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1일 서울 영등포구 ‘양평왕갈비’에서 손님들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여기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시급 1만원을 받는다. 김진수 기자
김 사장은 잠시도 자리에 앉지 못했다. 고씨가 방에 있는 손님들을 챙기는 동안, 김 사장은 홀을 누볐다. 쉴 새 없이 손님 테이블을 살폈다. 고기가 부족한 테이블에는 돼지껍질을, 식사를 끝마친 테이블에는 사이다를 서비스로 내줬다. 손님들이 나가면 고씨와 함께 서둘러 빈 그릇을 치우고 테이블을 닦았다. 고씨 혼자 방과 홀에 있는 테이블 13개를 맡기엔 벅차다. 아르바이트생 한 명을 더 고용하지 않으려면 사장이 일을 거들어야 했다. 그나마 가게를 막 시작한 터라 고씨가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서빙을 하지만, 다음달부터 점심 장사를 하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김 사장 혼자 서빙을 하기로 했다. 하루 7만원의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서다. 물론 청소 등 장사 준비도 숯불 담당인 남편과 둘이 해내야 한다. 김 사장의 가게처럼, ‘최저임금 1만원’은 지금도 불가능한 구호는 아니다. 일이 힘든 고깃집이나 횟집을 중심으로 직원에게 시급 1만원을 주는 가게가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인력난이란 현실적 조건과 사장님의 선의가 더해진 결과다. 다만 그 대가는 고스란히 사장님들 몫이다. 자기 몸으로 때우거나 적자를 감당하면서 가게를 유지하는 처지다. 문재인 정부가 풀어야 할 고차함수 사장님들의 선의와 희생에 기대지 않고도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릴 방법은 없을까. 문재인 정부의 고민도 이 지점에 닿아 있다. 최저임금 1만원은 문재인 정부 ‘소득 주도 성장론’의 핵심이다. 최저임금을 올려 소득 불평등 문제를 풀고 내수도 진작하겠다는 취지다. 대선 공약대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려면 3년간 15.7%씩 올려야 한다. 저임금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해줄 최저임금 1만원이, 영세자영업자와 중소기업에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부의 딜레마다. 지난 6월15일 가동된 최저임금위원회에서도 이 문제를 두고 ‘전선’이 만들어졌다. 노동계를 대표하는 근로자위원들은 “내년부터 최저임금 1만원”을 주장하지만, 경영계를 대표하는 사용자위원들은 영세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을 앞세워 “동결이나 소폭 인상”으로 맞선다. 매년 되풀이돼온 레퍼토리다. 물론 지난 9년간 보수 정권에서 진행된 최저임금위원회와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1년 전 ‘기울어진 최저임금위원회’에 반발해 사퇴했던 민주노총·한국노총도 문재인 정부에 기대를 걸고 협상에 복귀했다. 정부에는 명시적인 최저임금 결정권은 없지만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근로자위원(9명)과 사용자위원(9명)이 팽팽하게 대립할 경우 고용노동부가 추천한 공익위원(9명)이 정한 중재 구간에서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구조다. 근로자위원인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정권에 대한 기대보다는, 최저임금 1만원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높아졌다는 점에서 (이번 위원회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국정위)도 최저임금 인상안을 뒷받침하기 위한 소상공인·자영업자 부담 완화 대책을 곧 발표한다.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범위를 확대해 연매출 2억~5억원인 소상공인이 연 80만원(총 3500억원)의 혜택을 볼 수 있게 하겠다는 내용이 우선 담겼다. 연평균 2조5천억원 규모의 세제 혜택 패키지를 마련 중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다만 이번 대책을 짜는 국정위 경제2분과 소속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직 확정된 바 없다”고 말을 아꼈다. 마냥 낙관하기는 이르다.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은 6월1일 “적어도 올해 10% 이상 올리도록 논의하겠다”고 했다. ‘10%+α 인상’은 정부 약속인 ‘15.7% 인상’보다 낮은 목표치다. 김진표 국정위 위원장 역시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는 최저임금 적용을 ‘2년 유예’해주는 구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목표치를 하향 조정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역시 대선 당일인 5월9일 “(최저임금 1만원 목표를) 2020년이 아니라 임기 중(5년) 실현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새 정부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인심이 넉넉한 김 사장의 시급 ‘한계선’ 문재인 정부가 고차함수를 풀 시간은 많지 않다. 최저임금위원회는 6월29일까지 최저임금안을 결정해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제출해야 한다. 지난해처럼 노사가 충돌하더라도 7월 중순에는 어떤 식으로든 담판을 져야 한다. 8월5일에는 장관이 고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심이 넉넉한 김 사장에게도 시급 1만원은 ‘한계선’이다. 최저임금이 1만원으로 오르면, 고깃집의 시장임금도 덩달아 2천~3천원은 뛰게 마련이다. 여기에 1천∼2천원을 더 얹어줄 자신은 없다. “제가 줄 수 있는 시급 마지노선은 많아야 1만1천원, 1만2천원이에요. 그 이상 되면 아르바이트생을 못 둬요. 그러면 직장 다니는 자녀들한테 도와달라고 해야겠죠.” 김 사장은 지금보다 시급을 올려주려면 정부가 추진 중인 카드 수수료 인하와 세금 감면 등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추가 인건비 지원이나 임대료 안정화,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투 방지 등 구조적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다른 사장님들의 목소리도 높다. 이제 문재인 정부가 한계상황에 내몰린 가난한 사장님과 그보다 가난한 노동자의 오랜 요구를 모두 맞출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를 짜내야 한다.
영국과 미국의 같은 듯 다른 실험
‘최저임금 인상’ 어떻게 현실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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