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극으로 드러난 한라그룹 구조조정… 공적자금 받아 회사 지분 챙긴 정몽원 회장의 엽기행각
한라 정몽원 회장이 지난 4월24일 검찰에 구속됐다. 수사 착수 뒤 3년 반 만의 일이다. 정 회장의 구속은 구제금융사태 이후 구조조정의 모범사례로 꼽혀온 한라그룹 매각과정이 한판의 사기극이었음을 검찰이 공식 확인해준 것이다. 그러나 정 회장의 구속으로 사기극의 전모가 드러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라의 구조조정 과정에는 수많은 거물급 조연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역할에 대해서는 속시원한 설명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경영권에 연연하지 않겠다?
정 회장에게 적용된 대표적인 혐의는 우량계열사로 하여금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을 부실 계열사에 부당하게 지원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비난을 사는 부분은 채권단으로부터 수천억원의 빚을 탕감받은 뒤, 뒤로는 탕감받은 회사의 지분을 자신이 챙겨간 것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된 공적자금이 부도덕한 재벌총수의 주머니로 흘러들어간 것이기 때문이다.
정 회장이 한라시멘트 등 부도난 계열사에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액수인 10억달러(1조2천억원가량)에 이르는 브리지론을 끌어와 회사를 정상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은 98년 3월의 일이다. 채권단이 빚을 일부 탕감해주면 단기자금인 브리지론으로 채권단의 빚을 갚은 뒤, 외자를 유치해 브리지론을 갚음으로써 회사를 조속히 정상화하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자신은 경영권에 연연하지 않고, 오로지 회사와 종업원들을 살리겠다는 명분이었다. 이런 구조조정 계획은 한라시멘트 정리과정에서부터 본격 적용됐다. 정 회장은 우선 채권단과 부채탕감 협상에 들어갔다. 한라 쪽이 채권단에 제시한 한라시멘트의 가치는 4천억원 수준. 이를 근거로 1조880억원의 빚 중 6363억원을 깎아주면 4517억원은 브리지론으로 즉시 갚겠다는 것이었다. 채권단과의 ‘화의’는 어렵지 않게 성사됐다. 그리고 이때부터 정 회장의 지분 챙기기는 본격화됐다. 그는 알에이치시멘트라는 서류상의 회사를 만들어 한라시멘트의 자산을 넘겼다. 한라시멘트 소액주주들에게는 회사가 껍데기만 남는다고 강조하며, 주식을 헐값에 사들였다. 이어 브리지론으로 채권단에 빚을 갚은 뒤 라파즈 등에 알에이치시멘트 지분 70%를 팔아 브리지론까지 갚았다. 그 결과, 알에이치시멘트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한 회사의 나머지 지분 30%(951억원어치)가 정 회장의 몫이 됐다. 애초 정 회장의 한라시멘트 지분은 16%에 불과했다. 경영권에 연연하지 않겠다던 그의 지분이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정 회장이 30%의 지분을 챙긴 것이 형법상 배임죄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법원의 최종판결을 기다려봐야 한다. 검찰은 구속영장에서 “지분 취득은 부도기업의 구조조정 책임자로서 부여받은 임무에 명백히 위배되는 행위”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라 쪽은 “지분 취득은 인수합병의 성과로 기업가치를 높게 평가받았고, 인수자인 라파즈사가 정 회장의 경영능력과 향후 영업능력 등을 감안해 국내 파트너로서 지분을 할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도덕적 비난의 소지는 있지만 범죄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만약 정 회장이 자신의 지분을 챙기지 않았다면 모든 지분이 외국계 인수회사인 라파즈 쪽에 넘어갔을 것 아니냐는 것이다. 대통령 만난 뒤 일사천리로 진행 정 회장의 지분 챙기기가 범죄이든 도덕적 비난에 그칠 사안이든, 그것이 성공하게 된 과정에는 수많은 조연들이 등장한다. 우선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이다. 채권단이 화의 협상 과정에서 한라시멘트의 자산가치를 제대로 평가해 부채탕감액을 줄였더라면 정 회장의 사기극은 실패했을 것이다. 채권단은 한라 전 계열사에 대해 6조1890억원 중 무려 3조8134억원을 탕감해줬다. 한라시멘트에 대해서는 1조880억원의 빚 중 4517억만 받기로 했다. 그러나 당시 한라시멘트의 자산가치는 그보다 훨씬 높게 평가되고 있었다는 정황증거들이 많다. 브리지론을 제공하기로 한 로스차일드는 한라시멘트의 가치를 7천억원 이상으로 평가했던 것으로 검찰조사 결과 밝혀졌다. 검찰은 또 한라 쪽이 98년9월 제일감정평가법인에 기업가치 평가를 의뢰할 때 “개별자산 평가방법에 의한 한라시멘트의 기업가치는 약 8600억원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고 덧붙였다. 그런데도 빚을 더 많이 받아내는 것을 업으로 삼는 채권금융기관들이 한라 쪽에 4517억원만 받기로 합의한 것은 잘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이런 의문은 한라의 구조조정 계획에 대한 정부의 뜨거운 지원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당시 일부 채권금융기관들은 부채탕감액이 너무 많다고 화의안에 강력히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채권단이 화의안을 부결시킬 만한 분위기는 결코 아니었다. 