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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명품매장 “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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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2-0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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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특수 만끽하는 고가품 시장… 수입자동차·가전 등도 활황기 맞아

사진/ 백화점의 명품매장에는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대의 상품이 즐비하다.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의 모피 전문점.(김종수 기자)
값이 70만∼120만원에 이르는 ‘모노그램’ 블랙라인과 70만∼90만원 하는 ‘루핑’을 찾는 고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찾는 손님들은 하루 평균 700여명, 주말에는 1천명을 넘어선다. 지난 11월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1층 루이비똥 매장. 평일임에도 매장을 찾는 고객의 발길이 분주하다. 주로 팔리는 상품들은 지난달부터 신상품이 쏟아진 여성용 가방들. 매장 직원은 “워낙 고가품이라서 경기 불황에도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한다. 단순히 불황을 타지 않는 정도가 아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매출이 오히려 크게 늘고 있다. “정확한 집계는 알 수 없지만 루이비똥 매장의 경우 10월에 비해 11월 매출이 20∼30% 늘었다”는 것이 백화점 관계자의 귀띔이다.

100만원대 여성용 가방 줄줄이 팔려

인근 현대백화점 본점도 고가의 명품매장을 찾는 고객이 늘고 있다. 강남의 부유층 고객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이 백화점 명품매장의 매출은 여름 한때 뜸했다가 10월 이후부터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웬만한 잡화 하나 가격이 100만원을 쉽게 넘어가는 현대백화점의 명품매장은 루이비똥, 프라다, 에스토니, 버버리, 구찌 등 50여개. 이들 매장의 매출은 지난 8월과 9월에는 지난해 대비 12.3%와 10.6%가 증가하는 데 그쳤으나 10월에는 18%, 11월에는 19.5%의 큰 폭으로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 현대백화점 김정수 차장은 “최근 들어 매출이 더 늘어나는 상황”이라며 “연말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고가품을 찾는 고객이 예상보다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다른 백화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명품매장의 매출은 지난 8월 55억원에 불과했으나, 9월 63억원, 10월 71억원, 11월 74억원으로 급증했다. 연말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매출 신장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특히 11월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서도 39.6%나 증가한 규모다. 모피·피혁제품 매출 증가율도 상반기 마이너스에서 7월 이후부터 증가세로 돌아섰다. 최근에는 본격적인 겨울 성수기를 맞아 판매금액이 크게 뛰어올랐다. 10월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1%나 증가한 것이다.

신세계백화점은 이들과 달리 하반기에 들어 명품 매출 증가율이 둔화되는 양상이다. 상반기 한때 100%를 넘어섰던 매출 증가율이 10월에 12.1%까지 낮아졌다. 그러나 11월에는 증가율이 다시 15.6%로 높아졌다. 특히 수입양주 매출은 11월 들어 급증하고 있다. 판매가 지난해보다 무려 102.6%나 증가한 것이다. 모피·피혁 역시 매출 증가율이 10월 6.79%에서 11월 10.59%로 높아졌다.

말 그대로 값비싼 제품일수록 더 잘 팔리는 양상이다. 고가품 매출 증가원인에 대해서는 유통업계도 정확한 분석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경기가 생각보다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데는 누구나 동의한다. 지난 2∼3년 동안 어려웠던 건설업 등이 살아나면서 경기에 숨통이 트이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한국은행 정명창 조사국장은 “최근 건설투자가 증가하고 은행을 통해 가계로 돈이 많이 풀리면서 자금이 풍부하게 공급되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이 소비 증가의 배경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나아가 최근 주식시장의 상승세가 계속 이어질 경우 고가품 시장이 더 활황을 맞을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불황을 타지 않는 강남의 명품 열기

