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의 2014년 연봉은 얼마일까? 2013년 그는 계열사 4곳에서 301억원을 받았다. 구치소에 수감 중인데 수백억원을 받을 자격이 있느냐는 여론의 집중포화가 쏟아졌다. ‘회장님’은 모든 등기임원직을 내려놨다. ‘무보수’ 선언도 했다. 그래서 지난해는 ‘0원’이다.
올해도 4월 초가 되자마자 ‘회장님의 월급 봉투’ 때문에 시끌시끌하다. 연봉 5억원 이상을 받는 등기임원들의 개별 보수를 공개하도록 한 제도가 시행 2년차를 맞았다. 지난해부터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주요 상장회사들은 매년 3월31일까지 공시하는 전년도 사업보고서에 임원 개인별 보수와 그 구체적인 산정 기준 등을 공개해야 한다.
지난해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등이 구속 수감된 와중에도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의 연봉을 받아가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면, 올해는 ‘퇴직금’과 ‘숨어가기’ 전략이 입길에 오른다.
문제는 대기업 총수들의 경우, 등기임원직에서 물러났다고 해서 계열사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퇴직금만 챙겨가고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경영권을 휘두를 가능성이 높다. 눈총은 피하고 현금은 챙기니, 손해 볼 것 없는 장사다. 한화 관계자는 “그룹 총수로서 계열사를 챙기긴 하겠지만 등기임원으로서 했던 역할보다는 축소될 것이다. 임원 퇴직금은 퇴임 직전 3개월치 급여에 근속연수를 곱해 계산한다”고 말했다.
아예 ‘베일’ 속에 숨어버린 대기업 총수들은 더 큰 문제다. 삼성그룹만 해도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을 제외하고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 등이 모두 미등기임원이라 보수가 공개되지 않는다. 회사 경영에 책임은 지지 않고 실질적 권한만 행사하는 것이다. ‘자본시장법’이 개정 또는 시행되자마자 재빠르게 등기임원에서 사퇴한 총수 일가도 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담철곤·이화경 오리온 회장·부회장 부부, 최신원 SKC 회장, 박문덕 하이트진로그룹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기업분석 전문업체인 한국CXO연구소는 주요 그룹사 239곳 가운데 15.5%인 37개 그룹이 총수 일가의 보수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몽구·김승연, 퇴직금만 100억원대
지난해 가장 많은 보수를 챙겨간 사람은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215억7천만원)이다. 그런데 보수의 절반 이상이 퇴직금(108억2천만원)이다. 지난해 3월 현대제철의 사내이사직에서 물러나면서 챙긴 돈이다. 정 회장은 현대제철 사내이사로 2005년 3월부터 9년 동안 일했다. 대기업 총수 가운데 ‘보수’를 많이 챙겨간 순위 2위에 오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178억9천만원)도 비슷하다. 그는 (주)한화, 한화케미칼, 한화건설, 갤러리아백화점 등 계열사 4곳의 등기임원직에서 물러나면서 총 143억8천만원의 퇴직금을 받았다. 김 회장은 2013년 구속 중임에도 불구하고 331억원을 받았다가 논란이 되자 200억원을 자진 반납한 바 있다.
대기업 등기임원들의 퇴직금은 천문학적이다.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92억3천만원 가운데 42억원), 신성재 전 현대하이스코 사장(90억9900만원 가운데 80억7500만원) 등도 보수의 상당액이 퇴직금이다. 전문경영인인 박승하 전 현대제철 부회장(55억7600만원), 경청호 전 현대백화점 대표이사(49억9200만원), 정준양 포스코 회장(39억9600만원) 등도 수십억원대의 퇴직금을 받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 등이 지난 2월24일 청와대를 찾아 박근혜 대통령과 문화체육 활성화 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아예 ‘베일’ 속에 숨어버린 대기업 총수들은 더 큰 문제다. 삼성그룹만 해도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을 제외하고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 등이 모두 미등기임원이라 보수가 공개되지 않는다. 회사 경영에 책임은 지지 않고 실질적 권한만 행사하는 것이다. ‘자본시장법’이 개정 또는 시행되자마자 재빠르게 등기임원에서 사퇴한 총수 일가도 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담철곤·이화경 오리온 회장·부회장 부부, 최신원 SKC 회장, 박문덕 하이트진로그룹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기업분석 전문업체인 한국CXO연구소는 주요 그룹사 239곳 가운데 15.5%인 37개 그룹이 총수 일가의 보수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수 총액 상위 5명 공개해야
현재 국회에는 보수 총액 기준으로 상위 5명 등기임원의 개인별 보수를 공개하도록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등기 여부와 무관하게 임원들의 보수 공개를 의무화하자는 취지다. 실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10만달러가 넘는 연봉을 받는 임원 5명의 연봉을 무조건 공개하도록 정해두고 있다. 강정민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미등기임원 중에도 상위 연봉자는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제도를 바꾸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 또 퇴직금이나 보수 산정 기준 등 시장에서 궁금해하는 부분을 명확하게 밝히도록 법이나 공시 규정을 손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