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뒷받침 없어 분쟁 끊이지 않아… 합리적 소비 가로막으면 적극적으로 대처  
 
 직장 여성인 강아무개(29·서울 관악구)씨는 지난 8월 상품권 때문에 불쾌한 경험을 했다. 친구로부터 선물받은 10만원짜리 구두상품권으로 7만5천원짜리 구두를 사고 거스름돈 2만5천원을 현금으로 줄 것을 요구했다가 보기좋게 거절당한 것이다. 구두가게 직원은 상품권법이 폐지됐다며 잔돈을 현금으로 주지 않고 2만원짜리와 5천원짜리 상품권으로 거슬러 주었다. 
   
상품권 쏟아졌지만 거래 질서 미비 
   
  주부 최아무개(45·서울 강남구)씨가 겪은 일도 비슷하다. 최씨는 지난 7월 7만원짜리 상품권 2장으로 11만3천원짜리 구두를 산 뒤 잔액을 현금으로 줄 것을 요구했으나 매장 직원은 이를 거절하고 ‘차액증’을 내주었다. 상품권 이용과 관련된 다툼이 날로 늘고 있다. 지난해 2월 상품권법이 폐지되면서 갖가지 상품이 쏟아져나오고 있는데다 법폐지 뒤 상품권거래 질서가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분쟁이 예년에 비해 훨씬 많을 뿐 아니라 추석을 앞두고 상품권 판매가 크게 늘어 상품권을 둘러싼 소비자와 해당업체간 다툼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올 들어 지난 8월 말까지 상품권 이용 과정에서 생긴 문제로 한국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상담 건수는 431건. 지난해 같은 기간(375건)보다 14.9%나 늘어난 것이다. 상품권은 대부분 선물로 받은 뒤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문제발생 때 상담이나 피해 구제를 요청하는 일이 상대적으로 적다. 이를 감안하면 상품권과 관련된 실질적인 소비자 불만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형별 피해현황(7월 말까지 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상담 398건 대상)을 살펴보면 상품권으로 물품을 산 뒤 거스름돈을 현금으로 돌려주지 않아 생긴 다툼이 135건으로 전체의 33.9%를 차지했다. 그 다음으로 유효기간이 지났다며 상품권 이용을 거절한 사례가 47건(11.8%), 할인매장이라는 이유로 이용을 제한하거나 거절한 사례가 40건(10.1%), 상품권 발행업체의 부도·폐업·변경 등으로 상품권 이용을 거절당한 사례 21건(5.3%) 등이었다. 
  상품권으로 물품을 구입한 뒤 남는 잔액을 현금으로 반환하지 않는 사례가 가장 고전적이고 자주 생기는 문제인 셈인데 이에 대한 처리 기준은 비교적 명확하다. 재경부에서 고시한 상품권 관련 소비자피해보상규정에 따르면 상품권 액면가가 1만원을 넘을 경우 60% 이상, 1만원 이하인 경우 80% 이상만 사용하면 나머지 금액은 현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 앞에서 든 두 사례에서 소비자쪽의 주장은 정당한 셈이다. 
  할인 기간임을 이유로 들어 사용을 제한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하는데 이는 어떻게 처리될까. 회사원 조아무개(37·서울 동작구)씨는 지난 5월 서울 시내 백화점 구두매장에서 10만원짜리 상품권으로 20% 할인한 값인 8만4천원에 구두를 사고 남은 돈은 현금으로 돌려줄 것을 요구했는데 매장쪽에서는 할인행사 기간임을 이유로 거절했다. 결국 조씨는 상품권(1만원짜리 1장, 5천원짜리 1장)과 현금 1천원을 돌려받고 머쓱하게 돌아서야 했다. 
  상품권과 관련한 소비자피해보상 규정은 할인판매 기간이라도 똑같은 적용을 받도록 돼 있다. 따라서 조씨는 구두를 사고 난 잔액을 현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 
  상품권으로는 할인가를 적용받을 수 없다며 버티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홍아무개씨는 5만원짜리 의류상품권을 갖고 세일중인 의류매장을 찾았다. 그는 5만9천원짜리 셔츠가 20% 할인돼 4만7200원에 판매되는 것을 확인하고 상품권을 제시했다. 하지만 매장 직원은 상품권으로는 할인가를 적용받을 수 없고 정상가격으로만 판다고 해 상품권과 현금 9천원을 주고 5만9천원에 셔츠를 구입해야 했다. 
   
