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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접대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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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2-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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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의 잘못된 관행 바로잡으려는 하이닉스반도체의 투명경영 실험

기업체 임직원들은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공무원들을 구워삶느라 갖가지 향응과 금품을 제공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단순한 명절 선물에서부터 경우에 따라서는 수천만원에 이르는 뇌물까지. 대상도 말단 공무원부터 고위관료까지 이해관계가 걸려 있으면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면서 이런 불평을 털어놓는다. “한국에서는 공무원들 때문에 기업하기 어렵다”고.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기업들에서도 접대와 향응, 금품 제공의 관행은 널리 퍼져 있다. 특히 대기업체 임직원들은 납품업체로부터 각종 접대를 받는 것을 당연시 여기고 있는 풍토다. 대기업체 구매담당 간부를 하면 1년 안에 집을 장만한다는 얘기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직책을 이용해 개인 이득을 챙기는 한국사회의 잘못된 관행이 기업문화 속에서도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말단에서 임원까지 접대의 사슬에 묶여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구체적인 사례를 보자. 한 대기업이 최근 납품업체의 장부를 통해 확인한 자기 회사 직원들의 비리 유형을 보면 온갖 다양한 방법이 모두 동원되고 있다. 그리고 그 범위 또한 말단 직원에서부터 임원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사례1

A사는 지난해 9월 추석 때 자기 회사 물건을 납품하는 한 대기업의 관련 직원과 영향력 있는 임원 80여명을 A, B, C 3개 등급으로 나눠 7만∼50만원의 상품권을 돌렸다. 1인당 평균 25만원씩 모두 2천만원에 이르는 액수였다. 문제는 A사의 직원들 월급여가 모두 2700만원에 불과하다는 사실. 직원들에게 100%의 상여금을 줄 수 있는 돈을 대기업에 상납한 셈이다. 당시 대기업은 ‘추석명절 선물 수수금지’ 특명을 내린 상황이었다.

사례2

B사는 비자금으로 골프회원권을 구입해 거래하는 대기업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골프접대를 해왔다. 조사결과 본인들이 인정한 라운딩 횟수만도 1인당 수십회에 이를 정도. 그린피는 물론 B사가 부담했으며, 그 대상도 대리급 이상 거의 모든 직급의 직원이 포함됐다. 몇몇 직원들은 아예 골프채를 선물받은 경우도 있었다. B사 지출결의서에는 ‘○○○회사 ○○○부 골프레슨비 및 회원비’라고 기록돼 있었다. 접대 방법도 B사 직원이 대기업체 과장의 집에 직접 가서 골프장까지 모시고 가는 극진한 접대를 했다.

사례3

향응이나 금품 제공의 경우다. C사는 거래하는 대기업체 직원들에게 나이트클럽이나 단란주점 등에서의 과도한 향응과 접대는 물론 호텔 숙박비까지 제공해왔다. 그 대상과 범위는 직접 업무와 관련이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관련이 없으면서도 비교적 영향력이 있어보이는 간부급까지 광범했다. 노골적인 금전 제공 사례도 많았다. 일반적인 관행으로 인정되는 경조사인 결혼축의금, 자녀 돌, 조부모 조의금 등은 물론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C사가 개인적으로 급전이 필요하거나 금전적 애로가 있는 대기업체 직원들에게 직접 돈을 건네주는 경우다. 구체적인 사례로 교통사고를 낸 직원의 합의금을 내준다든지 신용카드 결제대금을 대납해주는 방식이다. 한 직원은 은행 계좌를 통해 수시로 수백만원의 현금을 입금받기도 했다.

사례4

대기업체 임직원들의 가족동반 해외여행 때 거래업체인 D사 대표가 끼어들어 현지에서 경비를 대신 지불했다. 그뿐 아니다. 이 회사에서는 ‘○○○ 외 3개사 담당자 휴가비’라는 명목의 지출결의서가 발견되기도 했다.

