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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SK카드 납신다…무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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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6-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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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은행 카드부문 인수 예정인 SK…휴대폰 결제시스템으로 기존 카드시장 흔들까

사진/ 신용카드시장을 혼탁시킨 주범으로 꼽히는 길거리 회원 모집. (이혜정 기자)
“SK그룹의 신용카드 진출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나온 얘기다. 이번 전북은행 카드부문 인수는 예상보다 오히려 늦었다고 볼 수 있다.” SK그룹이 전북은행의 카드 사업부를 별도 법인으로 떼어낸 후, 이 법인의 지분을 인수해 신용카드 시장에 새로 뛰어든다. SK 쪽은 “전북은행과의 협상이 마지막에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카드업계는 SK그룹의 신용카드 진출을 ‘예상대로 올 것이 왔다’며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SK의 신용카드 진출설은 그동안 끊이지 않고 계속 흘러나왔다. 금융권 구조조정으로 카드 부문 매물이 나올 때마다 인수설이 뒤따랐고, 신용카드 진출은 고 최종현 회장의 유언이란 소문까지 퍼져 있다.

이동통신과 금융의 환상적 결합?

사진/ SK에 신용카드사업을 넘겨줄 예정인 전북은행.
전북은행과의 협상은 어디까지 왔을까? 전북은행 종합기획부 김종원 사무국장은 “아직 가격협상도 끝나지 않았고, 파트너와 이견이 많다”며 협상이 잘 될 수도 있고 깨질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SK는 ‘금융거래 고객 15만명 확보’ 등의 조항 때문에 새로 카드사업 인가를 받는 게 불가능해 기존 사업체 인수로 방향을 틀었다. 새로 차려지는 카드 독립법인의 지분은 전북은행이 51%, SK가 49%를 나눠갖는 것으로 정리되고 있다. 신용카드 시장에 곧바로 진출하지 않고 돌아서 가는 격이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 김병태 여전감독팀장은 “전북은행에서 카드부문을 분사해 인허가를 받은 뒤에 대주주를 SK로 넘겨버린다면 곧바로 허가권을 팔아먹는 것”이라며 “그러면 문제는 달라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카드업계는 “신설 카드법인이 상장회사가 아닌 만큼 주주들의 반발도 없고, 따라서 정권이 바뀌면 출자총액제한을 비켜가면서 SK가 대주주로 등장하고 카드사업을 완전 인수하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 89년 이후 사실상 카드시장의 신규진입을 불허해온 감독 당국도 최근에 입장을 바꾸고 있다.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도 “카드 시장에 신규 업체의 진출을 허용해 현금서비스 수수료 인하 등 서비스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발언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금감위 관계자는 “아직 전북은행으로부터 인가신청서가 들어오지 않아서 된다, 안된다고 딱 부러지게 말할 형편이 못되지만 카드시장이 포화상태라는 생각도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길거리 회원모집으로 대표되는 카드남발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했지만, 카드회사끼리의 경쟁이 아직 부족한 면도 있다는 것이다. 신규진입을 터주면 수수료 경쟁이 치열해지고, 그래서 수수료가 내려간다는 논리다.

신용카드 시장은 이미 춘추 전국시대를 맞고 있다. 신용카드업이 ‘앉아서 큰돈을 챙기는 사업’으로 알려지면서 은행은 물론 비금융권 대기업들까지 카드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지난 2월에 우리금융지주회사의 우리카드가 진출했고, 최근 신한지주회사의 신한카드가 전문카드사로 새로 출범했다. 올 하반기에는 조흥은행이 카드업계에 발을 들여놓을 예정이고 롯데백화점도 호시탐탐 신용카드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9개 전업카드사가 올 연말에는 최소한 10곳 이상으로 늘어나 치열한 시장다툼이 벌어질 전망이다.

신용카드시장에 있는 카드 종류은 은행계까지 합쳐 무려 26개에 이르고 경제활동인구 1인당 4.3매의 카드를 갖고 있다. 이런 포화상태에서도 삼성, LG 등 ‘빅5’외에 현대, 동양, 우리카드 등 후발 카드사까지 올 1분기에 최고 40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회원수도 100만명에 육박하는 등 후발 주자들의 급성장이 돋보인다. 신용카드 사용범위가 끊임없이 확대되면서 새로운 시장이 개척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SK의 가세는 카드시장이 더욱 불붙게 됐다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선다.

우선, SK의 카드시장 진출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이것이 ‘이동통신과 금융의 결합’이란 점에 있다. SK그룹은 SK(주)가 보유한 OK캐쉬백 회원 1800만명과 SK텔레콤 고객 1600만명을 발판으로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한다는 계산이다. SK그룹이 SK텔레콤을 앞세워 신용카드 시장에 진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를 감안할 때 이동통신과 주유소 등 카드사업에 유리한 업종을 보유한 SK가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를 것으로 점치는 쪽도 있다. 이동통신 가입자망을 통해 카드를 유통하면 발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전북은행도 “SK와 공동출자하는 배경에 돈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며 “은행이 독자적으로 회원을 확보하려 들면 전업카드사에 비해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SK가 가진 방대한 이동통신 고객망을 마케팅에서 충분히 활용하겠다는 의도다.

