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 움직이는 대형주로 주가 ‘조절’… 시세차익 노리는 단기투자에 당할 수도
‘파란 눈’이 사면 오르고, ‘검은 머리’가 사면 떨어진다? 주식시장에선 외국인이 사면 값이 오르고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 사면 반대로 영락없이 떨어진다는 속설이 오랜 상식처럼 굳어져 있다. 이 때문에 재미는 외국인 투자자들만 본다는 냉기어린 푸념이 잦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거치면서 이런 푸념은 더욱 늘어났다. 자본시장 개방으로 외국인 투자자가 늘어나 시장 전체를 쥐락펴락하는 모습이 더욱 뚜렷해진 데 따른 반응이다.
외국인이 사면 오른다는 속설은 실제 통계에서도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주식시장의 오름세가 시작된 지난해 9월 이후 외국인은 2조6천억원을 순매수하면서 종합주가지수를 독자적으로 78포인트나 끌어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보면 9월17일부터 올해 1월11일까지 79거래일 동안 종합주가지수가 468.76에서 727.36으로 258.6포인트 오르는 와중에 외국인은 2조6057억원을 순매수하며 지수를 독자적으로 78.41이나 밀어올린 것으로 분석됐다. 외국인 독자적으로 순매수한 날은 24거래일이었으며 이 기간 중 하루 평균 순매수는 1086억원, 이로 인한 지수 오름폭은 전날 대비 평균 0.62%에 이르렀다.
우량주 위주 투자… 주식시장 36.6% 장악
반면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 독자적으로 순매수한 거래일에는 오히려 109.10 하락했으며 기관 투자자의 독자적인 견인 폭은 8.43포인트에 지나지 않았다. 종목별로 보아도 이런 현상은 뚜렷하게 나타난다. 시가총액 상위 200개 종목(우선주 제외)을 놓고 볼 때 외국인만 순매수한 종목은 주가가 전날에 견줘 평균 1.87% 오른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견줘 기관 또는 개인이 순매수하는 종목의 상승률은 0.86%, 0.16%에 지나지 않아 뚜렷한 대조를 보였다. 주식시장의 세 주체인 개인, 기관, 외국인을 놓고 볼 때 외국인만 순매수했을 때는 종합주가지수가 큰 폭으로 오르는 반면, 개인들이 순매수할 때는 지수가 되레 떨어지고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 기관들이 순매수일 경우 지수가 다소 오르긴 하나 오름 폭은 미미해 시장을 주도하기는커녕 되레 질질 끌려다닌다는 빈축이 과장이 아님을 보여준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날까?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자기법이나 정보수준이 국내 기관이나 개인들보다 한수 위이기 때문일까? 미래에셋증권 김현욱 연구원은 “외국인이 사면 오른다고 도식화시킬 수는 없지만, 과거부터 그런 모습이 많이 있었고 지금은 더욱 그렇다”라며 “외국인 투자자들이 전체 지수에 영향을 크게 끼치는 대형주 위주로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외국인들이 매매하는 종목이 덩치 큰 지수 관련 우량주 위주로 짜여져 있기 때문에 이들의 동향이 전체 주식값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대유리젠트증권 김경신 이사도 “외국인이 시가총액이 크고 우량한 종목에 투자를 집중하다보니 시세응집력이 큰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개미군단’이라고 부르는 일반 투자자들은 거래비중은 크지만 흩어져 있고 비슷한 매매형태를 보이는 경우가 드물어 시장 전체의 움직임과 연관성이 낮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12월 한달을 보자. 외국인 순매수 1∼5위 종목은 삼성전자, 국민은행, 포항제철, 현대증권, 신한지주회사 등으로 모두 물량이 커 시장 전반에 대한 영향력이 절대적인 것들이다. 순매도 1∼5위 역시 SK텔레콤, 한국전력, 삼성전자(우), 삼성SDI 등으로 덩치 큰 대형 우량주들이다.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 수와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견줘보면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지난해 말 현재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회사의 전체 주식 수는 195억7830만주이며 이 가운데 외국인 보유 주식 수는 14.7%인 28억6922만주였다. 이에 견줘 시가총액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36.6%(93조6982억원/255조8501억원)에 이르렀다. 시장 전반을 움직이는 ‘질적인 영향력’이 ‘양적인 점유비’보다 2.5배나 높은 셈이다. 이런 사정은 그 이전이나 새해 초의 모습을 보더라도 거의 차이가 없다.그렇지만 이것만으로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증권거래소 시장만을 놓고 볼 때 외국인의 비중(시가총액 기준)이 40%에 근접할 정도로 커져 있긴 하나 어떻게 시장을 완벽에 가깝게 통제하느냐는 대목에선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이와 관련해선 외국인이 전체 시장 및 개별 종목의 정보에 훨씬 밝다는 분석이 덧붙는다. 이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매수한 데 따라 주식값이 오르는 측면 외에 이들이 주식값이 오를 것을 미리 감지하고 매수에 나서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란 분석을 낳고 있다.
한 증권사 임원은 “삼성전자, 국민은행 등 상당수 대형 우량기업 지분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에게 넘어가 있는 실정 아니냐”며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개별 종목 정보에서도 외국인 투자자들이 앞선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대형 우량주들의 외국인 지분율을 보면 1월16일 현재 국민은행 71.24%, 삼성전자 59.44%, 현대자동차 53.83%, 포항제철 62.4%, 신한지주회사 52.3%, 한국통신 37%, SK텔레콤 32% 등이다. 이 임원은 “외국인들이 삼성전자 주식을 주당 30만원대에서 집중적으로 팔아치우기 시작한 게 삼성전자의 실적 발표가 이뤄진 1월16일에 임박해서였는데 그 이틀 전에 한 외국계 증권사가 삼성전자 적정주가를 50만원으로 추정한 자료를 내놓은 적이 있었다”며 의구심을 나타냈다. ‘실적발표 정보 미리 입수’→‘부풀린 추정가 발표’→‘보유물량 매도’→‘차익 실현’의 고리를 생각해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물론 이를 명확히 입증할 근거는 없다. 외국인 투자자와 외국계 증권사를 동일시할 수 없는 데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단일체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런 단선적인 시나리오는 섣부른 추측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대형 우량주의 외국인 지분율이 높은 현실은 외국인이 시장 흐름을 잘 읽는 바탕으로 해석되는 일이 많다.
