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자기계발 휴직제 도입 확산… 직장인들도 고용불안 감수하고 몸값올리기에 나선다
대기업 직원인 김아무개(34) 대리는 최근 대학 졸업 뒤 7년간 다람쥐 쳇바퀴 돌듯 오가던 직장에서 ‘벗어났다’. 직장을 그만둔 건 아니고 숱한 고민 끝에 휴직을 한 것이다. 그는 “업무에서 벗어났다”고 표현했지만, 미국에서 2년간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기로 한 그에게 휴직은 짧은 ‘재충전 기회’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큰 각오가 뒤따르는, 인생을 건 모험이다. 그는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려면 더 늦기 전에 뭔가 해둬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고 했다. 나중에 회사에 복귀하면 입사동기들보다 2년이 뒤처지게 되지만 휴직기간 동안 자신을 계발하는 것이 그 2년을 충분히 만회하고 남을 것이란 판단도 섰다. “물론 무급휴직이고 내 돈 들여 가는 것인데, 회사에서는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가라고 하더군요. 우기다시피 매달리자 결국 휴직서를 받아줬어요. 회사쪽은 내가 돌아온 뒤 복귀할지 아니면 다른 회사로 튀어버릴지를 찬찬히 재더군요. 이것저것 따져본 끝에 받아주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 같아요.” 유치원 교사인 아내와 세살배기 딸이 눈에 밟히지만 1년여 동안 휴직을 준비해온 그는 미국으로 갈 날만 손꼽고 있다.
교육훈련 비용은 근로자가 감당하라
그런데 김 대리가 말한 ‘회사가 이것저것 따져본 것’은 무엇일까? 물론 회사쪽은 그가 선택한 자기계발 휴직이 기업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를 치밀하게 계산했을 것이다. 굳이 회삿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직원의 자기계발을 꾀할 수 있고, 인건비 절감에다가 유휴인력을 해소하는 통로로 휴직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면 회사로서는 손해날 것이 없다. 특히 이런 계산의 배경에는 인적자원 개발에 대한 기업들의 달라진 관행이 깔려 있다. 기업들은 채용한 뒤 키워 활용하는 ‘양성(Making)전략’에서 벗어나 이미 능력이 갖춰진 인력을 노동시장에서 거액의 연봉을 주고 사오는 ‘외부충원(Buy)전략’으로 바꾼 지 오래다. 평생직장 신화가 깨진 상황에서 기업은 교육훈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을 더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근로자가 회사에 남아, 교육훈련에 쏟아부은 비용 이상으로 회사에 기여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사라진 것이다. “인재가 기업경쟁력을 좌우한다”고 외치면서도 사내에서 키우기보다는 외부에서 충원하는 전략이 나타난 것도 이 때문이다.
기업들이 교육훈련을 장기적 ‘투자’가 아니라 수익을 못 낼 공산이 큰 ‘비용’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건 경제위기 이후 크게 감소한 교육훈련비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노동부 조사를 보면 총노동비용 중 교육훈련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96년 2.1%였으나 경제위기 직후인 98년 1.2%, 99년 1.4%로 크게 줄었다. 기업이 살아남느냐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던 당시 ‘별 쓸모없는 부서’로 인식된 사내 교육훈련 파트는 구조조정 0순위가 되거나 부서 자체가 송두리째 없어지기도 했다. 이런 현실에서 흥미로운 건 요즘 자기계발 휴직제를 도입하는 기업이 부쩍 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건설은 다른 공사현장으로 가기 위해 대기하는 직원들을 위한 자기계발 휴직제(기본 3개월)를 최근 도입했다. “대기기간을 활용해 개인의 업무능력을 향상시키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현대건설쪽의 설명이다. 대우정보시스템도 국내 및 해외 정보통신대학원 과정 등에 다닐 수 있도록 자기계발 휴직제도를 마련했고, 포스데이타는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춘 직원에게 해외유학이나 연수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LG CNS나 삼성SDS의 경우 외국으로 어학연수나 MBA 과정 등을 위해 휴직한 직원이 각각 20여명에 이른다. 물론 이같은 자기계발 휴직은 대부분 무급이다. 회사에서 기본급과 교육비용을 대주는 경우가 드물게 있긴 하지만 돌아온 뒤 일정기간 계속 근무하는 조건이 붙는다. 교육훈련비를 줄이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기업마다 자기계발 휴직제를 도입하고 있는 건 분명 모순으로 비친다. 그렇다면 자기계발 휴직제에 어떤 복잡한 속사정과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일까? 