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뒤흔들며 연말까지 지속 전망… 원유 소비국들 제3의 석유파동 악몽에 시달려 
   
 
 “분명히 ‘구경제’의 귀신이 무덤에서 손을 뻗치고 있다.” 
  뉴밀레니엄 첫해, 20세기의 상징물인 석유가 세계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현상을 두고 미국 경제주간 <비즈니스 위크>가 이렇게 표현했다. 
  고유가의 위세는 그만큼 당당하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증산합의에도, 또 미국의 전략비축유(SDR) 방출 ‘으름장’에도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1973년 중동전쟁과 1979년 이란혁명 전후 석유파동의 악몽을 되살리고 있다. 
  당장 폭우를 쏟아낼 듯한 유가급등의 먹구름에 각국은 이미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외환위기 성공탈출을 자축하려던 아시아는 경기가 급냉할까 전전긍긍하고 있고, 성난 소비자들의 항의시위에 밀린 유럽 각국의 정부는 유류세제 손질을 검토하면서 파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세계 최대 석유소비국 미국도 올 겨울 이상난온을 기원하고 있는 형편이다. 주요 기업들은 유가인상에 따른 비용상승압력을 주가 급락으로 체감하고 있다.    
 
 
 
6개월 내 40달러 넘어설 가능성도 단기 기상도는 그리 밝지 못하다. 미국 투자은행인 골드먼삭스는 앞으로 1년간 국제유가는 서부텍사스산 중질유(WTI) 기준으로 배럴당 32달러를 유지하고, 앞으로 6개월 내 배럴당 40달러 선을 넘어설 가능성도 50%라고 내다봤다. 가까운 미래, 최소한 연말까지는 고유가 행진이 지속될 것이라는 게 유가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전망이다. 물론 유가가 배럴당 30달러를 계속 넘더라도 세계경제성장률 위축 효과는 0.3∼0.5%포인트에 그칠 것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위안’도 있지만 세계경제에 주름살이 잡히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분석이 점차 설득력을 얻는 분위기다. 석유위기는 왜 닥쳤나. 올 초 유가가 배럴당 30달러 선을 넘었을 때만 해도 위기를 점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다수 예측기관도 상반기까지 올해 유가가 지난해보다 7∼8달러 높은 25∼26달러 선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유가는 OPEC의 3월과 6월 증산합의 직후 잠시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가 이내 상승곡선을 그렸다. 특히 9월10일의 증산합의 뒤에는 이런 조정국면도 생략한 채, 곧바로 상승해 버렸다. 15일에는 한때 36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유가급등의 원인으로는 수요만큼 공급이 충분치 않다는 점이 우선 꼽히고 있다. 지난해 상황은 수급불균형으로 설명될 수 있다. OPEC은 아시아 외환위기 뒤 수요 위축으로 유가가 급락하자 1998년 3월과 6월, 그리고 지난해 3월까지 3차례에 걸쳐 하루 생산량을 모두 430만배럴 감축했다. OPEC 비회원국이 여기에 가세하면서 지난해 초 10달러대로 떨어졌던 유가는 연말 20달러 선까지 회복됐다. OPEC의 감산합의가 착실히 지켜진 반면 세계경제 회복으로 수요가 늘면서 수급불균형으로 유가 강세는 올해로 이어졌다. 그러나 최근 상황에 대한 설명은 ‘수급론’으로는 부족하다. 미국 에너지정보국(EIA)이 OPEC의 3차 증산 결정 직전에 낸 자료에 따르면, 올해 세계 석유 공급은 하루 7650만배럴로 수요(7580만배럴)보다 많을 것으로 추산되었기 때문이다. 내년 역시 공급 7820만배럴, 수요 7780만배럴로 수급에는 문제가 없다는 전망이다. 사실 원유가격은 다른 상품처럼 기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지만 시장의 불안심리나 투기적인 요인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지난달 북해산 브렌트유가 이례적으로 급등한 것은 영국 BP아모코가 높은 가격으로 보유물량을 처분하기 위해 가격을 조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 게 단적인 예다. “시장은 실제 수요-공급과 일치하지 않는 수요를 만들어낸다. OPEC이 굴복하지 않는 한 가격은 내려가지 않는다. 하지만 시장이 원하는 만큼 증산이 이뤄질 경우 이는 필요 이상이 되고, 가격이 붕괴될 위험이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 에너지연구센터 로버트 마브로 연구원의 경고이다. 윌리엄 드 브로에의 애널리스트 피터 히친스 역시 “시장 수급에 따른 적정가는 27달러다. 현재 이를 넘어서는 5∼6달러는 투기적인 요인이다. 시장에 패닉이 형성되면 가격은 더 올라가게 된다”고 말했다. OPEC의 변덕에 투기세력의 불안 자극
