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백화점 제치고 새판짜기 주도… 성장세 유지하며 상권별 가격경쟁 돌입
경기부진에도 불구하고 유통업계가 할인점과 홈쇼핑 업체를 중심으로 급속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대형 할인점은 올해 50개 가까운 점포를 신규 개장한 데 이어 내년에도 60개에 이르는 점포를 잇따라 개장할 예정이다. 그 결과 할인점은 국내 진출 9년 만인 내년 처음으로 백화점 매출을 추월할 것으로 보인다. 오는 2003년이면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관측돼 내년이 업계 판도를 결정짓는 시기가 될 전망이다. 홈쇼핑 시장 역시 신규 업체들이 속속 뛰어들면서 내년에는 시장규모가 올해의 두배 가까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유통업계의 지도가 완전히 바뀌게 되는 것이다. 유통시장의 격변을 주도하고 있는 할인점, 홈쇼핑 업계의 급성장 배경과 전망을 살펴본다. 편집자
서울 지하철 2호선 문래역 근방 5200평 대지에 지상 5층, 지하 2층짜리 대형 건물이 최근 새로 들어섰다. 국내 할인점 업계 4위인 삼성테스코 홈플러스의 영등포점으로 쓰일 건물이다. 오는 12월13일 정식으로 문을 여는 이 영업점에는 단지 국내 200여개 할인점 가운데 하나라는 것 이상의 뜻이 담겨 있다.
우선, 영등포점은 홈플러스의 첫 서울지역 영업점이란 의미가 있다. 홈플러스는 서울이 아닌 지방(부산)에서 터를 닦아 이번에 서울 입성을 선언하고 나섰다. 서울에서 출발해 지방으로 터전을 넓힌 다른 할인점들과 정반대 방향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영등포점 개점이 홈플러스로선 승부수를 띄운 ‘실험’이며, 할인점 업계 전체로 시야를 넓히면 서울지역에서 그만큼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할인점 업계 내부의 경쟁 격화는 백화점, 재래시장을 포함한 유통업계 전체의 판도 변화로 이어질 전망이다.
지방에서 터 닦아 서울 입성한 홈플러스 삼성 관계자는 “홈플러스는 애초부터 지방 거점 도시에서 경쟁력을 갖춘 뒤 서울에 입성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었다”며 “이제 충분히 경쟁할 만하다고 자체 평가하고 있는 상태”라고 풀이했다. 이 관계자는 “서울지역에 새로 진입하기 위해선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만큼 홈플러스는 이제 ‘사각의 링’ 위에 서게 됐다”고 덧붙였다. 홈플러스 운영업체인 삼성테스코의 설도원 상무는 “단순히 물건을 싸게 파는 데 그치지 않고 병원, 약국, 미장원, 어린이 놀이터 같은 편의시설을 두루 갖춰 부가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문화적 혜택에 바탕을 두고 문화·오락센터를 추구한 게 비교적 빠르게 성장한 바탕이 됐다는 설명이다. 설 상무는 “이 때문에 우리는 영업점을 할인점이라고 부르지 않고 ‘가치점’이라고 한다”며 “서울지역에서도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테스코의 야무진 꿈이 실현될지는 미지수지만, 할인점 업계의 급팽창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계속될 게 확실해 보인다. 신세계 이마트, 롯데 마그넷, 까르푸, 홈플러스, 월마트 등 상위 5개사만 보더라도 올해 들어 점포를 45개가량(연말까지 신규개장 점포 포함) 늘린 데 이어 내년에도 50∼60개 점포를 추가로 세울 예정이다. 이에 따라 내년 말이면 상위 5개 할인점의 점포 수는 99년 말(128개)의 두배를 웃도는 270∼280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점포 수 증가는 곧바로 시장규모 팽창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나경제연구소 추정에 따르면 지난해 할인점 업계의 매출규모가 백화점 업계의 70% 수준인 10조6천억원으로 치솟은 데 이어 올해 말에는 이보다 30% 더 성장한 13조8천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내년에는 25%의 초고속 성장세를 이어가 백화점 시장(16조9천억원 예상)을 웃도는 17조3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올해로 국내에 도입(93년 11월 신세계 이마트 창동점)된 지 8년을 맞는 할인점이 ‘71살의 노장’ 백화점을 추월하게 되는 것이다. 업계에선 이를 유통시장의 역사를 바꾸는 하나의 큰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 소매시장에서 양대축을 이루는 할인점과 백화점의 지위가 역전돼 유통시장의 지도가 바뀐다는 점에서다. 할인점이 이처럼 짧은 시간 동안 급성장한 배경은 무엇일까? 하나경제연구소 민영상 연구원은 “다양하고 값싼 상품을 한곳에 모아놓았다는 강점에 힘입어 재래시장을 큰 폭으로 잠식하고 있는 데 따른 것”라며 “여기에 자동차가 많이 보급돼 이동 및 쇼핑이 편리해진 외부 환경도 많이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민 연구원은 “할인점 시장의 팽창을 놓고 가격이냐, 서비스냐의 논란은 지금도 남아 있지만 역시 가격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값싼 가격을 무기로 재래시장 흔들어
