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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위기의 건설업, 붕괴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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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9-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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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수주 막히고 국내 주택 경기도 위축… 수익성 내세운 경영으로 탈바꿈해야

(사진/건설경기의 침체로 주택수급에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자칫 주택난이 재발해 사회문제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한때 우리 경제성장의 견인차 구실을 했던 건설업이 빈사상태에서 허덕이고 있다. 건설경기가 좀처럼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아 일감이 줄어든데다, 현대건설 유동성 위기와 우방그룹의 부도로 건설업계에는 연쇄도산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올 상반기에만 244개 건설회사들이 부도를 냈다. 시공능력 상위 100대 건설회사 가운데 39개가 법정관리나 화의,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등으로 결딴이 났다. 이에 따라 올 상반기에만 약 10만명의 건설종사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해외건설 수주도 꽁꽁 얼어붙었다. 중동에서 오일달러가 늘어 수백억달러짜리 공사가 잇따라 발주되고 있으나 올 상반기 국내 건설업체들의 해외수주 실적은 지난해의 56%선에 불과하다. 대우건설 동아건설 쌍용건설 등 해외건설 수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대형 건설사들이 죽을 쑤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 시공분야에서는 중국과 동남아시아국가의 건설업체들에게 쫓기고, 높은 기술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는 미국이나 일본건설업체들에 여전히 뒤져 모처럼 생긴 중동 특수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회사 늘어도 연쇄도산에 일자리 사라져


이 때문에 대통령이 주재하는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도 건설업 살리기 방안이 논의됐다.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지식정보산업 육성에만 눈을 돌리던 정부가 특정 재래산업 보듬기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정부가 지난 8월30일 건설수요 촉진과 건설업체의 금융애로 해소를 뼈대로 한 ‘건설업 경쟁력 활성화 방안’을 내놓은 다음에도 건설업체들은 “전혀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오히려 한 중견 건설회사 임원은 “금융권에서 정부대책의 수혜대상이 극히 일부의 대형건설회사에만 국한될 것으로 예상하는 바람에 중소형 건설회사들의 자금난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며 “연리 15%가 넘는 고금리 사채자금조차 구하기가 어려워졌다”고 푸념했다.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의 박용완 연구위원도 “정부의 건설수요 진작 대책과 금융지원 방안은 자금난에 빠져 있는 건설업체들의 목숨을 겨우 지탱할 수 있게 해줄지는 몰라도 본격적인 추세전환의 계기가 되기는 힘들다”고 진단했다.

건설업체들의 위기는 단순히 건설경기의 침체 때문만이 아니다. IMF사태 이후 민간건설투자가 위축되고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 재정마저 축소된 반면에 건설업체 수는 오히려 증가해 개별업체에 돌아갈 수 있는 ‘파이’가 크게 줄었다. 건설협회에 따르면, 일반건설업 등록업체 수가 98년 말 4208개사에서 올해 7월 말 현재 6026개로 늘었다. 하지만 올 상반기 수주실적은 27조9천억원으로 IMF사태 직전인 97년 상반기 수준(39조4천억원)의 70%선에 불과하다. 올해 업체당 수주예상액은 91억원으로, 97년 202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칠 전망이다. 대우증권 박용완 연구위원은 “정부가 98년 초에 건설업 등록요건을 완화해 진입장벽을 낮추면서 부실 건설사들의 퇴출장치는 마련하지 않은 게 지금 건설업 위기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건설사들의 난립은 건실한 회사들까지 동반부실화하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현행 복권식 공사낙찰방식을 악용해, 사무실만 차려놓고 사업을 따낸 뒤 바로 다른 업체에 넘겨 이익을 챙기는 이른바 ‘페이퍼 컴퍼니’, ‘휴대폰 컴퍼니’들이 판치고 있다. 이들이 덤핑 수주 등으로 시장질서를 교란하면서 건설업 전체의 수익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또 부실이 누적된 대형건설사는 ‘협력업체의 연쇄도산’이나 ‘지역경제 파탄’ 따위를 인질삼아 금융기관들의 발목을 잡는 바람에, 우량한 건설사들에게 돌아갈 투자재원까지 갉아먹고 있는 실정이다.

주택건설은 회생 실마리 될 것인가

(사진/국내 건설업체들은 중동 특수도 누리지 못하고 있다.사진은 IMF이전에 동아건설이 시공한 리비아 대수로 공사현장)
건설업은 국내총생산(GDP) 기여도가 97년 기준으로 12%에 이르고 전후방 산업에 대한 생산 및 부가가치 유발효과도 아주 크다. 그래서 내수경제의 버팀목이면서, 동시에 충격을 받으면 그 파장이 만만치 않다. 건설업체들끼리도 직접적인 공사이행 보증이나 공제조합을 통한 보증으로 서로 엮여 있어, 한 회사가 망하면 여러 회사가 휘청거린다. 전문가들은 단기적 충격을 감수하더라도 부실과 우량기업간 연결고리를 하루빨리 차단하지 않으면 자칫 국내 건설업의 기반마저 흔들릴 것이라고 경고한다.

