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행장 선임 방침에 반기 든 위성복 현 행장의 역전 드라마
정부가 최대주주인 조흥은행의 새 행장 인사가 파격적이다. 위성복 현 행장이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나고 임원경력 1년 남짓된 49살의 홍석주 재무담당 상무가 새 행장 후보로 추천돼 오는 3월29일 주주총회에서 새 행장으로 선임될 예정이다. 시중은행에서 40대 행장의 등장은 지난해 5월 취임한 하영구 한미은행장에 이어 두 번째이다. 이를 놓고 40대 행장시대의 본격 개막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행장 선임을 둘러싸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며칠간의 드라마를 돌이켜보면 사연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40대 상무가 행장 후보로 추천된 까닭
겉보기에는 행장 교체를 요구해온 정부의 뜻대로 새 행장 인사가 이뤄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금융계에서는 조흥은행장 자리를 둘러싼 정부와 위 행장간의 힘겨루기가 결국 위 행장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고 평가한다. 위 행장은 행장직에서는 물러나지만 영향력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게 됐고, 정부는 행장 교체를 요구했던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었다는 것이다.
3월 말로 임기가 끝나는 위 행장의 교체요구는 지난 1월 초 일찌감치 제기됐다.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현 정부 들어 금융기관장 인사는 단임 원칙을 지켜왔다”며 “이 원칙은 공적자금 투입은행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위 행장을 교체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은 것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이와는 달리 돌아갔다. 위 행장이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며, 연임을 바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3월 초까지만 해도 위 행장이 세 번째로 조흥은행장을 다시 맡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지난 98년 8월 32대 행장으로 취임했던 위 행장은 경영정상화 지연으로 3개월 만에 퇴임했으나, 99년 4월 33대 행장으로 다시 돌아와, 이번에 행장을 맡으면 세 번째다. 3월5일부터 행장후보 고르기에 들어간 조흥은행 행장추천위원회(행추위, 위원장 안충영)도 위 행장의 연임을 제1안으로 검토했다. 행추위쪽은 위 행장이 그동안 조흥은행을 잘 이끌어왔으며, 앞으로 해외주식예탁증서(DR) 발행과 민영화 등 중요한 현안이 많은 상황에서 이를 원만하게 추진하는 데는 위 행장이 최적임이라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재경부와 금감위 안의 분위기는 ‘연임 불가’로 기울고 있었다. 무엇보다 정부 안의 인사적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자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부 관료를 직접 은행장으로 보낼 수는 없지만 행장 자리가 비면 어떤 형태로든 인사에 숨통이 트일 여지가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것이 ‘실리’였다면 명분은 “위 행장의 조흥은행 발전전략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105년이나 되는 조흥은행의 역사에 비해 현재 조흥은행이 처한 현실을 보라”며 “이대로 가면 조흥은행은 지방은행 수준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정부는 조흥은행이 다른 은행과의 합병 등 다양한 발전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보았다. ‘금융그룹화’를 통해 독자생존만을 고수하는 위 행장을 탐탁잖게 여겼던 것이다.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조흥은행의 순혈주의’를 무너뜨려야 하고, 그 정점에 있는 위 행장을 물러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 금감위를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의 생각이었다. 위 행장 흔들기에 역공으로 맞서
위 행장이 이끌어온 조흥은행의 경영성과에 대한 정부 관계자들의 평가도 결코 호평만은 아니다. 지난 2000년 11월3일 부실기업 일괄퇴출 때 막판까지 논란의 대상이 됐던 대표적인 기업은 쌍용양회와 현대건설이었다. 쌍용양회의 주채권은행인 조흥은행은 당시 부채 4조원에 영업이익이 연간 700억원가량에 불과한 쌍용양회의 회생 가능성을 강력히 주장해 ‘조건부 회생’ 판정을 이끌어냈다. 위 행장은 쌍용정보통신 지분 매각을 통해 쌍용양회의 자금을 확보하려던 계획이 무산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일본 태평양시멘트의 자본유치와 다른 채권은행들의 채권 출자전환 등을 이끌며 쌍용양회를 탈없이 이끌어왔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건설경기가 살아나면서 시멘트업체의 업황도 좋아지자 금융계 관계자는 “위 행장의 베팅이 성공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똑같이 조건부 회생 판정을 이끌었으나 현대건설을 부도낸 외환은행과는 다른 길이었다.
하지만 위 행장의 교체를 요구하는 정부 관계자들은 이런 평가에 대해서도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조흥은행의 정상화를 위해 3조5천억원이나 되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사실을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위 행장이 조흥은행을 위해 공적자금을 지원받는 데는 수완을 발휘했을지 몰라도, 뛰어난 경영능력을 보였다고까지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 안의 이런 분위기는 행추위가 본격 활동에 들어가면서 구체적으로 표출됐다. 겉으로는 행추위에 모든 걸 맡긴다면서도 정부는 위 행장의 퇴진을 기정사실로 몰아갔다. 정부 관계자는 “지분 80%를 보유한 최대주주로서 주주권 행사는 정당하다”며 “주주권 행사를 하지 않는 것은 공적자금을 댄 국민에 대한 직무유기”라고 말하기도 했다.
