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월6일 오전 청와대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박 대통령은 4대 구조 개혁에 동참해 고통을 분담할 것을 호소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하지만 G20에서 공식적으로 한국의 성장전략을 1위로 평가했다는 근거는 분명치 않다. G20은 누가 더 잘했는지 평가할 만큼 맷집이 좋지는 않다. 등수를 매기는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그룹이다. 아마도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G20 성장전략의 국내총생산(GDP) 상승 효과를 분석한 것을 말하는 듯하다. 지난해 국내 언론에서도 그리 보도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분석에서 4.4% 추가 성장이라는 단연 일등의 결과가 나온 것은 구조 개혁 때문이 아니다. 사회간접자본 투자의 대대적 확충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려 4.4%라는 수치의 신뢰성은 논란거리다. 이런 결과에 분석 당사자인 IMF와 OECD도 놀랐고, 한국의 정책 관계자도 놀랐다고 들었다. 여하튼 이런 분석에 기초해서 각국의 성장전략에 등수를 매긴 적은 없다. 게다가 이것이 유일한 근거이고, 그것마저 ‘외부’에서 수입한 것이라면, “국민 여러분”은 섭섭하지 않을 수 없다. 준 적도 받은 적도 없는 개혁안 ‘1등상’ 둘째는 개혁 내용의 비대칭성이다. 4대 구조 개혁 분야를 뽑았는데, 개혁의 내용과 구체성이 제각각이다. “노동 개혁은 일자리”라고 선언한 뒤 담화문은 노동시장 구조 개혁에 대해서 구구절절하고 구체적으로 나열했다. 하지만 다른 개혁은 그렇지 않다. 공공부문 개혁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보다는 ‘이미 잘하고 있다’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공무원연금 개혁도 하고 있고, 혈세 낭비를 막기 위해 재정 정보도 공개한다고 했다. 교육 개혁은 추상적인 문구로 가득하다. “학생의 꿈과 끼를 키우는 교육”이나 “학벌 아닌 능력 중심의 사회 구현” 등등 구호성 문구가 넘치지만, 자유학기제 등과 같은 구체적인 정책은 “대수술”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사소하다. 금융 개혁 분야에는 “보신주의 관행과 현실에 안주한 금융회사의 영업 행태”를 바꾸겠다는 선언 이외에는 없다. 여기에 서비스산업 육성이 덧붙여졌는데, 그 내용은 서비스기본법 통과로 요약된다. 이렇다보니 구조 개혁의 “힘든 길”은 오로지 노동시장으로만 연결되어 있다. 나머지 개혁은 들러리라는 느낌을 피할 수 없다. 4대 개혁이 아니라 “노동 개혁”만을 정조준했다는 ‘오해’를 자초했다. 셋째는 사실관계의 부정확성 또는 모호성이다. 모름지기 주요 경제정책은 타당하고 객관적인 통계나 분석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경제 “대수술”도 수술이라면, 환자의 각종 수치를 제대로 알아내야 한다. 특히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경우에는 어느 한편에서 나온 통계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잘못된 수치로 수술하면 환자가 위험해질 수 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불문율이자 철칙이다. 그런데 담화문은 이런 원칙을 간단히 무시했다. 우선 정년이 60살로 연장되면서 기업의 추가 부담이 115조원이 되므로 임금피크제가 필요하다고 역설할 때, 115조원이라는 무시무시한 수치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제시한 것이다. 그 방법도 단순했다. ‘기업 정년 연장 실태조사’라는 기업 설문조사를 통해 정년 연장 혜택을 받을 노동자의 수와 평균급여를 추정한 뒤 그냥 곱한 숫자다. 이들의 실제 정년퇴직 여부와 급여에 대한 면밀한 분석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이를 흔히 “편지봉투 뒤에 끄적인 계산”(back-of-the-envelope calculation)이라 한다. 온 국민을 위해 일하는 일국의 지도자가 인용할 만한 수치는 아니다. 서비스기본법과 관련해서는 이 법이 통과될 경우 “서비스 기업들은 투자 규모를 34% 이상 늘린다”고 했다. 이 수치는 대한상공회의소가 400여 개 기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 나온 것이다. 이해당사자가 행한 조사인데다, 인용도 정확하지 않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34%의 기업이 서비스기본법 개정시에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답했다. 