정부가 한라의 구조조정 계획을 적극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라가 브리지론 도입 계획을 발표한 지 한달가량 지난 98년 4월21일 정 회장은 로스차일드의 윌버 로스 회장과 함께 김대중 대통령을 면담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30대 그룹 가운데 부도를 낸 그룹의 총수를 대통령이 면담한 것은 정 회장이 처음이었다. 누가 정 회장과 윌버 로스 회장을 대통령에게 소개했는지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러나 정 회장이 대통령을 면담한 이후 한라의 구조조정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윌버 로스 회장은 대통령 면담 이튿날, 당시 유종근 대통령특별고문(현 전북지사)과 이규성 재정경제부 장관을 만났다. 박태영 산업자원부 장관과 전윤철 공정거래위원장(현 경제부총리) 등도 대통령 면담을 전후해 만났다. 여권 핵심부의 일부 인사는 주한 미국대사관을 찾아가 한라그룹 구조조정 계획이 성사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요청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은 그해 7월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한라그룹을 가장 모범적인 구조조정 사례로 꼽기도 했다. 대통령이 설령 참모의 잘못된 설명을 듣고 한라의 구조조정 계획 전반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많은 관료들까지 정 회장의 속셈을 전혀 몰랐던 것일까? 검찰은 정치적 의도로 처벌 미뤘나
정 회장에 대한 검찰수사가 계속 시간을 끌어온 것도 석연치 않다. 만도기계 노조가 정 회장을 처음 고발한 것은 지난 98년 9월8일이었다. 고용조정 문제로 회사 쪽과 싸움을 벌이던 과정에서 노조는 “정 회장이 97년부터 만도기계 명의로 빌린 은행 차입금 등 6천억원가량을 한라중공업 등 부실계열사에 빌려주는 부당내부거래 행위를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이 고발내용은 이번에 검찰이 정 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범죄사실로 든 대표적인 항목이다. 검찰은 정 회장이 97년 한라시멘트와 만도기계, 한라건설 등 3개 우량계열사를 동원해 사실상 개인기업인 한라중공업에 2조1천억원을 지급보증하거나 자금대여 방식으로 부당 지원했다고 밝혔다.
정 회장이 채권단에게 대규모 부채탕감을 받고 뒤로는 자신의 지분을 챙긴 사실도 이미 2000년 6월 회사 내부자의 제보로 참여연대를 통해 공개됐다. 그러나 정 회장에 대한 검찰수사 착수 이후 담당 검사는 3번이나 바뀐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수사는 마무리해놓고도 정치적 판단에서 형사처벌에 나서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실제로 검찰이 구속영장에 밝힌 정 회장의 혐의를 보면 쉽게 범죄 혐의를 입증했을 것으로 보이는 내용들이 들어 있다. 검찰은 정 회장이 아버지인 정인영 명예회장한테 한라건설 주식을 물려받으면서 발생한 증여세 17억원과 이후 한라건설 증자 때 납입금 34억원을 한라건설 자금에서 지불했다고 밝혔다. 또 한라콘크리트 주식 400억원어치를 정씨가 만든 위장회사 등에 단돈 3억원에 넘겨 회사에 큰 손해를 끼쳤다고 설명했다. 한라콘크리트 건은 이미 2000년 고발된 내용이었고, 한라 쪽도 당시 이런 사실을 시인했다. 검찰이 뒤늦게 정 회장을 구속하긴 했지만 오히려 어떤 정치적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만 분분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검찰은 정 회장을 구속하고 정관계 로비 의혹 등에 대해 추가 수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 의문점들에 대해 명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한다면 검찰의 수사 결과는 이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을 포함해 그 많은 각료들이 모두 정 회장에게 농락당했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사진/ 농성을 벌이다 경찰에 연행되는 만도기계노조 집행부. 고용조정 문제로 싸우던 노조는 정 회장의 부당내부거래 행위를 밝혀냈다. (이정용 기자)
