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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산업계 강타한 ‘먼지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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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4-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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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황사에 정밀기계업 재해 속출… 공기청정기 판매 늘고 홈쇼핑업체 등은 특수

사진/ 중국 사막지대에서 날아오는 황사가 산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황사가 서울 도심을 부옆게 뒤덮었다. (이정용 기자)
올 봄 한반도 상공에 먼지폭탄이 잇따라 터지고 있다. 뿌옇게 하늘을 뒤덮은 황사로 대기중 먼지농도는 평소의 30배까지 급상승했다. 기상관측소에 따르면 하루평균 미세먼지농도(평소 100㎍/㎥가량)는 지난 3월21일 밤 무려 3006㎍/㎥까지 치솟았다.

항공업 20억여원 손실… 전자업 초비상

몇차례 전국을 덮친 사상 최악의 황사로 초등학교 휴교령이 내려졌고, 황사먼지가 비닐하우스에 켜켜이 쌓이면서 햇빛 투과율을 떨어뜨려 농가에도 비상이 걸렸다. 호흡 불편이나 안질환 등 사람한테 직접 끼치는 피해야 말할 것도 없지만, 황사 기습으로 가장 시달리고 있는 곳은 항공사다.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1차 대규모 황사가 몰아닥친 지난 3월21∼22일과 2차 황사가 기습한 4월8∼9일 나흘간 항공기 결항이 속출했다. 이 기간 동안 김포공항은 모두 205편의 비행기가 뜨거나 내리지 못했다. 항공업계는 이번 두 차례 황사가 약 20억여원의 매출손실을 불러온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쪽은 “다른 일반 제조업 공장은 문을 닫아걸고 작업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비행기 자체가 곧 공장이라 황사에 속수무책”이라고 한숨지었다.


항공사 못지않게 초비상이 걸린 곳은 초정밀기계업종이다. 초정밀 부품을 다루는 전자·반도체업체는 고도의 청정도를 유지해야 한다. 황사먼지가 조금이라도 생산라인에 침투하면 제품에 치명적인 결함을 낳고 그만큼 불량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하이닉스반도체·LG필립스LCD 등은 청정작업실의 3중 필터 바깥에 모래먼지를 걸러낼 수 있는 필터를 추가로 장착하고, 황사가 완전히 사그라질 때까지 필터 교체주기를 짧게 가져가고 있다. LG전자 서울 금천구 가산동 휴대폰 단말기 공장은 외부공기와 내부 공기를 순환시켜주는 중앙제어장치 가동을 일시 중단하기도 했다. 날씨정보업체인 케이웨더(주) 안상욱 사장은 “황사가 극심해지면 반도체 공장의 불량률이 4배로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며 “이런 불량률과 공조장치가 망가지는 등의 피해를 합쳐 황사로 인한 산업계의 피해가 1조원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진/ 황사에 울고 웃고, 반도체 공장이 초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한겨레 강창광기자)
삼성전자는 생산라인을 바깥으로부터 완전 차단하기 위해 공장에 들어가는 작업자의 에어(공기)샤워 시간을 크게 늘렸다. 잠실운동장만한 공장이 11개인 삼성전자 기흥공장은 “잠실야구장에 동전 하나 떨어져 있어도 안 될 정도”로 외부 불순물을 차단하고 있다. 바깥에 눈이 오든 바람이 치든 365일 똑같은 상태로 생산라인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작업복을 입고 들어간다 해도 눈썹이나 콧등은 노출될 수밖에 없다”며 “눈썹에 달린 먼지 하나까지 죄다 털어내기 위해 에어샤워기에 들어가는 시간을 20초에서 1분 가까이로 더 늘렸다”고 말했다.

도장작업하는 업종도 황사가 덮치는 날이면 바짝 긴장해야 한다. 르노삼성자동차는 차량을 구입할 때 불소도장 처리를 옵션으로 붙였다. 르노삼성 쪽은 “불소로 차체를 한번 더 칠하면 산성비에 오래 견디고 황사모래로 흠집이 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며 “고급차를 중심으로 10여만원이 더 드는 불소처리를 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황사로 인한 조업중단은 없었지만 조선업계도 날씨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우조선 이상우 팀장은 “선박은 페인트칠을 7∼8회 하는데 황사가 닥치면 작업을 늦출 수밖에 없다”며 “마지막 칠까지 다 해놓았는데 갑자기 황사가 몰아닥치면 큰 문제”라고 우려했다.

