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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일본 대금업 “뿌리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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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2-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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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속 성장 6개 업체 배후는 재일동포 후타에사쿠… 이자제한 없는 국내 틈새 공략

사진/ 일본계 대금업체인 프로그레스 영업점 입구. (이용호 기자)
“빈 라덴도 대출받을 수 있다.” 영업점 창구에는 과장섞인 이런 글귀 아래로 ‘OOO에서는 누구나 대출이 가능하니까…’라는 광고 문구와 인터넷 홈페이지 주소, 전화번호가 이어진다. 빨간 바탕에 흰 글씨로 쓴 ‘전국 24시간 ARS(자동응답시스템) 상담’이란 대목도 눈길을 끈다.

서울 을지로1가 요지에 자리잡은 한 일본계 대금(사채)업체 지점. 전국 50여개 점포 가운데 하나인 이 영업점은 3층에 있다는 점을 빼면 은행을 비롯한 제도권 금융기관의 지점들과 다를 게 별로 없다. 고객을 맞는 창구는 깔끔하게 정돈돼 있고 직원들의 표정도 밝다. 상담 창구 앞 의자에 앉자 직원이 곧바로 다가와 친절한 목소리로 묻는다. “대출받으려고요?” “예, 한 500만원쯤….” “신분증, 주민등록등·초본을 내고 신용조회를 통과하면 500만원까지 곧바로 대출됩니다. 금리는 월 8.1%입니다.” 대략 1시간 안에 대출 여부가 결정돼 자금을 인출할 수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국내 진출 3년여 만에 몸집 두배로


사진/ 프로그레스의 모체인 아에루(옛 히타치신판)의 인터넷 홈페이지. 후타에시쿠 회장의 인사말이 게재돼 있다.
간단한 신분확인 절차만 거친 뒤 즉각 대출을 결정하는 신속성을 무기로 일본계 대금업체들이 급상승세를 계속하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인 98∼99년에 한국에 상륙한 뒤 3년간 해마다 몸집을 두배로 불리는 맹렬한 성장세다. 현재 일본계 대금업체는 금융감독당국이 확인한 것만 해도 모두 10개. 지난해 말 기준 대출잔액이 5600억원에 이르며 지난 한햇동안에만 무려 600억원의 이익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확인되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대출 규모는 1조원을 넘을 것이란 추정도 있다. 이는 비제도권(사채) 소액 신용대출 시장의 10% 수준으로 여겨진다.

맹렬한 성장세 외에 최근에 밝혀진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일본계 주요 6개사가 사실은 한덩어리라는 것. 여기에 포함되는 회사는 A&O인터내셔날, 프로그레스, 해피레이디, 파트너크레디트, 여자크레디트, 예스캐피탈 등이며 국내 대금업계에서 순서대로 나란히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한덩어리를 이루는 이들 업체의 뿌리에 대해선 그다지 알려진 게 없었다. <한겨레21>이 확인한 바로는 일본의 대금업체인 아에루(옛 히타치신판·www.a-e-l.co.jp)의 설립자이자 현재 회장을 맡고 있는 후타에사쿠 히로마사가 국내에 진출해 있는 일본계 대금업체의 ‘원조’격인 것으로 파악됐다. 후타에사쿠 히로마사 회장의 아들들인 후타에사쿠 야스히로 및 후다에사쿠 유가 일종의 지주회사(페이퍼 컴퍼니)로 알려진 후지기획을 통해 국내 일본계 대금업체 1호인 A&O인터내셔날을 차려 대금업을 시작한 게 지난 99년 3월이었다. 뒤이어 후타에사쿠 회장이 역시 일본 내 지주회사인 록코상사를 통해 프로그레스를 설립하고 여기로부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식으로 해피레이디, 여자크레디트가 잇따라 설립됐다. 파트너크레디트, 예스캐피탈은 직접적인 출자관계는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지만 일부 임원진이 겹치는 사실 등으로 보아 역시 큰 덩어리의 한 부분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다시 말해 국내에서 영업중인 일본계 대금업체의 줄기는 A&O인터내셔날과 프로그레스를 꼭대기에 두고 있는 자산규모 5천여억원의 거대한 그룹체제라고 볼 수 있다. 실체가 확인된 일본계 대금업체로는 이 밖에도 원크레디트, 센츄리서울, 아펙스서울, 청남파이낸스 등이 있으나 이들 4곳을 몽땅 합쳐도 대출잔액이 100억원을 간신히 넘을 정도로 규모가 작다.