사진/ 올해부터 국내시판에 들어간 2억7천만원짜리 메르세데스 벤츠의 CL600 모델.
물론 고가품 매장이라고 해서 모두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서울 소공동 신세계백화점 본점 프라다 매장은 지난해에 견주어 오히려 매출이 줄었다. 반대로 지난해 10월 문을 연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옆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프라다 매장은 대표적으로 매출이 늘고 있는 잘 나가는 매장 가운데 하나다. 같은 고가품 매장이라 해도 강남의 몇몇 지역을 중심으로 경기가 차별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고가품이 경기 불황을 타지 않고 잘 팔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역과 매장에 따라 차이가 크다”며 “고가의 명품은 주로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소비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수입자동차 역시 올해 판매실적이 짭짤하다. 새해 연식을 선호하는 국내 소비자들의 취향 때문에 연말은 전통적으로 자동차 업계의 비수기다. 그럼에도 실적은 그리 나쁘지 않다. 대표적인 수입승용차인 메르세데스 벤츠는 국내 판매량(출고 기준)이 지난달 102대에서 11월에도 100대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벤츠 가운데 최고가품에 속하는 S600 모델의 경우 지난해 1년 동안 모두 23대 팔렸으나 올 들어 10월까지 벌써 28대가 팔려나갔다. 한대에 집 한채 값인 2억790만원짜리다.

이보다 더 비싼 모델도 있다. 올해부터 국내에서 처음 판매되기 시작한 CL600 모델이다. 배기량 6천cc에 문이 두개 달린 자가운전용 쿠페로 데시보드와 천장 등 내장재가 모두 천연가죽으로 돼 있다. 독일에서 ‘지상에서 바퀴 달린 것들 중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던 한대당 2억7천만원의 초고가 승용차다. 지난 2월 한대, 10월에 한대 모두 두대가 팔려나갔다. 두대의 차는 모두 돈 많은 개인사업자가 사간 것으로 알려졌다. 벤츠를 수입·판매하는 한성자동차의 김희정 과장은 “벤츠와 포르쉐를 수입·판매하고 있다”며 “수입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어 올해 매출목표를 쉽게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수출입 동향을 보면 이러한 양상은 그대로 나타난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10월중 국제수지 동향에 따르면 승용차·텔레비전·골프용품 등 고가품의 수입이 크게 증가했다. 승용차 수입은 1650만달러로 지난해 10월에 비해 46% 증가했으며 가죽의류 24.2%, 텔레비전 22.7%, 세탁기 33.3%, 골프용품 31.5%가 늘어났다. 위스키가 주종을 이루는 주류 수입 역시 11.6% 증가했다. 이러한 수입 상품들은 11∼12월 두달에 걸쳐 집중적으로 매장에 깔릴 것으로 보여 연말 고가수입품 시장은 예상 밖으로 뜨겁게 달아오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텔레비전과 세탁기 등 가전제품 수입 증가는 대형 제품들이 잘 나가는 최근 국내 추세에 비춰볼 때 고가의 대형 제품이 밀려들어오는 것으로 추정된다.

소비심리 회복 추세… 수입품이 특수 독식

사진/ 최근 고가품의 해외수입이 크게 늘어났다. 고가에도 고객이 끊이지 않는 골프용푸 매장.(김종수 기자)
국내 시장에서도 상대적으로 값이 비싼 내구재 소비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통계청의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10월중 자동차 판매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0.3% 증가했다. 비록 5천만∼1억원의 수입자동차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중산층에 속하는 회사원이나 자영업자들이 요즘 같은 불황기에 차를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만큼 부유층의 지출이 늘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 밖에도 10월중 휴대전화기는 14.2%, 정수기는 28.6% 판매가 증가했으며, 가전제품 시장에서도 벽걸이형 대형 텔레비전과 대형 냉장고 등의 판매가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부유층의 지출 증가가 소비심리 회복에 일정 정도 기여할 것이란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들이 지출한 돈은 대부분 수입제품을 사들이는 데 빠져나가고 있어 정작 수혜는 엉뚱한 사람들이 보고 있다고 지적한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도 “유통시장이 소수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고가품 시장과 일반인들을 겨냥한 할인점 등의 저가품 시장으로 양극화되는 양상”이라며 “고가품 시장은 거의 전적으로 수입품이 독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남기 기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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