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비상경제회의. 청와대사진기자단
빌려주려 준비한 돈과 빌려준 돈 정부는 금융시장 안정 용도로 40조원을 배정했다. 채권시장안정펀드나 회사채 신속인수제, 증시안정기금에 들어가는 재원이다. 여기선 준비자금의 성격과 실제 집행되는 자금 규모의 차이가 부각된다. 예컨대 한 은행의 대출 여력이 1천원이고, 이 중 10원만 대출했다고 치자. 이 은행은 1천원을 쓴 것일까, 아니면 10원만 쓴 것일까. 굳이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은 그 답을 ‘10원’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원하는 답은 ‘1천원’이다. 채권시장안정펀드나 회사채 신속인수제 등에 배정된 40조원은 ‘준비자금’ 성격이 짙다. 실제 다 쓰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주로 회사채와 기업어음 등을 매입해 코로나19로 급등한 시중금리를 떨어뜨리는 목적으로 운용되는 자금이다. 금리가 낮아지면 자금을 채권시장에서 조달하려는 기업 처지에선 부담이 준다. 다시 말해 시중금리를 어느 정도 낮출지, 얼마큼 기업들의 자금 수요가 있을지에 따라 실제 집행액은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정부도 자금 집행을 시장 상황에 따라 단계적으로 할 예정이다. 채권시장안정펀드의 경우 2008년 금융위기 직후에도 10조원 규모로 조성됐으나 실제 집행된 금액은 5조원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러하기에 금융 안정 대비 자금 규모를 40조원이 아닌 100조원이라고 발표해도 토를 달기 어렵다. 정부가 과시성 발표를 했다는 뜻일까? 꼭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 정부는 준비자금을 많이 책정하는 것으로 시장 안정을 유도할 수 있다. 이는 외환보유액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적정 외환보유액은 추산하기 힘들지만 시장의 기대보다 정부가 보유한 외환이 적다면 그 나라 통화는 환투기 세력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반대로 정부가 보유한 ‘실탄’이 풍부하다면 투기 세력은 발붙이기 어렵다. 외환을 많이 보유한 것 자체로 돈 한 푼 안 쓰고 시장 안정을 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잠깐. 준비자금에서 실제 집행하는 돈은 그냥 주는 것일까, 빌려주는 것일까? 이것도 빌려주는 돈이다. 빌려주는 돈이기에 정부 부담은 실제 집행 자금보다 크게 줄어든다. 정부가 내놓은 100조원 수준의 지원책은 앞에서 보듯 ‘빌려주는 돈’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빌려주는 돈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정부는 중앙은행이 아니기에 돈을 마구 찍어낼 수는 없다. 돈을 빌려주는(혹은 보증하는) 주체는 정부 산하 국책 금융회사다.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신용보증기금 같은 곳이다. 이들 기관 역시 돈을 찍어내지 못한다. 이들의 대출(혹은 보증) 여력은 정부가 준 종잣돈(자본)에서 생긴다. 종잣돈과 대출 여력 보증회사의 경우 정부가 100원을 주면, 통상 10배(보증배율)인 1천원까지 보증할 수 있다. 100원이 1천원이 되는 셈인데, 이 과정을 레버리지(지렛대)라고 생각하자. 보증으로 나간 1천원 중 10% 정도는 부실이 난다는 경험 속에 보증배율이 산정된다. 물론 예상치 못한 경제위기가 닥치거나 신용평가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보증배율은 좀더 내려갈 수 있다. 대출기관인 국책은행은 ‘자기자본비율’이란 좀더 복잡한 개념 속에 대출 여력을 산정한다. 기본은 정부가 준 종잣돈이 많을수록 대출 여력도 커진다는 점이다. 이 종잣돈은 정부의 실부담금이며 세금으로 조성된다. 정부는 100조원 대책을 발표하면서 국책 금융회사에 종잣돈을 추가로 준다(자본 확충)는 계획을 내놓지 않았다. 정부가 아직 자기 주머니에서 꺼낸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김경락 <한겨레> 기자 sp96@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