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 엥글 GM 해외사업부문 사장(가운데)이 2월20일 국회를 방문해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등과 만나 기념 촬영을 했다. 공동취재사진
실사한다고 나섰지만… 정부와 산은은 ‘선 실사, 후 지원’ 카드로 GM의 공세에 맞서고 있다. 실사를 통해 경영 위기의 원인이 뭔지, 재무구조 개선에 어떤 조처가 필요한지 등을 정확히 파악해야 지원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논리다. 정부는 2월19일 엥글 부사장과 만나 대주주의 책임 있는 역할과 이해관계자(주주·노동조합·채권자 등)의 고통 분담, 지속가능한 경영 정상화 방안 등 3대 원칙을 제시했다. GM은 이에 대해 두 차종의 신차 한국 배정과 28억달러의 신규 투자 계획을 내놨다. 또 3조원(27억 달러) 규모의 본사 차입금을 출자전환하겠다는 뜻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GM 쪽이 우리가 제시한 원칙을 수용하고 대안을 제시한 것은 전향적인 태도로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실사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을 거라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온다. GM이 선별적으로 제공하는 자료로 과연 경영진의 책임을 제대로 규명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은 2월27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한국GM에 북미 GM의 매출원가율을 적용해보면, 3년간 1조원의 이익을 내는 흑자 기업으로 전환된다. GM 자동차부문 전체의 매출원가율을 적용해봐도 적자 규모가 1천억원대로 크게 감소한다”며 GM 본사의 회계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지 의원은 “이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실사는 물론 국세청과 금융감독원의 조사와 감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GM이 수만 명의 일자리를 담보로 ‘철수’라는 배수진을 치고 있기 때문에 산은의 실사가 추가 지원을 전제로 한 요식행위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산은이 3월 말까지 실사를 마치기로 했다는데, 이미 (실사가) 정치적 판단이 전제된 선택이 아닌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실사와 별개로 GM 본사에 차입금의 출자전환과 함께 차등감자를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주주인 GM이 부실 책임을 가장 많이 져야 한다는 원칙을 관철해야 추가 지원에 여론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차등감자는 경영 부실 책임이 큰 대주주의 지분에 대해서만 차별적으로 감자를 하는 것이다. 이는 2대주주인 산은이 영향력을 행사할 지분을 확보하는 실리를 챙길 수도 있다. 만약 GM 본사가 차등감자 없이 차입금을 출자전환하면 2대주주인 산은의 발언권은 급격히 축소된다. 장부상 한국GM의 자본금은 1660억원인데, 이 가운데 17.2% 지분율을 가진 산은의 출자 규모는 282억원 정도다. 만약 GM이 차입금 3조원을 출자전환하면, 산은의 지분율은 1% 아래로 떨어진다. 한국GM의 정관에 정해진 주총 특별안건 의결 기준 85%를 저지하려면 산은이 최소 15% 이상의 지분율은 확보해야 한다. ‘밀당 고수’를 상대하는 협상은 결코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GM은 이미 오스트레일리아(2013년), 러시아(201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인도(2017년) 시장에서 철수 협상을 한 경험이 있다. 각국 정부의 지원을 최대한 받아낸 뒤 지원이 끊기면 가차 없이 철수했다. 언제든 철수할 수 있는 준비를 해놓고도 이를 상대에게 들키지 않는 협상술로 최대한 이익을 챙겼다. GM이 한국 남을 의지 있는지 확인해야 이런 이유로 정부가 GM이 짜놓은 협상의 틀을 깰 수 있는 과감한 조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산은이 GM의 요구대로 증자에 참여하는 대신 한국GM 이사진의 절반 이상을 요구하는 등의 역제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GM이 이를 거부하면 한국에 남겠다는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협상이 새 국면을 맞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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