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계별 제도 시행이 서러운 영세노동자들… 대기업 임금보전 떠안을 가능성 높아
지난 12월19일 저녁, 경기도 안산시 반월공단 거리. 어스름이 깔리는 원시동 신흥산업 앞 버스정류장에 퇴근길 노동자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찬바람이 옷 속을 파고들자 작업복 차림의 노동자 서너명이 몸을 잔뜩 움츠렸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근처 중소기업 노동자 김효섭(43)씨가 심드렁하게 내뱉었다. “주5일근무요? 글쎄, 회사에서는 아무런 말도 없는데…. 노동조합이 있다면 모를까, 우리같이 수십명밖에 안 되는 회사에서 하겠어요?” 두 손을 바지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입에 담배를 물고 있던 노동자 정아무개(38)씨가 가만히 듣고 있다 한마디 거들었다. “오늘 아침 신문 보니까 내년부터 주5일제를 한다던데, 대기업이나 사무직은 내버려둬도 알아서 할 거 아닙니까? 법으로 안 시켜도 할 대기업에는 정부가 생색내고… 임금도 적고 어려운 우리 중소기업은 2천 몇년이라고?”
10인 이하 사업장은 2010년에 실시
정씨가 불만을 터뜨린 아침 신문 보도는 전날 정부가 발표한 주5일제 도입안이다. 노동부는 새해 7월부터 단계적으로 주5일제를 시행하되 △내년 7월 공무원, 금융·보험, 1천명 이상 대기업부터 실시한 뒤 △300명 이상 사업장은 2004년 7월 △10인 이상 사업장은 2007년 △10인 이하 사업장은 2010년에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애초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들이 내놓은 2007년 전면도입안이 3년 뒤로 더 늦춰진데다 연월차 휴가(현행 22∼32일)가 18∼22일로 축소됐다. 중소영세기업 및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기업 노동자보다 8년 늦게서야 주5일근무 수혜를 받게 된 셈이다.
물론 앞으로 법안 확정과정에서 중소기업의 도입시기가 바뀔 수도 있고, 모든 중소 사업장이 법에서 정한 단계만을 따르지도 않을 것이다. 법은 하나의 기준일 뿐이고 노사 협상을 통해 주5일근무제를 사업장별로 도입, 시행하면 된다. 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전반적인 주5일근무 분위기를 타면서 몇년 사이에 주40시간 노동제로 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것도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 국한된 얘기다. 반월공단 안에 있는 전국금속노조 경기지부의 김성학 조직부장은 “사용자쪽과 올해 두 차례 간담회를 통해 집단교섭을 요구했고, 앞으로 주5일근무를 이 지역 노사간 공동 관심사로 제기할 생각”이라며 “하지만 정작 문제는 노조가 없는 사업장”이라고 털어놓았다. 중소·영세기업들이 몰려 있는 반월공단 2500여개 사업장 중 금속분야 사업장은 1200여개로, 이 가운데 노조가 조직된 사업장은 수십여곳에 불과하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은 회사와의 교섭조차 어려운 상황인 만큼 법에 정한 도입시기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다. 법으로 강제하는 도입단계가 중요한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반월공단 6블럭에 자리잡은 종업원 260여명의 동서공업. 자동차부품인 피스톤을 생산해 완성차 업체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이다. 노조사무실에는 ‘중소·영세·비정규직 노동자는 빠져라?’는 제목의 주5일제 팸플릿이 나붙어 있었다. 금속노조 동서공업지회 박종기(38) 지회장이 단협 규정집을 꺼내 보였다. ‘1일 8시간, 주5일근무, 1주일 40시간, 토·일요일은 휴무한다.’ “그동안 회사쪽과 단체협상을 통해 새해부터 주5일제를 실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어차피 주5일제가 대세 아닙니까? 그동안 노조가 노동시간 단축을 줄곧 요구해왔는데, 회사쪽도 갈등을 빚기보다는 일찍 받아들이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죠.” 동서공업노조는 주5일제에 따른 임금보전 원칙도 단협을 통해 따냈다. 동서공업 노동자 오육환씨는 정부가 내놓은 휴일휴가 대폭 축소에 대해 “연말에 수당으로 받기 위해 웬만큼 아프지 않으면 일하는 게 중소기업 노동자들인데 휴일휴가를 그렇게 줄여버리면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거친 목소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동서공업처럼 주5일제 근무에 합의한 사업장은 그리 흔하지 않다. 대부분의 반월공단 노동자들은 주5일제 얘기를 꺼내지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동서공업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잡은 의성실업은 건설회사에 자재를 납품하는 업체로 지난 99년 부도를 맞아 회생을 꾀하고 있다. 의성실업 정태형(44) 노조위원장이 책상에 놓인 아침 신문을 펼쳐보였다. “여기 보세요. 경영계가 ‘노동자들이 흥청망청 놀려고 주5일제를 요구한다’면서 시위하고 있는데, 우리는 부도를 맞은 처지라 주5일제는 제대로 꺼내지도 못하고 있는 처지입니다.” 대기업에 볼모로 잡힌 '주6일 아빠들'
