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협상 무산 뒤 국제 반도체 가격도 급락…주식시장도 독자생존에 회의적 반응
하이닉스 반도체의 주가가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액면가 5천원인 하이닉스의 주가는 6월7일 종가 기준으로 390원이다. 2000년 반도체 경기가 좋을 때만 해도 2만원대를 넘던 주식이 2년 만에 500원짜리 동전보다 못한 수준까지 떨어진 것이다. 연초의 3천원대에 비교해도 하락률은 90% 가까이에 이른다. 관리종목 가운데서도 회생 가능성이 거의 희박한 기업의 주가 수준이다.
하이닉스 주가가 이처럼 추락한 것은 “독자생존이 과연 가능하겠느냐”는 우려가 커지기 때문이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에 메모리 부문을 매각하려던 계획이 무산된 뒤 하이닉스를 둘러싼 주변환경은 더욱 나빠졌다. 국제 반도체 가격이 급락한 것이다. 반도체 값이 충분히 올랐으니 헐값에 팔기보다는 독자생존을 시도해야 한다던 논리가 이사회에 의해 관철되긴 했지만, 주식시장의 반응은 독자생존론에 대해 회의적으로 바뀌고 있다.
지방선거 맞아 정치적 고려
채권금융기관들의 움직임도 최근의 주가급락을 부채질했다. 하이닉스 채권단은 지난 6월1일 3조원어치에 가까운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했다. 채권단 가운데는 신규지원에 나섰던 금융기관과 채무만 일부 면제하고 대신 신규지원은 하지 않은 금융기관이 섞여 있다. 신규자금을 지원하지 않았던, 따라서 전환주식을 언제든 시장에 팔 수 있는 금융기관은 국민·한미·서울·하나은행 등 7곳으로, 이들의 전환주식은 7억2천여만주나 된다. 이들은 전환사채가 주식으로 전환되자마자 손실을 감수하고 주식을 팔아치웠다. 서울은행은 6월5일 전환주식 1억주 중 3372만주를 처분했고, 국민은행도 7일 전환주식 2억4천만여주 중 절반인 1억2천만여주를 처분했다고 밝혔다. 매도물량이 대거 쏟아지면서 하이닉스 주가는 4일과 5일, 7일(6일은 현충일) 사흘 연속 하한가로 떨어졌다. 소액주주들은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채권단의 전환사채 주식전환을 막아달라고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지만 기각됐다. 그런 가운데 하이닉스 처리의 해법은 더욱 복잡하게 꼬여가고 있다. 현재 하이닉스의 최대주주는 채권단이다. 신규지원에 불참했던 금융기관들이 주식을 모두 팔아치운다고 해도 나머지 채권단 전체의 지분율은 66.7%다. 채권단은 도이체방크를 재정자문사로 선정해 지난 5월20일부터 하이닉스에 대한 실사를 벌이고 있다. 7월 중 실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처리방침을 마련할 예정이다. 채권단 가운데 채권이 적은 금융기관들은 “채권이 많은 은행들이 추가 출자를 해 하이닉스를 살려야 한다”는 쪽인 반면, 채권이 많은 은행들은 “살려야 실익이 없으니 팔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채권단의 대체적인 기류는 재매각 추진 쪽으로 기울어 있다. 그러나 정치권은 하이닉스의 처리를 정치적으로 다시 끌어가고 있다. 하이닉스 노조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독자생존을 지지하는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겠다”고 선언하자, 하이닉스 공장이 자리잡고 있는 경기도의 도지사 후보들은 독자생존을 지지한다는 식으로 들릴 수 있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정당 정책위원회 쪽도 마찬가지다.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는 신국환 산업자원부 장관과 전윤철 부총리와 전화통화를 한 뒤 “6개월 안에 매각은 없을 것이라는 답을 들었다”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루 거래량 몇억주