애초 위 행장 재선임쪽에 기울어 있던 행추위는 8일로 예정했던 행장 후보 발표를 미뤘고, 위 행장을 대신해 다른 후보들을 하나둘씩 거론하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자 신임 조흥은행장은 외부인사로 임명될 것이라는 전망이 퍼졌다. ‘순혈주의’를 문제로 본 정부 관계자들이 외부인사의 영입 필요성을 계속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행장 후보 추천 마감일을 이틀 앞둔 11일 위 행장은 “조흥은행을 정상화하는 데 기여하려고 노력한 것일 뿐 재임하려는 마음은 없었다”며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그것이 또다른 사태 반전의 계기가 됐다. 임기를 1년이나 남겨둔 상태에서 퇴진 요구를 받은 김경림 외환은행장이 이날 전격 사의를 표명한 것이다. 두 은행장의 사퇴 표명은 ‘낙하산 인사’, ‘관치금융’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두 은행의 노조는 정부의 인사 개입에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이제 어떤 외부인사도 은행장실 문을 아무런 상처 없이 열고 들어가기란 거의 불가능해졌다. 애초 거론되던 후보에서 새로운 후보로, 그리고 마침내 내부인사로 새 행장 후보가 급속히 바뀌어갔다.
행추위가 12일 고심 끝에 꺼낸 새 카드는 내부인사인 홍석주 상무였다. 그의 전격 발탁은 ‘낙하산 시비’를 피하면서 정부의 ‘개혁’ 요구를 수용하는 절충점이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재경부나 금감위 관계자들은 조흥은행의 경영이 위성복 이사회 의장의 영향력에서 과연 벗어날 수 있겠느냐고 말한다. 위 행장은 행장직 자진사퇴를 밝히는 자리에서 이미 ‘내부인사로서 참신하고 추진력 있는 은행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 상무의 행장 발탁에는 위 행장의 이런 의견이 중요하게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위 행장을 보좌해 경영전략을 짜온 홍 행장 후보가 애초 설정한 조흥은행의 ‘금융그룹화’ 전략을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다.
조흥은행 발전전략 둘러싼 이견은 그대로
정부 관계자들은 위 행장이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나더라도 영향력에 별 차이가 없으리라고 보고 있다. 금감위의 한 고위관계자는 “위 행장은 조흥은행 내부에서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이라며 “뒷방에서 놀기는 결코 어려운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사실상 위 행장의 ‘섭정 시대’가 열렸다고 보는 것이다.
새 행장 추천결과에 대해 조흥은행 내부 분위기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어려울 것 같던 ‘낙하산 인사’를 막아냈기 때문이다. 위 행장의 지위도 더욱 확고해졌다. 그러나 조흥은행의 발전전략에 대해 정부와 조흥은행간의 이견이 해소된 것은 결코 아니다. 비록 행장 문제는 일단락됐지만, 이번 행장 인사를 둘러싸고 벌어진 갈등이 다시 재연될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사진/ 조흥은행은 행장 선임을 둘러싸고 정부와 힘겨루기를 벌였다. 지난 2월 19일 열린 조흥은행 창립 105주년 기념식 모습.
3월 말로 임기가 끝나는 위 행장의 교체요구는 지난 1월 초 일찌감치 제기됐다.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현 정부 들어 금융기관장 인사는 단임 원칙을 지켜왔다”며 “이 원칙은 공적자금 투입은행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위 행장을 교체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은 것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이와는 달리 돌아갔다. 위 행장이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며, 연임을 바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3월 초까지만 해도 위 행장이 세 번째로 조흥은행장을 다시 맡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지난 98년 8월 32대 행장으로 취임했던 위 행장은 경영정상화 지연으로 3개월 만에 퇴임했으나, 99년 4월 33대 행장으로 다시 돌아와, 이번에 행장을 맡으면 세 번째다. 3월5일부터 행장후보 고르기에 들어간 조흥은행 행장추천위원회(행추위, 위원장 안충영)도 위 행장의 연임을 제1안으로 검토했다. 행추위쪽은 위 행장이 그동안 조흥은행을 잘 이끌어왔으며, 앞으로 해외주식예탁증서(DR) 발행과 민영화 등 중요한 현안이 많은 상황에서 이를 원만하게 추진하는 데는 위 행장이 최적임이라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재경부와 금감위 안의 분위기는 ‘연임 불가’로 기울고 있었다. 무엇보다 정부 안의 인사적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자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부 관료를 직접 은행장으로 보낼 수는 없지만 행장 자리가 비면 어떤 형태로든 인사에 숨통이 트일 여지가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것이 ‘실리’였다면 명분은 “위 행장의 조흥은행 발전전략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105년이나 되는 조흥은행의 역사에 비해 현재 조흥은행이 처한 현실을 보라”며 “이대로 가면 조흥은행은 지방은행 수준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정부는 조흥은행이 다른 은행과의 합병 등 다양한 발전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보았다. ‘금융그룹화’를 통해 독자생존만을 고수하는 위 행장을 탐탁잖게 여겼던 것이다.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조흥은행의 순혈주의’를 무너뜨려야 하고, 그 정점에 있는 위 행장을 물러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 금감위를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의 생각이었다. 위 행장 흔들기에 역공으로 맞서

사진/ 조흥은행의 '금융그룹화'를 선도한 위성복(오른쪽)행장. 위 행장은 이사회 의장으로 막후 영향력을 행사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