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차출시에 교체주기 맞물려 불꽃 경쟁… 중·대형차 고객 붙들기 묘책 만발
봄을 맞아 국내 자동차업계에 신차 또는 새 모델 출시가 봇물 터지듯 잇따르고 있다. 지난 1월 초 르노삼성자동차가 2002년형 SM5를 내놓자 이에 뒤질세라 현대자동차는 2002년형 싼타페로 맞섰다. 이어 기아자동차가 신차 쏘렌토를 런칭시켰고, 최근 대우자동차도 L6매그너스를 새로 내놓았다. 물론 엄밀한 의미의 신차가 아니라 얼굴만 바꾸고 ‘2002년형’으로 모델이 업그레이드된 것들도 있다. 그럼에도 1주일이 멀다하고 신차 발표회가 열릴 정도로 신차모델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경쟁업체의 움직임을 봐가며 발표회 시기를 저울질하기도 한다.
특소세 인하 맞춰 신차 출시 잇따라
메이커마다 신차를 앞다퉈 출시하는 배경에는 특소세 인하(올 6월말까지 한시적용)에 맞춘 것도 있지만 소비자들이 신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른바 ‘신차효과’를 겨냥해서다. 특히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모델 교체가 덜 된 만큼 올해는 대대적인 교체가 이뤄지는 때다. 올 자동차 내수시장은 신차효과에 교체주기가 어우러지면서 경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물론 신차 출시는 동전의 양면을 갖고 있다. 일찌감치 신차 정보가 발표되면 소비자들이 당장 차를 사지 않고 신차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 때문이다. 자연히 기존 차의 재고가 쌓일까 걱정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전혀 딴판이다. 자동차 내수시장에 활력이 붙어 어느 메이커든 적정 재고량은커녕 재고 자체가 거의 없는 대호황이다. 주문은 밀려들지만 공급이 제때 따라가지 못할 정도다. 현대는 전통적인 판매 비수기인 1월에 EF쏘나타를 비롯해 전차종에 걸쳐 내수판매 6만5천여대를 기록했다. 1월 실적으로 96년 이후 최다 판매실적이다. 한창 바람을 타는 현대 싼타페, 쌍용자동차 렉스턴 등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는 계약한 뒤 2∼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현대자동차 김철묵 부장(판매기획)은 “올 상반기는 경기회복 조짐에 월드컵 특수, 그리고 특소세 인하가 맞물리면서 소비자들의 구매심리가 뚜렷이 회복되고 있다”며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구매심리가 되살아나면서 올해 자동차 내수판매는 150만대 수준을 넘어설 전망이다. 내수가 크게 늘어날 것이란 예측은 대체수요 추세를 보면 금방 확인된다. 지난 97년 평균 차령(자동차의 나이)은 3.8년이었으나 외환위기 이후 경기침체에 따라 2001년 10월에는 5.5년으로 급격히 높아졌다. 어려운 경제사정이 자동차 대체수요를 크게 억제해온 셈인데, 올해는 경기가 풀리면서 대체수요가 크게 늘어난다는 것이다.
내수시장에서 불꽃튀는 경쟁이 펼쳐지는 분야는 아무래도 중·대형차 시장이다. 현대 EF쏘나타는 지난 2월 7500여대를 팔아 1, 2월 국내 최다 판매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중·대형차 시장의 경쟁은 EF쏘나타, 그랜저XG, 에쿠스 등에 맞서 대우가 신형6기통 XK엔진을 장착한 L6매그너스를 출시하면서 더욱 불붙었다. 대우자동차 진종호 과장(판매기획)은 “대우차가 핸디캡으로 안고 있던 중형차 엔진부분을 극복하고 대우사태 이후 어려움 속에서도 지속해온 투자의 성과가 L6매그너스로 나타난 것”이라며 “기존 4기통 엔진이 주류이던 국내 중형차 시장에 격변을 몰고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우가 L6매그너스를 내놓자 현대는 다시 뉴그랜저XG 출시로 맞대응하고 있다. 자동차공업협회는 자동차 대체수요를 중형이 가장 많이 흡수할 것이라며 지난해에 견줘 8.0% 증가한 31만대 가량의 중형차가 올해 국내에서 팔릴 것으로 예상했다.
SUV는 레저차 선호 경향을 타고 싼타페, 쌍용 렉스턴에 이어 기아 쏘렌토가 가세하면서 치열한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이달 초 쏘렌토 출시로 고급형 SUV시장에 진출한 기아는 이를 바탕으로 국내 RV(레저차량)시장 점유율 50%에 도전하겠다는 야심을 불태우고 있다. 국내 RV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기아는 쏘렌토로 RV 풀-라인업을 구축함으로써 RV명가의 위상을 굳힌다는 방침아래 쏘렌토 붐 조성에 온힘을 쏟고 있다. 기아차 김훈호 부장은 “주5일근무제가 도입되면 기아의 강점인 RV차량 판매가 급증할 것”이라며 “올해 내수 45만대 달성을 통해 시장점유율을 30%대로 끌어 올리겠다”고 말했다.