외국인은 주식으로 돈을 벌기만 했나
외국인이 매수하는 바람에 주식값이 올랐거나 오를 걸 예상하고 미리 사들였거나 어찌됐건 시장 흐름을 잘 탔다고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외국인은 주식으로 돈을 벌기만 했을까? 지난 한해만 놓고 볼 때 이는 엄연한 사실이다. 연초 500을 조금 웃도는 수준(520.95)에서 시작한 종합주가지수가 연말 693.70으로 마무리된 것을 감안할 때 한해 동안 무려 7조4468억원을 순매수한 외국인 투자자들은 적지 않게 득을 봤을 것이 분명하다. 이 기간 중 기관 및 개인은 각각 3조4700억원, 3조5203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여기에 연말 들어 외국인들이 집중적으로 사들이는 과정에서 지수가 급등한 것도 감안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와 전혀 상반되는 예도 있다. 주식시장 개방 이후 외국인들이 가장 많은 주식을 순매수한 해는 지난 2000년으로 무려 11조4천억원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해 초 1000을 웃돌던 종합주가지수는 연말 반토막 수준인 500에 간신히 턱걸이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죽을 쑨 해였다고 볼 수 있다.
대우증권 황준현 연구원은 “외국인 투자비중이 높거나 시장을 좌우하는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투자자금의 성격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황 연구원은 “단기적인 자본수익만 먹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자금은 나라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만 장기투자일 경우 국내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고 분식회계를 막는 효과도 있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사진/ "외국인이 사면 주가가 뛴다." 한 외국계 증권사 직원이 주식 중개업무를 하고 있다.(이용호 기자)
반면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 독자적으로 순매수한 거래일에는 오히려 109.10 하락했으며 기관 투자자의 독자적인 견인 폭은 8.43포인트에 지나지 않았다. 종목별로 보아도 이런 현상은 뚜렷하게 나타난다. 시가총액 상위 200개 종목(우선주 제외)을 놓고 볼 때 외국인만 순매수한 종목은 주가가 전날에 견줘 평균 1.87% 오른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견줘 기관 또는 개인이 순매수하는 종목의 상승률은 0.86%, 0.16%에 지나지 않아 뚜렷한 대조를 보였다. 주식시장의 세 주체인 개인, 기관, 외국인을 놓고 볼 때 외국인만 순매수했을 때는 종합주가지수가 큰 폭으로 오르는 반면, 개인들이 순매수할 때는 지수가 되레 떨어지고 일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 기관들이 순매수일 경우 지수가 다소 오르긴 하나 오름 폭은 미미해 시장을 주도하기는커녕 되레 질질 끌려다닌다는 빈축이 과장이 아님을 보여준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날까? 외국인 투자자들의 투자기법이나 정보수준이 국내 기관이나 개인들보다 한수 위이기 때문일까? 미래에셋증권 김현욱 연구원은 “외국인이 사면 오른다고 도식화시킬 수는 없지만, 과거부터 그런 모습이 많이 있었고 지금은 더욱 그렇다”라며 “외국인 투자자들이 전체 지수에 영향을 크게 끼치는 대형주 위주로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외국인들이 매매하는 종목이 덩치 큰 지수 관련 우량주 위주로 짜여져 있기 때문에 이들의 동향이 전체 주식값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대유리젠트증권 김경신 이사도 “외국인이 시가총액이 크고 우량한 종목에 투자를 집중하다보니 시세응집력이 큰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개미군단’이라고 부르는 일반 투자자들은 거래비중은 크지만 흩어져 있고 비슷한 매매형태를 보이는 경우가 드물어 시장 전체의 움직임과 연관성이 낮다는 설명이다.

사진/ 외국인은 금융감독원에 투자자 등록을 해야 주식투자를 할 수 있다. 외국인 투자등록을 받고 있는 금감원 직업.(이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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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주식시장이 외국인에게 개방된 것은 지난 1992년부터다. 당시 개방 폭은 종목당 10%까지로 제한했으며 96년 10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이를 20%로 늘렸다. 이후 해마다 3%씩 한도를 늘리다가 98년 1월 문을 활짝 열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거치면서 개방 시기가 급속도로 빨라진 것이다. 지금은 한국전력, 한국통신, 담배인삼공사, 대한항공, 서울방송 등 특정한 법규정에 따라 외국인 주식 취득이 제한된 종목을 빼고는 외국인이 지분을 100%까지 사들이는 데 아무런 제한이 없다. 외국인은 금융감독원에 투자자 등록절차를 거쳐 증권거래소, 코스닥 등 국내 주식시장에 참여하게 된다. 지난해 말 현재 등록된 외국인 투자자는 1만2860명(개인 4794명, 기관 8066명)에 이른다. 다달이 90∼100개씩 늘어나고 있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대략 300만∼4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국내 투자자들에 견줘 머릿수에선 턱없이 모자라지만 이들이 주식시장에 끼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특히 증권거래소 시장에선 시가총액 36.6%의 비중을 지렛대삼아 전체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