물론 휴직자는 회사 업무에서 벗어나 자기계발할 시간을 가짐으로써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그러나 회사쪽에서 볼 때 자기계발 휴직은 직원에 대한 ‘배려’라기보다는 여유 인력을 해소하기 위한 좋은 방편이다. 20대와 30대 대리급 20여명이 휴직한 삼성SDS쪽은 “이직 등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기계발 휴직제가 빠른 의사결정을 도와주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LG CNS쪽도 “기업들의 자기계발 휴직제는 지난 98년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잉여인력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시작됐다”고 말했다. 개인유학 휴직은 하나의 퇴직 절차로 받아들여졌고 이를 통해 큰 탈없이 구조조정이 이뤄지기도 한 것이다. 또 자기계발 휴직은, 휴직상태이기 때문에 간접비(임금 외에 노동자에게 지출되는 각종 부대비용)가 들긴 하지만 회사가 시켜야 할 교육훈련을 큰돈 들이지 않고 직원 개인 돈으로 해결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근로자와 회사의 ‘동상이몽’
그러나 회사쪽 의도와 달리 직장인들에게 자기계발을 위한 휴직은 어쩌면 절박하다. 김 대리에게 휴직이 인생을 건 모험이듯, 월급쟁이에게 휴직은 일에 지쳐서 자기계발이란 명목을 붙여 ‘쉬는’ 게 결코 아니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무너진 요즘 자기계발은 직장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 노동시장에서 요구하는 지식과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면서 정규 교육과정만으로는 40여년에 걸친 생애노동을 안정적으로 보장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게다가 사내 교육훈련이 빈곤하기 짝이 없다보니 회사에 기대기보다는 자기 돈을 들여서라도 직무능력을 기를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회사는 교육훈련의 책임을 근로자에게 떠넘기고, 근로자는 다니고 있는 직장 외의 다른 대안까지 생각하면서 자기계발을 도모하는 양상인 셈이다.
그래서 자기계발 휴직은 근로자와 회사 사이에 벌어지는 치열한 게임의 모습을 띤다. 회사와 근로자 양쪽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게 교육훈련의 본디 뜻인데도 자기계발 휴직이 손익을 철저하게 따지는 식으로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 김주섭 연구원은 이를 직장인들의 학습수요와 기업의 교육훈련투자 사이에 생기는 괴리로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고용불안이 가중되고 직업과 관련된 지식과 기술의 사이클이 단축되면서 근로자들의 학습 수요는 그만큼 늘고 있는데 기업은 일일이 교육훈련에 투자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자기계발 휴직을 둘러싼 근로자와 회사의 동상이몽은 이런 괴리에서 비롯된다는 얘기다.
자기계발 휴직제의 다양한 모습에서 게임의 형태는 좀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회사쪽은 자기계발 휴직제를 도입했지만 한결같이 “적극 권장할 만한 것은 못 된다”고 털어놓는다. 인건비를 절감하고 여유 인력을 털어내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근로자들도 이런 점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일까? 현대건설의 경우 기본급도 주고 교재비용도 대주지만 휴직을 신청한 사람은 한두명에 불과하다. 현대건설쪽은 “회사로서는 사무실에 앉아 있음으로써 발생하는 인건비를 줄이는 효과도 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신청자가 없다”고 말했다.
물론 자기계발 휴직을 신청한다고 해서 다 받아주는 것은 아니다. 포스데이타쪽은 “자기계발 휴직이 업무상 회사에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지를 따진다”며 “그렇지 못하다면 당연히 받아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돌아와서 덜컥 직장을 옮겨버리는 ‘위험’을 감안하면 일정한 요건을 갖춘 직원에 한해 휴직을 허용하는 것이 기업으로서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직업능력개발원 장홍근 연구원은 “휴직을 허용하는 자체가 기업에는 투자이기도 하다”며 “투자에 대한 수익이 의문스럽다면 기업한테 휴직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노동시장 유연화로 언제 정리해고를 당할지 모르는 판이 된 현실에서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기술만을 직원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업무와 동떨어진 분야라도 자기계발 휴직을 폭넓게 인정해줘야 한다는 얘기다.