  할인가 적용 힘들고 임의 유효기간 설정 
   
  소비자보호원 해석에 따르면 상품권에 미리 특정 물품에 대해 상품권의 사용을 제한한다는 표시가 없는 한 상품권 발행자나 가맹점은 상품권의 사용을 제한할 수 없다. 조씨는 소보원 중재에 따라 매장쪽으로부터 1만1800원을 돌려받았다. 
  소비자들이 많이 헷갈려 하고 지레 포기하고 마는 사례도 많다. 유효기간이 지난 경우, 발행 사업자가 없어진 경우, 발행업체 또는 매장 주인이 바뀐 경우 등이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문아무개씨는 친구한테서 받은 10만원짜리 구두상품권을 들고 지난 6월 한 제화점을 들렀다 무안을 당했다. 제화점 직원은 무료로 발행된 상품권이고 상품권의 유효기간이 99년 말로 끝났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상품권에는 발행일·유효기간에 대한 아무런 표시가 없었다. 또 박 아무개씨는 5만원짜리 의류상품권으로 옷을 구입하러 지난 2월 의류매장을 찾아갔으나 유효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사용을 거절당했다. 상품권에는 유효기간이 발행일로부터 5년이라고 적혀 있었으며 발행일은 94년9월6일, 판매일은 96년2월2일이었다. 
  상품권 표준약관에 따르면 상품권은 상사채권의 소멸시효(5년) 안에는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별도로 유효기간을 정하지 않았다면 발행일로부터 5년까지는 쓸 수 있다. 또 상품권법 폐지(99년 2월5일) 이전에 발행된 상품권은 유효기간이 지났다 하더라도 상사채권 소멸시효를 경과하지 않았다면 액면가의 90%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상품권을 구입하거나 선물로 받을 때 유효기간을 잘 확인해야겠지만 유효기간이 지났다고 하여 지레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이와 달리 상품권 발행업체가 부도를 낸 경우에는 보상받기 힘들다. 옛 상품권법에서는 상품권 발행자가 발행금액의 일정비율 이상을 분기별로 공탁하거나 금융기관의 지급보증을 꼭 받도록 규정했으나 법폐지 뒤에는 선택사항으로 풀렸다. 따라서 상품권을 살 때는 발행업체가 믿을 만한 곳인지, 지급보증을 받은 상품권인지를 확인해야 뜻밖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박아무개씨는 주유상품권을 쓰려고 상품권 발행자인 주유소를 찾았다가 낭패를 당했다. 주유소쪽이 1년 전에 주인이 바뀌었다며 상품권을 사용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주인이 바뀌었더라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상호로 영업을 계속하는 한 상품권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소보원쪽 해석이다. 
  소보원 금융팀의 이경진 차장은 “상품권 잔액을 현금으로 돌려주지 않는 데 따른 분쟁 등 유형화된 사례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며 “이는 소비자들이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는 현실을 발행업체쪽이 악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금 몇 만원을 돌려받으려고 소보원을 비롯한 소비자단체에 중재를 요청하는 등의 절차가 번거롭기 때문에 지레 포기하게 되고 이 때문에 업체쪽에서는 뻔한 사실조차 속이는 일이 잦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상품권 거래를 규제하는 법·제도적 장치를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현재 상품권 관련 제도인 공정거래위원회의 상품권 표준약관과 재정경제부의 소비자피해보상 규정이 ‘소비자가 알아서 조심해야만’ 피해를 막을 수 있는 자율규제 방식을 띠어 한계가 뚜렷하다는 점에서다. 
   
  적절한 진입규제·피해 구제책 마련해야 
   
 
 김성천 소보원 법제연구팀장은 “공정위의 표준약관은 강제로 적용할 수 없는 선택사항으로 이와 다른 약관을 쓰는 경우에 대한 규제 근거가 미약해 실제 거래에서는 표준약관의 내용대로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피해보상 규정도 미약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 규정상 품목별 보상기준은 피해 소비자가 기준에 따른 피해 보상만을 청구하는 경우에 한해 유효하다. 또 상품권과 관련한 모든 피해 유형을 규정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다 보상기준을 강제할 법적 근거도 갖춰지지 않은 상태라는 지적이다. 
  김 팀장은 “상품권 거래를 규제하는 가칭 ‘상품권 등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소비자 피해의 예방 및 구제 수단을 마련해 소비자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옛 상품권법에서처럼 발행 인가제 또는 등록제가 과도한 규제라면 신고제라도 도입, 적절한 진입규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상품권 발행자의 파산 등으로 인한 사후적 피해를 막을 수 있도록 사적 보험이나 공제 제도를 운용하는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고 강 팀장은 말했다. 
  이같은 법·제도적 장치 마련은 먼 장래의 과제일 뿐이다. 당장은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판단에 따라 상품권을 선택·구입하고 피해가 발생했을 때 적극적으로 권리를 주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김영배 기자kimyb@hani.co.kr 
   
  

(사진/상품권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피해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함리적 판단으로 상품권을 구입해야 피해를 막을 수 있다)
올 들어 지난 8월 말까지 상품권 이용 과정에서 생긴 문제로 한국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상담 건수는 431건. 지난해 같은 기간(375건)보다 14.9%나 늘어난 것이다. 상품권은 대부분 선물로 받은 뒤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문제발생 때 상담이나 피해 구제를 요청하는 일이 상대적으로 적다. 이를 감안하면 상품권과 관련된 실질적인 소비자 불만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백화점 상품권 판매 창구 모습)

(사진/일부 매장에서는 할인 기간에는 상품권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구두와 의류상품권은 발행자가 파산하는 사태가 종종 발생해 소비자를 울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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