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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산림조합은 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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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2-0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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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장기집권 노리는 중앙회장 이윤종씨… 독주체제 구축해 3선은 떼논당상

사진/ 이윤종(오른쪽) 회장은 8년 동안 중앙회를 이끌어오면서 독주체제를 굳혀왔다. 지난 1월초 신년 시무식에서 직원들과 악수를 하는 이 회장.
전국 조직을 가진 선출직 단체장이 연임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길어야 임기 2∼3년에 한 차례 연임이다. 그것도 정치적 외풍을 받으면 임기가 남은 상태에서 중도 탈락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4년 임기를 두번이나 채우고도 3기 연임을 시도하는 단체장이 있다. 산림조합중앙회 이윤종 회장이다.

“우리 산림은 보기와 달리 너무 황폐화돼 있어요. 후손들에게 울창한 산림자원을 만들어 물려줘야 합니다.” “그런 목표를 갖고 많은 일을 벌여놓았는데 제가 그 일들을 마무리해야 합니다.” 오는 2월8일 중앙회장 선거를 앞두고 있는 이윤종 회장은 재출마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반드시 회장직을 4년 더 해야겠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올해 69살로 4년을 더 하게 되면 73살이 된다. 지난 8년을 합쳐 모두 12년을 회장으로 재직하는 산림조합 40년 역사상 최장수 회장이 되는 셈이다. 산림조합 관계자는 “회장을 73살까지 12년 동안 한다면 사실상 종신제와 다름없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쏟아지는 불협화음은 헐뜯기인가


그래서인지 중앙회장 선거를 앞두고 산림조합에서는 불협화음이 터져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이 회장의 중앙회 운영에 대한 비판이 봇물을 이룬다. 회장의 독단과 전횡으로 중앙회가 1인 독재체제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선거를 앞두고 이 회장을 흠집내기 위한 헐뜯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회장이 12년 장기집권 태세를 굳히려 한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런 말들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ㅇ아무개 지역조합장은 “중앙회 운영 방식이 일방적이고 독선적이어서 변화에 대처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일선 조합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일선 조합들은 빈사상태인 데 반해 중앙회는 갈수록 비대화되고 있다”며 “누가 당선되든 현재의 중앙회는 대대적으로 개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왕준 노조위원장은 “중앙회 건물 11개층 가운데 1개층을 회장실로 다 쓰고 임원들에게 규정에도 없는 특별상여금을 지급하는 등 독단적인 경영을 일삼아왔다”며 “중앙회 조직이 회장을 위한 사조직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앙회장 선거는 오는 2월8일 오전 서울 산림조합중앙회 9층 회의실에서 감사선거와 함께 열린다. 회장 후보로는 이 회장과 최용안 전 감사, 박경 전 개발상무 3명이 출마했다. 회장 1명을 포함해 145명의 조합장들이 투표해 과반수를 얻는 사람이 회장으로 선출되는 것이다. 물론 과반수가 안 될 때는 2차, 3차 투표를 거친다. 그러나 산림조합 안팎에서는 선거 결과가 보나마나라고 고개를 젓는다. 선거인단이 145명밖에 안 되는 현실 속에서는 현직 회장이 재선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농협의 경우 유권자인 일선 조합장이 1400명에 이른다. 농협 관계자는 “선거인단이 145명이라면 현재의 회장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며 “회장이 4년 임기 동안 조합장들만 잘 관리하면 얼마든지 현직의 이점을 가지고 재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회장직에 도전하는 두 사람이 모두 전북 임실 출신이다. 표가 분산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를 두고 한 후보 진영은 “도전자쪽의 표를 분산시키기 위해 위장 후보를 내보낸 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일선 조합장들의 대표성도 문제다. 지역 산림조합의 회원들은 평균 3500여명이지만 조합장을 뽑는 대의원은 30∼50명에 불과하다. 선거 때 20여명의 표만 확보하면 조합장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조합장의 대표성이 없고, 회원을 위한 조합장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회원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몇몇 조합 간부와 대의원들에 의해 조합장이 선출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는 것이다. 원래 산림조합법은 조합원 총회에서 직선으로 조합장을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단순히 농사일 때문에 모이기 힘들다는 이유로 대의원에 의한 간접선거로 조합장을 선출하고 있다. 지난해 경남 밀양에서는 조합장 선출을 직선제로 바꾸려는 시도가 거세게 일어났으나 결국 직선제 도입에 실패했다.

선거 비리도 수두룩… 대의원 수 늘려야

사진/ 산림조합중앙회장 선거에 출마한 이윤종 회장, 최용안 전 감사, 박경 전 개발상무(맨 위쪽부터)
선거 과정에서 일선 조합장들의 비리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포항시 산림조합의 조합장이 선거를 앞두고 대의원들에게 돈을 돌리다가 경찰에 구속됐으며, 고성군 산림조합장도 선거 때 대의원들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돼 있는 상태다. 12월에는 경남 산청군 전·현직 산림조합장이 횡령 혐의로 함께 구속되기도 했다.

이처럼 일선 조합장 선거가 민주적으로 이뤄지지 못하다보니 중앙회장 선거 때도 회원들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조합장에게만 잘 보이면 얼마든지 연임이 가능하다. 결국 현재의 불합리한 선거제도가 중앙회장의 영구집권 체제를 보장해주고 있는 셈이다. 물론 중앙회와 일선 조합의 경영진은 선거제도의 변화에 극력 반대하고 있다. 농협의 경우 회장이 선출직으로 바뀐 이후 아직까지 4년 임기를 두번 거쳐본 사람이 없다. 한호선 회장 4년, 원철희 회장 5년에 불과하다. 12년 임기를 꿈꾸는 이 회장과는 천지 차이다. 산림조합중앙회의 전직 고위관계자는 “일선 조합장 선출을 위한 대의원 수를 크게 늘리고 중앙회장의 연임을 제한하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지 않는 한 현재와 같은 회장 1인 독주체제를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회장도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선거를 연임의 명분으로 내세운다. “연임 여부는 투표권을 가진 조합장들이 판단하는 것이지 제3자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물론 형식상으로는 그럴듯한 말이다. 그러나 산림조합 회원들 가운데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현재의 간선제 선거가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4년 뒤에는 출마하지 않겠다”라고 밝혔지만 사실 여부는 그때 가봐야 알 수 있는 문제다. 12년 회장직을 거친 뒤에는 오히려 “마무리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질 수도 있다. 한 일선 조합장은 “벌여놓은 일을 모두 마무리하고 떠나겠다는 것은 출마를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며 “그런 논리는 2006년 회장 선거 때 또다시 출마하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정남기 기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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