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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수입자동차 ‘쾌속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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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3-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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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회복 분위기 타고 대중화 추세… 업체들 매장 늘리며 잇따라 신차 출시

사진/ BMW 745Li. (이용호 기자)
서울 양천구 목동에 사는 중소기업 사장 박아무개(46)씨는 지난 2월 1년6개월길 탄 체어맨을 처분하고 배기량 3천cc의 BMW530i를 8천만원에 샀다. 국산차를 애용해왔지만 2∼3년마다 이뤄지는 잦은 모델 교체가 박씨를 짜증나게 했다. 최신형 고급차를 사도 몇년 굴리고 나면 낡고 별볼일 없는 모델이 되어버리는 데 대한 불만이 컸던 것이다. 그래서 박씨가 선택한 것이 BMW였다. “수입차의 경우 한 종류의 모델이 보통 8∼10년 유지되기 때문에 오래 타도 늘 신형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사는 성형외과 의사 이아무개(48)씨도 3월 중순 토요타자동차의 렉서스 한대를 사들였다. 차량 가격 5530만원, 배기량 3천cc ES300 풀옵션 모델이다. 5년 동안 구형 뉴그랜저를 타던 그는 차량 교체시기가 다가오면서 에쿠스 3.0을 사려고 했으나 수입차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상대적으로 잔 고장이 적고, 차체가 작아 자가운전을 하기에 편리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수입차 가격이 생각보다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씨는 “에쿠스3.0 풀옵션(5100만원)과 비교할 때 400여만원이 더 들어가지만 차량 수명이 훨씬 길어 가격이 높다고 느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산 고급차보다 크게 비싸지 않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경기회복의 분위기 속에서 국산차를 수입차로 바꾸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BMW 딜러인 서울 청파동의 서울모터스 김영선 사장은 “매장을 찾는 고객의 70%가량이 기존에 국산차를 타던 사람들”이라며 “올 들어 수입차 고객이 급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산차 이용자들이 수입차를 찾다 보니 수입차 전체 판매량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올해 1∼2월 수입차 판매량은 모두 1625대. 지난해 1∼2월 판매량 959대에 비해 69.4%가 늘어났다. 수입차 시장점유율 1위인 BMW가 481대 팔렸고, 토요타의 렉서스가 275대, 벤츠가 255대나 팔렸다. 볼보와 크라이슬러는 같은 기간 각각 123대와 122대가 팔렸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수입차 매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도 잦아졌다. 토요타 서울 대치동 매장의 정석훈 과장은 “지난해 하루 2∼3건에 지나지 않던 계약이 4∼5대로 늘었다”며 “주문이 밀리는 바람에 기다리다 지쳐서 다른 차종으로 바꾸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수입차 시장이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것이다.

수입차 판매가 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말. 경기회복 조짐이 보이면서 소비가 살아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입차 딜러들은 단순히 경기의 영향만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수입차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 자체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서울모터스 김영선 사장은 “불과 1∼2년 전만 해도 수입차 고객은 대기업 오너와 사장, 부동산 거부, 유명 연예인 등 소수의 한정된 계층이었다”며 “지금은 고객층이 훨씬 넓고 다양해져 특정 계층을 일컫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자동차 관련 인터넷 여론조사 기관인 에프인사이드(www.f-inside.co.kr)가 지난해 말 실시한 조사에서도 국민들의 의식 변화는 뚜렷했다. 포털사이트 ‘다음’ 이용자 12만6천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형편만 된다면 수입차를 타보고 싶다고 대답한 사람이 57.8%로 나왔다. 또 수입차는 그 가격만한 가치가 있다는 응답자가 44.1%에 달했다. 국산·수입차 구분이 사실상 무의미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42.5%였다. 반대로 어떤 경우라도 수입차를 안 사겠다는 응답자는 18.7%에 지나지 않았다. 수입차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회적·경제적 환경도 달라졌다. 먼저 정부가 통상마찰을 우려해 외국산 차량 수입에 긍정적이다. 최근 몇년 동안 관세와 특소세를 대폭 낮췄고, 이에 따라 ‘수입차는 비싸다’는 고정관념도 많이 사라졌다. 실제 에쿠스4.5 풀옵션의 가격은 8200만원에 달해 웬만한 수입차 가격을 넘어선다. 국산차와 수입차의 가격 차이가 점점 좁혀지고 있는 것이다. 올 들어 렉서스·크라이슬러·볼보·아우디 등 5천만원 안팎의 수입차가 잘 나가는 것이 이를 보여준다. 툭하면 호화·사치 생활자란 이름으로 수입차 소유자들을 세무조사 대상으로 삼던 관행도 이젠 많이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수입차를 사려고 하다가도 세무조사 대상이 될까 봐 차량 구입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문직·중산층도 수입차 대열에 합류

이러한 여건 변화는 수입차의 잠재 고객이던 부유한 중산층의 구매 욕구를 자극했다. 회장이나 사장만 타던 수입차를 임원들이 타게 됐으며,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 대거 수입차 고객으로 등장했다. 벤처기업인과 고소득 금융인 등도 빼놓을 수 없는 고객들이다. 연령 또한 낮아졌다. 이전의 50대 이상에서 30대 후반∼40대 중반의 새로운 구매 고객층이 등장한 것이다. 연령이 낮아진 만큼 자가운전자 비율이 늘어난 것은 물론이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수입차 대중화의 조짐이 엿보이는 상황이다.