실내에 매장이 있는데도 황사로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업종도 있다. 백화점 등 유통업체가 그런 곳이다. 바깥 나들이가 잦아들면서 고객의 발길이 뜸해졌기 때문이다. 일제히 봄 정기세일에 들어간 백화점마다 올 들어 20%를 웃돌던 매출 신장률이 세일기간에도 불구하고 10%대로 떨어지는 등 황사가 매출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롯데백화점 쪽은 “황사로 매출에 타격이 왔지만 그나마 황사가 매출의 60∼70%를 차지하는 금요일 및 주말을 비켜가서 다행”이라고 했다. 사실 실내공간으로 치면 백화점만큼 공조시스템이 잘 갖춰져 황사를 피할 수 있는 곳도 드물다. 백화점들은 자연광 대신 매장 조명을 이용해 상품 구매욕구를 높이려고 일부러 매장에 창문을 트지 않고 있다. 창문이 없는 탓에 그만큼 신선한 공기를 유지하는 공조장치가 완벽하게 설치돼 있는데, 사람들의 바깥 나들이 자체가 줄어들면 이것도 별 소용이 없는 것이다.

반면에 황사로 반짝 특수를 누리는 곳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상품이 공기청정기다. 웅진코웨이 쪽은 “지난해 12월 공기청정기를 첫 출시했는데 두 차례 큰 황사가 기습했을 때 하루에 수백대씩 계약이 이뤄졌다”며 “렌털방식으로 불티나게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고 전했다. 황사가 심해지면 실내 공기청정기 센서가 빠르게 돌면서, 마치 담배를 피울 때 반응하는 것처럼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갑자기 색깔이 변한다. 이를 눈으로 확인한 사람들이 “아, 황사가 무섭긴 무섭구나” 하면서 서둘러 공기청정기를 설치한다는 것이다.

사진/ 홈쇼핑업체는 안방 쇼핑객들로 특수를 누렸다.(한겨레21)
안방에서 쇼핑할 수 있는 홈쇼핑업체도 백화점의 매출 감소에 따른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 CJ39쇼핑은 평소 하루 매출이 50억원이던 것이 황사가 덮친 지난 8∼9일에는 65억원대로 늘었다. 특히 황사상품의 매출이 늘자 제품 편성에서 가정용 공기청정기나 코 세정제인 코크린 등을 늘리고 있다. LG홈쇼핑은 황사가 불어닥치자 아토피 피부염 등에 효능이 좋은 제품을 방송에 급하게 끼워넣었다. LG홈쇼핑 쪽은 “황사가 심한 특정한 날만 아니라 황사 앞뒤로 매출이 꾸준히 늘고 있어 ‘황사매출’이 지속되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황사 관련 날씨마케팅 뜬다”

비록 전체 매출은 줄었지만 백화점 쪽이 황사 탓에 장사를 다 망치고 있는 건 아니다. 백화점 안에서도 매장별로 희비가 엇갈려, 선글라스, 스카프, 모자, 클렌징크림 등 황사 관련 상품은 매출이 늘어나고 있다. 롯데백화점의 선글라스 제품은 하루평균 매출이 3억8천만원가량으로 예전에 견줘 60% 가까이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선글라스 기획판매에 나서는 등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종합상사인 대우인터내셔널은 최근 사막화 방지작업을 벌이고 있는 네이멍구 환경업체 YILI그룹과 굴삭기 등 중장비 500만달러어치 수출계약을 맺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한·중 양국 정부가 공동 추진 중인 네이멍구 사막화 방지 프로그램에 따라 선적이 이뤄진 것”이라며 “이번 계약을 계기로 중국 쪽으로부터 주문이 쏟아져들어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규모 황사가 올 봄에 2∼3차례 더 우리나라에 찾아올 것으로 예상되는 등 황사는 ‘스쳐가는’ 재해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큰비나 눈이 닥쳤을 때 농작물 피해 등을 보험으로 보상하는 날씨파생상품은 이미 나와 있지만 황사는 아직 위험 회피에 대한 축적 자료가 없다. 케이웨더 안상욱 사장은 “황사는 한·중·일 3국 외에 다른 나라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갑자기 등장한 것이라 그동안 연구가 제대로 안 됐다”며 “앞으로 황사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날씨마케팅이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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