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생명 인수 급진전… 군살 빼내고 자산규모 크게 늘어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아직 공적자금관리위원회의 심사를 비롯해 최종 인수 성사까지는 몇 가지 절차가 남아 있지만, 재계는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인수경쟁을 벌이던 메트라이프생명이 지난 3월 협상진행을 포기한 뒤 예금보험공사와 인수협상을 벌이고 있는 곳은 이제 한화뿐이다.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 의지는 확고하다. 그룹의 미래가 달린 일이라며, 사활을 걸고 매달리고 있다. 정부도 이번에 대한생명을 매각하지 못할 경우 또 한번 매각실패라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된다.
오릭스와 컨소시엄 구성해 유력 인수자로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가 성사될 경우 그것은 올해 재계에 지각변동을 불러일으키는 최대사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생명과 대한생명의 자회사인 신동아화재, 63빌딩 등 한화가 인수하려는 회사들의 전체 자산규모는 21조원가량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4월3일 올해 출자총액제한 대상 기업집단을 지정하면서 발표한 한화의 자산규모는 9조9천억원으로 재계 16위다. 몸집이 두배가 넘는 대한생명을 인수하게 되면 한화는 순식간에 자산 30조원으로 재계순위 7위에 오르게 된다. 한국전력과 한국통신 등 공기업 2개를 빼면 삼성, LG, SK, 현대자동차에 이어 일약 5위다. 자산규모가 크다는 것이 자랑거리인 시대는 지났지만, 돈 되는 사업을 그다지 갖지 못해 고민하던 한화로서는 대한생명 인수가 획기적인 변신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대한생명 인수전에 나선 곳은 정확히는 한화-오릭스 컨소시엄이다. 한화와 일본의 오릭스그룹, 오스트레일리아의 매커리보험이 공동으로 대한생명의 지분 50%가량을 인수할 예정이다. 한화는 애초 인수전에 나서기 전에는 2대주주로 참여하겠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실제 인수전에 뛰어들면서는 1대주주 쪽으로 바뀌었다. 한화 관계자는 “외국인 주주들의 지분이 인수지분의 절반을 넘기는 하겠지만, 단일주주로는 우리가 1대주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계 지분이 더 많도록 하는 것은 외국계 회사라는 점이 고객들에게 더 호소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정부와의 관계에서 보호막이 될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한화가 대한생명 인수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99년부터다. 당시 대한생명 인수경쟁에 나선 곳은 ING그룹 등 외국계 보험사와 LG그룹이었다. 그러나 재정경제부 쪽이 “5대그룹의 신규사업 진출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LG의 참여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자 금융감독위원회는 외국계 일색이 돼버린 대생 입찰에 국내 자본을 참여하도록 구색을 맞추는 차원에서 한화를 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시 한화는 98년 계열사인 한화종금을 정리하면서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전력 때문에 3차 입찰에서 결국 탈락했다. 외국계 보험사들이 모두 인수에 실패한 것이 한화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한화는 그 뒤 오릭스를 끌어들여 다시 인수전에 나서면서 가장 유력한 인수후보로 떠올랐다. 성공적 구조조정… 김승연 회장 재기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는 오랜 세월 와신상담해온 김승연 회장의 화려한 재기를 뜻한다는 점에서 재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김 회장은 지난 94년 외화도피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다. 이후 대외활동을 크게 줄이는 등 되도록 나서지 않고 조용히 살아왔다. 대규모 설비가 필요한 업종을 거느렸던 만큼 외환위기도 한화에 큰 시련을 안겼다. 지난 96년 한화의 부채비율은 1000%가 넘었다. 그러나 다른 그룹보다 가장 앞서 97년 12월 한화바스프우레탄을 팔고, 이어 속전속결로 한화NSK정밀, 한화GKN, 한화기계 베어링 부문을 매각하는 등 돈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팔았다. 99년 3월에는 주력기업 중 하나인 한화에너지도 팔아치웠다. 97년 32개던 계열사는 지난 4월3일 현재 26개로 줄어 있다. 제값을 받겠다며 버티기보다는 돈을 적게 받더라도 신속하게 매각을 타결짓는다는 한화의 구조조정 전략은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화 계열사의 모든 사무실에는 지금도 ‘필생즉사, 사즉필생’(죽을 각오를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이라는 글귀가 걸려 있다. 지난 98년 6월 김 회장이 “그런 각오로 구조조정에 임하자”며 붙이도록 한 것이다. 한화의 한 직원은 “그것이 이제는 거의 우리의 철학처럼 됐다. 앞으로도 뗄 이유가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이후 한화의 목표는 ‘금융그룹’으로의 변신이다. 김승연 회장은 지난 96년 10월 창사 44주년 기념식에서 “화학과 유통·레저, 금융을 그룹의 주력으로 키워나가야 한다”며 “이를 위해 핵심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현재 한화의 금융계열사는 한화증권, 한화투자신탁운용, 한화파이낸스, 한화기술금융 등 4곳이다. 대한생명과 신동아화재를 인수하게 되면 은행과 카드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부문의 금융업을 포괄하게 된다. 한화는 그동안 금융업으로 발을 계속 뻗쳐왔다. 지난 2000년 창업투자회사인 한화기술금융의 설립 인가를 받기 위해 한화종금 부실책임 분담차원에서 1300억원어치의 저리 증권금융채권을 인수했다. 지난해에는 충청은행의 옛 주주(16.6%)로서 부실책임 여부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인가가 보류되기는 했지만, 선물업 진출도 시도했다.