르노삼성의 돌풍, 누가 잠재울 건가
소형차 역시 중형차 못지않게 격돌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공업협회는 “그동안 경쟁이 덜하던 소형차 쪽에서도 현대가 월드카 겟츠를 5월부터 내놓을 예정이고, 르노삼성이 하반기에 SM3를 출시하기로 한데다, 대우도 소형 신차 계획이 있기 때문에 한판 다툼을 펼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해 업계의 판도를 뒤흔들 가장 큰 화두는 GM의 대우차 인수와 중형차 시장에서 휘몰아치고 있는 르노삼성의 돌풍이다. 세계적인 메이저업체인 GM과 대우의 관계가 확정되면 현대·기아가 독점하다시피 한 국내 시장에서 커다란 변화가 불가피하다. 게다가 수입차의 내수시장 공략이 거세지는 등 국내 자동차시장은 이미 글로벌 차원의 각축장으로 접어든 양상이다. 그동안 시장점유율이 11.8%까지 떨어진 대우는 새 주인인 GM을 등에 업고 내수시장에서 대공세를 펴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에 따라 상반기에 소형차종인 T-200을, 하반기에는 누비라 후속모델인 준중형차종 J-200을 새로 내놓으면서 침체를 벗고 경쟁에 본격 뛰어들 예정이다.
르노삼성의 SM5는 판매량이 한달 1만대 수준에 다가서면서 기아의 옵티마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EF쏘나타와 선두다툼을 벌이는 형국까지 가고 있다. SM5의 질주로 쏘나타의 독주에 브레이크가 걸릴 것인지는 업계의 가장 큰 관심거리다. 지난 1월 SM5가 쏘나타 판매량을 바짝 추격하자 현대는 공장 스케줄을 바꿔 일부 생산라인을 EF쏘나타 생산에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르노삼성 이언 이사는 “SM5가 잔고장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입소문을 탔기 때문”이라며 “우리나 현대나 지금은 누가 얼마나 많이 공급할 수 있느냐 하는 생산력이 경쟁을 좌우하는 판국”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런 도전 속에서도 현대는 활발한 신차 출시로 내수시장 점유율 48.7%의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고, 기아 역시 점유율 27.0%를 유지하고 있다. SUV 붐을 타고 렉스턴을 출시한 쌍용(점유율 7.7%)은 국내 최강의 RV 전문메이커를 꿈꾸고 있다.
신차 출시 못지않게 양보할 수 없는 한판 경쟁이 벌어지는 게 고객 붙잡기다. 자동차는 한번 사면 노인이 될 때까지 계속 고객이 될 수 있다. 특히 과거에는 자동차를 생애 처음으로 구입하는 고객비율이 높았지만 자동차 1300만대 시대에 들어선 지금은 타던 차종을 다른 메이커로 교체하는 수요가 늘고 있다. 그만큼 메이커 충성도를 높이는 이른바 로열티마케팅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기아자동차 김훈호 부장(판매기획)은 “신차 출시는 전략을 세운다고 갑자기 되는 것도 아니고 그때마다 붐을 일으키는 프로모션이 중요하다”며 “지금은 고객영업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노블레스 회원 모집행사를 통해 대대적인 평생고객찾기에 나선 기아는 새로운 고객서비스 브랜드로 ‘기아 큐 서비스’를 확정하고 직영사업소와 지정 정비공장의 입·간판을 교체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차별화된 서비스로 고객 붙잡는다
대우는 L6매그너스 출시를 계기로 외환위기 이후 무너진 딜러망을 복구하고 있다. 중고차 보장할부, 무보증할부 등 자동차 마케팅을 선도해온 대우는 100만명에 달하는 서포터 회원뿐만 아니라 판촉활동으로 쌓은 고객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르노삼성도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현대·기아를 쫓는 추격전에 들어갔다. 영업망을 대대적으로 넓히고 각 영업소에 10만km 이상 뛴 차를 갖다놓고 시승 테스트를 실시하고 있다. 오래 타도 새 차나 다름 없다는 점을 강조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물론 다소 떨어지는 품질을 고객 서비스로 커버해 고객의 마음을 달래줄 수는 있다. 하지만 경쟁의 관건은 누가 자동차를 잘 만들어내느냐에 있다. 어디까지나 “차는 결국 제품이 파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올 7월 제조물책임법(PL) 발효에 따라 뻥튀기 마케팅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그럴듯한 포장이나 광고로 잠깐 고객을 빼앗아오더라도 제품이 받쳐주지 않으면 한때 그치고 말 공산이 큰 것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물론 신차 출시는 동전의 양면을 갖고 있다. 일찌감치 신차 정보가 발표되면 소비자들이 당장 차를 사지 않고 신차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 때문이다. 자연히 기존 차의 재고가 쌓일까 걱정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전혀 딴판이다. 자동차 내수시장에 활력이 붙어 어느 메이커든 적정 재고량은커녕 재고 자체가 거의 없는 대호황이다. 주문은 밀려들지만 공급이 제때 따라가지 못할 정도다. 현대는 전통적인 판매 비수기인 1월에 EF쏘나타를 비롯해 전차종에 걸쳐 내수판매 6만5천여대를 기록했다. 1월 실적으로 96년 이후 최다 판매실적이다. 한창 바람을 타는 현대 싼타페, 쌍용자동차 렉스턴 등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는 계약한 뒤 2∼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현대자동차 김철묵 부장(판매기획)은 “올 상반기는 경기회복 조짐에 월드컵 특수, 그리고 특소세 인하가 맞물리면서 소비자들의 구매심리가 뚜렷이 회복되고 있다”며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구매심리가 되살아나면서 올해 자동차 내수판매는 150만대 수준을 넘어설 전망이다. 내수가 크게 늘어날 것이란 예측은 대체수요 추세를 보면 금방 확인된다. 지난 97년 평균 차령(자동차의 나이)은 3.8년이었으나 외환위기 이후 경기침체에 따라 2001년 10월에는 5.5년으로 급격히 높아졌다. 어려운 경제사정이 자동차 대체수요를 크게 억제해온 셈인데, 올해는 경기가 풀리면서 대체수요가 크게 늘어난다는 것이다.




사진/ 대우 L6매그너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