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너희가 재테크를 아느냐

406
등록 : 2002-04-24 00:00 수정 :

크게 작게

이재현 제일제당 회장의 마술적 재산불리기… 수익률 5천%의 재테크 비결은 뭔가

삼성 이건희 회장의 장남 재용(현 삼성전자 상무보)씨가 계열사들의 도움으로 불과 몇년 만에 수조원대 부를 축적한 데 이어, 삼성가의 장손인 이재현 제일제당 회장도 CJ엔터테인먼트를 손에 넣는 과정에서 현란한 재테크 수법을 발휘한 것으로 밝혀졌다. 법의 그물망을 완전히 빠져나갔는지는 아직 장담하기 어렵지만, 최근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가 추적해 밝힌 이 회장의 재테크 수법은 사람들이 마치 가슴 한편이 뻥 뚫린 것처럼 느끼게 하기에 딱 좋다.

CJ엔터테인먼트 30억원 투자해 50배 수익

사진/ 삼성가의 재테크 수법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제일제당의 대주주인 이재현 회장은 에스앤티클로벌을 통해 제일제당의 엔터테인먼트 상버부문을 헐값에 인수했다.
지난 2월 코스닥시장에 등록한 CJ엔터테인먼트의 주가는 4월19일 현재 액면가(1000원)의 21배가 넘는 2만1300원, 시가총액은 3053억원이다. 이 회장은 1천원에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신주인수권을 대규모로 보유하여 앞으로 권리를 행사할 경우 이 회사의 지분 38.8%를 갖는 최대주주가 된다. 지분의 현재가치는 약 1185억원이다. 이 회장은 애초 인수한 신주인수권의 일부를 이미 매각했는데, 그것까지 이 회장의 것으로 보고 계산하면 지분율은 48.33%, 자산가치는 1500억원이나 된다. 하지만 이 회장이 CJ엔터테인먼트의 지분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자한 돈은 채 30억원이 안 된다. 무려 50배의 수익을 낸 재테크의 비결은 무엇일까?

사진/ 제일제당 사옥. (김종수 기자)


제일제당이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진출한 것은 지난 95년 4월 무렵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제일제당은 미국의 영화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가 참여한 드림윅스SKG 설립에 1700억원을 투자했다. 드림윅스 자본 참여를 계기로 제일제당은 드림윅스 제작 영화에 대한 아시아 판권을 확보하고 95년부터 영화제작과 판매사업에 뛰어들었다.

그 뒤 제일제당이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얼마나 많은 투자를 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사업은 99년께부터 성공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98년 4월에 문을 연 복합상영관 CGV강변11이 성공을 거뒀고, 수입배급한 영화들이 잇따라 흥행에 성공했다. 제일제당은 그동안의 투자로 인한 손실을 만회할 수 있는 단계에 막 들어섰다. 이에 따라 제일제당은 99년 11월 엔터테인먼트 사업확대를 선언하고, “2004년까지 5천억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 3월13일 제일제당은 이런 계획을 갑작스레 철회했다. 그리고 그동안 키워오던 엔터테인먼트 사업부문을 ‘에스앤티글로벌’이라는 회사에 현물출자하는 방식으로 양도하기로 결정했다. 결정은 순식간에 실행에 옮겨져 그해 4월18일 현물출자가 이뤄졌다. 문제는 사업부문을 넘기면서 평가받은 자산의 가치다. 제일제당은 그동안 대규모 투자를 통해 일궈놓은 엔터테인먼트 사업부문을 불과 289억원에 넘겼다.

289억원이라는 자산가치는 어떻게 계산된 것일까? 매출채권과 미수금·선급금 등 당좌자산 95억원, 임차보증금 45억원 등은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제일제당이 보유한 CGV 지분(50%)과 무형자산에 대한 평가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한창 성장하던 CGV 지분은 장부가인 161억원으로 계산해 넘겼다. CGV는 99년에는 매출액이 3억7천만원에 지나지 않았으나, 2000년에는 매출액 495억원, 순이익 37억원을 낸 회사다. 2001년에는 매출액이 919억원, 순이익은 133억원이나 됐다. 적정주가를 연간 순이익의 10배 정도로 쳐도 2001년 지분 50%의 가치는 600억원이 넘는다. 그렇게 급성장한 회사의 지분을 장부가로 넘긴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영화사업은 제작과 외화수입의 노하우, 판권, 배급망, 인력 등이 아주 중요한데, 제일제당은 5년간 키워온 엔터테인먼트 사업부문의 무형자산의 가치도 겨우 8억원으로 계산해 넘겼다. 제일제당이 1700억원을 투자해 확보한 드림윅스의 판권도 현재 CJ엔터테인먼트가 갖고 있다.

