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는 이런 주장을 내세워 앞서 한국 법원에 소송을 냈다. 하지만 모두 패소했다. 정부가 ISD에 대해서도 “120% 승소”를 자신하는 이유다. 매각 승인 지연의 경우 론스타가 외환은행 주가조작이라는 중대 범죄를 저질러 자초했다는 것이다. 검찰이 주가조작 사건을 수사하며 금융 당국에 매각 승인을 보류해왔고, 2011년 10월에야 론스타의 유죄가 법원에서 최종 확정됐다. 그 이후에야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을 금융 당국이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
과세와 관련해서도 대법원이 7년간 소송 끝에 국세청에 승소 판결한 바 있다. 2004년 12월 서울 강남 스타타워빌딩(강남파이낸스센터) 주식을 매각한 뒤 론스타는 양도소득세와 법인세를 내지 않으려고 행정소송을 냈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 1월 벨기에 법인은 론스타가 조세회피 목적으로 세운 페이퍼컴퍼니에 불과해 한-벨기에 조세조약의 혜택을 입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참여연대 회원들이 지난 5월24일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앞에서 ‘론스타의 외환은행 부당이득 환수 추진을 위한 주주 모집’ 기자회견을 열었다(왼쪽). 하지만 투자수익률 200%를 달성한 론스타는 투자자-국가 소송(ISD)으로 추가 이득을 얻어낼 심산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국회 비준 동의를 앞두고 ISD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라 2011년 10월 국회 끝장토론이 열렸을 때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현 새누리당 의원·오른쪽 사진 왼쪽)은 “ISD는 한국에 필요한 제도”라고 주장했다. 한발 더 나아가 시민사회는 론스타가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인데도 이를 숨기고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을 얻었기에 원천 무효라고 주장한다. 당시 은행법은 산업자본이 금융기관 주식을 4% 초과해 보유할 수 없도록 돼 있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3월 외환은행 소액주주가 제기한 의결권행사금지 가처분 사건에서, “2005년부터 2011년까지 론스타는 산업자본에 해당함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2012년 5월 24일 오전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앞에서 참여연대 회원들이 론스타의 외환은행 부당이득 환수추진을 위한 주주모집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anaki@hani.co.kr
정부의 기대처럼 한국의 사법적 판단을 ISD가 존중할까? 그동안의 판례를 보면 불행히도 아니다. 미국 정유업체인 엑손모빌과 머피오일이 캐나다 뉴펀들랜드주를 상대로 낸 ISD 사건을 보자. 캐나다 주정부는 엑손모빌 등이 뉴펀들랜드의 래브라도반도와 섬 주변에서 유정 개발 사업을 하며 발생한 이익금의 일부를 지역사회를 위한 연구개발비로 투자하도록 했다. 이에 반발해 미국계 정유업체는 캐나다 법원에 소송을 냈다. 캐나다 법원은 국내법에 따라 이들의 주장을 세 차례나 기각했다. 결국 이들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위반이라며 6천만달러를 요구하며 ISD를 제기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 5월 캐나다 주정부의 행위가 ‘이행요건 부과 금지’(투자인가의 조건으로 투자자에게 일정한 의무를 부담하게 하는 것을 금지)에 해당한다며 미국계 정유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캐나다의 사법적 판단이 무력화된 것이다.
