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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당신이 롯데를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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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1-1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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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직 10여 자리 외부인사 영입 추진… 보수적 경영 스타일 탈피한 내부 변화 주목

사진/ 외인부대는 롯데를 바꿀 건가. 최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전자상거래 관련 세미나에서 강의를 듣고 있는 롯데 임원들.
“유능한 임원을 뽑습니다.”

최근 몇몇 일간지에 이런 내용의 좀처럼 보기 드문 광고가 실렸다. 대기업들이 일제히 인력 감축에 나서고 있는 와중에서 태연하게 임원을 공채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임원 공채를 실시하는 기업은 요즘 잘 나가고 있는 롯데. 유통·식품·수출입 등 분야에서 대략 10명 안팎의 인원을 뽑을 예정이다. 내수산업 비중이 커지면서 사업 규모가 급격히 확대돼 외부에서 고급 인력을 충원하기로 했다는 것이 롯데쪽의 설명이다.

롯데는 임원 공채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롯데 경영관리본부 관계자는 “일상적인 인력 채용의 일환이며, 단지 늘어나는 인력 수요를 내부에서 충당하기 어려워 외부 영입을 추진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재계 인사들은 롯데의 임원 공채를 그렇게 단순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부족한 인력을 충원할 수 있는 방법은 많은데 왜 굳이 공채 형식을 취했느냐는 것이다. 대기업들은 “모든 회사들이 임원을 줄이겠다고 난리인데…”, “혹시 우리 회사 핵심 인력이 빠져나가는 게 아닐까” 등 갖가지 추측과 함께 우려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또 내부 승진 대상자들이 많은 마당에 이들을 제쳐놓고 외부에서 많은 임원들을 영입해들이겠다는 것도 경영진에는 상당한 부담이어서 결코 흔한 일은 아니다.

인력감축 대세 거스르는 야심찬 도전


특히 이번 공채에 대기업의 전현직 임원을 포함해 수백명의 응시자가 몰린 것으로 알려지면서 공채 결과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롯데 관계자는 “공개모집을 하다보니 응시자가 많이 몰렸다”며 “전체 숫자를 공개할 수는 없지만 응시자가 200명 이상”이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이 가운데 적어도 100명 이상이 신분에 불안을 느낀 현직 임원들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대기업 임원들은 좌불안석이다. 경기불황과 함께 다시 구조조정의 바람이 불어닥치면서 언제 자리를 내놔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삼성은 삼성생명 등 몇몇 계열사들이 희망퇴직 등의 형식으로 임원 감축을 실시했으며, 삼성전자 등 나머지 계열사들도 연말에 정기인사와 함께 인력 감축을 마무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LG는 내년 초 인사에서 그룹 차원에서 임원을 10%가량 감축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0% 감축이라 하더라도 실제 임원들이 느끼는 체감 기온은 훨씬 낮다. 승진 임원들이 5∼10%를 내줘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기존 임원들 가운데 15∼20%가 자리를 물러나야 한다. LG의 한 임원은 “연말 인사철을 앞두고 임원들이 실적 평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며 “수익을 많이 내려고 서두르다보니 매출 등 외형적인 실적을 올리기보다 관리비 등 각종 비용을 줄이는 손쉬운 방법에 매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주위의 시선 때문인지 롯데는 공개적인 공고를 거쳤으면서도 선발 과정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있다. 몇명이 지원했는지, 이 가운데 현직이 얼마나 포함돼 있는지를 보안에 부치고 있는 것이다. 롯데는 특히 이번에 응시한 현직 임원들의 신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모든 원서를 우편으로 접수했다.

물론 롯데의 임원 공채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2월에도 7명의 임원을 공채 형식으로 선발해 현업에 배치했다. 이들은 지금 관리·홍보·영업·신규사업 등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다. 롯데캐피탈 이희문 상무(관리), 롯데그룹 기업문화실 이동진 이사(홍보), 롯데호텔 좌상봉 이사(신규사업), 롯데삼강 조희배 이사(영업관리), 롯데쇼핑 홍익표 이사대우(경리), 롯데건설 성필경 이사대우(해외사업부), 롯데건설 송남영 이사대우(아파트 현장관리). 이들이 바로 지난해 입성한 외인부대의 주역들이다. 이 가운데 이희문 상무는 국민은행에 합병된 장기신용은행 출신이다. 이동진 이사는 LG건설, 좌상봉 이사는 삼성전자, 조희배 이사는 제일제당, 홍익표 이사는 대우자동차, 성필경 이사는 현대건설, 송남영 이사는 극동건설 출신이다. 이번에 추가로 10여명의 임원이 영입된다면 롯데 임원진 가운데 상당수가 외인부대로 채워지게 되는 셈이다.