서비스 기업들이 전체적으로 34% 이상 투자를 늘리겠다는 얘기와는 큰 차이가 있다. 게다가 기업의 62%는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라고 답했다. 즉, 대다수의 의견은 미지수다. 실수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실수라면 대국민 담화문에서는 있어선 안 될 실수이고, 실수가 아니라면 더 큰 문제다. 멋대로 풀이한 통계, 차라리 실수이길 또한 대수술이 성공하려면 수술 이후 환자의 피가 몸 구석구석으로 잘 흐를 수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 심장에서 신선한 피를 만들어냈다 하더라도 혈관이 막혀 흐르지 않는다면 비싸고 고통스러운 수술은 환자의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겠다. 그런 면에서 보면 담화문은 기이하다. 살점을 들어내고 피를 내자고 하지만, 정작 혈관에 대해서는 퉁명스럽다. 예를 들어 정년 연장으로 늘어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자 임금피크제를 “강제적”으로 도입했다고 하자. 그런데 그렇게 생긴 ‘여윳돈’이 피처럼 환류해서 청년 고용으로 연결되도록 하는 혈관이 없다. 임금피크제를 강제하듯이 이런 환류를 강제하지는 않는다. “기업들이… 그만큼 앞장서주셔서” 해줄 것을 부탁할 뿐이다. “청년들의 실업 문제를 지금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 미래에 큰 문제로 남게 될 것”이기 때문에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결단을 내릴 때”라고 준엄한 경고를 던지는 담화문이 그 해법에 이르러서는 기업에 대한 호소문만 내놓은 셈이다. 그래서 마지막은 고통 분담의 편향성이다. 담화문은 “우린 모두가 한배를 타고 있는 운명공동체”라는 점을 강조하고 고통을 나누자고 호소했다. 하지만 ‘운명공동체의 배’가 항해를 시작하기도 힘들 정도로 고통 분담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기울어진 배가 먼 길을 순항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임금피크제와 관련해서는 노동이 분담하는 몫은 직접적이고 강제적인 데 비해, 기업의 분담은 간접적이고 자발적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정책이 대기업을 대상으로 하고 중소기업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 대기업 편향이라고 할 법도 하다. ‘프로이트의 말실수’ (Freudian Slip)라는 말이 있다. 무의식이 의식에 개입해서 본의 아니게 속마음을 드러내는 말실수다. 또한 임금피크제를 공공기관에 도입하는 “솔선수범”을 보이겠다고 하지만, 정작 공무원에게 이를 도입하겠다는 얘기는 없다. 다만 “공무원 임금체계도 능력과 성과에 따라 결정되도록 개편”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팍팍한 정부 살림은 허리띠를 졸라매서 해결하겠다고 하는데, 정작 살림살이를 고달프게 만든 조세제도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쓰임새를 아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금을 받아야 할 곳에서 제대로 징수하는 방법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균형이고 분담이겠다. 고통 분담이 공평하지 못하면 개혁에 대해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 때문인지 담화문은 노·사·정 대타협과 양보를 강조한다. 하지만 대수술의 방향이나 내용은 다 정해두고 수술 대상자에게 대타협을 호소하는 것은 결국 일방적인 수술동의서에 서명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화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담화문에는 ‘대화’라는 단어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독일의 사례를 꼽았다. ‘양보’와 ‘희생’으로 노동시장 개혁을 이루고 유럽 경제강국으로 다시 부상했다는 ‘아름다운 동화’다. 하지만 독일 전문가들은 독일의 사례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한다. 크리스천 더스트먼과 동료들은 2014년 논문에서 독일 노동시장 개혁의 성공 이유를 대화와 협의를 중시하는 독일 노사관계 모델의 유연성에서 찾았다. 독일과 같은 포용적 노사 구조를 도입할 정치적 의사가 없다면 독일의 노동시장 개혁 모델은 성공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공평한 고통 분담과 진솔한 사회적 대화 없이는 독일식 기적도 없다는 얘기다. 정부 투명성이 ‘꼴찌’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