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업체 ‘번호이동성’ 제도 도입 논란… 업체 바꾼다고 번호 달라질 이유있나
회사원 명혜경(36)씨는 지난 11월 휴대폰 번호를 ‘018-XXX-XXXX’에서 ‘011-XXX-XXXX’로 바꿨다. 2년 반 정도 쓴 단말기를 교체하면서 통신서비스 업체도 바꾼 것이다. 명씨는 초기 일주일가량은 두 휴대폰 모두 사용하다가 지금은 ‘착신번호 서비스’를 통해 예전 번호를 새 번호로 이어받고 있다. 이전의 018로 전화를 걸어보면 “지금 다른 번호로 연결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라는 안내음이 뜬 뒤 곧이어 새로운 011 전화번호로 이어진다. 이처럼 착신번호 서비스를 받고 있기 때문에 명씨로선 당장 큰 문제는 없다. 서비스 이용료도 월 700원으로 싼 편이다.
그렇지만 휴대폰 전화번호가 바뀐 데 따른 불편은 적지 않다. 주위 사람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번호가 바뀌었음을 알려야 하는 수가 많다. 홍보 업무를 맡고 있는 그로선 연락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착신번호 서비스가 끝나는 새해 1월 말 이후엔 불편이 더욱 커질 수도 있다.
서비스 업체 변경을 주저하는 까닭
휴대폰의 통화 품질이나 요금에 불만이 있더라도 가입자들이 서비스 업체를 쉽사리 바꾸지 못하는 것은 이같은 불편 때문이다. ‘개인성’이 강한 휴대폰 번호는 신분증처럼 여겨져 한번 바꾸는 데 따르는 번잡함이 이만저만 아니다. 단말기 교체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서비스 업체를 바꾸는 데 주저할 수밖에 없다. KT(옛 한국통신)와 KT의 무선통신 자회사인 KT프리텔(016/018)·KT아이컴(차세대 이동통신 사업자) 등 3사는 휴대폰 가입자들의 이런 불편 해소를 명분으로 내걸고 ‘이동전화 번호이동성’ 제도를 전면 도입해야 한다는 건의문을 최근 정보통신부에 제출했다. 번호이동성(Number Portability)이란 예컨대 011(SK텔레콤)을 쓰던 가입자가 011과의 거래를 끊고 019(LG텔레콤)로 옮겨가더라도 011 번호를 그대로 쓸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이는 이동전화 가입자들의 불편과 직접 맞닿아 있는데다 각 통신업체들의 복잡한 속사정과 맞물린 사안이어서 업계에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동전화 번호이동성을 둘러싼 전선은 두쪽으로 뚜렷하게 나뉜다. KT를 비롯한 3사는 이동통신 서비스의 2, 3세대 구분없이 전면적으로, 즉각 번호이동성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2세대는 아날로그 방식의 1세대에 이어 현재 실시되고 있는 디지털 방식의 휴대폰 서비스를, 3세대는 데이터 서비스가 덧붙는 차세대 이동통신(IMT-2000)을 일컫는다). 반면, SK텔레콤과 LG텔레콤은 도입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양쪽 모두 ‘가입자를 위해서’라는 명분을 한목소리로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흥미를 끄는 점이 또 있는데, 반대쪽에 나란히 서 있는 SK와 LG의 주장을 한 꺼풀 벗겨보면 적지 않이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다. 이들 업체가 내세우는 ‘명분’ 아래 숨어 있는 ‘속사정’은 어떤 것일까? 또 논란을 가름할 ‘가입자 편익’ 잣대로 볼 때 어느 쪽 주장이 타당한 걸까? 우선, 반대쪽 논리를 들어보자. 번호이동성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혀달라는 요청에 대해 SK텔레콤은 “2세대간 번호이동성 도입을 위해선 수천억의 투자가 필요하다”며 “이러한 투자에 비해 효과가 적어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업계쪽에서 져야 할 비용 부담은 결국 가입자들의 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으로 이어진다. 국내 이동통신 시장은 셀룰러와 개인휴대통신(PCS) 사이의 기기 호환성이 없으므로(주파수 대역이 달라) 번호이동성이 고객들의 편의를 높이는 데 이바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점도 거론된다. 여기에 각 업체들이 식별번호를 브랜드화하기 위해 투입한 비용을 무효로 돌리는 불합리한 결과를 빚는다는 논리가 덧붙는다. 이 회사 전략개발실의 조신 실장은 “당초 PCS 사업자들의 주장에 따라 셀룰러와 PCS 사업자가 각각 다른 식별번호를 쓰게 됐으며 그 결과 각 업체들은 엄청난 돈을 써가며 식별번호를 브랜드로 키워왔다”고 설명했다. 조 실장은 “이런 상황에서 전면적인 번호이동성을 실시할 경우 ‘011’이란 SK텔레콤의 (번호)자산을 다른 업체들에 무상으로 제공하는 셈이 된다”고 말했다. 식별번호 브랜드 가치 내세워 반대