물론 독자생존이 절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가장 핵심적인 변수는 역시 D램 가격이다. 하이닉스 쪽이 마련한 독자생존 방안을 보면, D램가격을 올해 4.29달러, 내년 3.86달러로 잡고 있다. 이 정도 가격이 유지된다면 올해 1조850억원, 내년에 1조8360억원의 현금을 확보하게 돼 투자와 부채상환을 하면서도 독자생존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았다. 반도체 값이 올해 3.62달러, 내년 2.9달러 정도만 돼도 올해와 내년에 각 5천억원가량의 현금이 마련돼 2004년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으로 계산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과 올해 초까지 상승세를 보이던 반도체 가격은 지난 3월 이후 기대와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반도체 시장 조사기관인 디램 익스체인지의 통계를 보면, 128메가 SD램은 지난 3월 초 개당 4∼4.5달러에 거래됐다. 그러나 3월 초부터 서서히 하락하기 시작한 뒤 급락해 6월 초에는 2달러마저 위협하고 있다. 매각협상이 이뤄지고 있을 때에 비하면 반토막이 난 것이다. 1분기 반도체 가격 급등으로 흑자를 냈던 하이닉스의 실적도 2분기에는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이닉스의 주가 하락은 하이닉스 주주들에게 투자손실을 안겨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하이닉스는 증권거래소 시장에서도 골칫거리가 돼가고 있다. 증시 격언 중에 ‘주가는 거래량의 그림자’라는 게 있다. 거래량이 늘어나면서 주가가 오르고, 거래량이 떨어지면서 주가도 떨어진다는 원리를 담은 말이다. 하지만 이런 격언은 적어도 한국 증시에서는 통하기 어렵게 된 지 오래다. 물론 하이닉스 때문이다.
지난 6월7일 증권거래소 시장의 거래량은 8억3천여만주이다. 이날 하이닉스의 거래량은 5억3082만주나 됐다. 전체 거래량의 무려 66.3%를 하이닉스 한 종목이 차지했다. 거래량 1위 종목은 거의 날마다 하이닉스가 차지한다. 시장 전체의 거래량은 하이닉스가 얼마나 거래되느냐에 따라 크게 변하기 때문에 이를 감안하지 않은 거래량 지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애널리스트들은 시장 흐름을 제대로 보려면 하이닉스의 거래량을 뺀 거래량을 따로 산출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하이닉스의 주식시장 지표왜곡은 하이닉스의 기형적인 기업구조가 원인이다. 최근 채권단의 출자전환으로 하이닉스의 자본금은 5조원에서 무려 26조원으로 커졌다. 실제 출자전환한 채권은 2조9천억원에 불과했지만, 5천원짜리 주식을 액면가에 크게 미달하는 주당 708원에 넘겼기 때문에 발행 주식 수가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자본금이 커진 것이다. 총발행주식 수는 52억주나 된다. 하루 거래량이 몇억주에 이르는 것은 보통이다.
처리방향 다음정권까지 지연될 수도
증권거래소 관계자는 “하이닉스가 액면을 병합하거나 감자를 하지 않는다면 이런 시장지표 왜곡 현상은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액면 병합이란 액면가를 높이고, 대신 주식 수를 줄이는 것이다. 예를 들면 현재 액면가 5천원짜리 주식 10주를 액면가 5만원짜리 주식 1주로 바꾸는 것이다. 그러면 주가는 지금의 10배가 되고 발행주식 수는 10분의 1로 줄어든다. 하지만 자본금에 비해 시가총액이 매우 낮은 현실을 감안하면 주식을 무상 소각하는 감자를 하는 쪽이 더 현실적이다. 감자를 하면 주식 수는 줄어들지만 보유주식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감자가 기업의 가치를 변화시키지 않는데도 감자 뒤 주가가 떨어진 경우가 많아 소액주주들은 감자를 반기지 않고 있다.
하이닉스 채권단은 하이닉스 사업부문을 분할할 경우 신설법인의 주주구성 등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고 사업 분할 전에는 감자를 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감자 시기는 현재 진행 중인 실사 결과가 나온 뒤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이닉스의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의 이강원 행장은 6월7일 “실사 결과는 7월 중순에 나오게 될 것”이라며 “매각 등 처리방안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닉스는 오는 7월24일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감자를 비롯해 향후 하이닉스의 진로를 정할 방침이다.
