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보호위의 주류점포 제한 추진 논란… 소매상들 생존권 내세워 입법화 반대
청소년 보호를 위해 동네 구멍가게에서 술을 팔 수 없게 한다면 어떨까? “그게 되겠습니까? 턱도 없는 소리지. 아, 지금도 애들한테 술을 팔면 벌금을 물고 있잖아요?”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의 후미진 골목 한켠에서 허름한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장아무개(52)씨는 ‘주류전문소매점’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는 느닷없는 물음에 대뜸 “그게 뭐냐?”고 되물었다.
주류전문소매점은 일반인한테는 낯설기 짝이 없지만 미국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로, 일반소매점 관련협회나 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등은 이 말만 나오면 바짝 긴장한 지 이미 오래다. 중소 영세소매점들로 구성된 한국체인사업협동조합은 주류전문소매점 도입을 막기 위해 일본 국세청을 통해 일본 사례를 수집하고 있을 정도다.
“일정 요건 갖춘 소매점만 취급하라”
말 그대로 술을 팔 수 있는 전문점을 일컫는 주류전문소매점은 주류판매 점포를 엄격히 제한하는 제도다. 물론 지금도 아무나 술을 팔 수 있는 건 아니다. 술을 팔려면 원칙적으로 판매면허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주세법은 식료·일용잡화점 등 일반소매점의 경우 술을 판다는 사실을 세무서에 알리기만 하면 주류 판매업자로 간주해준다. 이른바 의제판매면허다. 이렇게 해서 발급된 주류판매업 면허는 54만5천개로, 이 가운데 유흥음식점이 42만여개, 일반소매점이 12만6천여개다. 주류전문소매점 제도가 겨냥하는 건 12만여개 일반소매점으로, 이들이 마음대로 술을 팔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소매점들이 바짝 긴장하는 것도 당연하다. 주류전문소매점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쪽은 국무총리실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이하 청보위)다. 명분은 술로부터의 ‘청소년 보호’. 일반소매점이 죄다 술을 팔고 있는 탓에 청소년들이 ‘언제 어디서든’ 술을 살 수 있는데, 이런 현실을 주류전문점을 도입해 고치자는 것이다. 방식은 이렇다. “전문소매점을 도입해 일정한 요건(예컨대 주류 코너를 매장 안에 따로 갖추는 등)이 되는 소매점에 한해 술 판매를 허용하고 지역별·거리별로 전문소매점 수를 제한하면 청소년들의 술 접근이 어려워질 것이다.” 덧붙여 청소년에게 술과 담배를 팔지 못하게 하고 있는 현행 청소년보호법만으로는 부족하니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자는 게 도입 논리다. 청보위가 주류전문소매점 도입을 들고 나선 건 지난 99년. 당시부터 청보위는 자문위원인 중앙대 정헌배 교수(경영학과)에게 3차례에 걸쳐 주류전문소매점 도입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물론 보호위는 연구보고서를 토대로 올 초에 주세법 개정 관련부처인 재정경제부와 국세청에 도입을 건의했다. 그러나 재경부의 반응은 보호위의 예상과 달리 부정적이었다. “청소년 보호는 그럴듯하지만 주류전문소매점 도입은 영세 소매상인의 생계에 엄청난 타격을 주는데다 실효성은 없고 부작용만 크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도입이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내놓은 것이다. 재경부 소비세제과 윤영선 과장은 “술을 파는 업소에 대한 벌금도 잘 지켜지지 않는 판에 주류전문소매점을 한다고 청소년들이 술을 사지 않을 것이냐”며 “더구나 술을 사 마시는 국민들의 불편은 어떡할 것이냐”며 당장 실효성부터 의문을 제기했다. 가까운 구멍가게나 슈퍼에서 술을 살 수 없게 되어 멀리 떨어진 전문소매점까지 가야 하는 불편을 청소년 보호라는 명분으로 감수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것이다. 국세청 소비세과 이병대 과장도 “다 끝난 옛날 얘기를 왜 지금 꺼내느냐”고 되물었다. 올해 초에 현실 여건상 도입하기 어렵다는 쪽으로 일단락됐다는 얘기다. 내년부터 주류전문소매점을 도입하려고 했던 청보위가 곤혹스런 처지에 놓인 건 물론이다. 청보위의 보호지원과 신현두 과장은 “내부적으로 과연 이 제도를 시행할 만한 것인지 검토중에 있다”며 “소매점업계의 이해도 있고 해서 관련부처들과 충분한 검토를 더 해봐야 한다”고 어려움을 내비쳤다. 그러나 청보위가 도입계획을 접은 건 아니다. 청보위는 국무조정실에 부처간 이견조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두 차례 회의에서도 또다시 재경부의 반대에 부닥치고 말았다. 국무조정실의 심사평가제2심의관실 관계자는 “재경부와 청보위의 이해가 첨예하게 얽혀 있는 만큼 단기간에는 곤란하지만 여건을 조성해 가면서 재경부에 장기과제로 검토해 보도록 한 상태”라며 어차피 담당은 재경부쪽이라고 떠넘겼다. 재경부 반대 입장에도 무리하게 추진