새해부터 주5일제가 시작되는 동서공업 이야기를 꺼내자 그가 덧붙였다. “주5일제가 시행된다고들 해서,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다른 곳도 시행하면 우리도 함께 가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의 말끝은 점차 흐려지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의성실업 정무영 이사가 곤혹스러운 듯 말했다. “임금삭감 없이 주5일제를 시행하면 인건비가 8∼9% 인상됩니다. 그러면 원가가 1.4% 이상 오르게 되는데 이 정도로는 다른 업체와 경쟁해서 물건을 수주받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한 원가인상이 단순히 주5일제에 따른 인건비 상승에서만 오는 게 아니다. 주5일제에 들어간 대기업이 납품단가 인하를 통해 인건비 증가부분을 하청 중소업체에 떠넘길 우려가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중소영세 노동자는 임금인하 등 노동조건 후퇴를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단계별 주5일제는 중소영세 및 비정규직의 노동시간 단축 혜택으로부터의 소외를 넘어 ‘희생’까지 불러올 공산이 크다.
물론 대기업이 하청업체한테 제품단가를 후려치는 식으로 비용 부담을 전가시켜온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주5일근무 도입 초기에 이런 경향이 더욱 노골화될 가능성이 높다. 반월공단의 자동차부품 납품업체인 창화공업의 경우 원청업체인 기아자동차가 제품단가 인하를 요구하는 바람에 인력감축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다. 금속노조 경기지부의 김성학 조직부장은 “창화공업이 납품단가 인상을 요구하자 원청인 기아자동차쪽이, 임금을 줄이거나 노동자를 절반쯤 내보내고 용역을 써서 인건비를 줄여 단가를 맞추든지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하청업체만 죽어나는 판”이라고 한탄했다.
동서공업노조 박종기 지회장도 “중소기업이 죽어라 고생해서 장사해놓으면 원청 대기업이 왕창 시알(CR: 납품단가인하)을 때려 성과를 가져가버린다”며 “완성차 업체에서 사상최대 실적을 냈다며 성과급으로 돈잔치하는 것을 보면 속이 터지는데 주5일제까지 중소기업이 설움을 받아야 하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단계별 시행이 저임금과 차별에 시달려온 중소·영세 및 비정규직 노동자의 박탈감과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단계별 주5일제가 불러올 비정규직 노동자의 희생은 어색한 작업장 풍경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같은 공장 생산라인에 일하는 노동자 가운데 정규직은 주5일근무를 하는 반면 그 옆자리 비정규직은 여전히 주6일근무를 하는 상황이 그것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박영삼 정책기획국장은 “사내 하청 노동자의 경우 대기업 공장 안에서 기준 노동시간이 제각각 따로 적용되는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기업 정규직은 주5일 아빠’, ‘사내하청 비정규직은 주6일 아빠’라는 현상이 빚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단계별 실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간의 내부 갈등의 골을 더 깊게 만들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사각지대로 몰릴 수도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지난 12월1일 사내하청노조를 결성했다. 회사쪽이 올 연말 사내하청 노동자 400여명에게 해고통지서를 보낸 데 이어 내년 2월 나머지 600여명도 정리해고하겠다는 안을 내놓자 급히 노조를 꾸린 것이다. 이에 대해 광주공장 사내하청노동조합 명등룡 대외협력부장은 “계약해지 뒤 다시 들어올 때 완전 도급으로 바꿔 정규직화를 피하고 하청 노동자에게는 주5일제를 적용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한 조립라인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뒤섞여 일한다면 모를까, 하청 노동자를 지게차 운전 등 간접부서쪽으로 완전 도급화하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도급업체가 법에 정해진 시행시기를 내세우면서 2007년 이후에 주5일제를 적용하겠다고 주장하면 따를 수밖에 없어진다는 얘기다.