할인점 시장의 몸집이 불어나면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곳은 물론 재래시장이다. 재래시장은 아직도 전체 소매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이를 정도로 높지만 앞으로는 점차 비중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국회 산업자원위원회가 재래시장 활성화 방안을 담은 법 제정을 추진중인 사실은 이를 잘 보여주는 ‘상징’이다. 한나라당이 발의한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안)’은 대형 할인점(900평 이상)을 대도시에서는 인구 15만명당 1개로 제한하고 중소도시에선 도심 진입을 어렵게 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고 있다. 영세상인을 보호하기 위한 고육책이지만, 이런 법안이 유통시장의 큰 물결을 막아내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지역 상인들의 표를 의식한 정치적 계산이란 비난 여론에 맞닥뜨려 법 제정이 수월치 않다는 데서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또 법 제정을 밀어붙인 쪽에서조차 인구 15만명당 1개로 묶는다는 조항은 없앤다는 얘기가 나오는 등 추진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할인점의 맹렬한 성장세는 백화점의 자리도 위협하고 있다. 백화점 업계가 최근 몇달 반짝 성장세를 구가했지만, 역시 할인점 시장의 팽창 속도에는 크게 못 미친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 시장 규모는 올해 15조9천억원으로 5.5%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지난해 13.2%의 성장률에 견줘 크게 낮은 수준이다. 그나마 대형 백화점의 신규 점포 개장에 따른 효과에 힘입은 것이며 기존 점포 기준으로는 연간 2∼3% 성장률을 기록하는 데 그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신세계 이마트 이달수 과장은 이와 관련, “할인점은 백화점에 견줘 효율성이 훨씬 높다”고 말한다. “백화점은 점포 1개를 새로 여는 데 보통 2500억원 정도 듭니다. 인테리어에 돈을 많이 들여야 하거든요. 한 점포에서 매출은 대략 연간 4천억원 수준입니다. 반면, 할인점은 땅값 비싼 서울에서도 500억원 정도 들이면 신규 점포를 낼 수 있고 여기서 연간 2천억원의 매출을 올립니다. 할인점의 효율이 두세배 정도 더 높은 셈이죠. 할인점이 백화점에 견줘 훨씬 빠르게 성장할 수밖에요.”
할인점의 성장세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유력한 외부 환경은 대략 두 가지로 정리된다. 할인점의 주요 공격목표인 재래시장의 비중이 여전히 크다는 점과 할인점 1개당 인구도 아직은 많아 신규 점포를 낼 여지가 넓다는 점이다. 재래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이 70%에 이르는 데 반해 유통 선진국들은 30% 수준이다. 유통구조가 고도화할수록 재래시장의 비중이 축소되고 이는 대부분 할인점의 몫으로 돌아갈 공산이 높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또 올해 들어 일주일에 한개꼴로 신규 할인점이 생겨났지만 아직은 여유가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국내 대형 할인점 1개당 인구(2000년 총인구 4614만명 기준)는 약 22만명이다. 이에 비해 미국, 일본 등 해외 선진국의 할인점(디스카운트스토어, 슈퍼체인센터)당 인구는 6만∼7만명이라고 한다. 민영상 연구원은 “선진국과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신규 점포를 더 낼 여지는 있다”며 “국내의 인구밀집도와 주거환경에 따른 상권특성 및 소매업태별 경쟁을 감안한 국내 대형 할인점 1개당 상권인구는 대략 15만명이 적정하다는 게 업계의 일반적인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중소형 상권 형성해 치열한 경쟁 펼쳐
인구 15만명당 1개점을 기준으로 단순 역산한 국내 소매시장의 적정 할인점 수는 대략 307개로 추산된다. 물론 지금처럼 대형점포 위주의 넓은 상권이 아닌 중소형 상권을 대상으로 삼고 이에 맞는 점포규모와 상품구성을 짤 경우 국내 적정 할인점 수는 500∼600개에 이른다는 견해도 있다.