한국 대법원은 ‘사법주권’ 침해의 위험성을 이미 경고했었다. 대법원은 2006년 6월 한-미 FTA 협상 당시 법무부의 요청에 따라 ISD에 관한 검토 의견서를 제출했다. “미국 투자자의 중재 청구가 더 많을 것으로 예상돼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제소에 따른 대응 등 상당한 부담이 작용한다. 중재 청구 대상에 사법부의 재판을 배제할 수 없다면 극심한 법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등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미국의 재판 절차와 판결을 중재판정부가 심판한 로언 사건을 사례로 들었다. 캐나다 장의업체인 로언이 1995년 미국 미시시피 주법원에서 5억달러를 배상하라는 배심원 평결을 받자, NAFTA 위반이라며 ISD를 청구했다. 중재판정부는 절차상 문제를 들어 기각 결정을 내지만 사법부 판결이 중재 대상인 것은 분명하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ISD는 이처럼 투자를 받는 국가에 부담이 되는 제도다. 다국적 투자자가 현지 판결·공공정책 등을 무력화하는 무기로 ISD를 휘두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ISD를 둘러싼 전선은 ‘국가 대 국가’가 아니라 ‘자본 대 국가’로 그어진다. 특히 ISD에서 가가 패소하면 대자본이 요구한 손실보상을 국민의 세금으로 지급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ISD는 이처럼 투자를 받는 국가에 부담이 되는 제도다. 다국적 투자자가 현지 판결·공공정책 등을 무력화하는 무기로 ISD를 휘두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ISD를 둘러싼 전선은 ‘국가 대 국가’가 아니라 ‘자본 대 국가’로 그어진다. 공공정책·경제민주화를 요구할 권리를 가진 다수의 국민과, 시장에서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대자본 사이에서 충돌이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ISD에서 국가가 패소하면 대자본이 요구한 손실보상을 국민의 세금으로 지급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나 의회가 입법주권과 사법주권을 제한한다며 ISD 반대에 적극적인 이유다. 미국 주의회, 오스트레일리아 의회, 브라질 의회 등이 대표적이다.
자본의 이득을 보호하는 건 ISD의 태생적 숙명이다. ISD는 1960년대부터 식민지로부터 독립한 신생국가들이 옛 식민지 자본을 국유화하자 위기의식을 느낀 자본의 자구책이라고 볼 수 있다. 김익태 미국 변호사는 저서 <한미 FTA, 소송당하는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어찌 보면 식민지 지배에 실패한 점령국이 떠나면서 자신들이 식민 지배를 통해 착취한 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도리어 그간 투자한 금액에 대해 보상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다가 고안해낸 제도라고 볼 수 있다.” 김 변호사는 “일본 점령군이 36년 동안 우리나라를 지배하다가 2차 대전의 패배로 본국으로 도망가면서 그동안 식민지 조선에 투자한 금액을 보전해주길 기대하는 경우와 유사하다”고 평했다.
이런 ISD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했는지 모르지만 한국은 국외 투자가 드물던 1967년에 덥석 ICSID 회원국에 가입했다. 게다가 ISD가 포함된 투자협정 81건을 체결하며 독일·일본과의 협정을 제외하고는 국회 비준 절차도 밟지 않고 정부가 발효했다. 국가별 국제투자협정 체결 수를 순위로 매겨보면 영국·독일·프랑스·중국에 이어 한국이 5위를 차지한다.
‘특혜’의 비밀이 지난 5월 론스타가 공개한 중재의향서에서 밝혀졌다. ISD를 제기하겠다는 ‘협박’ 편지를 론스타가 한국 정부에 세 차례나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2008년 7월9일과 2009년 2월11일, 2012년 1월17일이었다. 마지막 서신이 도착한 지 열흘이 지난 1월27일, 금융 당국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을 최종 승인했다.
2008년 1월12일,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중앙)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형사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모습.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무사태평이었다. 2011년 외교통상부가 낸 ‘ISD 우리에게 필요한 제도입니다’라는 자료에는 “정부 조치가 정당하고 미국 투자자에게 비차별적인 경우에는 ISD 피소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돼 있다. 그리고 ‘피소 가능성 0%’라고 적었다. “일부 남미국가가 제소를 당한 것은 대부분 정당한 보상 없이 실시한 국유화 등 반시장적 조치 때문이다. 시장경제 원칙을 따르고, 안정적인 법체계를 갖추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상황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1967년 ICSID에 가입한 이래 ISD에 피소된 사례가 없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막대한 비용과 중재 판정이 내려지기까지 2∼3년의 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기업이 무분별하게 상대국 정부를 제소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외교부의 설명과 달리 ISD는 급증하는 추세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발간하는 연간 보고서 ‘ISD의 최근 현황’을 보면, 2011년에 발생한 ISD 사건은 46건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ISD 누적 발생 건수는 450건에 달하고 1개 이상의 ISD에 휘말린 국가는 89곳이다. UNCTAD는 “대부분 ISD 사실을 공개하지 않아 실제 건수는 더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국가 공공정책에 대한 다국적기업의 제소가 많아진 것에 주목했다. 미국 담배회사 필립모리스가 강력한 금연법을 제정한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를 상대로, 스웨덴의 국영 에너지 기업인 바텐팔이 원자력발전소를 폐쇄한 독일 정부를 상대로 ISD를 제기한 것이 그 사례다. 론스타도 조세 등 공공정책을 문제 삼고 있다.
