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의 인수 포기로 매각 연내 마무리 무산… 인수가격 떨어져 국민 부담 가중 
   
 
 대우자동차 처리 문제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지난 6월 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포드가 대우차 인수를 돌연 포기했기 때문이다. 
  포드의 이런 결정은 대우그룹 전체의 정상화 일정에 차질을 줄 뿐만 아니라 금융·기업구조조정 전반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당장 주식시장에서 그 파장의 강도를 실감할 수 있다. 지난 9월15일 포드의 대우차 인수포기가 발표되자마자 종합주가지주와 코스닥지수가 나란히 큰 폭으로 떨어져 연중 최저치 기록을 갈아치웠다. 채권단과 대우차 관계자들도 “이럴 줄 몰랐다”며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대우차의 한 직원은 “그동안 숱한 난관에 부닥치며 어렵사리 마련된 회사 정상화의 희망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외국인들의 시선도 싸늘하다. 해외에서 거래되는 한국물 주식예탁증서나 채권들은 연일 매도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외국인들은 대우차 처리를 한국경제 구조조정에 대한 하나의 이정표로 삼고 있다. 그런데 돌발악재가 생겨 구조조정 전반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포드의 날벼락에 구조조정 불신감 팽배 
 
    
  정부와 채권단은 포드의 태도변화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불길한 조짐은 사실상 지난 8월 말부터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포드는 대우차 매각입찰에서 70억달러(7조7천억원)의 가격을 제시해 현대-다임러크라이슬러와 GM-피아트 컨소시엄을 제치고 단독으로 우선협상권을 따낸 다음 곧바로 정밀 실사에 들어갔다. 이 실사결과를 바탕으로 최종 인수가격을 정해 계약을 맺으면 대우차 매각은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8월 말 포드가 실사작업을 끝낸 다음에도 협상창구인 대우구조조정협의회에 아무런 제의를 하지 않았다. 정부와 채권단쪽에서는 조마조마하게 보름여 동안 그냥 기다리다가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대우구조조정협의회의 한영철 상무는 “포드가 단지 이사회 결정사항이라며 인수포기 의사를 일방적으로 통보했으며 가격협상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이런 정황을 근거로 대우차 처리문제가 꼬인 것은 전적으로 포드 내부의 문제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근영 금감위원장은 포드의 대우차 인수포기 배경에 대해 “레저용차량에 장착된 파이어스톤 타이어의 리콜과 <뉴욕타임스>의 엔진결함 의혹보도 등으로 포드 스스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내부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포드가 순전히 내부사정 때문에 대우차 인수를 돌연 포기했다는 것은 국제 기업인수합병(M&A) 관행이나 상도의에 비춰볼 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다른 경쟁자들의 인수기회를 박탈시킨 채 대우차의 실상과 영업정보 등을 구석구석 다 뜯어본 다음 어떻게 추가 가격협상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내팽개칠 수 있느냐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의문이다. 다시 말해 포드가 대우차를 실사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은 추가부실을 발견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포드도 처음에는 인수포기의 배경에 대해 전혀 설명이 없다가 우리 정부쪽에서 ‘포드의 내부사정론’을 들고 나오자 역공을 펴기 시작했다. 포드의 폴 우드 대변인은 “타이어 리콜과 주가하락이 포드의 인수포기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은 고려할 가치가 전혀 없다”며 “대우의 임원들이 회사의 자산가치를 왜곡하는 등 부실회계 협의로 검찰에 고발됐다는 사실이 배경을 더 잘 설명해줄 것”이라며 은근히 대우차에 문제가 있음을 내비쳤다. 미국 번햄증권의 자동차산업 애널리스트인 데이비스 힐리도 “대우차가 골치아픈 존재라는 점을 포드가 알게 됐으며 대우를 인수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추가부실 부담… 두 컨소시엄도 인색한 평가 
   
