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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황제복권 나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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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4-2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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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연합복권 ‘로토’에 업계 술렁… 난립한 복권시장 평정 가능성 높아

사진/ 로토는 요지경 복권시장의 절대강자가 될 것인가. 로토복권은 단말기를 통해 직접 발행돼 유통과정이 단순해진다. (박승화 기자)

“난립한 복권시장을 평정하겠다.”

온라인 연합복권 ‘로토’ 발행을 앞두고 복권시장이 숨을 죽이고 있다. 오는 9월 로토 발행과 함께 복권시장의 지형도가 크게 바뀔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미 서울 중곡동 등 몇몇 지역에서는 로토복권 발행에 대비해 복권전문점인 ‘복권방’이 생기는 등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로토복권 발행 준비도 착착 진행되고 있다. 발행기관인 국민은행은 최근 시스템 사업자 코리아로터리서비스(KLS)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해 사업 시작을 위한 기본적인 골격을 갖췄다. 오는 5월 KLS가 정식 시스템 사업자로 선정되면 단말기 설치와 판매망 구축 등 본격적인 준비작업에 들어갈 전망이다. 국민은행은 기존의 복권 가판대뿐 아니라 편의점·약국 등 대중이 많이 이용하는 시설을 중심으로 단말기를 설치할 계획이어서 일반인의 복권구매 행태도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구매자가 번호 골라 단말기에 입력


사진/ 세계 각국에서 발행되고 있는 로토복권용 슬립들, 로토구매자는 번호를 선택한 뒤 슬립에 입력하고 영수증을 받는다. (박승화 기자)
로토는 기존 종이복권과 달리 구매자가 스스로 번호를 선택해 전용 단말기에 입력하는 새로운 방식의 복권이다. 구매자가 원하는 번호를 슬립(OMR 카드의 일종)에 표시한 뒤 전용 단말기에 집어넣으면, 그 내용을 전용선을 통해 중앙 서버에 전달하고, 구매자는 간단한 영수증을 발급받는다. 이 영수증이 기존 종이복권을 대신하는 것이다. 선택할 수 있는 숫자는 1∼49 중에서 6개를 고르면 된다. 물론 이 경우 여러 사람이 같은 번호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럴 때는 당첨금을 사람 수대로 똑같이 나눈다. 반대로 당첨자가 없는 경우에는 당첨금이 다음회로 이월된다. 따라서 몇번 당첨자가 나오지 않으면 당첨금이 수십억원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 2억9500만달러(3800여억원)의 복권 당첨자가 나온 것도 미네소타 등 22개주가 연합해 발행하는 온라인복권 파워볼이었다. 그뿐 아니다. 1장의 슬립으로 10장의 복권까지 살 수 있다. 구매자는 기존 종이복권보다 다양한 게임을 즐길 수 있고, 거액 당첨금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복권업계에서는 로토 발행을 계기로 복권시장 자체가 두배 이상 커질 것이며, 이 가운데 로토가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로토는 구매자 못지않게 복권시장 구조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발행·유통·판매 모든 면에서 종이복권의 시스템을 혁신적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먼저 불필요한 복권을 발행하지 않게 된다. 판매현장에서 단말기를 통해 직접 발행하기 때문에 팔리지 않아 폐기처분하는 물량이 사라지는 것이다. 현재 종이복권의 경우 전체 발행 물량의 40% 안팎을 폐기처분하고 있다. 유통과정도 단순해진다. 발행기관과 판매점이 전용선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일일이 복권을 사올 필요가 없다. 당연히 유통마진을 따먹는 중간 유통업자도 사라지게 된다.

현재의 복권시장은 그야말로 요지경이다. 복권 종류만도 주택복권·체육복권·기술복권 등 모두 10가지에 이른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주택복권 한 가지뿐이었으나 90년 체육복권을 시작으로 기술복권·복지복권·기업복권·자치복권·관광복권 등 여러 종류가 쏟아져나왔다. 최근에는 녹색복권(99년), 플러스복권(2001년), 엔젤복권(2002년) 등 거의 해마다 새로운 복권이 한 가지씩 선을 보이는 실정이다. 복권이 난립하다 보니 몇몇 복권은 판매가 극히 부진한 실정이다. 기업복권·복지복권·자치복권·녹색복권은 2000년 기준으로 연간 판매액(2000년 기준)이 200억원대에 지나지 않는다.

복권 발행을 통한 공익기금 조성 또한 저조하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복권판매액 가운데 당첨금과 사업비, 판매마진을 빼고, 기금에 편입되는 금액의 비율을 말하는 기금조성률은 관광복권·주택복권·복지복권 3개만 30%를 넘고 있다. 체육복권과 기술복권은 20%대며, 기업복권(16.9%), 자치복권(14.5%), 녹색복권(11.9%)는 조성률은 10%대에 머물러 과연 계속 발행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제기된 상태다. 이들 3가지 복권은 실제 기금조성액도 각각 39억원, 36억원, 32억원에 지나지 않아 결국 사업자들만 돈을 벌어가는 판이다.

이처럼 복권의 판매실적과 기금조성률이 저조한 것은 무분별한 판매경쟁 때문이다. 일단 소매인에게 판매마진 10%가 빠져나간다. 발행기관들은 또 판매량을 늘리려고 중간 유통업자에게 일정한 비율의 마진을 더 얹어주는 할인판매를 한다. 그만큼 복권판매 수익은 줄어들고 기금조성률도 낮아진다. 한 복권 발행업체 관계자는 중간 유통업자들이 끼여들다 보니 실제 판매마진이 20∼25%에 이르는 실정”이라며 “당첨금(50%)과 판매마진을 빼면 발행기관에 돌아오는 돈은 25∼30%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발행비·광고선전비·관리비 등을 지출하면 기금으로 전입하는 돈은 10%대로 내려앉게 되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한쪽에서는 당첨금 상한선을 두거나 발행복권 수를 줄이자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불합리한 유통구조의 혁신 없이는 궁극적으로 기금조성률을 높일 수 없기 때문이다.

중간 유통업자 불필요… 기금조성률 높여

그렇다고 복권에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복권은 사행산업이면서도 경마나 경륜보다 사행성이 그다지 강하지 않다. 투자금액이 절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민 1인당 복권 판매액은 1만3천원 정도다. 전체 매출액도 6천억원에 지나지 않아 경마 6조원, 경륜 2조1천억원에 비하면 규모가 매우 작은 수준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난립한 복권시장을 정리하고, 기금조성률만 30%대로 끌어올릴 수 있다면 공익기금 조성이라는 애초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미국·캐나다·영국·프랑스·대만 등 세계 60여개국들이 이미 온라인 복권을 발행하고 있지만 사회문제로 비화하지는 않았다. 예일대 등 미국의 유명 사립대학들은 복권에서 조성된 기금으로 학교 재정을 충당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로토복권의 발행이 장기적으로 난립한 복권시장을 정리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선택의 폭이 넓고 당첨금이 많기 때문에 종이 복권보다 경쟁력이 있고, 건교부·과학기술부·노동부·중소기업청 등 7개 부처가 연합해 발행하기 때문에 복권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 로토가 종이복권을 밀어내고 복권시장을 평정할 것이란 전망이다. 물론 즉석식 복권은 현장에서 ‘긁는’ 재미 때문에 현재의 시장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남기 기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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