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한겨레 이정아 기자
포스하이메탈은 포스코가 2009년 9월 동부메탈·동부제철과 합작해 만들었다. 세 회사가 모두 771억원을 투자해 자동차 강판 등에 들어가는 원료인 고순도 페로망간을 만들기로 했다. 포스하이메탈은 정준양 전 회장이 2009년 2월 포스코 회장에 오르자마자 의욕적으로 추진한 큰 사업 가운데 하나였다. 수입 등에 의존하던 페로망간을 만들어 커지는 합금강 수요에 대응하자는 장밋빛 전망이 바탕이 됐다. 권오준 현 포스코 회장도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시절 고망간강 기술 개발을 주도해 이 사업의 기초를 놓은 것으로 포스하이메탈 직원들은 알고 있다. 포스코의 전·현직 최고경영자(CEO)의 힘으로 만든 계열사인 셈이다. 하지만 포스하이메탈의 실적은 장밋빛 전망과 달리 비탈길을 내려왔다. 포스하이메탈은 2011년 전남 광양에 연간 7만5천t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지었다. 그러나 불경기로 수요도 줄어든 상태에서 중국산 철이 값싸게 국내로 밀려들어왔다. 공장 수익성은 땅에 떨어졌다. 포스하이메탈은 2010년 58억원, 2011년 298억원, 2013년 121억원, 2014년 142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5년 연속 적자를 내면서 결국 지난해 자본금을 다 까먹는 상태까지 갔다. 경영 악화의 효과는 입사한 지 4~5년도 안 된 직원들에게 닥쳤다. 포스하이메탈은 지난해 두 차례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160여 명이던 직원을 90여 명으로 줄였다.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살생부’에 오른 개인에게 면담해서 퇴직을 종용했다”고 포스하이메탈 직원들은 전했다. 회사는 공문을 통해 “희망퇴직 뒤에도 회사가 계획하는 인력 구조조정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부득이하게 정리해고를 감행할 수밖에 없다”고 엄포를 놨다. 심지어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입사해 회사를 다니다 군대에 간 직원들에게도 희망퇴직을 종용했다. 군복을 입은 상태에서 아무 방법도 찾을 수 없는 이들은 회사를 떠나야 했다. 군대 간 사원도 희망퇴직시켜 “남은 동료들은 ‘회사가 어려워서 그런 것이려니’ 하거나, ‘가족이 있는 사람들까지 다 같이 죽을 수는 없지 않냐’는 심정으로 희망퇴직당하는 동료들을 그저 바라보고 있었죠. 남은 사람들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청춘을 포스하이메탈에서 시작했던 김석원(가명)씨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남겨진 이들에게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포스코는 계열사 포스하이메탈에 자금을 지원하는 대신 포스코에 합병시키기로 결정했다. 철강시장 불황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지만 새로 습득한 기술과 설비를 남기기로 한 것이다. 철강 본원의 경쟁력을 키우자고 했던 권오준 회장 체제 아래서 고급 제품에 필요한 공장을 없애는 것도 부담스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철강 본원의 경쟁력’을 지키려는 노력은 공장 설비에만 적용됐다. 합병 회사인 포스코는 설비만 가져갈 뿐 일하는 사람들을 포스코 직원으로 채용하지 않았다. 대신 포스코엠텍이라는 포스코의 또 다른 자회사로 입사하라고 했다. 포스코엠텍에 적을 두고 본사인 포스코에 ‘파견근로’ 형태로 옛 포스하이메탈 설비를 그대로 운용하라는 것이다. “포스코는 이 정도라도 해주는 게 어디냐고 생각하겠죠. 어차피 갑이니까요.” 희망퇴직으로 포스하이메탈을 떠난 김씨는 회사가 2월19일부터 남은 직원들에게 전직 동의서를 받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포스코는 이미 간접고용 비율이 높은 기업이다. 지난해 고용노동부 고용공시 현황을 보면, 포스코의 간접고용 노동자 비율은 46.7%(전체 비정규직은 52.2%)에 이른다. 전체 공시 대상 2942개 기업 평균(20.1%)을 훨씬 뛰어넘는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처우는 직영 노동자들과 차이가 크다. 포스코 사내하청노조는 열악한 처우와 근로조건을 개선하라고 꾸준히 요구하고 있다. 반면 포스코는 간접고용 노동자 비율을 키우려 하고 있다. 직원들은 혼란스러운 상태다. 강요되는 전직에 저항할 수도 없고, 간접고용이 싫다고 회사를 나가기도 쉽지 않다. 