 최근 석유위기를 몰고 온 이런 불안심리는 미국 원유재고가 24년래 최저수준으로 낮아졌고, 특히 난방유 재고가 부족한 데 자극을 받았다. OPEC이 대규모 증산에 나선다 해도 생산-수송-정제 과정을 거쳐 소비자들에게 도착하기까지는 30∼45일이 걸린다. 난방유만큼은 올 겨울철에 부족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가상승을 부추키고 있다는 얘기이다. 달라진 시장 구조도 영향을 끼쳤다. 지난 몇년간 정유업체의 합병 및 비용절감 노력으로 정제시설에 여유가 별로 없는 편이다. 예컨대 엑슨과 모빌이 합쳐진 엑슨-모빌은 올 상반기 유정개발 및 설비투자비를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이상 줄였다. 이에 따라 상위 10위 업체의 상반기 생산량은 0.4% 감소했다. 엄격한 재고관리로 재고수준도 10년 전보다 훨씬 낮아졌다. 과거 상당량의 원유를 비축하며 유가 급변동을 완충시켰던 정유사들의 역할이 거의 사라진 셈이다. 이는 석유시장이 특정 석유제품 부족에 상당한 취약성을 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잡을 수 없는 OPEC의 행동도 불안을 키우는 요인이다. OPEC은 지난 3월 각료회의에서 기준유가(바스켓)가 20일 이상 28달러를 넘을 경우 자동적으로 하루 50만배럴을 증산한다는 ‘신사협정’을 맺었다. OPEC 관리들의 공언과 달리 이 협정이 제때 지켜진 적은 한번도 없다. 또한 이번에 증산하기로 한 80만배럴도 비공식적인 생산량을 감안하면 실제 새로 시장에 나오는 물량은 30만배럴에 그칠 것으로 예상될 만큼 행보도 불투명하다. 마치 거짓말한 양치기 소년처럼 시장의 신뢰를 잃어버린 OPEC이 “유가를 25달러대로 안정시키겠다”는 약속을 납득시키지 못한 채 투기 심리를 조장한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석유시장의 투기세력도 배제할 수 없다. 정유업계의 큰손들은 유가에 적지 않은 영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트롤리엄 파이낸스의 바한 재노얀은 “OPEC이 충분한 규모의 증산을 결정하더라도 제때 시장에 공급하기 위해서는 또 한 차례 싸움을 벌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야 어떻든 고유가에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곳은 미국이나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를 비롯한 신흥공업국이다. 특히 원유가 전체 수입의 26%를 차지하는 한국은 타격이 더욱 심하다. ING베어링은 유가가 배럴당 50달러에 이르면 소비자물가가 평균 2.5%포인트 높아지게 됨을 전제하고,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현재의 연 2.9% 선에서 6.9%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추산했다. 미국과 영국은 엄살에도 불구하고 각각 세계 석유의 10.3%와 4%를 생산하는 산유국이다. 이들이 포함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원유소비량은 1973년 세계 61%에서 1996년 50% 밑으로 떨어졌다.  
   
  행운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신흥 공업국  
   
  한 가지 다행스런 것은 최근 유가급등이 1970년대 유가파동 때처럼 물가는 오르고 성장은 둔화하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골드먼삭스의 윌리엄 더들리는 오일쇼크 때보다 석유 소비가 감소했고, 에너지 효율성은 높아져 파장은 심각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중·장기적으로 유가가 17.50달러에 수렴될 것으로 예상했다. 영국의 경제 주간 <이코노미스트> 역시 올해 창설 40주년을 맞는 OPEC이 20년 전 인플레이션과 환율변동을 제외하고 유가를 고정시키는 ‘유가페그제’의 도입을 추진했으나 회원국간 자중지란으로 실패했다고 소개한 뒤, 내년 이후 유가는 OPEC에 끔직한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예언했다. 하지만 “올 겨울을 잘 넘기면…”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원유 소비국들은 당분간 ‘행운’을 기대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정희경/ 머니투데이 국제금융실 기자hellohk@moneytoday.co.kr 
  