LG텔레콤은 2세대 사이의 번호이동성은 현재 시장 상황 및 사업자간 자금력 차이를 감안할 때 도입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사업자별 순차적인 도입 방안을 들고 나와 SK쪽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시장점유율 등에서 우위를 보이는 SK텔레콤부터 시작해 KT프리텔, LG텔레콤순으로 실시하되 앞으로 2년 뒤부터 번호이동성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LG텔레콤 대외협력팀의 김형곤 부장은 “이용자 편익을 위해선 (번호이동성을) 도입해야겠지만, 사업자간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틀도 중요하다”며 “유력 사업자의 시장지배력 남용을 막을 장치를 마련, 유효경쟁 환경을 구축한 시점에서 번호이동성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진영에 있는 업체들 사이에도 견해차가 드러나는 등 반대쪽의 논리가 좀 복잡해 보이는 데 견줘 전면 도입을 주장하는 KT쪽의 논리는 비교적 간명하다. KT쪽은 이동전화 번호이동성을 도입하는 데 드는 비용은 3천억원 수준인 반면, 1조5천억원의 이용 편익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또 특정 지배적 사업자에게 쏠려 있는 시장지배력을 풀어 후발 사업자들의 경쟁력을 확보하게 하는 등 통신시장 경쟁을 활성화시키는 효과도 아울러 거둘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동전화 번호이동성에 대한 비용·편익 분석은 정통부 산하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 의해 지난 11월 이뤄진 바 있다. 연구원 추정 결과 통신사업자쪽에서 부담해야 할 비용은 기술방식 및 이동률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3천억원 정도로 나타났다. 이에 견줘 번호이동성 도입 때부터 10년간 총편익은 1조5317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총편익은 △기존의 전화번호를 유지한 채 사업자를 변경하는 이용자의 편익 3078억 △사업자간 경쟁 활성화 및 생산성 향상으로 인해 모든 가입자가 얻게 되는 편익 6393억원 △번호이동성 이용자에게 전화를 거는 일반 가입자가 누리게 되는 불편 감소 등의 편익 5846억원 등이다.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한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설문조사도 KT쪽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연구원이 지난 10월부터 11월에 걸쳐 이동전화 이용자 1200명을 대상으로 번호이동성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 찬성이 50%로 반대 25%에 견줘 훨씬 높았다. 번호이동성 제도가 도입될 경우 사업자를 바꾸겠다는 답변도 32%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 이동률이 적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KT아이컴 관계자는 “영국, 유럽연합(EU) 등 통신 선진국에서 번호이동성을 공정경쟁 및 이용자 편익을 꾀한다는 차원에서 이미 도입했거나 도입을 검토중”이라며 “이런 점에서 보더라도 번호이동성 제도의 타당성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해외 국가 중 3세대 이동전화 서비스에 대해서만 번호이동성을 도입한 적은 없다”며 3세대 이동통신 서비스에 제한해 번호이동성을 도입하려는 최근의 움직임을 경계했다.
번호이동성 도입의 열쇠를 쥐고 있는 쪽은 물론 정부지만 아직 공식적인 방침은 없다. 정통부 관계자는 “업계, 학계 등 관계자들이 모여 논의중이며 새해 1월 통신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하게 된다”고만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논의 과정의 일원으로 참석하고 있는 KT쪽이 돌연 정부에 건의서를 제출하는 행태를 보인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KT쪽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을 것임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무엇이 가입자의 편익을 위한 것인가
번호이동성이 당장 도입된다고 가정할 경우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쪽은 LG텔레콤이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는 자금·조직력에서 앞서는 KT프리텔이 LG 고객을 적지 않이 끌어갈 개연성이 높다는 데 바탕을 두고 있다. PCS인 KT 및 LG와 달리 셀룰러인 SK텔레콤이 LG 가입자를 흡수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PCS와 셀룰러간 번호이동을 위해선 단말기를 교체해야 하기 때문이다. 각 업체들의 엇갈리는 견해에는 이런 속사정이 녹아 있다.
