를 한번 해보고 싶다”고 희망했다.

경제 월드컵은 ‘월드컵 4강’으로부터 절묘한 패스를 이어받은 즉, 수직 상승한 ‘코리아 브랜드 파워’가 센터링하고, 이 공을 한국 수출기업들이 ‘세계 경제 4강’으로 멋지게 골인시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물론 아무리 센터링이 좋더라도 가볍게 골을 넣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수출기업들의 골 결정력은 이제부터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사실 국가 브랜드 가치는 수출 경쟁력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베트남 방송에서는 8강 진출국부터 경기 도중 그 나라에 대한 홍보 프로그램을 3∼4분씩 따로 내보기도 했다. 국가 브랜드 상승은 기업 브랜드 가치를 동반상승시키고, 이를 통해 같은 품질인데도 일본 제품에 비해 가격이 10∼50%까지 내려가는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극복할 수 있다. KOTRA 해외조사팀 민경선 팀장은 “우리 기업이 품질 좋은 상품을 만들어도 국가 이미지 탓에 그동안 10% 이상 제 값을 못 받아왔다”며 “월드컵을 계기로 각국의 한국 상품의 인지도 변화를 종합적으로 체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산업자원부는 외환위기 이후 국가 이미지 추락으로 해외 바이어들이 후려쳤던 수출상품값을 10% 더 받는 전략수립에 들어갔다.

전 세계가 ‘동방의 작은 나라’였던 한국축구에 매혹됐고 눈을 씻고 한국을 다시 보고 있지만, 이것이 곧 해외 소비자들의 한국 제품 구매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돌풍을 일으킨 터키·세네갈 제품이 세계 상품시장에서 갑자기 돌풍을 일으킬 리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실 브라질 하면 축구밖에 생각나지 않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처럼 세계 무대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국가라면 ‘축구 강국’ 신화가 고리역할을 할 수 있다. LG경제연구원 오문석 상무는 “국가 브랜드와 기업 이미지는 선순환을 이루며 동시에 이뤄진다”며 “기업의 일등제품이 국가 브랜드를 개선시키기도 하고, 거꾸로 국가 브랜드 개선이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꾸기도 한다”고 말했다.

120억 달러의 홍보효과

사진/ 프랑스에서 호평받고 있는 삼성 휴대폰(왼쪽), 현대자동차의 월드컵 광고(오른쪽)
해외에서 우리 기업의 브랜드 인지도 상승은 수치로 확인되고 있다. 현대자동차재팬이 한국의 월드컵 16강 진출이 확정된 뒤인 지난달 15일, 일본인 2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현대자동차 브랜드 인지도는 67%를 웃돌았다. 올 초의 32%에서 크게 뛴 것이다. 현대자동차재팬 최병하 부장(판매기획실)은 “일본인들이 현대는 알지만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란 사실은 잘 몰랐다”며 “월드컵 경기마다 내보낸 광고 효과를 톡톡히 본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는 월드컵 기간 중 140여개 국가에서 TV 광고방송을 내보냈다. 특히 경기장에 내건 광고펜스가 90분 한 경기당 12분가량 방송에 노출된데다 외국 언론에서 현대자동차에 대한 보도가 크게 늘어 50억달러가량의 마케팅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했다. 현대자동차 조례수 차장(수출과)은 “각국에 나가 있는 190여개 현대자동차 대리점에서 타전되는 소식들을 종합하면 ‘현대자동차가 더 이상 낯선 브랜드가 아니다’는 말로 집약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LG브랜드 상품으로 일본시장에서 1억5천만달러의 매출을 올렸던 LG전자도 월드컵을 활용해 일본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넓혀나갈 작정이다. LG전자재팬 경영지원그룹 서동희 부장은 “일본 소비자들이 자국 전자제품을 신봉하긴 하지만 급성장한 한국축구 수준이 일본인들한테 강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며 “한국 제품을 2류로 봐왔던 일본인들의 고정관념이 깨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개별 기업을 넘어 한국 기업들 전체의 브랜드 인지도는 얼마나 높아졌을까. 현대경제연구원 박태일 연구원은 “큰 이벤트를 열면 기업 인지도가 3%가량 높아지고, 해외 마케팅에서 인지도를 1% 올리는 데 약 1억달러가 드는 것을 감안할 때 월드컵으로 120억달러(약 14조7천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냈다”고 추정했다. 월드컵 4강 진출에 따라 월드컵 공식후원업체(8곳)의 브랜드 인지도는 3%, 수출을 위주로 뛰는 국내 100대 기업의 인지도는 1% 정도 상승했는데, 이는 120억달러를 광고비로 쏟아붓는 효과를 냈다는 얘기다. 이렇듯 높아진 브랜드 인지도를 바탕으로 기업들도 저마다 공격적인 해외 마케팅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독일의 휴대폰 전문잡지 <커넥트>가 최근호에서 삼성 휴대폰을 노키아, 모토롤라를 제치고 가장 우수한 제품으로 평가했다며 유럽·중남미를 중심으로 올해 3천만대의 휴대폰을 수출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오스트레일리아 방송채널의 월드컵 방송을 후원하고, 오스트레일리아 시내에 대규모 월드컵 중계 스크린을 설치해 마케팅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또 월드컵 기간에 초청한 해외 최고경영자(CEO) 900여명을 안정적인 거래선으로 만들어가기로 했다. 삼성전자 염철진 과장은 “월드컵 열기로 높아진 코리아 브랜드 이미지에다 삼성 휴대폰의 통화 품질을 접목해 독일에서 올해 150만대를 팔고, 영국에서 시장점유율 2위로 올라서겠다”고 말했다.

경계의 눈초리 무시 못해

사진/ 일본전자제품상가. (GAMMA)
아시아 통신시장 진출을 본격화하고 있는 KT는 월드컵에서 한국의 IT 수준이 주목받은 것을 교두보 삼아 아시아의 대표적인 정보통신업체로 발돋움한다는 구상이다. KT 관계자는 “월드컵 명승부로 평가되는 한국-이탈리아전 3번의 골장면이 KT가 설치한 펜스 광고판 앞에서 이뤄졌다”며 “이 장면이 외국 방송 전파를 타면서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월드컵 4강은 해외에서 싸구려 취급당했던 한국 제품의 이미지도 벗어던질 수 있는 기회다. LG전자는 해외에서 디지털TV 등 ‘고급’ LG 이미지를 전파하고 현지화 전략을 통해 시장을 공략하기로 했다. ‘붉은악마’를 후원해 기대 이상의 광고 효과를 거둔 SK텔레콤은 전략시장인 중국에서 SK에 대한 인지도가 상승함에 따라 한-중-일 축구리그 후원, 아시아의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벨트 형성을 적극 추진키로 했다. SK는 월드컵에서 IT 강국이 입증된 만큼 해외 마케팅에 한층 힘이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물론 온갖 월드컵 기대 효과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성급한 기대는 무리다. KOTRA 베이징무역관과 청뚜무역관은 “다른 나라와 달리 중국 언론은 누가 지시나 한 듯 악의적인 한국 비방기사로 월드컵을 도배하고 있다”며 “대륙의 변방이라고 여겨온 한국에 대한 질투심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이 너무 뜨는 데 대한 경계의 눈초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4강 신화’를 이룬 축구처럼, 한국상품이 끊임없이 성장하는 역동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전환점에 서 있는 건 분명하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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