하지만 ‘애스앤티글로벌’이란 회사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살펴보면 제일제당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느냐는 의문은 쉽게 풀린다. 바로 그 회사가 제일제당 대주주인 이재현 회장의 소유였던 것이다.

에스앤티글로벌은 97년 자본금 5천만원에 IMM컨설팅그룹이란 투자자문 및 경영자문회사로 설립됐다. 이후 두번의 유상증자를 거쳐 자본금을 7억2천만원으로 늘렸지만 엔터테인먼트 사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소규모 투자자문회사일 뿐이었다. 다만 3년 연속 순이익을 냈기 때문에 코스닥시장에 곧 등록할 수 있는 회사였다.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이 회장은 제일제당이 엔터테인먼트 사업부문 양도를 결정하기 전 대주주 권아무개씨에게서 에스앤티글로벌 지분 85%가량을 사들였다.

대주주의 헐값 인수로 누가 피해보나

에스앤티글로벌은 그해 3월3일 주주총회 때부터 제일제당에서 사업부문을 넘겨받을 준비를 착착 진행했다. 먼저 사업목적에 “영화, 만화영화 등 각종 영상물 등의 제작업”을 포함시켰다. 그리고 제일제당의 엔터테인먼트 사업부 본부장을 맡은 이아무개씨를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이 회장의 지분늘리기도 곧 이어졌다. 주주총회 4일 뒤인 3월7일 회사는 대규모 유상증자를 통해 7억원이던 자본금을 27억2천만원으로 늘렸다. 동시에 문제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했다.

에스앤티글로벌이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는 당시 자본금의 3배가 넘는 90억원어치나 된다. 이 회장은 그 중 85%를 인수했다. 신주인수권은 사채권면금액만큼, 액면가로 신주를 살 수 있는 조건이었다. 이 신주인수권 행사가격은 과연 적절한 것이었을까? 한달 남짓 지난 4월18일 제일제당은 CJ엔터테인먼트에 사업부문을 현물출자하고 주식을 넘겨받았다. 당시 제일제당은 액면가의 5배로 계산해 주식을 받았다. 그것과 비교하면 신주인수권 행사가격은 5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제일제당은 헐값에 사업부문을 넘기고, 이 회장은 또 헐값에 CJ엔터테인먼트 지분을 확보함으로써 제일제당이 오랫동안 일궈놓은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고스란히 넘겨받은 것이다.

사진/ 제일제당은 대규모 자금을 투자해 CJ엔터테인먼트를 키워놨다. 영화시장에서 막강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CGV. (씨네21 오계옥 기자)
CJ엔터테인먼트는 제일제당에서 엔터테인먼트 사업부문을 인수한 지 2년 만인 지난 2월 코스닥시장에 등록하는 데 성공했다. 주가는 액면가의 20배를 넘었고, 한때 30배에 이르기도 했다. 이로써 수익률 5천%에 이르는 이 회장의 재테크도 마무리됐다. 코스닥 등록과정에서 대규모 신주인수권부사채가 이 회장에게 넘어간 사실이 밝혀지자, 공정거래위원회는 “제일제당이 엔터테인먼트 사업부문을 에스앤티글로벌에 현물출자한 것이 대주주인 이재현 회장을 부당하게 지원하기 위한 부당내부거래인지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정위의 조사는 제일제당의 현물출자가 기존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했는지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다. 제일제당 쪽으로서는 큰 부담은 없는 상태다.

이재용씨의 재테크는 참여연대의 계속된 문제제기로 지금도 법정싸움을 진행하고 있다. 이재현 회장의 경우는 조용히 넘어갈 수 있을까?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김선웅 변호사는 “이미 공개된 사실만 보더라도 제일제당 쪽이 사업부문을 현물출자한 것은 유망 사업부문을 대주주에게 헐값에 넘긴 행위”라며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한 이사들의 책임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용어설명: 전환사채와 신주인수권부사채

둘 다 이자를 받는 ‘사채’다. 그러나 전환사채는 사채로 받지 않고, 미리 정한 전환가격으로 돈 대신 주식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딸려 있다. 주가가 오르지 않으면 전환권을 행사하지 않고 그냥 사채로 상환받으면 된다. 신주인수권부사채는 신주를 인수할 수 있는 권리가 딸린 사채라는 뜻이다. 사채부분은 상환받고, 주가가 오르면 미리 정한 행사가격으로 신주를 받아 시세 차익도 얻을 수 있다. 물론 신주를 인수할 때는 행사가격에 맞춰 돈을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