‘피소 가능성 0%’를 공언하던 그들은 론스타의 ISD 사건에 대해 무엇이라고 해명할까? “흥분할 필요 없다. 상대편이 소송을 제기해왔으니까 아주 냉정하게 대응을 해서 패소를 시켜버리면 된다. 정부의 규제가 정당하고 비차별적이라면 ISD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현 새누리당 의원)이 11월28일 YTN 라디오에서 한 말이다. 1년 전에는 기업이 무분별하게 제소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안심시키더니, 이제는 기업이 무분별하게 제소한 것이니 한국 정부가 승소하리라 자신한단다.
그 자신감을 신뢰할 수 없는 이유는 이미 한국 정부가 ‘론스타의 작전’에 휘말리고 있어서다. 론스타는 2003년 9월 외환은행을 인수할 때부터 산업자본이라 대주주 자격이 없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런데도 금융 당국은 론스타에 대한 적격성 심사를 이행하지 않았다. 시민사회의 거듭된 요구에 떠밀려 뒤늦게 심사한 뒤 2011년 3월에야 산업자본이 아니라고 발표했다. 싱가포르 정부 소유의 투자전문회사인 테마섹홀딩스가 2004년 5월 하나은행의 주식을 취득할 때 사전에 엄격히 심사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또 법원이 2011년 10월 외환카드 주가조작 혐의로 론스타에 대한 벌금 250억원 선고를 확정했는데도 금융 당국은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해 막대한 주식매각액을 얻을 수 있도록 길을 터줬을 뿐이다.
이런 ‘특혜’의 비밀이 지난 5월 론스타가 공개한 중재의향서에서 밝혀졌다. ISD를 제기하겠다는 ‘협박’ 편지를 론스타가 한국 정부에 세 차례나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2008년 7월9일과 2009년 2월11일, 2012년 1월17일이었다. 마지막 서신이 도착한 지 열흘이 지난 1월27일, 금융 당국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을 최종 승인했다. “론스타를 산업자본으로 판단해 징벌적 매각 명령을 내리자는 시민단체의 주장을 따르지 않은 것은, 나중에 혹시라도 론스타가 ISD를 제기할 경우 약점이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금융 당국 관계자의 말이다. 엉겁결에 ‘된서리 효과’(Chilling Effect)를 고백한 거다. ‘서부시대 총잡이의 총처럼’ 기업이 ISD라는 무기를 만지작거리면 정부가 움츠러드는 현상이다. 제도적·관행적 장벽을 없애고 상대국 정부를 길들이려고 다국적기업이 활용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국가 국제분쟁(ISD) 사건의 중재판정부가 29일 절차종료를 선언했다. 이로써 10년 가까이 이어온 다툼이 결론을 앞두게 됐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한국 정부의 전략을 잘 아는 로펌도 론스타가 스카우트했다. 론스타의 법률 대리인인 미국계 다국
적 로펌 ‘시들리오스틴’ 얘기다. 시들리오스틴은 지난 7월까지 5년간 한국 정부의 세계무역기구(WTO) 통상분쟁 관련 자문계약을 맺고 그 대가로 7억9천여만원을 받아갔다. 또 한-미 FTA와 관련해 주미 대사관과 법률자문 계약을 2010년에 맺어 지난 6월30일까지 유지했다. 그 대가는 월 1만달러 이상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통상정책과 분쟁 대책을 소상히 알고 있는 이 로펌이 론스타가 ISD를 제기하겠다고 밝힌 지난 5월부터 론스타의 편에서 칼끝을 겨누고 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외교부가 6월16일 문제제기를 했고 7월16일 로펌은 한국 정부와의 자문계약을 해지했다. 김행선 미국 변호사는 “한국 정부를 오래 대리해 많은 정보가 있는 로펌이 그 정보를 사용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 베테랑 선수까지 빼앗긴 상황, 혹독한 신고식이 한국을 기다린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