번호이동성 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아직은 가늠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결정권자인 정부당국으로선 가입자의 편의뿐 아니라 각 사업체의 형편 및 공정한 경쟁틀 마련 등 정책 변수를 아울러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최종 잣대는 가입자 편익이어야 한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사진/ "휴대폰 번호를 바꾸고 싶지 않다." 가입자들은 업체를 바꾸면 온갖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김종수 기자)
휴대폰의 통화 품질이나 요금에 불만이 있더라도 가입자들이 서비스 업체를 쉽사리 바꾸지 못하는 것은 이같은 불편 때문이다. ‘개인성’이 강한 휴대폰 번호는 신분증처럼 여겨져 한번 바꾸는 데 따르는 번잡함이 이만저만 아니다. 단말기 교체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서비스 업체를 바꾸는 데 주저할 수밖에 없다. KT(옛 한국통신)와 KT의 무선통신 자회사인 KT프리텔(016/018)·KT아이컴(차세대 이동통신 사업자) 등 3사는 휴대폰 가입자들의 이런 불편 해소를 명분으로 내걸고 ‘이동전화 번호이동성’ 제도를 전면 도입해야 한다는 건의문을 최근 정보통신부에 제출했다. 번호이동성(Number Portability)이란 예컨대 011(SK텔레콤)을 쓰던 가입자가 011과의 거래를 끊고 019(LG텔레콤)로 옮겨가더라도 011 번호를 그대로 쓸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이는 이동전화 가입자들의 불편과 직접 맞닿아 있는데다 각 통신업체들의 복잡한 속사정과 맞물린 사안이어서 업계에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동전화 번호이동성을 둘러싼 전선은 두쪽으로 뚜렷하게 나뉜다. KT를 비롯한 3사는 이동통신 서비스의 2, 3세대 구분없이 전면적으로, 즉각 번호이동성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2세대는 아날로그 방식의 1세대에 이어 현재 실시되고 있는 디지털 방식의 휴대폰 서비스를, 3세대는 데이터 서비스가 덧붙는 차세대 이동통신(IMT-2000)을 일컫는다). 반면, SK텔레콤과 LG텔레콤은 도입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양쪽 모두 ‘가입자를 위해서’라는 명분을 한목소리로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흥미를 끄는 점이 또 있는데, 반대쪽에 나란히 서 있는 SK와 LG의 주장을 한 꺼풀 벗겨보면 적지 않이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다. 이들 업체가 내세우는 ‘명분’ 아래 숨어 있는 ‘속사정’은 어떤 것일까? 또 논란을 가름할 ‘가입자 편익’ 잣대로 볼 때 어느 쪽 주장이 타당한 걸까? 우선, 반대쪽 논리를 들어보자. 번호이동성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혀달라는 요청에 대해 SK텔레콤은 “2세대간 번호이동성 도입을 위해선 수천억의 투자가 필요하다”며 “이러한 투자에 비해 효과가 적어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업계쪽에서 져야 할 비용 부담은 결국 가입자들의 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으로 이어진다. 국내 이동통신 시장은 셀룰러와 개인휴대통신(PCS) 사이의 기기 호환성이 없으므로(주파수 대역이 달라) 번호이동성이 고객들의 편의를 높이는 데 이바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점도 거론된다. 여기에 각 업체들이 식별번호를 브랜드화하기 위해 투입한 비용을 무효로 돌리는 불합리한 결과를 빚는다는 논리가 덧붙는다. 이 회사 전략개발실의 조신 실장은 “당초 PCS 사업자들의 주장에 따라 셀룰러와 PCS 사업자가 각각 다른 식별번호를 쓰게 됐으며 그 결과 각 업체들은 엄청난 돈을 써가며 식별번호를 브랜드로 키워왔다”고 설명했다. 조 실장은 “이런 상황에서 전면적인 번호이동성을 실시할 경우 ‘011’이란 SK텔레콤의 (번호)자산을 다른 업체들에 무상으로 제공하는 셈이 된다”고 말했다. 식별번호 브랜드 가치 내세워 반대

사진/ '이동전화 번호이동성' 제도가 실시되면 가입자들이 통신서비스 업체를 바꿔도 번호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한겨레21)
| 국내 이동전화 가입자 추이 및 경쟁상황 | ||||
| 구분 | 1999년 | 2000년 | 2001년 10월 | 2001년 11월 |
| SK텔레콤 (011) |
10,110 (43%) |
14,153 (54%) |
14,692 (51%) |
14,993 (51.6%) |
| 신세기통신 (017) |
3,238 (14%) |
|||
| 한솔엠닷컴 (018) |
2,741 (12%) |
3,131 (11%) 5,285 (20%) |
9,715 (34%) |
9,764 (33.5%) |
| KT프리텔 (016) |
4,267 (18%) |
|||
| LG텔레콤 (019) |
3,086 (13%) |
3,948 (15%) |
4,424 (15%) |
4,340 (14.9%) |
| 합계 | 23,442 | 26,817 | 28,831 | 29,097 |
|
자료 : 정보통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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