도입이 물건너가는가 싶었는데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닌 쪽으로 사태가 돌아가자 소매점업계는 청보위의 도입 추진을 원천 봉쇄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청소년들의 음주가 소매점보다는 음식점에서 더욱 큰 문제라는 자체 조사결과를 내놓는 등 주류전문소매점 도입이 애꿎은 영세 소매상들의 생존권만 위협하고 있다는 반박논리를 생산하고 나선 것이다. 한국체인사업협동조합 남용우 전무는 “청보위가 주류전문소매점 실시를 밀어붙인다면 의약분업 못지않은 혼란을 불러올 것”이라며 “청소년에게 술과 담배를 못 팔게 하고 있는 현행 제도를 충분히 홍보하는 방식으로 청소년들의 술 접근을 차단하려는 생각은 않은 채 소매업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꼴”이라고 불만을 털어놨다.
실제로 주류전문소매점이 도입되면 전국 12만여개 일반소매점이 큰 타격을 받게 될 공산이 크다. 소매점업계에서는 주류전문소매점이 되려면 매장에 주류 코너를 따로 설치하기 위해 최소한 50㎡ 정도의 면적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영세 소매점 대다수가 술을 취급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또 50㎡ 이상의 소매점도 주류 코너를 신설하는데 수백만원의 비용을 들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역 및 거리에 따라 주류전문점 숫자가 제한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상당수의 기존 일반소매점은 술을 팔지 못하게 된다. 한국체인사업협동조합 남용우 전무는 “점포 규모가 작을수록 매상에서 주류가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며 “소규모 영세점포는 안주 판매 등 부수적인 수입까지 합쳐 소득의 30%가량이 술 판매에서 온다”고 말했다. 소매점 상인들은 불황에다가 대형 할인점에 밀리면서 가뜩이나 매출이 줄고 장사가 안 돼 아우성인 판인데 주류전문점이 도입되면 망할 수밖에 없다며 시름에 휩싸여 있다.
도입이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청보위는 서둘러 올 초에 공청회 개최를 통한 사회적 이슈화를 꾀했다. 그러나 이를 눈치챈 업계쪽은 지난 3월 선수를 치고 나섰다. 도입 반대를 위한 공청회를 먼저 열어버린 것이다. 한국편의점협회 김점욱 전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도 청보위가 계속 밀어붙이고 있는 만큼 이를 아예 무산시켜야 한다는 게 소매점 업계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청소년보호위원회가 한국 음주문화 바꾸겠다?
여기에 술 제조업체도 청보위의 입장에 반대하고 나섰다. 제조업체로서도 판매점이 줄어들면 매출에 타격이 오는데다 유통업자들의 어려움을 외면할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대한주류공업협회 차홍기 부장은 “대다수 국민들이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제도를 과연 좋은 제도할 할 수 있느냐”며 “유통업체는 사실상 제조업체와 한 식구나 마찬가지인데 그쪽이 망하는 판에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 있느냐”고 거들고 나섰다.
물밑에 가라앉은 상태이지만 청보위는 여전히 도입을 굽히지 않고 있다. 준비없이 도입을 추진하다 재경부쪽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은 격인 청보위는 이제 “청소년 보호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음주문화 개선을 위한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청보위 차정섭 사무국장은 “국민들이 술에 지나치게 노출되어 있다”며 “주류전문소매점 도입은 국민적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청소년들의 성장 속도가 빠르고 예전과 달라졌다는 이유로, 또 청소년이 술을 먹는 게 현실이라는 이유로 방치해야 하느냐”고 덧붙였다.