김씨는 “포스코엠텍은 1년 단위로 공장 운영 계약을 포스코와 맺는다. 만약 포스코엠텍이 계약을 연장하지 못하거나, 직영 노동자가 설비에 투입되면 고용이 불안정해진다는 것을 직원들은 알고 있다”고 했다. 복지 수준도 기존 포스하이메탈보다 떨어진다. 먼저 회사를 떠난 희망퇴직자들의 모습도 이들을 불안하게 한다. 포스하이메탈을 나간 이들은 대부분 새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서울의 4년제 공과대학을 나와 입사했다가 퇴직한 이도 재취업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살아남은’ 직원들은 전해들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이들이 3~4년 전에 포스하이메탈을 선택했을까. 포스코 홍보실 관계자는 이에 대해 “포스하이메탈이 존속하기 어려운 상태여서 합병을 결정했고, 정리해고를 하지 않고 포스코엠텍으로 옮겨 경력 인정 등 대우를 그 전과 동등하게 해주기로 했으니 현재의 구조조정 방안이 노동자에게 나쁘지 않은 조건”이라고 해명했다. 3년도 예측 못한 ‘우향우’ 경영의 대가 그러나 김씨는 직원들이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더 답답한 것은 ‘이러저러한 사정에 의해 고용승계는 하지 못한다’는 합당한 이유조차 설명해주지 않으니 직원들은 포스코에 화가 나죠. 직원이 기계만도 못한가요. 우리가 경영을 잘못한 것도 아닌데요.” 포스하이메탈 전 직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부실 경영은 이전부터 감지됐다. 공장은 시작부터 현장직보다 사무직이 많은 상태였다. 포스코 임원 출신인 포스하이메탈의 전 사장은 “10년 뒤면 회사가 잘나갈 것”이라고 직원들에게 호언했지만 쌓이는 부실을 보지 못했다. 어렵게 제철소를 만들었어도 나중에 탄탄대로를 걸었듯 ‘우향우 정신’(포항제철소 건설에 실패하면 동해 영일만 바다에 모두 빠져 죽을 각오로 하자는 뜻)만 있으면 할 수 있다는 추억이 광양에 가득했다. 최고경영진의 판단도 비슷했다. 광양제철소장 출신인 정준양 전 회장은 취임 뒤 포스하이메탈 등 새로운 자원을 개발해 먹거리를 만드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희귀금속과 원료 등을 중심에 두는 이른바 ‘자원 확보 외교’를 중점적으로 추진했다. 포스코의 새 사업은 정권의 관심과 맞아떨어졌다. 정 전 회장은 내·외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철강 이외에 다각화된 계열사를 늘려나갔다. 36개이던 계열사는 71개로 늘었다. 포스코의 적극적인 다각화가 불가피했다는 의견도 있다. 세계시장의 불경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현대제철이 경쟁자로 등장했으니 기존 사업에만 매달릴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또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 등 이명박 정부 실세의 도움을 받아 회장에 취임한 탓에 정 전 회장의 ‘독립경영’에 처음부터 한계가 있었다는 분석도 있다. 결국 정 전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의 측근이 소유한 하청업체에 일감을 몰아줘 12억원 규모의 이익을 보게 하고 부실기업인 성진지오텍을 인수해 포스코에 수천억원의 피해를 입게 한 혐의(뇌물공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배임 등)로 지난해 불구속 기소되기까지 했다. 정 전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책임질 일이 그것에서 끝날지는 의문이다. 부실 경영 논란 속에 포스코의 경쟁력은 눈에 띄게 떨어졌다. 정 전 회장의 경영이 끝난 뒤 포스코의 매출액은 2011년 68조9387억원에서 2015년 58조1920억원으로 줄었고, 당기순이익은 3조7143억원에서 같은 기간 당기순손실 960억원으로 전환됐다. 한국신용평가는 2015년에 낸 보고서를 통해 “2000년대 중반 이후 대규모 투자로 확대된 재무 부담이 있었고, 철강 경기 침체 장기화와 구조적 공급과잉으로 본원적인 수익성이 약화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신용등급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빚어진 계열사 구조조정 과정에서 포스코 경영진을 믿었던 직원들만 내몰리고 있다. 수백억원을 투자해 진출한 포스하이메탈은 한 번도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자본금을 다 까먹었다.
류우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