  어쨌든 포드가 갑자기 발길을 돌림에 따라 정부와 대우 채권단은 난감하게 됐다. 또 만약 대우차의 추가부실 때문에 포드가 인수를 포기했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정부와 채권단은 지난 2월 입찰에 참여한 GM-피아트와 현대-다임러크라이슬러를 다시 동시 협상대상자로 선정해 매각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근영 금감위원장은 “지난번에 실시한 입찰의 인수조건이 여전히 유효하므로 두 컨소시엄은 지금도 협상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다”며 “최대한 신속하게 협상을 끝내 연내 대우차 매각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정부의 방침은, 조금 심하게 말하면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꼴이다.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져 인수를 바라는 쪽보다 매각을 추진하는 쪽이 훨씬 불리하게 됐다. 특히 정부가 기업·금융구조조정을 내년 2월까지 마무리한다는 목표에 매달려 스스로 궁지를 파는 것과 다름없이 ‘연말까지’라고 매각일정을 못박는 바람에 불리해진 형국을 더욱 불리하게 만드는 측면도 있다. 
  이미 GM이나 다임러크라이슬러쪽 반응에서 대우 매각협상이 순조롭지 않을 것임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GM은 포드의 대우차 인수포기 선언 직후 “대우차 인수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실무 관계자들도 서울에 그대로 남아 있다”면서도 “그동안 대우차의 가치가 많이 떨어져 유감”이라고 밝혔다. 다시 입찰에 참여하더라도 1차 때 낸 인수가격(4조∼5조원)을 하향 조정해야겠다는 얘기이다. 다임러크라이슬러는 한술 더 떠, 아예 “더이상 관심없다”고 발표해, 현대차가 단독으로 대우차 인수에 나서야 할 형편이다. 현대가 단독으로 대우차 인수에 나서려면 막대한 인수재원을 마련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다, 먼저 국내 자동차시장의 독점에 대한 비판여론을 무마해야 하는 과제까지 풀어야 한다. 대우차 종업원들과 협력업체들로부터 GM과 현대차 모두 거부대상이라는 것도 대우차 매각의 걸림돌이다. 대우차 노조 관계자는 “GM은 지금까지 세계 각국의 사업장에서 거칠게 노사관계를 풀어갔다는 사실 때문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으며 현대는 중복차종의 정리에 따른 대규모 설비감축과 고용조정이 뻔해 아예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우차 노조가 민주노총 차원의 해외매각 반대시위를 벌일 때에는 바로 GM을 겨냥한 것이었다. 또 현대가 지난 3∼5월에 여러 차례 대우차 실사에 나서려고 했지만 부평공장 등에서는 아예 출입을 막았다.  
  이래저래 대우차 처리는 정부나 채권단의 바람대로 ‘연내 마무리’가 어려울 것 같다. 대우차는 채권단이 지난해 8월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대상으로 선정하고 자산·부채를 실사한 결과 99년 말 기준으로 부채(18조6천억원)가 자산(12조9천원)을 5조7천억원이나 초과하는 초대형 부실기업이다. 올 들어서도 상반기에 1조원의 적자를 냈고 시간이 갈수록 적자폭이 커지고 있다. 채권단이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정도로 운전자금만 지원하고 경영정상화에 필요한 투자나 영업활동 지원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6월 말 이후 은행권이 대우차에 신규 지원한 자금만도 2조5천억원에 이르며, 기존 지원금까지 합치면 대우차 여신에서 발생하는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LG증권은 앞으로 대우차의 매각가격이 50억달러 이하로 더 떨어질 경우에는 은행권의 추가 대손충당금 적립부담이 8천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우차의 금융권 차입금 13조8천억원 가운데 은행권 여신은 4조원 정도이다. 이에 대해 이미 40% 정도의 대손충당금을 적립해뒀으나, 이는 대우차가 포드에 70억달러선에 팔릴 때를 전제로 한 손실추정이다. 
   
가격 후려치면 손실금 눈덩이로 불어나 
  
  대우차의 매각일정 지연은 불가피하다. 새로 우선협상 대상자가 선정되더라도 인수희망자가 다시 정밀실사를 하는 데만도 최소 2∼3개월이 걸린다. 정부와 채권단은 대우차 처리의 관건은 신속하게 새 주인을 찾아 일괄매각하는 데 있다며, 단지 시간과의 싸움으로만 보고 있다. 그래서 3자매각을 통한 대우차 처리방침을 확정할 때부터 공기업화가 독자생존시키는 방안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그러나 지금은 대우차 처리에 대한 기본틀부터 다시 짜지 않는다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 인수희망업체의 ‘가격 후려치기’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에 따른 손실은 결국 채권은행들과 국민들의 부담으로 다 넘어올 수밖에 없다. 
   
     
  박순빈 기자sbpark@hani.co.kr 
  

(사진/대우차는 어디로 구르는가. 포드의 인수포기 발표에 따라 대우차사태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열린 긴급 경제장관회의모습)

(사진/대우차 처리 문제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대우차 우선 협상대상자로 선정되었던 포드 관계자들의 기자회견모습)

(사진/헐값매각을 피할수 없는 대우자동차의 생산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