일본 대금업체 현황

업체명 대표자 자본금 총자산
(2001년 말)
대출액
(2001년 말)
이익금
(2001년 말)
A&O인터내셔날 박진욱 184 2463 1897 300
프로그레스 이덕수 111 1468 1490 189
해피레이디 오재희 2 824 800 33
여자크레디트 오재희 1 586 537 44
파트너크레디트 후지사와 가즈유키 1 704 651 54
예스캐피탈 미야자와 히데오 1 140 119 -6
원크레디트 신도

사토루

30 82 59 -15
센츄리서울 스다

아카히로

0.75 63 31 0.92
아펙스서울 아오키

 가즈노부

0.5 4 3 0
청남파이낸스 김정행 1 8 8 0.2
합계   331.25 6342 5595 600.12

단위 : 억원

꼬리는 무는 계열업체, 법적 문제 없어

%%99003%% 일본계를 비롯한 외국계 자금이 이처럼 합법적인 사채시장으로 진출하는 데는 별다른 걸림돌이 없다. 외자가 국내로 들어올 때는 ‘외자도입촉진법’에 따라 외국환은행 또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신고하는 절차를 거치는데 이때 산업자원부가 고시한 ‘외국인투자제외 업종’에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 외국인 투자에 대한 규제는 네거티브방식(명시한 것말고는 할 수 있는)인데 금융업으로 분류되는 대금업에 대해선 명시적인 제한규정이 없다. A&O인터내셔날을 비롯한 일본계 대금업체들은 대부분 한국 진출 당시엔 무역업으로 투자신고한 뒤 사업자 등록을 할 때 금융업(대금업)으로 갈아타는 과정을 거친 것으로 파악된다. 이와 관련해 일부에선 의혹을 제기하곤 했지만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일본계 대금업체와 관련해 가장 관심을 끄는 인물은 후타에사쿠 회장인데 A&O인터내셔날을 통해서도 그에 대한 이렇다 할 정보는 들을 수 없었다. A&O의 박진욱 사장은 “가끔씩 한국에 오고 몇번 만난 적이 있지만 경력 등 자세한 것은 잘 모른다”라고 말했다. 박 사장은 “다만 30여년간 일본에서 대금업을 해왔다고 들었다”며 “몇 차례 만나본 바 김치같은 맵고 짠 한국음식도 좋아하고 막걸리도 즐겨마시는 소탈한 분”이라고 전했다. 일본 현지 대금업계 사정에 밝은 한 사채업자가 전한 바로는 후타에사쿠 회장은 환갑 나이의 재일동포라고 한다. 이는 A&O쪽에서도 대체로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따라서 불완전한 대로 모자이크를 짜맞추면 후타에사쿠 회장은 지난 30여년간 일본 대금업계에서 잔뼈가 굵었으며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뒤 한국에 발빠르게 투자한 60대의 재일동포로 정리된다.