정 회장이 한라시멘트 등 부도난 계열사에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액수인 10억달러(1조2천억원가량)에 이르는 브리지론을 끌어와 회사를 정상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은 98년 3월의 일이다. 채권단이 빚을 일부 탕감해주면 단기자금인 브리지론으로 채권단의 빚을 갚은 뒤, 외자를 유치해 브리지론을 갚음으로써 회사를 조속히 정상화하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자신은 경영권에 연연하지 않고, 오로지 회사와 종업원들을 살리겠다는 명분이었다. 이런 구조조정 계획은 한라시멘트 정리과정에서부터 본격 적용됐다. 정 회장은 우선 채권단과 부채탕감 협상에 들어갔다. 한라 쪽이 채권단에 제시한 한라시멘트의 가치는 4천억원 수준. 이를 근거로 1조880억원의 빚 중 6363억원을 깎아주면 4517억원은 브리지론으로 즉시 갚겠다는 것이었다. 채권단과의 ‘화의’는 어렵지 않게 성사됐다. 그리고 이때부터 정 회장의 지분 챙기기는 본격화됐다. 그는 알에이치시멘트라는 서류상의 회사를 만들어 한라시멘트의 자산을 넘겼다. 한라시멘트 소액주주들에게는 회사가 껍데기만 남는다고 강조하며, 주식을 헐값에 사들였다. 이어 브리지론으로 채권단에 빚을 갚은 뒤 라파즈 등에 알에이치시멘트 지분 70%를 팔아 브리지론까지 갚았다. 그 결과, 알에이치시멘트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한 회사의 나머지 지분 30%(951억원어치)가 정 회장의 몫이 됐다. 애초 정 회장의 한라시멘트 지분은 16%에 불과했다. 경영권에 연연하지 않겠다던 그의 지분이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정 회장이 30%의 지분을 챙긴 것이 형법상 배임죄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법원의 최종판결을 기다려봐야 한다. 검찰은 구속영장에서 “지분 취득은 부도기업의 구조조정 책임자로서 부여받은 임무에 명백히 위배되는 행위”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라 쪽은 “지분 취득은 인수합병의 성과로 기업가치를 높게 평가받았고, 인수자인 라파즈사가 정 회장의 경영능력과 향후 영업능력 등을 감안해 국내 파트너로서 지분을 할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도덕적 비난의 소지는 있지만 범죄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만약 정 회장이 자신의 지분을 챙기지 않았다면 모든 지분이 외국계 인수회사인 라파즈 쪽에 넘어갔을 것 아니냐는 것이다. 대통령 만난 뒤 일사천리로 진행 정 회장의 지분 챙기기가 범죄이든 도덕적 비난에 그칠 사안이든, 그것이 성공하게 된 과정에는 수많은 조연들이 등장한다. 우선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이다. 채권단이 화의 협상 과정에서 한라시멘트의 자산가치를 제대로 평가해 부채탕감액을 줄였더라면 정 회장의 사기극은 실패했을 것이다. 채권단은 한라 전 계열사에 대해 6조1890억원 중 무려 3조8134억원을 탕감해줬다. 한라시멘트에 대해서는 1조880억원의 빚 중 4517억만 받기로 했다. 그러나 당시 한라시멘트의 자산가치는 그보다 훨씬 높게 평가되고 있었다는 정황증거들이 많다. 브리지론을 제공하기로 한 로스차일드는 한라시멘트의 가치를 7천억원 이상으로 평가했던 것으로 검찰조사 결과 밝혀졌다. 검찰은 또 한라 쪽이 98년9월 제일감정평가법인에 기업가치 평가를 의뢰할 때 “개별자산 평가방법에 의한 한라시멘트의 기업가치는 약 8600억원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고 덧붙였다. 그런데도 빚을 더 많이 받아내는 것을 업으로 삼는 채권금융기관들이 한라 쪽에 4517억원만 받기로 합의한 것은 잘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이런 의문은 한라의 구조조정 계획에 대한 정부의 뜨거운 지원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당시 일부 채권금융기관들은 부채탕감액이 너무 많다고 화의안에 강력히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채권단이 화의안을 부결시킬 만한 분위기는 결코 아니었다. 정부가 한라의 구조조정 계획을 적극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라가 브리지론 도입 계획을 발표한 지 한달가량 지난 98년 4월21일 정 회장은 로스차일드의 윌버 로스 회장과 함께 김대중 대통령을 면담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30대 그룹 가운데 부도를 낸 그룹의 총수를 대통령이 면담한 것은 정 회장이 처음이었다. 누가 정 회장과 윌버 로스 회장을 대통령에게 소개했는지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러나 정 회장이 대통령을 면담한 이후 한라의 구조조정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윌버 로스 회장은 대통령 면담 이튿날, 당시 유종근 대통령특별고문(현 전북지사)과 이규성 재정경제부 장관을 만났다. 박태영 산업자원부 장관과 전윤철 공정거래위원장(현 경제부총리) 등도 대통령 면담을 전후해 만났다. 여권 핵심부의 일부 인사는 주한 미국대사관을 찾아가 한라그룹 구조조정 계획이 성사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요청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은 그해 7월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한라그룹을 가장 모범적인 구조조정 사례로 꼽기도 했다. 대통령이 설령 참모의 잘못된 설명을 듣고 한라의 구조조정 계획 전반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많은 관료들까지 정 회장의 속셈을 전혀 몰랐던 것일까? 검찰은 정치적 의도로 처벌 미뤘나

사진/ 한라시멘트 매각과정에서 정 회장은 30%의 지분을 챙겼다. (강창광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