이해타산 맞으면 ‘윈윈게임’도 가능
휴직 이후 직장을 옮겨버리는, 이른바 ‘근로자의 모럴 해저드’는 회사로서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포스데이타 이종인 교육팀장은 “연수 휴직을 마치고 나서 다른 회사로 옮기는 사례도 많다”며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LG CNS쪽도 “어학공부를 떠난 사람은 회사에 복귀할 가능성이 높지만 2년 넘게 특정분야를 공부하러 간 사람은 딴 곳으로 가버릴 가능성도 이미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기업들은 웬만한 각오 없이는 월급도 없는 자기계발 휴직을 선택할 근로자가 거의 없다고 여긴다. 그래서인지 포항제철 관계자는 “오랫동안 승진이 안 되거나 희망하는 부서에 못 가는 사람들이 휴직을 선택하는 경향이 많다”고 말했다. 회사에 적을 걸어두긴 했지만 월급과 승진에서 뒤처지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휴직을 선택한다면 ‘다른 일’을 도모할 공산이 클 거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해타산에 기초한 근로자와 회사의 선택은 윈윈게임이 될 수도 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사진/ 기업경쟁력은 사람에 대한 투자에서 나온다? 월급쟁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기계발에 나서야 한다. (이용호 기자)
기업들이 교육훈련을 장기적 ‘투자’가 아니라 수익을 못 낼 공산이 큰 ‘비용’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건 경제위기 이후 크게 감소한 교육훈련비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노동부 조사를 보면 총노동비용 중 교육훈련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96년 2.1%였으나 경제위기 직후인 98년 1.2%, 99년 1.4%로 크게 줄었다. 기업이 살아남느냐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던 당시 ‘별 쓸모없는 부서’로 인식된 사내 교육훈련 파트는 구조조정 0순위가 되거나 부서 자체가 송두리째 없어지기도 했다. 이런 현실에서 흥미로운 건 요즘 자기계발 휴직제를 도입하는 기업이 부쩍 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건설은 다른 공사현장으로 가기 위해 대기하는 직원들을 위한 자기계발 휴직제(기본 3개월)를 최근 도입했다. “대기기간을 활용해 개인의 업무능력을 향상시키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현대건설쪽의 설명이다. 대우정보시스템도 국내 및 해외 정보통신대학원 과정 등에 다닐 수 있도록 자기계발 휴직제도를 마련했고, 포스데이타는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춘 직원에게 해외유학이나 연수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LG CNS나 삼성SDS의 경우 외국으로 어학연수나 MBA 과정 등을 위해 휴직한 직원이 각각 20여명에 이른다. 물론 이같은 자기계발 휴직은 대부분 무급이다. 회사에서 기본급과 교육비용을 대주는 경우가 드물게 있긴 하지만 돌아온 뒤 일정기간 계속 근무하는 조건이 붙는다. 교육훈련비를 줄이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기업마다 자기계발 휴직제를 도입하고 있는 건 분명 모순으로 비친다. 그렇다면 자기계발 휴직제에 어떤 복잡한 속사정과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일까? 물론 휴직자는 회사 업무에서 벗어나 자기계발할 시간을 가짐으로써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그러나 회사쪽에서 볼 때 자기계발 휴직은 직원에 대한 ‘배려’라기보다는 여유 인력을 해소하기 위한 좋은 방편이다. 20대와 30대 대리급 20여명이 휴직한 삼성SDS쪽은 “이직 등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기계발 휴직제가 빠른 의사결정을 도와주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LG CNS쪽도 “기업들의 자기계발 휴직제는 지난 98년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잉여인력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시작됐다”고 말했다. 개인유학 휴직은 하나의 퇴직 절차로 받아들여졌고 이를 통해 큰 탈없이 구조조정이 이뤄지기도 한 것이다. 또 자기계발 휴직은, 휴직상태이기 때문에 간접비(임금 외에 노동자에게 지출되는 각종 부대비용)가 들긴 하지만 회사가 시켜야 할 교육훈련을 큰돈 들이지 않고 직원 개인 돈으로 해결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근로자와 회사의 ‘동상이몽’

사진/ "회삿돈으로 자기계발은 꿈도 꾸지 말라!" 기업체별로 이뤄지던 외국어 학습 지원도 IMF이후 크게 줄어들었다. (이정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