사람 위주의 보수적인 경영 스타일로 유명한 롯데가 임원진 자리를 과감하게 개방하고 외인부대 영입에 나선 것은 나름대로 상당한 내부 변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입 임원들이 전체 임원 300명에 비하면 적은 숫자지만 일정한 경영 스타일의 변화를 수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입 채용에도 영향… 테러 쇼크 적어

사진/ 롯데는 유통업을 발판으로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최근 비약적 성장을 이뤄 매장을 크게 늘릴 예정인 할인점 마그넷.(박승화 기자)
롯데는 그동안 인위적인 인력조정을 해본 적이 없다. 심지어 외환위기 직후에도 인력을 감축하지 않았다. 반대로 경력사원 채용에도 소극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신입사원을 뽑아 기업문화 등에 대한 철저한 교육을 시킨 뒤 ‘롯데맨’으로 만들어 써먹는 게 이들의 방식이었다. 이에 따라 사원들도 회사에 대해 강한 소속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중도 퇴사자도 다른 기업에 비해 많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롯데 사장단은 국내 어떤 그룹보다도 평균 연령층이 높은 실정이다.

이러한 롯데의 변화는 사원 채용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현재 400명의 신입사원 공채를 진행중인 롯데는 이전과 달리 빠른 변화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인물을 뽑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롯데 관계자는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며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인물을 찾는 데 면접의 초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임원진의 외인부대 영입은 향후 롯데의 공격적인 경영을 예고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내년도에는 사업 규모가 크게 확대될 전망이다. 롯데는 지난 6월 말까지 그룹의 반기 매출이 7조원을 넘어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7% 성장했다. 이 추세라면 올해 연간 매출액은 지난해 13조원에서 15조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쇼핑은 할인점 마그넷의 성장에 힘입어 매출이 지난해 5조원에서 올해 6조2천억원으로 25%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여기에 임대매장까지 합하면 매출 규모는 8조원 규모로 늘어나게 된다. 롯데건설은 현대건설 등 기존 건설업체 부실화의 반사이익을 톡톡히 보고 있다. 매출이 지난해 9400억원에서 올해는 20% 늘어난 1조1천억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2조원을 넘어선 수주잔고도 10월 말 현재 4조원에 이르고 있다.

공격적 경영, 서막 올랐는가

사진/ 마그넷의 식료품 매장 모습.(박승화 기자)
롯데칠성 또한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매출이 지난해 9225억원에서 올해 1조1천억원으로 예상된다. 롯데칠성은 특히 음료업계 단일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이달 말 매출이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여 분위기가 크게 고조돼 있다. 롯데칠성은 내수시장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동남아쪽에 대한 수출 확대를 노리고 있다. 롯데제과 역시 매출이 지난해 8811억원에서 올해 9600억원으로 9%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는 이에 따라 내년에 1조5천억 정도의 신규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백화점이 매장을 3개 신설하며, 할인점 마그넷은 매장을 15개나 늘릴 예정이다. 편의점 세븐일레븐 매장도 현재의 1천개에서 1300개로 대폭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롯데리아는 700개에서 900개로 늘어나게 된다. 롯데는 이번에 뽑은 직원들을 분야별로 백화점 150명, 롯데리아 50여명, 세븐일레븐 50여명, 건설 50여명 등으로 배치할 계획이어서 유통쪽에 가장 역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테러사건의 여파로 영업에 타격을 받고 있는 호텔과 면세점도 감원은 없다. 소폭이지만 인원을 확충한다. 롯데 관계자는 “테러사건의 영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연회 등 대부분 사업은 큰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롯데는 내년의 본격적인 영토 확장에 앞서 외인부대 영입이라는 조용하면서도 확실한 변화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롯데 계열사 예상실적(단위:원)
2000년 2001년
백화점 5조 6조2천억
롯데제과 8811억 9600억
롯데칠성 9225억 1조1천억
롯데건설 9400억 1조1천억


롯데 계열사 점포 증설계획
2001년 2002년
백화점 15 18
마그넷 24 39
세븐일레븐 1000 1300
롯데리아 700 900

*2001년 점포 수는 10월 말 기준/ 2002년은 연말까지 증설 목표

정남기 기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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