신용카드업 현황
1999 2000 2001 2002.1/4
카드발급 수
(만매)
3,899 5,788 8,933 9,678
경제활동인구
1인당 카드 수
1.8 2.7 4.0 4.3
총이용액
(십억원)
95,084 237,252 480,679 156,823
현금서비스 이용액(구성비율·%) 48,315
(53.2)
144,316
(64.4)
304,969
(63.4)

휴대폰 결제 시스템도 선보일 예정

사진/ 휴대폰으로 신용카드결제를 대신하는 등 휴대폰과 신용카드가 결합하는 추세다.
실제 SK텔레콤은 연령대, 취향별로 이동통신 고객의 상세한 정보가 담긴 회원제를 도입해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보유하고 있다. 새로운 카드상품도 휴대폰 가입자별로 특화해 이동통신망을 통해 유통시킬 계획이다. SK그룹 관계자는 “SK는 이미 손에 수많은 고객의 이름 석자를 쥐고 있기 때문에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을 붙잡고 회원을 모집하는 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며 “차별화된 서비스를 통해 카드회원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PCS와 달리 SK텔레콤 고객은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고 구매력이 있기 때문에 미래의 우량카드회원으로 분류할 수 있다.

사실 신용카드와 이동통신의 만남은, 일그러진 풍경이지만, 이미 시작됐다. 그동안 신용카드사들이 이동통신 대리점에 중개수수료를 주면서, 카드 신규회원을 모집하면 공짜 휴대폰을 주는 방식으로 카드 회원을 확장해온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술’을 넘어 SK가 이번에 카드시장에 치고나간 한복판에는 ‘금융종합유통사업자’의 꿈이 자리잡고 있다. 차진석 SK텔레콤 m파이낸스 본부장은 “SK의 신용카드 진출은 ‘금융종합유통사업자’가 되겠다는 의지”라며 “신용카드는 SK그룹이 유통으로 진출하는 발판이 된다”고 말했다. 금융도 약하고 유통도 없는 SK에게 신용카드사업은 금융과 유통에 한꺼번에 진출하는 포석인 셈이다. 금융기관이 금융상품을 만들어 파는 곳이라면 통신사업자인 SK는 고객 망을 활용해 금융상품을 효율적으로 ‘유통’시키는 것이다. 이동통신과 금융은 둘다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마케팅을 하는 점에서 비슷하다.

SK텔레콤의 금융 진출에는 휴대폰 음성통화시장이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판단이 깔려있다. 신용카드 정보를 휴대폰에 장착해 카드없이 휴대폰으로 결제하는 시스템을 선보이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동전화 단말기가 신용카드를 삼키는 것인데, SK그룹 이상종 과장은 “더 이상 음성을 갖고 돈벌기 힘든 때가 왔다”며 “휴대폰결제시스템도 금융회사가 아니라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동통신과 연결된 파생상품을 개발하는데 머물지 않고 내친 김에 독자 신용카드 사업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SK는 기존 신용카드 시장과 차별화된 서비스로 독보적인 무선결제시스템 기술을 들고 있다. 눈부시게 발달한 우리나라의 이동통신망과 카드, 가맹점을 연결하는 새로운 시장을 만든다는 것이다. 물론 이를 뒷바침해주는 건 SK가 갖고 있는 ‘풍부한 자금’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회원관리에 필요한 네트워크를 깔고 전산설비를 갖추는데 몇천억원이 들어가는 등 신용카드는 초기에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일종의 장치산업”이라며 “SK의 ‘막대한 현찰’이 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금방 뚝딱 되는 건 아니다”

과연 SK가 카드업계의 판도에 상당한 변화를 몰고 올 것인가? 카드업계는 SK카드가 당장 시장을 뒤흔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삼성카드 관계자는 “SK텔레콤이 신용카드 사업에 필요한 인프라를 어느 정도 갖추고 있긴 하지만 신용카드 사업이 금방 뚝딱 되는 것도 아니고, SK의 고객 정보를 전북은행에서 다 가져다 쓸 수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생명이 가진 고객테이터를 삼성카드가 멋대로 유출해 카드회원을 늘리는데 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만, 카드업계는 “SK가 풍부한 현금을 바탕으로 ‘돈질’해가며 마구잡이로 카드회원을 늘릴 가능성”을 우려했다. 카드모집원을 고용해 미성년자뿐만 아니라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회원 확보에 열 올리는 현상이 더 극성을 부릴 거라는 얘기다.

LG카드 김인곤 과장도 “현대가 다이너스카드를 인수한지 1년이 다 됐지만 아직 지지부진한 상태”라며 “SK카드도 단순히 카드 한 장을 더 만드는 것 외에 시장판도를 뒤흔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동통신시장과 달리 신용카드는 시장점유율이 팍팍 늘어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기존 카드사들이 프로야구 무료입장 등 10만원어치 이상의 공짜서비스를 주고 있는 판인데다 SK의 OK캐쉬백은 항공마일리지 서비스가 빠져있는 점도 기존 카드회원들이 쉽게 SK쪽으로 옮겨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을 뒷바침하고 있다. 김 과장은 “이동통신은 이동통신이고 신용카드는 신용카드”라며 “사람들이 이동통신서비스에 따라 카드소비패턴까지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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