업계에선 상위 5개사의 신규 점포 오픈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 2003년 상반기쯤 국내 할인점 수가 300개를 넘어서면서 지역상권별로 점포 과밀화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경쟁의 양상도 달라져 신규 점포 증설을 통한 외형 성장보다 중복점포를 중심으로 가격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대규모 자금력과 광범한 네트워크를 갖춘 상위 업체들의 시장 지배력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내년은 할인점 업계의 판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한해라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전망이다.

사진/ 대형 할인점들은 저렴한 가격의 제품으로 소비자들을 대거 끌어모았다. 최근 개장한 이마트 은평점.(박승화 기자)
지방에서 터 닦아 서울 입성한 홈플러스 삼성 관계자는 “홈플러스는 애초부터 지방 거점 도시에서 경쟁력을 갖춘 뒤 서울에 입성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었다”며 “이제 충분히 경쟁할 만하다고 자체 평가하고 있는 상태”라고 풀이했다. 이 관계자는 “서울지역에 새로 진입하기 위해선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만큼 홈플러스는 이제 ‘사각의 링’ 위에 서게 됐다”고 덧붙였다. 홈플러스 운영업체인 삼성테스코의 설도원 상무는 “단순히 물건을 싸게 파는 데 그치지 않고 병원, 약국, 미장원, 어린이 놀이터 같은 편의시설을 두루 갖춰 부가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문화적 혜택에 바탕을 두고 문화·오락센터를 추구한 게 비교적 빠르게 성장한 바탕이 됐다는 설명이다. 설 상무는 “이 때문에 우리는 영업점을 할인점이라고 부르지 않고 ‘가치점’이라고 한다”며 “서울지역에서도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테스코의 야무진 꿈이 실현될지는 미지수지만, 할인점 업계의 급팽창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계속될 게 확실해 보인다. 신세계 이마트, 롯데 마그넷, 까르푸, 홈플러스, 월마트 등 상위 5개사만 보더라도 올해 들어 점포를 45개가량(연말까지 신규개장 점포 포함) 늘린 데 이어 내년에도 50∼60개 점포를 추가로 세울 예정이다. 이에 따라 내년 말이면 상위 5개 할인점의 점포 수는 99년 말(128개)의 두배를 웃도는 270∼280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점포 수 증가는 곧바로 시장규모 팽창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나경제연구소 추정에 따르면 지난해 할인점 업계의 매출규모가 백화점 업계의 70% 수준인 10조6천억원으로 치솟은 데 이어 올해 말에는 이보다 30% 더 성장한 13조8천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내년에는 25%의 초고속 성장세를 이어가 백화점 시장(16조9천억원 예상)을 웃도는 17조3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올해로 국내에 도입(93년 11월 신세계 이마트 창동점)된 지 8년을 맞는 할인점이 ‘71살의 노장’ 백화점을 추월하게 되는 것이다. 업계에선 이를 유통시장의 역사를 바꾸는 하나의 큰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 소매시장에서 양대축을 이루는 할인점과 백화점의 지위가 역전돼 유통시장의 지도가 바뀐다는 점에서다. 할인점이 이처럼 짧은 시간 동안 급성장한 배경은 무엇일까? 하나경제연구소 민영상 연구원은 “다양하고 값싼 상품을 한곳에 모아놓았다는 강점에 힘입어 재래시장을 큰 폭으로 잠식하고 있는 데 따른 것”라며 “여기에 자동차가 많이 보급돼 이동 및 쇼핑이 편리해진 외부 환경도 많이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민 연구원은 “할인점 시장의 팽창을 놓고 가격이냐, 서비스냐의 논란은 지금도 남아 있지만 역시 가격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값싼 가격을 무기로 재래시장 흔들어

사진/ 유통시장의 지도가 바뀌고 있다. 재래시장은 할인점에 밀려입지가 좁아지고 잇다(위쪽/ 이용호 기자). 서울지역의 치열한 할인점 경쟁을 예고하는 홈 플러스 영등포점(아래/ 박승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