온갖 접대들, 기업 체질 약화에 한몫

사진/ "기업의 부정과 비리를 제거하겠다." 잘못된접대와 금품수수관행을 대대적으로 수술하려는 하이닉스 준법감시팀. (박승화 기자)
이처럼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기업의 잘못된 접대와 금품수수 관행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고자 팔을 걷고 나선 기업이 있다. 최근 경영 악화로 미국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와의 반도체 부문 매각 협상을 벌이고 있는 하이닉스반도체다. “회사가 사느냐 죽느냐 하는 판에 웬 윤리 타령이냐”고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이닉스의 생각은 다르다. 회사가 처해 있는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업 체질을 약화시키는 잘못된 기업문화부터 혁신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판단이다. “직원들의 업무처리 과정이 투명하고 뒷거래가 없어야 기업의 경쟁력이 살아납니다. 아무리 좋은 기술과 마케팅 능력을 갖췄다 해도 과도한 접대와 금품수수 관행을 근절시키지 못하면 그 기업은 도태되고 맙니다.” 준법감시인(CCO)팀의 강면 부장은 하이닉스가 투명경영을 위해 나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하이닉스가 역점을 두고 있는 투명경영의 핵심은 부정과 비리를 사전에 예방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작업이다. 사후적발 위주의 기존 감사 방식으로는 아무리 인원을 많이 동원해도 부정과 비리를 막을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실제 기업의 감사팀이 사후감사에서 찾아낼 수 있는 비리는 전체의 2∼3%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 분야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하이닉스는 애초 지난해 8월 현대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 이후 기존 현대그룹 문화를 혁신하고 선진적인 감사 시스템을 도입하고자 금융기관에만 의무화돼 있는 준법감시인 제도를 도입했다. 물론 국제기준에 맞는 선진적인 시스템을 갖추도록 하라는 박종섭 사장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했다.하이닉스 준법감시팀은 전인환 상무를 포함해 모두 9명. 하이닉스의 경기도 이천공장 경영지원본부 건물 2층 한쪽에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8월 팀을 구성한 뒤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의외의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자금난에 처해 있던 하이닉스에서도 납품업체로부터 접대나 향응, 금품을 수수하는 관행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준법감시팀은 우선 유명무실했던 윤리강령을 재정비하고 투명경영을 위한 직원 교육에 나섰다. 2002년 들어서는 400여개팀에서 63명의 준법가이드를 선발해 이들을 현장에 투입시켰다. 준법가이드는 자기 본래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직원들이 부정과 비리에 빠져들지 않도록 조언과 지도를 담당하는 역할이다. 또 20여명의 직원들로 내부통제제도 구축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6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업무 과정 자체를 제도적으로 투명하게 만들겠다는 뜻에서 구성된 조직이다.

이러한 제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기업문화의 혁신이었다. 준법감시팀은 부정과 비리가 적발될 때마다 사내 전산망을 통해 이를 소개하고 같은 유형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강화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자신의 잘못을 밖으로까지 공개하고 있다. 하이닉스의 윤리강령 해설은 ‘한 협력업체 직원의 제보’라면서 이런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직원들이 해외출장이나 파견근무를 마치고 본사로 돌아올 때 가장 곤혹스러워 하는 것이 상급자에 대한 선물이라는 것이다. 해외출장 등이 국내 근무보다 금적적 혜택을 더 받게 되고, 그러한 혜택을 자신들이 부여했다는 생각을 상급자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은근히 바란다는 설명이다.

실제 앞에서 언급한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국내의 거의 모든 대기업과 납품업체의 관계는 이처럼 금품 상납과 수수의 관계로 얽혀 있다. 아직까지도 대기업이 거래 관계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체 실무자들은 거래 업체의 납품 단가와 물량을 사실상 좌지우지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의 흥망이 갈리기도 한다. 납품업체에 대한 기술 평가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기술력 검증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면 아예 납품 자체를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투명경영을 재도약 발판으로

물론 하이닉스만 직원들의 윤리를 강조하는 것도 아니다. 4대 그룹에 속하는 대기업의 감사팀은 직원들의 사생활까지 조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중요한 것은 하이닉스가 절박한 경영위기 상황에서 하나의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기업의 잘못된 접대와 금품수수 관행을 근본적으로 혁신하기 위한 실험이다. 강면 부장은 “외환위기 이후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들의 업무 투명성은 아직 국제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형편”이라며 “투명경영을 위한 하이닉스의 이러한 시도들은 향후 하이닉스가 재도약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남기 기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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