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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예진아씨’ 흔적을 지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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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1-2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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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정의 ‘백색테러’에 광고업계 비상… 관련 업체들 손해배상 소송도 추진

사진/ 고개숙인 '예진아씨'. 황수정씨는 지난 11월13일 히로뽕 투약 혐의로 구속됐다.(경인일보)
태평양과 롯데는 요즘 탤런트 황수정 광고사진을 떼어내느라 정신이 없다. 황씨가 11월13일 히로뽕 투약혐의로 구속되면서 그를 모델로 썼던 두 회사의 이미지가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됐기 때문이다. 황씨는 특히 청순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유지해왔던 터라 충격파는 컸다. 광고업계에선 그가 다시 재기할 것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미지 추락이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사람들도 마음속에 품어왔던 고왔던 ‘예진아씨’를 떼어내고 있다.

사건이 터질 당시 황씨가 출연중이었던 광고는 태평양화장품 마몽드, 삼성물산 래미안아파트, 롯데백화점 등 3개였다. 태평양은 ‘마몽드’ 제품 광고를 사건이 터진 날부터 전면 중단시켰다. 대신 광고를 다른 화장품 브랜드인 ‘아이오페’와 ‘라네즈’로 교체했다. 태평양은 마몽드 인터넷 홈페이지에서도 황씨 사진을 삭제하는 등 발빠르게 대응했다. 황씨는 올 초 태평양으로부터 2억원의 출연료를 받고 1년 가전속 계약을 맺었다. 삼성물산도 ‘래미안아파트’ 텔레비전 광고를 중단했다. 이 광고를 제작한 제일기획 관계자는 “황씨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뒷부분을 잘라낼 것”이라고 말했다.

제품 이미지 악영향에 전전긍긍


황씨는 지난 4월 2억원의 출연료를 받고 삼성물산쪽과 1년 가전속 계약을 맺었다. 롯데백화점도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황씨가 출연중인 광고를 전면 중단하고 세일광고 등으로 대체하는 한편 지하철·버스 등 옥외광고를 철거하기 시작했다. 지난 1월 3억4천만원에 황수정과 광고출연 계약을 맺은 롯데백화점은 그를 대신할 여자 모델을 급히 찾고 있다.

이들 업체들은 한결같이 “큰 피해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제품 이미지에 끼칠 영향을 우려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황씨 사건에서 지금까지의 단아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히로뽕’, ‘최음제’, ‘동거’ 등의 단어들이 튀어나오면서 일반인들이 이전에 왕왕 있어왔던 ‘연예인 스캔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진/ 황수정씨 스캔들 충격이 광고업계를 강타했다. 태평양화장품 '마몽드'의 사진광고.
이에 따라 이들은 제품 이미지 손실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백화점은 모델료의 2배에 해당하는 7억원, 태평양과 삼성물산은 각각 4억원가량의 손해배상 소송을 고려하고 있다. 모두 합치면 15억원에 이르는 규모다. 황씨는 현재 진행중인 광고출연료로 모두 7억4천만원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광고계약을 맺을 때는 ‘반사회적 행위로 물의를 일으켜 제품 이미지에 피해를 입힐 경우 위약금을 문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어둔다. 위약금은 보통 계약금의 2배다. 그러나 이들 업체가 실제로 손해배상 소송까지 가기는 힘들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손해배상 소송에서 황씨와 자사 제품이 자꾸 거론되면서 연관 효과를 배가시켜 이미지 손실을 오히려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른 기업들도 지금까지 광고모델이 물의를 일으킨 경우 광고집행을 즉시 중단하는 것에 그쳤을 뿐 손해배상 소송까지 간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들과 반대로 최근 계약이 끝나 모델을 바꾼 비씨카드와 진로소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광고업계 한 관계자는 “황수정씨는 광고모델로선 이른바 쇠퇴기 또는 ‘끝물’이어서 출연광고가 줄어들고 있고, 현재 진행중인 광고들도 계약기간이 거의 끝난 상태여서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했다”고 말했다.

지난 95년 서울방송 MC 1기로 데뷔해 95년 말 드라마 <해빙>에서 북한 총리의 비서 역을 맡으면서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황씨는 이후 큰 히트작을 내지 못하다가 지난해 <허준>에서 ‘예진아씨’ 역을 맡으면서 정상급 스타로 떠올랐다. 황씨는 드라마의 인기를 등에 업고 화장품, 커피, 아파트, 소주광고 등에 잇따라 출연하면서 광고에서도 같은 이미지를 그대로 재생산해왔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드라마 <엄마야 누나야>와 <네자매 이야기>에서 너무 똑같은 모습을 보이면서 시청자들에게 부각되지 못했고 광고주들도 하나둘씩 떨어져나가던 참이었다.