(사진/석유파동이 세계를 뒤흔들면서 유럽 각국은 유류세 인하를 요구하는 운수노동자들의 결렬한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6개월 내 40달러 넘어설 가능성도 단기 기상도는 그리 밝지 못하다. 미국 투자은행인 골드먼삭스는 앞으로 1년간 국제유가는 서부텍사스산 중질유(WTI) 기준으로 배럴당 32달러를 유지하고, 앞으로 6개월 내 배럴당 40달러 선을 넘어설 가능성도 50%라고 내다봤다. 가까운 미래, 최소한 연말까지는 고유가 행진이 지속될 것이라는 게 유가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전망이다. 물론 유가가 배럴당 30달러를 계속 넘더라도 세계경제성장률 위축 효과는 0.3∼0.5%포인트에 그칠 것이라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위안’도 있지만 세계경제에 주름살이 잡히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분석이 점차 설득력을 얻는 분위기다. 석유위기는 왜 닥쳤나. 올 초 유가가 배럴당 30달러 선을 넘었을 때만 해도 위기를 점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다수 예측기관도 상반기까지 올해 유가가 지난해보다 7∼8달러 높은 25∼26달러 선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유가는 OPEC의 3월과 6월 증산합의 직후 잠시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가 이내 상승곡선을 그렸다. 특히 9월10일의 증산합의 뒤에는 이런 조정국면도 생략한 채, 곧바로 상승해 버렸다. 15일에는 한때 36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유가급등의 원인으로는 수요만큼 공급이 충분치 않다는 점이 우선 꼽히고 있다. 지난해 상황은 수급불균형으로 설명될 수 있다. OPEC은 아시아 외환위기 뒤 수요 위축으로 유가가 급락하자 1998년 3월과 6월, 그리고 지난해 3월까지 3차례에 걸쳐 하루 생산량을 모두 430만배럴 감축했다. OPEC 비회원국이 여기에 가세하면서 지난해 초 10달러대로 떨어졌던 유가는 연말 20달러 선까지 회복됐다. OPEC의 감산합의가 착실히 지켜진 반면 세계경제 회복으로 수요가 늘면서 수급불균형으로 유가 강세는 올해로 이어졌다. 그러나 최근 상황에 대한 설명은 ‘수급론’으로는 부족하다. 미국 에너지정보국(EIA)이 OPEC의 3차 증산 결정 직전에 낸 자료에 따르면, 올해 세계 석유 공급은 하루 7650만배럴로 수요(7580만배럴)보다 많을 것으로 추산되었기 때문이다. 내년 역시 공급 7820만배럴, 수요 7780만배럴로 수급에는 문제가 없다는 전망이다. 사실 원유가격은 다른 상품처럼 기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지만 시장의 불안심리나 투기적인 요인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지난달 북해산 브렌트유가 이례적으로 급등한 것은 영국 BP아모코가 높은 가격으로 보유물량을 처분하기 위해 가격을 조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 게 단적인 예다. “시장은 실제 수요-공급과 일치하지 않는 수요를 만들어낸다. OPEC이 굴복하지 않는 한 가격은 내려가지 않는다. 하지만 시장이 원하는 만큼 증산이 이뤄질 경우 이는 필요 이상이 되고, 가격이 붕괴될 위험이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 에너지연구센터 로버트 마브로 연구원의 경고이다. 윌리엄 드 브로에의 애널리스트 피터 히친스 역시 “시장 수급에 따른 적정가는 27달러다. 현재 이를 넘어서는 5∼6달러는 투기적인 요인이다. 시장에 패닉이 형성되면 가격은 더 올라가게 된다”고 말했다. OPEC의 변덕에 투기세력의 불안 자극

(사진/OPEC의 증산합의에도 국제유가는 고공비행을 거듭하고 있다.OPEC은 종잡을수 없는 행동으로 불안을 가중시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