그러나 실사 결과가 나온다고 해서 앞으로 처리방향이 쉽게 결정되리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반도체 업계는 올 하반기부터 메모리 반도체 값이 다시 오를 것이라고 전망한다. 디램 익스체인지는 “6월부터는 상승 국면에 돌입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 밖의 급등과 급락이 반복돼온 게 반도체 가격이다. 가격변동에 일희일비하면 처리방침이 춤출 수 있다. 소액주주와, 채권단, 노조 등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것도 하이닉스 처리가 1∼2달 사이에 마무리되기를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 지방선거는 끝나지만, 12월 대통령선거가 곧 예정돼 있어 하이닉스 처리에 너무 많은 사공이 다시 덤벼들 가능성이 많다. 우리 경제의 불충분한 구조조정의 상징이 된 하이닉스 문제가 다음 정권까지 넘겨질지도 모를 일이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사진/ 지난 4월 29일 열린 하이닉스 반도체 매각 관련 채권단 전체회의. 반도체 가격은 3월 초부터 하락하여 6월 초에는 2달러마저 위협하고 있다. (한겨레 탁기형)
채권금융기관들의 움직임도 최근의 주가급락을 부채질했다. 하이닉스 채권단은 지난 6월1일 3조원어치에 가까운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했다. 채권단 가운데는 신규지원에 나섰던 금융기관과 채무만 일부 면제하고 대신 신규지원은 하지 않은 금융기관이 섞여 있다. 신규자금을 지원하지 않았던, 따라서 전환주식을 언제든 시장에 팔 수 있는 금융기관은 국민·한미·서울·하나은행 등 7곳으로, 이들의 전환주식은 7억2천여만주나 된다. 이들은 전환사채가 주식으로 전환되자마자 손실을 감수하고 주식을 팔아치웠다. 서울은행은 6월5일 전환주식 1억주 중 3372만주를 처분했고, 국민은행도 7일 전환주식 2억4천만여주 중 절반인 1억2천만여주를 처분했다고 밝혔다. 매도물량이 대거 쏟아지면서 하이닉스 주가는 4일과 5일, 7일(6일은 현충일) 사흘 연속 하한가로 떨어졌다. 소액주주들은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채권단의 전환사채 주식전환을 막아달라고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지만 기각됐다. 그런 가운데 하이닉스 처리의 해법은 더욱 복잡하게 꼬여가고 있다. 현재 하이닉스의 최대주주는 채권단이다. 신규지원에 불참했던 금융기관들이 주식을 모두 팔아치운다고 해도 나머지 채권단 전체의 지분율은 66.7%다. 채권단은 도이체방크를 재정자문사로 선정해 지난 5월20일부터 하이닉스에 대한 실사를 벌이고 있다. 7월 중 실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처리방침을 마련할 예정이다. 채권단 가운데 채권이 적은 금융기관들은 “채권이 많은 은행들이 추가 출자를 해 하이닉스를 살려야 한다”는 쪽인 반면, 채권이 많은 은행들은 “살려야 실익이 없으니 팔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채권단의 대체적인 기류는 재매각 추진 쪽으로 기울어 있다. 그러나 정치권은 하이닉스의 처리를 정치적으로 다시 끌어가고 있다. 하이닉스 노조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독자생존을 지지하는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겠다”고 선언하자, 하이닉스 공장이 자리잡고 있는 경기도의 도지사 후보들은 독자생존을 지지한다는 식으로 들릴 수 있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정당 정책위원회 쪽도 마찬가지다.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는 신국환 산업자원부 장관과 전윤철 부총리와 전화통화를 한 뒤 “6개월 안에 매각은 없을 것이라는 답을 들었다”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루 거래량 몇억주

사진/ 하이닉스 살리기 국민운동연합 회원의 1인 시위. 현재 주식시장의 반응은 독자 생존론에 대해 회의적으로 바뀌었다. (한겨레 탁기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