수입차 업체들의 대응도 빨라졌다. 확대되는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신차를 출시하고 매장 늘리기에 여념이 없다. 폴크스바겐이 지난 1월 서울 신사동에 대형 매장을 여는 등 수입차 업체들의 신규 매장 개설이 잇따르고 있다. 벤츠와 포드는 하반기 개장을 목표로 서울 강남 도산대로에 신규 전시장을 준비중에 있다. 이들은 또 미국과 유럽에서 선보인 최신 차종을 신속하게 국내에 출시하는 등 한국시장의 비중을 높여가고 있다. 지난해 말 0.7%에 머물던 내수시장 점유율이 장차 5%까지 커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국내 수입차 판매 1위인 BMW는 지난 3월12일에는 뉴7시리즈 가운데 하나인 배기량 4400cc의 고급형 745Li를 출시했다. 스포츠카가 아니면서도 시속 100km에 도달하는 시간이 6.3초에 지나지 않는 뛰어난 순발력을 과시한다. 기존 모델 가운데서는 배기량 3천cc의 530i가 시장을 누비고 있다. 가격이 8150만원으로 그다지 비싸지 않은데다 성능이 뛰어나 단일 차종으로 판매 2위를 지키고 있다. BMW는 올해 수입차 판매량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전국 28개 전시장을 연말까지 35개로 늘릴 예정이다.

토요타는 지난해 12월에 출시한 배기량 3천cc 렉서스ES300이 1∼2월 146대 판매돼 수입차 1위를 기록했다. 고장이 별로 없고 소음과 진동이 적은 것이 특징이다. 더 중요한 것은 가격 경쟁력이다. 5천여만원 정도여서 국산 대형차와의 가격 차가 많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는 9월에는 미국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렉서스의 보석’ 컨버터블 SC430을 출시한다. 정지상태에서 100km까지 도달 시간이 5.9초라는 엄청난 순발력을 자랑한다. 가격이 7800여만원 정도여서 수입차로서는 그다지 비싸지 않은 편이다.

내수시장 점유율 5% 차지할 듯

메르세데스 벤츠는 오는 4월 초 SUV 차량인 뉴M클래스 모델들을 잇따라 국내에 출시한다. 기존에 국내 시장에 소개된 ML320뿐 아니라 ML270CDI, ML400CDI, ML500, ML55AMG 등 M클래스 전 모델이 국내에 소개된다. 오는 6월에는 SL 스포츠카의 5세대 모델로 지난해 말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첫선을 보인 뉴SL클래스를 출시한다. 시속 200km의 속도에서도 소음이 전혀 들리지 않게 만들어 컨버터블이면서도 세단 같은 느낌을 준다. 벤츠는 또 기존의 보수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텔레비전 방송광고를 내보내고, 골프대회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벌이고 있다. 기존 7개 전시장을 올해 10개로 늘릴 계획이다.

볼보는 올해 판매량을 지난해 554대에서 1200대로 크게 늘릴 계획이다. 매장도 현재의 8개를 연말까지 13개로 확장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4월2일 배기량 2500cc의 스포츠카 C70컨버터블을 내놓을 예정이다. 시속 100m 속도를 내는 데 7.5초가 걸린다. 기존 차량 가운데서는 2800cc S80T-6이 현대적인 스타일을 살린 제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크라이슬러는 연초부터 공격적인 영업에 나서고 있다. 1월 말 세단인 LHS3.5L을 출시한 데 이어 2월 말에는 SUV 차량인 체로키3.7L을 내놨다. 체로키3.7L은 가격이 4600만원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크라이슬러는 올해 판매 목표를 1500대로 잡아놓았다. 15개인 매장도 연말까지 20개로 늘릴 계획이다.

사상 최고 판매량 기록 전망

폴크스바겐은 오는 4월 3천만원대의 2천cc 보라 모델을 출시한다. 또 3분기에는 대형차 시장을 겨냥해 개발한 야심작 뉴파사트W8을 내놓을 예정이다. 지엠은 오는 8∼9월 3200cc 캐딜락CPS를, 11월에는 2천cc 뉴사브9-3을 출시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매장을 4개에서 7개로 늘려 판매량도 지난해 285대에서 500대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포드는 SUV 차량인 뉴익스플로러 7인승을 지난 2월 국내에 출시했다. 미국에서 가장 안전성이 뛰어난 SUV 차량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포드는 지난해 470대이던 판매량을 올해 1500대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전시장도 4개에서 16개로 대폭 늘리기로 했다.

이러한 각국 업체들의 적극적인 마케팅에 힘입어 올해 수입차의 판매량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는 수입차 판매량이 지난해의 7747대에서 올해 1만500대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역대 최고 기록이던 96년의 1만315대를 뛰어넘는 수치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1만2천대까지 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거의 시장이 형성되지 않던 수입차가 국내에서 독립적인 영역과 위상을 확보하는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이 수입차 업계의 전망이다.

정남기 기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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