후타에사쿠 회장은 개인적으로 밖으로 드러나기를 꺼리지만 사업에선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 일본 대금업계에서 11위(2000년 기준) 수준인 아에루가 다케후지 등 선발업체에 앞서 한국에 발을 들여놓은 것도 그의 이런 성향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A&O인터내셔날 관계자는 “한국에 투자할 당시 아에루(당시엔 히타치신판) 안에선 반대하는 분위기가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당시 일본 내 분위기로는 한국은 언제 전쟁상태에 빠질지 모르는 위험지역으로 여겨져 투자하는 즉시 아에루의 신용도가 떨어지고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을 개연성이 높았다고 한다. 후타에사쿠 회장이 지주회사라는 일종의 완충장치를 통해 한국에 진출한 것은 이런 분위기를 감안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후타에사쿠 회장 못지않게 관심을 끄는 인물로 오재희씨를 꼽을 수 있다. 오씨는 A&O와 같은 계열로 파악돼 있는 해피레이디, 여자크레디트 두 회사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자본금 1억원을 들여 설립한 이들 회사는 여성 고객만 상대하는 독특한 영업방식을 띠고 있으며 지난 한해 각각 33억원, 44억원의 이익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오 사장이 관심을 끄는 것은 A&O인터내셔날의 창립멤버로 시작해 이사를 지낸 적이 있는 데다 곧이어 두 회사를 거느리게 됐다는 점 때문이다. 이런 사실 때문에 국내 사채업계에서는 한때 오 사장이 후타에사쿠 회장의 ‘대리인’격으로 한국 내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는 풍문이 돌기도 했다. 드러난 경력이 거의 없는 가운데 그가 31살의 미혼 여성이란 사실은 이런 풍문에 신비로움까지 보태는 엉뚱한 양상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A&O 관계자는 “오 사장이 한국 내 영업을 주도하고 있다는 추측은 낭설”로 일축하고 “일찍부터 대금업에 관심을 두고 일본에서 공부를 하던 중에 한국 진출을 준비해온 아에루쪽과 우연히 인연이 닿은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사채업계 일각에선 오 사장의 아버지와 후타에사쿠 회장이 절친한 사이라는 인연이 작용했다는 소문도 있다. 오 사장과는 몇 차례 접촉을 시도했지만 전화연결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지주회사로 국내 진출, 초기 투자 대성공

사진/ 우리나라는 대금업체들의 천국인가? 민주노동당과 참여연대등 시민단체들이 고리대출 횡포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김종수 기자)
A&O인터내셔날 내부 분위기에서 확인한 바로는 오재희 사장이 한국 내 영업을 주도하고 있다는 소문에는 다소 과장이 섞여 있다고 여겨지며, 오 사장보다는 A&O 종합기획실의 스즈키 가즈히코 실장이 더욱 부각된다. 스즈키 실장은 히타치신판 출신으로 한국 영업 초창기부터 참여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40대 중반의 명민한 머리의 소유자로 알려진 스즈키 실장은 A&O의 사장이 세 차례나 바뀌는 동안 줄곧 종합기획실장을 맡고 있다. 일본계 대금업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도 “오재희 사장이 실세라는 소문은 와전된 것이며 큰 역할은 스즈키 실장이 맡고 있다”고 말했다.

어찌됐건 후타에사쿠 회장의 한국 투자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대성공을 거뒀다. 그가 세운 회사의 대표격인 A&O인터내셔날의 성적표를 보자. 직원 340명, 대출잔액 2천억원 수준의 이 회사는 지난 한해 대략 30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고객은 무려 7만명에 이르고 있다. 고객 수, 이익 규모 모두 전년도의 두배 수준이다. 지난해 전국 100여 상호신용금고 가운데 가장 성적이 좋았던 현대스위스금고의 순익이 130억원을 조금 넘었다는 사정을 감안할 때 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사실상 계열 관계인 나머지 5개 회사를 합쳐보면 어떨까. 이는 정확히 집계되지 않지만 지금까지 아에루가 한국에 투자한 자금은 1500억원가량이며 내부 유보금으로 축적된 그간의 순이익이 1200억∼1300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야말로 짭짤한 장사인 셈이다.