정부는 특히 주택건설업의 위축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자칫 주택난이 재발해 사회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축주택 구입시 기존주택의 양도세를 최고 75%까지 감면해주고, 공공택지 개발의 확대, 지자체의 임대주택건설 자금에 대한 융자 확대 등 주택수요와 공급을 동시에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건설업 전체 매출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주택건설에서부터 건설업 회생의 실마리를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주택수급에 불길한 징후가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건설업체들은 IMF 이전 90∼97년까지는 주택을 연평균 63만3천 가구 정도 공급했지만 98년에는 30만6천 가구, 99년에는 40만5천 가구로 연평균 35만3천 가구에 그쳤다. IMF 이전보다 주택공급이 44% 정도 줄어든 셈이다. 물론 아직까지 전국적으로 미분양주택이 6만 가구를 넘어 공급이 모자라는 상태는 아니지만, 너무 가파르게 주택공급이 떨어질 경우에는 집값 불안심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지난해 중순부터 수도권의 전셋값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도 심상치 않은 조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적정수요를 무시하고 공급확대 위주로 나갔을 때에는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 현대증권은 결혼 등에 따른 신규가구, 노후주택의 멸실에 따른 대체수요, 전세가구 중 청약저축 가입자로 근거로 산출한 대기수요 등을 고려할 때 올해 주택수요는 35만6천 가구, 내년에는 35만9천 가구 정도로 추정했다. 정부의 주택공급 목표치는 올해와 내년 모두 50만 가구이다. 그렇다면 14만∼15만 가구의 공급과잉이 발생한다. 임대사업자의 투자수요나 독신가구 등이 아무리 늘어난다 하더라도 5만∼8만 가구의 공급과잉분이 남는다는 게 현대증권의 계산이다. 여기에다 지금까지 해소되지 않고 있는 미분양 물량까지 합치며 내년에는 또 미분양주택이 최소 10만 가구에 이른다. 미분양주택은 곧 건설업체들의 부실자산이다.현대경제연구원의 김선덕 연구위원은 “단순히 양적 측면의 수요진작책보다 부동산거래비용을 줄이고 건설업체들이 값싸고 품질 좋은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령 양도세 감면보다, 집을 짓기 위해 땅을 살 때는 물론 집을 분양하는 단계에서도 부과하는 취득·등록세의 이중과세 문제를 개선하는 게 시급하다는 얘기이다. 김 연구위원은 “이런 이중과세가 모두 소비자의 부담으로 전가돼 주택 대체수요를 위축시키는데다 우리나라의 취득·등록세가 전체 거래가격의 5.8%로 미국이나 일본의 1% 수준보다 월등히 높다”면서 “지자체의 재정부실 가능성 때문에 취득·등록세의 전면 조정이 어렵다면 우선 중소형주택만이라도 세금을 단계적으로 감면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양한 주택금융기법으로 돌파구 찾아야

건설업체들도 무조건 짓고나서 팔자는 안이한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까지 많은 주택건설업체들은 수요자를 생각하기보다, 부동산 가격상승에 기대어 그 차익으로 한몫 챙기려는 발상에 안주해왔다. 먼저 집지을 땅을 사놓고서 땅값 인상분이 금융비용을 넘으면 된다는 식이다.

건설산업연구원의 백성준 책임연구원은 “무조건 말뚝만 박아놓으면 저절로 수요자가 몰리던 시대는 지나갔다”며 “건설업체들이 외형보다 수익성에 초점을 맞춘 경영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건설회사들이 지금처럼 무조건 금융지원을 요청하고 이를 정부가 수용하는 관행도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앞으로는 다양한 주택금융기법이 등장해 재무구조가 취약한 건설회사라도 기술력이 있고 수익성 있는 사업을 개발하면 금융기관은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되어 있다. 선진국에서 유행하는 ‘프로젝트 파이낸싱’은 건설회사의 신용이 아니라 사업의 수익성이 관건이다.

일반 건설업체 수주액 추이

(자료:대한건설협회)

 

97년

98년

99년

2000년

건설공사 수주액(조원)

79

48

51

56

일반 건설업체 수(개)

3,896

4,208

5,155

6,150

업체당 평균 수주액(억원)

202

114

99

91

박순빈 기자sbp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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