그나마 끝물이었기에 불행중다행이었다

사진/ 황수정씨와의 계약만료로 스캔들 충격을 피해간 진로소주와 비씨카드.
광고업계는 이런 종류의 스캔들에 어느 정도 훈련이 돼 있지만 사건이 터질 때마다 당황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미지’에 목숨을 거는 화장품, 의류업체들은 미혼자를 대상으로 한 제품 광고 계약 때 “광고가 끝날 때까지 시집가면 안 된다”는 이면 조항을 넣기도 한다. 또 약이나 건강보조식품 광고에 출연하는 모델들은 계약기간 중 건강을 해치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지난 95년 대마초 흡연 혐의로 구속됐던 영화배우 박중훈씨는 법원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그러나 그를 모델로 쓴 지 각각 1주일과 이틀 만에 사건이 터져 광고를 중단해야 했던 태창(빅맨)과 뉴욕제과으로부터 각각 2억7천만원과 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해야 했다. 이승연씨는 지난 98년 자동차 운전면허 부정발급 사건으로 토크쇼뿐 아니라 광고 무대에서도 물러났다. 한때 최고의 광고모델이었던 신은경씨도 96년 음주운전 뺑소니 사건으로 광고계에서 잊혀진 인물이 되었다가 최근 <조폭 마누라>의 대히트로 광고업계가 다시 찾는 인물이 되고 있다. 백지영, 이영자, 이태란 파문이 일 때도 광고중단 상황은 똑같았다. 거슬러올라가면, 87년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민정당은 정주는 당, 통민당(통일민주당)은 고통주는 당”이라는 한마디로 피신까지 해야 했던 당시 최고의 개그맨 김병조씨도 출연 광고가 하루 아침에 사라진 바 있다.

최근에도 신세계백화점은 미스코리아 출신 손태영씨를 상품권 광고모델로 써왔으나, 지난달 손씨가 주영훈-신현준 3각 스캔들에 휘말리자 광고집행을 중단시켰다. 손태영 광고를 중단한 것과 달리 주영훈, 신현준 광고는 별탈없이 나가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광고업계는 여성모델의 스캔들에 더욱 민감하다. 지난 99년 오현경 비디오 사건이 발생하면서 “누구누구 테이프도 있다”는 등 온갖 소문이 만발하자, 일부 광고회사들은 문제있는 여자 연예인 리스트를 만들어 모델 선정에 참고하는 웃지 못할 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은 스포츠 스타에게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적용된다. 삼성전자는 지난 97년 제작비 6억원을 들여 당시 국가대표 감독인 차범근 감독을 모델로 한 텔레비전과 컴퓨터 광고를 내보내다가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에 참패하자 광고 게재를 중단했다. 부인 오은미씨의 훼스탈 광고마저 덩달아 중단됐다. 광고업계가 스포츠 스타와 장기계약을 잘 맺지 않는 이유는 이처럼 성적 변수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카드 광고 등에 나오고 있는 히딩크 감독도 만일 내년 월드컵 16강 진출에 실패한다면 광고모델로서의 효력은 끝나는 셈이다.

이미연의 전화위복… 누가 떠오를 건가

사진/ 황수정씨의 대타를 찾아라! 롯데백화점은 황씨가 나온 자사광고를 철거하고 있다.
한편 탤런트 이미연씨는 이같은 계약 취소 위기를 넘기면서 오히려 CF스타로 더욱 부각된 인물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 11월 이씨가 김승우씨와 이혼할 당시 광고업계는 심각한 고민에 쌓였다. 이씨가 당시 출연중이던 제품이 딤채, 피죤 등 주부를 대상으로 한 것이 대부분이었으며, 광고 내용도 ‘잉꼬부부’ 이미지를 주로 담았기 때문이다. 특히 남편 김승우씨가 이혼에 즈음해 광고 출연을 말없이 사양한 것과 달리, 이씨는 오히려 이혼 직전 광고출연 계약에 더 적극적이어서 이른바 ‘괘씸죄’까지 걸렸던 것이다. 이에 따라 당시 딤채를 생산하던 위니아는 이미연의 광고방송 중단을 검토했다. 그러나 “이혼녀는 딤채도 못 쓰냐”는 네티즌들의 항의로 회사 게시판이 마비될 정도에 이르자 이미연을 계속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는 딤채가 치열한 김치냉장고시장에서 1위를 유지할 수 있게 한 중요한 원인이 됐다. 달라진 사회분위기를 반영한 셈이다. 배상면주가는 또 이씨를 자사의 산사춘 광고에 출연시키면서 “한잔 할까? 남자 빼고”라는 카피를 곁들여 ‘이혼녀’ 이미지를 오히려 광고에 적절하게 활용하기도 했다.

권태호 기자/ 한겨레 경제부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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