이같은 기록적인 경영실적의 비결은 뭘까. 일본계 대금업체의 영업 방식을 거칠게 요약하면 대략 이렇다. 신용금고에서 연 16∼17%로 돈을 꿔서 급전이 필요한 이들에게 높게는 연 100% 안팎에 빌려주는 식이다. 일본에서 들여온 초기 자본금으로 영세한 국내 대금업체(사채업체)를 따돌리고 신용금고를 비롯한 제도 금융권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틈새를 정확히 파고든 전법이었다. 이자상한이 연 29.2%로 제한돼 있는 일본과 달리 한국에선 아무런 제한이 없는 점은 일본계에 대단히 유리한 환경으로 작용했다. A&O인터내셔날을 비롯한 일본계 대금업체가 국내 신용금고에서 조달한 자금만 2천억원 안팎에 이르며 일부 은행에서도 이들에게 돈을 꿔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뿌리 업체 규제장치 마련 움직임

일본계 대금업체 상위 6개사가 사실상 한덩어리임을 확인한 금융감독원은 자금조달에 일정한 제약을 두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이들 업체의 주요 자금조달원인 신용금고에도 은행·종금처럼 동일차주(돈을 빌리는 사람 및 특수관계인) 개념을 도입, 대출한도를 자기자본의 20%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이다. 자금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용금고들이 앞다퉈 돈을 꿔줬다 회수 불능으로 부실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방침이 흘러나온 뒤 일본계 대금업체 일부가 대주주를 바꾼 것으로 드러나는 등 규제장치를 피하려는 숨바꼭질 움직임도 감지돼 눈길을 집중시키고 있다.

일본계 대금업체의 승승장구 배경에는 급전이 필요한 이들의 과도한 희생이 배어 있다. 이는 성급하게 이자제한을 풀어버린 정부의 정책 실패에서 비롯된 바 크다. 또 담보대출 관행을 쉽사리 버리지 못한 국내 제도금융권이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는 점도 빠뜨릴 수 없다. 씁쓸함과 안타까움을 더하는 대목이다.

 

일본의 대금업, 호시절 갔지만…

일본에는 약 3만개의 대금업체가 영업중이다. 한국에 진출해 5천여억원의 자산을 굴리고 있는 아에루(옛 히타치신판)도 이중 하나다. 이들 대금업체 가운데는 일본 증시 1부에 상장된 회사만 8개에 이르고 있다. 일본 대금업계 1위인 다케후지의 자산규모는 무려 1조6천억엔(16조원)에 이르고 있다.

일본 대금업은 오랫동안 규제없이 존속해오다 고리대출 및 가혹한 채권추심(빚 독촉)으로 사회문제를 빚자 일본 정부가 1983년 관련법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대금업의 규제 등에 관한 법률’이 그것이며 줄여서 ‘대금업 규제법’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대금업체들은 각종 제약을 받고 있다. 대출광고 때는 금리나 상환방법 등 대출조건을 표시해야 하며 창구에서 간이심사를 통해 무담보, 무보증으로 대출할 때는 1인당 50만엔(500만원) 또는 연수입의 10% 안에서만 빌려줘야 한다. 이자를 제한하는 법도 있다. ‘출자의 수입가능, 예금 및 금리 등의 규제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출금리 상한은 2000년 6월부터 연 29.2%(이전엔 40%)로 정해졌다. 여기에는 영업금리뿐 아니라 채무자로부터 받는 비용, 수수료 및 연체료까지 포함되며 이를 넘어선 이자를 거둘 경우 법률에 의해 처벌을 받게 된다.

IMF 사태 뒤 이자제한법을 폐지한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인 양상이며 이런 환경이 일본계 자금이 국내 사채시장으로 잇따라 밀려든 주요 원인이었다. 아에루에 이어 다케후지, 산요신판 등도 한국에 진출할 것이란 소문이 나돌고 있는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최근 들어선 미국계, 프랑스계 자본도 국내 대금업계로 진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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