대한생명이 한화에 인수될 경우 영업이 활기를 띨 것이라는 데 이견을 다는 사람은 없다. 대한생명은 생보업계에서 삼성생명, 교보생명에 이어 3위를 달리고 있다. 4위와는 차이가 크고, 2위인 교보생명과는 엎치락뒤치락 2위 다툼을 벌이고 있다. 생보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한생명이 생보업계의 판도를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그동안의 부실생보사라는 멍에를 벗게 되면 영업이 활기를 찾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한화는 63빌딩을 인수에도 상당한 의미를 두고 있다. 관광명소로서의 가치는 많이 떨어졌지만, 63빌딩은 여전히 국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영위해오던 유통 및 레저산업과 시너지 효과도 높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한화는 주5일제 근무에 대비해 제주도에 골프장과 콘도를 세우는 등 레저사업도 대폭 강화할 예정이다.
조직 키우고 회사 이름 바꿀 예정
대한생명의 인수가격은 신동아화재와 63빌딩 등을 포함해 1조원 안팎에서 협상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감안하면 한화가 지불해야 할 대금은 5천억원가량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한화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3월 서울 장교동의 한화빌딩을 1376억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인수회사를 보면 한화석유화학이 금융기관 등과 공동으로 출자해 설립하게 될 기업구조조정 부동산투자 회사이므로, 매각이라기보다는 자산유동화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자금마련에서 금융기법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화는 이런 방식으로 지난해 하반기에 3천억원 이상을 마련했다. 한화 쪽은 “올해 하반기에도 부동산 매각 등을 통해 5천억원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화라는 회사 이름의 유래를 아는 사람들은 지금도 그 이름에서 ‘불꽃놀이’를 연상한다. 한화는 ‘한국화약’을 줄인 것이다. 외국어로 번역하면 ‘한국폭약집단’처럼 비친다고 하여 지난 94년 고민 끝에 약칭으로 회사 이름을 바꾼 한 것이다. 그러나 한화는 내친김에 다시 한번 이름을 바꿀 계획이다. 미래기업으로서 이미지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올해 10월로 창사 50돌을 맞는 한화는 지금 63빌딩의 새 주인이 되는 꿈을 꾸며, 혹시 인수에 걸림돌이 될 돌발변수가 생기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사진/ "대한생명을 잡아라!" 한화그룹은 국내에서 가장 높은 63빌딩을 인수해 레저산업을 크게 강화할 예정이다. (한겨레21)
대한생명 인수전에 나선 곳은 정확히는 한화-오릭스 컨소시엄이다. 한화와 일본의 오릭스그룹, 오스트레일리아의 매커리보험이 공동으로 대한생명의 지분 50%가량을 인수할 예정이다. 한화는 애초 인수전에 나서기 전에는 2대주주로 참여하겠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실제 인수전에 뛰어들면서는 1대주주 쪽으로 바뀌었다. 한화 관계자는 “외국인 주주들의 지분이 인수지분의 절반을 넘기는 하겠지만, 단일주주로는 우리가 1대주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계 지분이 더 많도록 하는 것은 외국계 회사라는 점이 고객들에게 더 호소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정부와의 관계에서 보호막이 될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한화가 대한생명 인수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99년부터다. 당시 대한생명 인수경쟁에 나선 곳은 ING그룹 등 외국계 보험사와 LG그룹이었다. 그러나 재정경제부 쪽이 “5대그룹의 신규사업 진출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LG의 참여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자 금융감독위원회는 외국계 일색이 돼버린 대생 입찰에 국내 자본을 참여하도록 구색을 맞추는 차원에서 한화를 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시 한화는 98년 계열사인 한화종금을 정리하면서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전력 때문에 3차 입찰에서 결국 탈락했다. 외국계 보험사들이 모두 인수에 실패한 것이 한화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한화는 그 뒤 오릭스를 끌어들여 다시 인수전에 나서면서 가장 유력한 인수후보로 떠올랐다. 성공적 구조조정… 김승연 회장 재기

사진/ 지난 2000년 6월 금융감독위원회를 찾아 대한생명 인수의향서를 전달하는 한화그룹 김승연(오른쪽)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