국민의 음주 문화까지 개선하겠다고 나서는 청보위의 입장은 뜻은 좋지만 현실적으로 무리한 발상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청소년 보호라는 명분 아래 일상적인 상거래를 통제하기 시작한다면 술에 그치지 않고 담배, 라이터, 가스 등 거의 대부분의 상품들을 따로 매장을 만들고 단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청보위가 괜히 무리한 법안을 만들려다가 진퇴양난에 빠지고 만 셈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사진/ 동네 구멍가게에서 술을 팔면 청소년을 보호하지 못한다? 영세 소매점들은 주류전문점 제도가 시행되면 생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하소연한다.(박승화 기자)
말 그대로 술을 팔 수 있는 전문점을 일컫는 주류전문소매점은 주류판매 점포를 엄격히 제한하는 제도다. 물론 지금도 아무나 술을 팔 수 있는 건 아니다. 술을 팔려면 원칙적으로 판매면허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주세법은 식료·일용잡화점 등 일반소매점의 경우 술을 판다는 사실을 세무서에 알리기만 하면 주류 판매업자로 간주해준다. 이른바 의제판매면허다. 이렇게 해서 발급된 주류판매업 면허는 54만5천개로, 이 가운데 유흥음식점이 42만여개, 일반소매점이 12만6천여개다. 주류전문소매점 제도가 겨냥하는 건 12만여개 일반소매점으로, 이들이 마음대로 술을 팔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소매점들이 바짝 긴장하는 것도 당연하다. 주류전문소매점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쪽은 국무총리실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이하 청보위)다. 명분은 술로부터의 ‘청소년 보호’. 일반소매점이 죄다 술을 팔고 있는 탓에 청소년들이 ‘언제 어디서든’ 술을 살 수 있는데, 이런 현실을 주류전문점을 도입해 고치자는 것이다. 방식은 이렇다. “전문소매점을 도입해 일정한 요건(예컨대 주류 코너를 매장 안에 따로 갖추는 등)이 되는 소매점에 한해 술 판매를 허용하고 지역별·거리별로 전문소매점 수를 제한하면 청소년들의 술 접근이 어려워질 것이다.” 덧붙여 청소년에게 술과 담배를 팔지 못하게 하고 있는 현행 청소년보호법만으로는 부족하니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자는 게 도입 논리다. 청보위가 주류전문소매점 도입을 들고 나선 건 지난 99년. 당시부터 청보위는 자문위원인 중앙대 정헌배 교수(경영학과)에게 3차례에 걸쳐 주류전문소매점 도입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물론 보호위는 연구보고서를 토대로 올 초에 주세법 개정 관련부처인 재정경제부와 국세청에 도입을 건의했다. 그러나 재경부의 반응은 보호위의 예상과 달리 부정적이었다. “청소년 보호는 그럴듯하지만 주류전문소매점 도입은 영세 소매상인의 생계에 엄청난 타격을 주는데다 실효성은 없고 부작용만 크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도입이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내놓은 것이다. 재경부 소비세제과 윤영선 과장은 “술을 파는 업소에 대한 벌금도 잘 지켜지지 않는 판에 주류전문소매점을 한다고 청소년들이 술을 사지 않을 것이냐”며 “더구나 술을 사 마시는 국민들의 불편은 어떡할 것이냐”며 당장 실효성부터 의문을 제기했다. 가까운 구멍가게나 슈퍼에서 술을 살 수 없게 되어 멀리 떨어진 전문소매점까지 가야 하는 불편을 청소년 보호라는 명분으로 감수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것이다. 국세청 소비세과 이병대 과장도 “다 끝난 옛날 얘기를 왜 지금 꺼내느냐”고 되물었다. 올해 초에 현실 여건상 도입하기 어렵다는 쪽으로 일단락됐다는 얘기다. 내년부터 주류전문소매점을 도입하려고 했던 청보위가 곤혹스런 처지에 놓인 건 물론이다. 청보위의 보호지원과 신현두 과장은 “내부적으로 과연 이 제도를 시행할 만한 것인지 검토중에 있다”며 “소매점업계의 이해도 있고 해서 관련부처들과 충분한 검토를 더 해봐야 한다”고 어려움을 내비쳤다. 그러나 청보위가 도입계획을 접은 건 아니다. 청보위는 국무조정실에 부처간 이견조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두 차례 회의에서도 또다시 재경부의 반대에 부닥치고 말았다. 국무조정실의 심사평가제2심의관실 관계자는 “재경부와 청보위의 이해가 첨예하게 얽혀 있는 만큼 단기간에는 곤란하지만 여건을 조성해 가면서 재경부에 장기과제로 검토해 보도록 한 상태”라며 어차피 담당은 재경부쪽이라고 떠넘겼다. 재경부 반대 입장에도 무리하게 추진

사진/ 주류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가자 주류백화점 진열대 모습.(박승화 기자)

사진/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주류전문소매점을 통해 청소년을 보호하고 음주문화 개선을 도모하겠다고 밝혔다.(한겨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