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9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삼성증권 영업장 입구에 배당 착오 입력으로 인한 삼성증권 주가 급등락 사고에 대한 사과문이 붙어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실체 없는 유령주식이 계좌에 입고되고, 시장에 풀려 유통되는 모든 과정에서 경고음은 울리지 않았다. 증권시장의 결제 책임을 맡은 한국거래소와 예탁결제원이 실수로 입력된 주식의 입고와 주문을 실시간 감지하고 차단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못한 탓이다. 공매도 폐지 청원 20만 명 동의 시스템의 구멍은 빠르게 확인됐지만, 유령주식을 내다판 직원들의 속내는 여전히 미궁에 있다. 자신의 계좌에 잘못 배당된 주식을 현금으로 전환하려면 영업일 기준으로 이틀이 걸린다. 곧장 ‘먹튀’할 수도 없는 돈인데, 왜 시스템을 잘 아는 증권사 직원들이 주식을 내다판 걸까. 회사 쪽에서 ‘매도 금지’ 공지 팝업창을 띄운 뒤에도 주식을 매도한 직원들이 있었다. 이들은 금융 당국 조사에서 “실제 거래가 되는지 궁금해서 팔았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댔다고 한다. 증권가에선 이들이 물량 공세로 ‘초단타 매매’를 시도했다거나, 작전세력과 손잡고 주가 하락에 베팅을 한 선물거래를 시도했다는 등 여러 해석이 나온다. 실제 사고 당일인 4월6일 삼성증권 선물 거래량은 평소보다 40배가량 급증했다. 하지만 ‘작전형’ 선물거래는 배당 착오를 예측해야 하기에 그랬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반론도 있다. 또 주가가 급등락할 때는 차익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선물거래량이 급증하는 경향을 보인다. 삼성증권의 한 직원은 “자기 돈이 아니라는 건 당연히 알고 ‘정말 팔리는 걸까’ 싶어 팔았다가 취소한 직원들도 있다. 한번 팔아봤다가 시세가 출렁거리니 덜컥 매도한 게 대부분이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금융 당국은 직원들의 매도 사유와 관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사하고 있다. 이번 사고의 여파는 삼성증권에 그치지 않는다. 증권사의 단순 실수가 시장 참여자의 이기심과 맞물려 시장을 뒤흔드는 파국을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국내 자본시장 전체의 신뢰를 떨어뜨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인투자자들이 느끼는 이런 분노는 공매도로 향하고 있다. 공매도는 주식이나 채권을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매도 주문을 내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주식을 빌려서 하는 공매도만 허용되는데, 개인은 종목·수량과 빌리는 기간에 제약이 있어 외국인과 기관투자자에 견줘 불리하다. 실제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68.58%)과 기관(30.97%)에 견줘 공매도를 하는 개인 비중은 0.44%로 미미한 수준이다. 개인투자자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매도를 폐지하거나, 기관투자자와 똑같은 조건에서 공매도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삼성증권 직원들의 유령주식 거래가 ‘무차입’ 공매도와 같은 형태로 이뤄졌기 때문에 이로 인한 손실을 피하려면 개인도 자유롭게 공매도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누리꾼은 “(이번 사태의 원인은) 회사에서 없는 주식을 배당하고 그 없는 주식이 유통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렇다면 공매도는 주식도 없이 그냥 팔 수 있다는 얘기다”라며 공매도 폐지에 대한 청와대 국민청원글을 올렸다. 이 글엔 나흘 만에 20만 명 넘게 동의했다. 금융위 “공매도 효용·유용성 있어” 그러나 공매도가 실제 폐지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정책 당국자들은 ‘공매도 폐지론’에 “별개의 사안”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4월10일 “공매도 제도가 가지는 효용성, 유용성이 있으므로 무작정 폐지하자는 주장이 꼭 옳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박수지 <한겨레> 경제에디터석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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