게다가 정부가 임금보전을 법 부칙에 선언적으로 규정하고 행정지도를 펴나가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주5일제 시행이든 임금보전이든 노사간 현실적인 ‘힘의 관계’에 따라 판가름날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이 없는, 아니 노조결성이 즉각 해고로 돌아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그야말로 ‘선언’에 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사진/ 중소·영세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주5일제는 그림의 떡이다.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 자동차부품 업체 노동자들.(한겨레21)
물론 앞으로 법안 확정과정에서 중소기업의 도입시기가 바뀔 수도 있고, 모든 중소 사업장이 법에서 정한 단계만을 따르지도 않을 것이다. 법은 하나의 기준일 뿐이고 노사 협상을 통해 주5일근무제를 사업장별로 도입, 시행하면 된다. 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전반적인 주5일근무 분위기를 타면서 몇년 사이에 주40시간 노동제로 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것도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 국한된 얘기다. 반월공단 안에 있는 전국금속노조 경기지부의 김성학 조직부장은 “사용자쪽과 올해 두 차례 간담회를 통해 집단교섭을 요구했고, 앞으로 주5일근무를 이 지역 노사간 공동 관심사로 제기할 생각”이라며 “하지만 정작 문제는 노조가 없는 사업장”이라고 털어놓았다. 중소·영세기업들이 몰려 있는 반월공단 2500여개 사업장 중 금속분야 사업장은 1200여개로, 이 가운데 노조가 조직된 사업장은 수십여곳에 불과하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은 회사와의 교섭조차 어려운 상황인 만큼 법에 정한 도입시기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다. 법으로 강제하는 도입단계가 중요한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반월공단 6블럭에 자리잡은 종업원 260여명의 동서공업. 자동차부품인 피스톤을 생산해 완성차 업체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이다. 노조사무실에는 ‘중소·영세·비정규직 노동자는 빠져라?’는 제목의 주5일제 팸플릿이 나붙어 있었다. 금속노조 동서공업지회 박종기(38) 지회장이 단협 규정집을 꺼내 보였다. ‘1일 8시간, 주5일근무, 1주일 40시간, 토·일요일은 휴무한다.’ “그동안 회사쪽과 단체협상을 통해 새해부터 주5일제를 실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어차피 주5일제가 대세 아닙니까? 그동안 노조가 노동시간 단축을 줄곧 요구해왔는데, 회사쪽도 갈등을 빚기보다는 일찍 받아들이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죠.” 동서공업노조는 주5일제에 따른 임금보전 원칙도 단협을 통해 따냈다. 동서공업 노동자 오육환씨는 정부가 내놓은 휴일휴가 대폭 축소에 대해 “연말에 수당으로 받기 위해 웬만큼 아프지 않으면 일하는 게 중소기업 노동자들인데 휴일휴가를 그렇게 줄여버리면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거친 목소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동서공업처럼 주5일제 근무에 합의한 사업장은 그리 흔하지 않다. 대부분의 반월공단 노동자들은 주5일제 얘기를 꺼내지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동서공업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잡은 의성실업은 건설회사에 자재를 납품하는 업체로 지난 99년 부도를 맞아 회생을 꾀하고 있다. 의성실업 정태형(44) 노조위원장이 책상에 놓인 아침 신문을 펼쳐보였다. “여기 보세요. 경영계가 ‘노동자들이 흥청망청 놀려고 주5일제를 요구한다’면서 시위하고 있는데, 우리는 부도를 맞은 처지라 주5일제는 제대로 꺼내지도 못하고 있는 처지입니다.” 대기업에 볼모로 잡힌 '주6일 아빠들'

사진/ 주5일 근무로 흥청망청 놀지 말라? 중소기업대표들이 주5일제 실시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박승화 기자)

사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사업장 내 불평등이 심화될 전망이다. 지난해 노동자대회에서 주5일제 전면 실시를 주장하는 노동자들.(박승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